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승부욕과 근성은 김연경(34·흥국생명)이 '배구 여제'에 오른 힘이다.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고 수차례 외치며 동료들을 독려하던 지난해 도쿄 하계올림픽 도미니카공화국전 모습이 그걸 보여줬다.
퍼포먼스도 화끈하다. 두 손을 불끈 쥐고 포효하거나, 두 팔을 벌리고 코트 위를 누비는 '비행 세리머니'가 대표적이다. 동료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로 반응하며 사기를 북돋우려 한다.
김연경은 2년 만에 국내 무대에 복귀해 치르는 첫 대회인 '2022 순천·도드람컵(순천컵)'에서 이전보다 더 역동적인 세리머니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득점했을 때보다 팀 후배들이 좋은 플레이를 보여줄 때 더 그랬다.
특히 입단 3년 차 세터 박혜진(20)을 향한 눈빛과 응원엔 애정이 넘친다. 박혜진이 상대 블로커들을 따돌리는 절묘한 세트를 해내거나, 허를 찌르는 2단 패스 페인팅을 성공시키면 꼭 다가서 어떤 말을 건넨다. 17일 나선 GS칼텍스전 3세트 후반에는 상대 공격수 유서연의 오픈 공격을 블로킹 해낸 박혜진을 부둥켜안고 번쩍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김연경은 경기 중에도 끊임없이 동료들과 소통한다. 공을 공격수에게 배급하는 세터와는 특히 그렀다. 2020~21시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GS칼텍스전)에서도 세터 김다솔과 세트 높낮이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몸짓을 더해서 설명하는 김연경의 모습이 마치 '팝핀(스트릿댄스 종류)'을 추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이번 순천컵 예선 두 경기에서 8명만으로 싸웠다. 대회 개막 직전, 선수 5명이 코로나19에 걸린 탓이다.
경기에 뛸 수 있는 세터는 박혜진 한 명뿐이었다. 교체 없이 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김연경이 복귀한 뒤 흥국생명 경기를 향한 배구팬의 관심이 쏟아지며 부담감까지 커졌다.
박혜진을 향한 김연경의 유난스러운 응원은 일종의 '기 살리기'로 보인다. 유망주로 평가받지만, 아직 3년 차인 박혜진이 자신감을 갖고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사실 앞선 두 경기에서 김연경과 박혜진의 호흡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박혜진의 세트 높이나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김연경이 스파이크조차 하지 못한 장면이 꽤 많았다.
백어택 공격은 거의 시도하지 못했다. 김연경이 후위(서브 순번)에 있을 때 그에게 향한 박혜진의 세트는 13일 IBK기업은행전에서 3번, 17일 GS칼텍스전에선 1번뿐이었다. 김연경이 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어도, 공은 아포짓 스파이커 김다은이나 아웃사이더 히터 김미연에게 주로 향했다. 이날 김연경의 기록(16득점·공격 성공률 40%)은 평범했다. 경기도 세트 스코어 2-3으로 패했다.
후위에 있는 김연경은 상대 팀에 무서운 존재다. 서브 리시브를 잘하기 때문에 강서브 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고, 위력적인 백어택 공격 능력까지 갖춰, 상대 블로커들에게 혼란을 준다. 그러나 순천컵에선 이런 강점이 발휘되지 못했다.
손발이 더 맞아야 한다. 그래도 김연경은 박혜진을 향해 인상조차 쓰지 않는다. GS칼텍스전 3세트 19-22 상황에선 박혜진의 세트가 네트와 너무 떨어져 향한 바람에 김연경이 공격 범실을 범하고 말았다. 김연경은 그저 웃어 보이며 후배를 독려했다.
흥국생명-GS칼텍스전이 열린 17일 순천 팔마체육관엔 관중 3978명이 들어찼다. 좌석(3500석)은 모두 찼고, 입석 관중까지 입장했다. 김연경이 복귀한 효과였다. 만원 관중의 응원을 받은 선수들도 "배구 할 맛 난다"며 힘을 냈다.
다가올 V리그를 향한 기대감도 높아진다. 김연경이 가세한 흥국생명이 리그 순위 경쟁 판도를 흔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치열한 순위 싸움은 배구팬의 발걸음을 경기장으로 끌어모을 것이다.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 주전으로 나선 김다솔, 5년 차 박은서 그리고 박혜진이 주전 자리를 두고 경합한다. 김연경의 실력을 100% 끌어내려면 안정감 있는 공 배급이 필수다. 흥국생명의 시즌 농사는 세터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순찬 흥국생명 감독은 "박혜진의 백어택 세트 높낮이에 아직 기복이 있는 게 사실이다. 김연경과 손발을 맞춘 지 얼마 안 된 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상대적으로 더 오래 뛰었던 김다은과 박혜진의 (백어택) 호흡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김연경과도 더 나아질 것이다. 아직 우리 팀 주전 세터는 정해지지 않았다. 경쟁 체제다. 가장 잘하는 선수로 선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흥국생명은 19일 순천컵 준결승전을 치른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격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수도 있다. 흥국생명 젊은 세터들과 '배구 여제'가 더 가까워질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