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투수의 견제구로 주자를 가장 많이 잡아낸 팀은 KT 위즈다. 11일까지 치른 99경기에서 12개를 해냈다.
이 중 9개가 1루에서 나왔다. 오른손 투수가 8개, 왼손 투수가 1개를 기록했다. 1루 견제는 왼손 투수가 유리하다. 주자를 등진 우투수는 축이 되는 발(오른발)을 투수판에 붙인 채 몸을 회전하며 공을 던져야 한다. 왼손 투수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KT는 오른손 투수가 잡은 기록이 더 많다.
투수 개인의 견제 능력과 주자의 습관을 간파하는 벤치의 분석력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KT가 견제사를 많이 잡아내는 이유로 '1루수의 수비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주자를 잡겠다'고 작정한 견제구는 빠르다. 태그가 필요하다 보니 대체로 낮게 던지기도 한다. 당연히 부정확할 때도 많다. 일차적으로는 투수의 제구가 기본이지만, 야수의 포구 능력도 중요하다.
KT가 1루에서 기록한 아웃카운트 9개 모두 이 자리 주인인 박병호의 태그로 만들어졌다. 이강철 KT 감독은 "박병호의 포구 능력이 워낙 좋고, 공을 잡은 뒤 태그를 하는 동작도 매끄럽다. 투수들은 견제하는 데 부담이 없고, 상황에 따라서는 박병호의 도움으로 아웃카운트를 잡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 감독의 말처럼 박병호가 공을 잡아 태그하는 동작은 매우 간결하다. 원바운드 공도 쉽게 잡아내 투수의 멋쩍은 웃음을 자아낼 때도 있었다.
지난 4월 27일 수원 KIA전에서도 박병호의 포구와 태그 능력이 빛났다. 7회 초 1사 1루에서 선발 투수 소형준이 대주자 박정우를 잡기 위해 뿌린 견제구가 다소 높았지만, 박병호가 포구 뒤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으로 태그해 아웃시켰다.
실책을 의식해 그저 시선만으로 주자를 묶거나, 무의미한 송구를 하는 투수도 있다. KT 투수들은 주저하지 않는다. 박병호가 1루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박병호는 11일까지 홈런 32개를 기록, 이 부문 타이틀을 향해 독주하고 있다. 홈런쇼에 가렸지만, 그는 수비로도 팀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올 시즌 리그 주전 1루수 중 두 번째로 많은 이닝(686)을 기록하며 내야 오른쪽을 든든하게 지켜냈다. 종종 부정확한 유격수와 3루수의 송구도 안정감 있게 잡아낸다. 상황 판단도 빠르고 정확한 편이다.
30대 후반에 다가선 나이지만, 순발력도 여전하다. 지난달 27일 수원 키움 히어로즈전 3회 초엔 상대 간판타자 이정후의 우측 강습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낸 뒤 직접 베이스를 밟고 안타를 막아냈다. 이강철 감독은 "선발 투수 고영표나 소형준은 '땅볼 유도형' 투수들이다. 박병호가 송구를 잘 잡아주고, 우측 타구도 잘 처리해주면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KT는 그동안 전문 1루수가 없었다. 지난 2년(2020~2021) 이 자리를 지킨 강백호는 입단 3년 차까지 외야수였다. 수비력은 더 좋아져야 한다는 평가다.
올 시즌은 부상 여파로 수비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강백호가 KT 1루를 지켜야 한다. 그런 그에게 박병호의 존재는 든든하다. 이미 스프링캠프부터 박병호에게 스텝이나 포구 자세 등 틈틈이 수비 기본기를 배웠다. 박병호의 존재감은 타석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