전염병이 디지털 견본주택의 시대를 강제로 앞당기고 있다. 중국 우한발 코로나19가 번지면서 분양업계가 앞다퉈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도입하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사이버 모델하우스는 과학이 발전할수록 보편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선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이버 모델하우스가 늘어나도 ‘임장(부동산 업계에서 현장답사를 뜻하는 용어)’이 줄어들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현장까지 가는 길과 분위기까지 사이버상에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간스포츠가 코로나19 사태로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연 '수원 매교역 푸르지오 SK뷰'의 현장 견본주택을 다녀와 차이를 살펴봤다.
텅 빈 견본주택…“우리도 처음 경험”
지난 14일 찾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에 위치한 푸르지오 SK뷰 견본주택은 그동안 흔히 봐왔던 모델하우스와 완전히 달랐다.
형형색색의 플래카드와 안내 책자를 나눠주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견본주택 폐관 안내’라는 커다란 안내 현수막만 눈에 띄었다.
드문드문 견본주택을 찾는 분양 관심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견본주택을 폐관해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운영합니다’란 문구를 읽고는 이내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견본주택 내부 풍경도 낯설긴 매한가지였다.
넓은 모델하우스 안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5~6명 정도의 청약 상담사가 전부였다. 평소라면 끝없이 늘어선 고객들과 대면 상담을 진행하겠지만, 매교역 푸르지오 SK뷰는 오로지 전화로만 상담을 진행한다. 청약 상담사들은 밀려드는 전화로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이날 만난 푸르지오 SK뷰 분양 관계자는 “수년째 관련업에 종사하는 동안 전염병 때문에 사이버 모델하우스만 운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사람이 없이 텅 빈 견본주택도 처음”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사이버와 임장의 차이는?
푸르지오 SK뷰는 대우건설과 SK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었다. 총 52개 동 3603세대에 이르는 대형단지다. 3.3㎡당 평균 분양가는 1810만원, 전용 74㎡의 5층 이상 분양가는 5억7300만원이다.
모델하우스 2층에 올라가자 푸르지오 SK뷰의 평형별 견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용적인 공간 활용과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전용 84㎡의 경우 침실 2개와 안방 1개 외에도 별도 ‘알파 룸’을 넣었다. 주방과 안방에 발코니가 딸려 있어서 실생활에 필요한 공간 구성에 퍽 신경을 쓴 태가 났다.
분양 관계자는 “더 작은 평수인 59㎡도 총 3개의 룸이 있다. 공간이 잘 빠졌다는 평가가 많다”고 귀띔했다.
컴퓨터를 통해 본 사이버 모델하우스와 큰 차이가 없었다.
대우건설은 사이버 모델하우스에 360도로 촬영한 VR(3D입체)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마우스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주택의 거실, 침실, 욕실 등의 내부 구조는 물론 천장까지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창호, 벽지, 마루, 타일, 가구에 쓰인 모든 마감재의 사양과 모델, 실제 이미지까지 제공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하나하나 뜯어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VR 영상은 생생했으나, 실제 공간 내부 너비나 폭 등을 체감하기는 다소 어려웠다. 또 사이버 모델하우스로는 수원 행성을 품은 인근 분위기와 서울에서 자차를 이용해 진입하는 시간 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푸르지오 SK뷰 관계자는 “사이버 모델하우스만 개관한 것은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청약 당첨자에게는 모델하우스 관람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장년·노인층… "사이버 모델하우스? 방법 몰라요”
스마트폰과 컴퓨터 소외계층의 접근성은 사이버 모델하우스의 또 다른 한계였다.
이날 견본주택 인근에서는 “푸르지오 SK뷰 모델하우스를 보러 왔다”는 분양 관심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현장을 찾은 이들 중 상당수가 50~70대 중 장년층이었다.
이남희(가명·67) 씨는 “14일에 모델하우스가 연다는 말만 듣고 한 번 와봤다. 사이버로 연다는 건 사실 잘 몰랐다. 현장에 오면 혹시 들여줄까 싶었는데 막더라”며 입맛을 다셨다.
이어 “솔직히 우리 나이 사람들은 컴퓨터를 잘 다룰지 모른다. 입구에서 나눠준 소책자나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고 입맛을 다셨다.
김은영(가명·56) 씨 역시 “오늘 개관한 곳이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말하는 건지 몰랐다”며 “집에 가서 딸에게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좀 보여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사이버 모델하우스가 처음 등장한 건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건설은 당시 홈페이지에 150페이지에 달하는 주택정보와 함께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열었다. 두산건설은 "마치 모델하우스를 구경하고 있는 듯한 효과와 원하는 부분을 확대, 축소해 볼 수 있는" 기능을 넣었다고 홍보했다.
어느덧 23년이 흘렀지만, 사이버 모델하우스는 홍보를 위한 일종의 '옵션'일 뿐 임장만큼 중요성이 강조되진 않는다.
건설사 관계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집을 사이버상으로만 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술이 발전해도 임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때문에 최근 사이버 모델하우스가 늘어났지만 잘 살펴보면 흥행 요소가 많은 단지 위주”라며 “코로나19가 잦아들 것으로 예상하는 이달 말부터는 견본주택이 더 많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