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정민(38)은 대만 프로야구(CPBL)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꼽힌다. 지난 2001년 중신의 전신 슝디 엘리펀츠에 입단한 그는 이적없이 16년 동안 한 팀에서 뛰었다. 데뷔 첫 해부터 지난 시즌까지 15년 연속 대만 올스타에 선정되며 '국민 타자' 반열에 올랐다. 아시안게임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만 대표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해 국내 팬에게도 익숙하다.
CPBL이 승부 조작으로 몸살을 앓을 때 그의 소속 팀 중신도 자유롭지 못했다. 슝디 시절 포함 두 차례(1997·2009년)나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 그러나 펑정민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했다. 본지 특별취재팀은 펑정민을 만나 대만야구의 흥망성쇠에 대해 들었다.
- 16년 동안 꾸준한 활약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비결은 없다. 나는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 재밌는 걸 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를 계속 이어가고 싶을 뿐이다. 최근 국가대표를 반납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대표팀에 발탁됐으니 벌써 14년을 뛰었다. 국제대회 참가는 나를 성장시켰고, 현역 생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이제 다른 젊은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 대만 야구의 흥망성쇠를 오랫동안 지켜봤다.
"CPBL은 2000년대 초반 승부 조작으로 흥행에 직격탄을 맞았다. 내가 막 프로에 입단했을 때 구장에 야구 관계자(선수·코치·미디어)가 야구 팬보다 더 많았던 경기도 있었다. 그러다 2004~2005시즌엔 팬이 크게 늘었다. 경기당 평균 6000~8000명 관중이 오셨다. 승부조작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듯 했다. 그러나 승부조작이 재발하고 말았다. 야구 팬들이 다시 야구장을 찾지 않기 시작했다. 관중은 2000~3000명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다행히 2010년 이후 CPBL엔 승부조작이 사라졌다. 관중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은 야구장에서 열기를 느낄 수 있다."
- 소속 팀은 두 차례 승부 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속상했다. 프로야구 선수는 공인이다. 공인으로서 우리의 생활은 단순해야 한다. 술을 마시고, 노래까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와 같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모르는 사람을 멀리하고, 친한 사람과 만날 때는 내가 번 돈을 써야 한다. 정당하지 않은 돈을 받는 건 유혹에 빠지는 길이다. 선수가 유혹에 빠지면 팀까지 흔들리게 된다. '내가 먼저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대에서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사람들이 보러오지 않겠나. 팀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 한국은 두 차례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했다.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가.
"이런 일에서는 우리가 선배인 셈이다. 더 많은 일을 겪었다. 젊은 선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야구는 자기 자신의 일이다. 정말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 내 일을 열심히 할 때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야구를 사랑하고 열정이 많은 팬을 배신하면 안 된다. 중국엔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다. ‘평생 벌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다.’ 지금 많이 번다면 나중엔 적게 번다. 인생에 정해진 금액만큼 번다는 뜻이다. 지금 우둔하게 나쁜 짓을 해서 많은 돈을 벌어도 나중에는 어려움에 처한다. 차근차근 노력해서 버는 것이 좋다."
- 국가대표를 오래한 만큼 한국 선수와 친분도 있을 것 같다.
"이승엽 선수(삼성)를 잘 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마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났던 것 같다. 김병현과 임창용(이상 KIA) 상대한 기억도 있다. 김동주(전 두산)가 다쳤던 대회(1회 WBC)도 기억하고 있다. 국내외 친분 있는 선수들의 은퇴 소식을 들으면, 나도 때가 머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은퇴를 하면 그라운드 밖에서 일을 하고 싶다. 요식업이나 야구용품이 어떨까. 코치나 감독은 공부할 게 많아서 간단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