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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멜버른의 왕' 조코비치가 10번째 우승으로 돌아왔다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는 우승 확정 후 플레이어 박스로 올라가 오른팔을 내저으며 환호했다. 잠시 후엔 어머니와 코치를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메이저 대회 통산 22회 정상에 오른 그에게도 이번 대회 우승은 남달랐다. 조코비치는 "내 생애 최고의 우승"이라고 감격해했다. 조코비치는 지난 29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총상금 7650만 호주달러·672억원) 남자 단식 결승에서 스테파노스 치치파스(4위·그리스)를 2시간 56분 만에 3-0(6-3, 7-6<7-4>, 7-6<7-5>)으로 물리쳤다. 그는 우승 상금 297만5000 호주달러(26억원)를 거머쥐었다.조코비치는 이번 우승으로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 부문에서 나달과 함께 공동 1위(22회)로 올라섰다. 또 30일 발표된 세계 랭킹에서 7개월 만에 1위를 탈환했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의 사나이'로 통한다. 2021년까지 이 대회에서만 무려 9차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그는 호주오픈 대회에 나설 수가 없었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국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대회 참가를 위해 호주 멜버른에 도착하고서도 격리시설로 이동했다. 조코비치는 두 차례나 소송을 제기해 호주 정부와 법정 싸움을 벌였지만, 결국 추방 조치됐다. '약속의 땅' 멜버른에 발을 내딛지 못한 채 고국 세르비아로 돌아갔다. 호주 현행법상 비자 취소로 국외 추방된 사람은 원칙적으로 3년간 입국을 금지한다. 이에 이번 대회 출전 여부도 불투명했지만, 조코비치는 지난해 말 유권 해석을 받아 천신만고 끝에 호주오픈에 출전했다. 2년 만에 나선 이번 대회에서 그가 통산 10번째 우승을 차지하자,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조직위원회는 "멜버른의 왕이 귀환했다"고 소개했다. 조코비치는 "(지난해 백신 논란으로) 이번 대회는 내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대회였다. 2년 만에 돌아온 나를 다시 환영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우승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 계속됐다. 앞서 열린 애들레이드 대회에서 왼 햄스트링을 다쳐, 이번 대회 붕대를 감고 나왔다. 그런데도 승승장구하자 '가짜 부상' 논란이 제기됐다. 또한 그의 아버지 스르단 조코비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은 사실이 알려져 '친러 논란'까지 불거졌다. 대내외적으로 힘겨운 싸움을 펼친 그는 이번 대회 7경기를 치르면서 단 한 세트만 내주는 완벽한 위용을 자랑했다. 조코비치가 이 대회에서 가장 최근 당한 패배는 2018년 16강전에서 한국의 정현에게 0-3(6-7<4-7>, 5-7, 6-7<3-7>)으로 진 것이다. 이후 호주오픈에서 28연승 중이다.조코비치는 "이번 우승이 내 생애 가장 큰 승리다. 우리 팀 스태프와 가족만이 최근 4∼5주간 우리가 겪은 긴 여정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치파스는 2021년 프랑스오픈에 이어 개인 통산 두 번째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두 번 모두 조코비치에게 패했다. 이형석 기자 사진 2023.01.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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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스트링 부상, 아버지 친러 논란…조코비치, 10번째 호주오픈 우승 달성할까? 

노바크 조코비치(5위·세르비아)가 통산 10번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우승에 도전한다. 왼쪽 햄스트링 부상과 갑자기 닥쳐온 아버지 스르단 조코비치의 '친러 논란'을 넘어야 한다. 조코비치는 지난 27일(한국시간)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총상금 7650만 호주달러·약 672억원) 남자 단식 준결승에서 토미 폴(35위·미국)을 3-0으로 꺾고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사실상 호주에서 추방당한 조코비치는 2년 만에 호주오픈 결승 무대에 진출했다. 조코비치는 호주오픈에서 통산 9차례나 정상에 올랐을 정도로 상당히 강한 모습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과 함께 메이저 대회 최다 22회 우승 타이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조코비치는 29일 오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4위·그리스)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다툰다. 둘은 지금까지 총 12차례 맞붙어 조코비치가 최근 9연승을 포함해 10승 2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조코비치가 대회 통산 10번째 우승을 달성하려면 몸 상태와 아버지 논란을 뛰어넘어야만 한다. 조코비치는 이번 대회 왼쪽 햄스트링(허벅지 뒤 근육)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압박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코트에 나서고 있다. 경기 도중 긴 랠리를 벌이거나, 다소 무리한 동작을 한 뒤에는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조코비치는 엔조 쿠아코(191위·프랑스)와 2회전에서 3-1로 이긴 경기를 제외하면 준결승까지 5경기를 모두 무실세트로 끝내는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가짜 부상' 의혹을 받고 있지만 "다른 선수들이 부상일 때는 안타까워하면서, 내가 부상일 때는 '가짜'라고 하니 흥미롭다"며 안타까워했다. 조코비치는 최근 아버지 스르단의 '친러시아 논란'으로 곤경에 처했다. 친러시아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 스르단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러시아 국기를 든 남성과 포즈를 취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호주 신문 멜버른 에이지는 스르단이 세르비아어로 "러시아 만세"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주호주 우크라이나 대사가 반발했다. 스르단은 "아들의 경기가 끝나고, 팬들과 승리를 함께 축하하기 위해 경기장 밖에 있었다. 논란에 휘말릴 생각은 없었다"며 "우리 가족은 (코소보) 전쟁의 공포를 겪었고, 평화를 바랄 뿐이다"라고 논란 진화에 나섰다. 조코비치는 준결승 승리 후 "내 가족과 팀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치치파스는 지금까지 메이저 대회에서 딱 한 차례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2021년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4시간 11분 혈투 끝에 조코비치에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치치파스는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과 함께 조코비치에게 복수를 꿈꾼다. 2023.01.29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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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14세부 우승 조세혁 "3년 뒤 주니어 그랜드슬램 우승할게요"

윔블던 테니스대회 14세부 이하 남자 단식에서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조세혁(14·남원거점스포츠클럽)이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정진한다. 조세혁은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대한테니스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휠라코리아 후원 조인식 및 기자회견에 참석해 "처음에는 상상만 하던 윔블던에 초청받아 영광이었는데, 우승하면서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현재 아시아테니스연맹 14세 이하 남자 단식 랭킹 1위인 조세혁은 올해 신설된 윔블던 14세부에서 우승했다. 이후 프랑스와 독일에서 열린 주니어 대회에서도 1위에 올랐다. 그의 롤모델은 노바크 조코비치(6위·세르비아)다. 윔블던 대회에서 만나 사진도 찍었다. 그는 "조코비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인성이나 정신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면서 "처음 마주하고 놀랄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았다. 기분이 좋았지만 대기 줄이 길어 얘기를 나누진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조세혁은 테니스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 조성규 씨가 전북테니스협회 전무이사를 맡고 있고, 어머니 황선숙 씨도 테니스 선수 출신이다. 한 살 아래 남동생 조민혁 역시 테니스 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재미있어 보여 6살 때 테니스에 입문했다. 테니스에 전념하기 위해 올해 6월 중학교를 그만뒀다. 조세혁은 "학교 다니면서 운동까지 병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테니스에만 집중하고 싶어 학교를 그만뒀다"며 "3월부터 출석하지 않아 6월에 유예 처리가 되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조세혁은 자신의 강점으로 "공격과 수비를 두루 잘한다. 특히 정신력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심리센터에 다녀 정신력을 강화했다. 다만 "다양한 플레이가 없다. 네트 플레이나 드롭샷도 보완해야 한다"며 "정현 선배의 백핸드, 권순우 선배의 드롭샷을 배우고 싶다"고 덧붙였다. 신장 1m80㎝, 체중 69㎏으로 체격과 체력적으로는 다른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서브 최고 시속이 벌서 190㎞까지 찍힌다. 그는 "목표는 일단 100위 안에 들어서 메이저 대회에 뛰는 것"이라며 "목표는 조금씩 나아가야 할 것 같다. 작은 목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17살에는 주니어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다시 우승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형석 기자 2022.08.1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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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향수를 자극한 조지 왕자의 윔블던 데뷔

지난 10일(현지시간)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의 승자는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였다. 그는 2018, 2019, (2020 대회는 코로나 때문에 열리지 않음) 2021년에 이어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4회 연속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써 조코비치는 메이저 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만 21회 우승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그보다 메이저 대회에서 더 많이 우승한 선수는 라파엘 나달(22회)밖에 없다. 한편 올해 처음 도입된 윔블던 14세부 경기 남자 단식 챔피언에는 한국 테니스의 기대주 조세혁이 올랐다. 14일간 진행된 2022 윔블던 대회는 다양한 이야기와 화제를 만들었다. 필자는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할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장손으로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과 그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는 열렬한 테니스 팬이다. 윔블던 대회의 낯익은 풍경 중 하나가 윌리엄과 케이트가 직관하는 모습이다. 이 부부는 2022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전에 뜻밖의 손님을 대동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장남이자 왕위 계승 서열 3위로 아홉 번째 생일을 며칠 남겨 놓지 않은 조지 왕자가 깜짝 등장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대회이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은 엄격한 드레스 코드로도 유명하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가 착용한 옷, 모자, 밴드, 신발 등은 흰색이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 드레스 코드는 2014년에 도리어 강화되어, 선수들은 언더웨어마저도 흰색만을 입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윔블던의 드레스 코드는 관람객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주요 경기가 열리는 센터 코트와 1번 코트에서 경기를 관람하려면 일반 관객도 말쑥하게 차려입는 게 좋다. 또한 앰부시 마케팅(스폰서가 아니면서도 그러한 인상을 줘 홍보를 극대화하는 기법) 규제에 따라, 관객은 기업의 로고가 크게 들어간 옷을 입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윔블던의 센터 코트에는 1922년 만들어져 74개의 좌석으로 운영되는 로얄 박스가 있다. 초청장을 받은 유명 인사만이 앉을 수 있는 이곳에는 더욱 엄격한 드레스 코드가 적용된다. 남성은 정장 차림에 타이를 반드시 매야 한다. 역시 정장을 입어야 하는 여성은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쓸 수도 없다. 다른 관객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결승전에 모습을 보인 조지 왕자도 규정에 따라 정장을 입었다. 하지만 아홉 살이 채 안 된 어린 왕자가 정장 차림으로 3시간이 넘게 경기를 지켜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런던 날씨답지 않게 그날 기온은 섭씨 29도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에 타이를 맨 조지 왕자는 부모에게 “too hot(너무 덥다)”고 말하며 이마의 땀을 연신 닦았다. 경기 후 이들은 윔블던 챔피언 조코비치와 만나 담소를 나눴다. 조코비치는 조지 왕자에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라고 건네주었고, 이에 왕자는 쑥스럽게 이를 들어 올렸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윌리엄 왕세손이 조지에게 “Don't drop it(트로피 떨어뜨리지 마)”라는 농담을 던졌다는 유쾌한 일화도 전해졌다. 사실 조지 왕자의 이날 윔블던 데뷔가 언론과 대중의 시선을 끈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1991년 당시 아홉 살이었던 윌리엄 왕자가 어머니인 다이애나와 여자 단식 결승전을 보며 윔블던 무대에 데뷔했던 장면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31년의 시차를 두고 거의 같은 나이의 두 왕자가 윔블던에 데뷔한 모습, 그리고 아직은 약간 어색하지만, 정장을 입은 앳된 모습의 두 왕자가 너무 비슷해 보여 화제를 모았다.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릴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스무 살이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남편 찰스의 마음은 딴 사람에게 이미 가 있었고, 가식적이고 체면만 내세우는 왕족들 사이에서 다이애나는 불행했다. 그런 그녀에게 아들 윌리엄과 해리는 보물 같은 존재였다. 부모의 불화와 이혼 등으로 외롭게 자랐던 다이애나는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두 아들을 사랑과 정성을 다해 키웠다. 장난을 좋아하고 잘 웃는 다이애나는 윌리엄에게 “You can be as naughty as you want, just don’t get caught(원하는 만큼 장난쳐도 되지만, 들키지는 마)”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아들에게 특별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다이애나는 왕세자비의 의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왕족이라는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소탈하고 진심 어린 마음과 행동으로 국민을 대했다. 이에 다이애나는 영국민들로부터 ‘People's Princess(국민의 왕세자비)’로 불릴 만큼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두 아들을 위해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15년간 지속했던 다이애나는 결국 1996년 8월 찰스와 이혼했다. 불과 1년 후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 다이애나를 향한 윌리엄의 사랑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윌리엄은 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낡은 오메가 손목시계를 지금도 거의 매일 찬다. 윌리엄은 매년 ‘어머니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그의 세 자녀(조지, 샬럿, 루이)에게 할머니 다이애나를 향해 편지를 쓰게 한다고 한다. 2021년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의하면 윌리엄의 장녀 샬럿은 편지에 “Papa is missing you(아빠가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어요)”라고 써,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지금도 매일 다이애나를 그리워한다는 윌리엄. 그리고 이 둘의 윔블던 장면을 기억하는 영국민들에게 조지 왕자와 함께 나타난 중년 윌리엄의 모습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07.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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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비치 아버지, '세계 1위' 아들의 올림픽 출전 말렸었다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4·세르비아)의 아버지 스르잔 조코비치가 대회 전 아들에게 올림픽에 출전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고 밝혔다. 조코비치는 자신의 네 번째 올림픽에서도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큰 꿈을 안고 출전한 조코비치는 아무런 메달 수확없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다. 조코비치는 30일 남자 단식 준결승전에서 알렉산더 츠베레프(24·독일)에게 세트 스코어 1-2로 지며 금메달에 도전할 기회를 놓쳤다. 31일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파블로 카레뇨 부스타(30·스페인)에게 1-2로 패하면서 최종 순위 4위에 머물렀다. 조코비치는 31일 단신 경기 이후 니나 스토야노비치와 함께하는 혼합 복식 동메달 결정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어깨 통증을 이유로 기권했다. 처음 출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조코비치는 이후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올해 열린 메이저 대회 호주오픈, 프랑스오픈에 이어 윔블던까지 제패했고, 테니스 '빅3'의 다른 두 축인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모두 도쿄 올림픽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림픽은 끝까지 조코비치를 위한 무대가 아니였다. 1일 마르카의 보도에 따르면 조코비치의 아버지 스르잔은 팟캐스트 '비지니스스토리즈'를 통해 올림픽 전 아들에게 전했던 메시지를 공개했다. 스르잔은 아들에게 "내 의견이 너에게 의미가 있다면, 나는 네가 도쿄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먼 길이며, 관중도 없고 다시 격리되어야 할 거다. 관중이 없는 올림픽은 의미 없다. 아빠는 널 사랑한다"고 보냈다. 이에 아들 조코비치는 "물론 아버지의 의견은 내게 중요하다. 며칠간 휴식을 취하면서 내 몸 상태를 돌아봤고, 나는 항상 회복이 빠르기에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아버지도 알다시피 내 마음과 머릿속에는 애국심이 가득하다. 조국 세르비아에 관해서는 울더라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결국 아버지를 설득한 조코비치는 세르비아를 위해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결과는 따라주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은 무산됐지만, 조코비치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조코비치는 오는 30일 개막하는 US오픈에서 한해에 열린 4개의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에 도전한다. 강혜준 인턴기자 2021.08.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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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시비옹테크, 프랑스오픈 제패...폴란드 사상 첫 메이저 우승

19세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세계랭킹 54위)가 프랑스오픈 정상에 오르면서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폴란드 선수로는 남녀 통틀어 메이저 첫 우승이다. 시비옹테크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소피아 케닌(22·미국·6위)을 세트 스코어 2-0(6-4, 6-1)으로 이겼다. 2001년생으로 열아홉 살인 시비옹테크는 1992년 모니카 셀레스(당시 19세·현 미국) 이후 가장 어린 나이에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19세에 메이저 우승을 이루면서 폴란드 테니스 역사를 썼다. 1968년 이후 오픈 시대 메이저 대회에서 폴란드 선수가 여자 단식에서 올린 최고 성적은 아그니에슈카 라드반스카(은퇴)의 2012년 윔블던 준우승이었다. 프랑스오픈에서는 오픈 시대 이전인 1939년 대회에서 야드비가 엥드제호프스카가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직까지 우승 기록은 없었는데, 시비옹테크가 해낸 것이다. 우승 상금은 160만 유로(약 21억7000만원)다. 시비옹테크는 운동 신경이 타고났다. 아버지는 1988 서울 하계올림픽에 조정 종목의 쿼드러플 스컬스에 출전한 바 있다. 언니가 어렸을 때 테니스를 했는데, 언니와 대결하고 싶어서 시비옹테크도 테니스 라켓을 들었다. 이후 주니어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16년 프로에 데뷔했다. 프랑스오픈 대회 전까지는 투어 우승 경험이 없었다. 지난해 프랑스오픈과 올해 호주오픈에서 16강에 오른 것이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이었다. 그런 시비옹테크가 이번 대회에서는 압도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올해 호주오픈 우승자인 케닌을 상대로 공격 횟수 25-10, 서브 최고 시속 180㎞-157㎞로 엄청난 경기력을 자랑했다. 본선 7경기 내용도 기록적이다. 16강에서 세계 2위 시모나 할레프(루마니아)를 2-0(6-1 6-2)으로 완파한 것을 포함해 결승까지 7경기 모두 2-0으로 이겼다. 프랑스오픈에서 여자 단식 무실 세트 우승자가 나온 것은 2007년 쥐스틴 에넹(은퇴·벨기에) 이후 13년 만이다. 시비옹테크는 "프랑스오픈 우승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메이저 대회 우승은 먼 훗날 일어날 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뤄서 기분이 이상하다. 어쨌든 나는 메이저 대회 챔피언이다"라며 기뻐했다. 남자 단식 결승은 11일(한국시간) 오후 10시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33·세르비아)와 2위 라파엘 나달(34·스페인)의 대결로 펼쳐진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2020.10.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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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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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와 매치, 정현의 '꿈'은 이뤄질까

연합뉴스한국 스포츠가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테니스 천재 정현(22·한국체대)이다.정현은 지금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는 지난 22일 호주 멜버른 멜버른파크에서 펼쳐진 2018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를 3-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조코비치가 누구인가. 세계 정상급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슈퍼스타다. 그는 그랜드슬램 남자 단식에서 무려 12차례나 정상에 섰다. 호주 오픈 6회를 비롯해 프랑스 오픈 1회, 윔블던 3회, US 오픈 2회를 석권했다. 당연히 세계 랭킹 1위에도 이름을 올린 경험이 있다. 정현이 상승세고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지만 세계 랭킹 58위가 넘어서기에 조코비치는 다소 벅찬 상대라는 예상이 많았다. 정현과 조코비치의 대결을 앞두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조코비치의 저력에 높은 점수를 준 이유다. 연합뉴스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정현은 3-0으로 조코비치를 무너뜨렸다. 조코비치가 현재 오른쪽 팔꿈치 부상 여파로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어도, 또 랭킹이 14위로 떨어진 하락세라고 해도 정현이 조코비치를 넘은 것은 '위대한 결실'이다. 조코비치는 경기 뒤 "정현은 나를 충분히 이길 만큼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정현은 "조코비치는 내 어릴 적 우상이었다. 롤모델로 삼었던 선수와 경기하게 돼 영광"이라며 우상을 향한 존경심으로 승리의 기쁨을 표현했다. 조코비치라는 슈퍼스타를 꺾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정현이다. 하지만 그가 호주 오픈을 치르는 과정을 보면 사실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정현에게 세계 랭킹은 큰 의미가 없었다.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선수들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왔다. 본선 1라운드에서 랭킹 35위 미샤 즈베레프(31·독일)에게 기권승을 거둔 정현은 2라운드에서 53위 다닐 메드베데프(22·러시아)를 3-0으로 잡았다. 32강에서는 조코비치보다 한참 랭킹이 높은 알렉산더 즈베레프(21·독일)까지 멈춰 세웠다. 정현에게 2-3으로 무너진 알렉산더 즈베레프 역시 세계 정상급 선수로 현재 랭킹이 4위다. 이 기세를 이어 조코비치까지 넘어선 것이다. JTBC 3 FOX SPORTS 눈 편안한 초록 코트에 서세요 정현은 난시 치료를 위해 어린 시절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처음부터 테니스선수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릴 때 고도 근시와 난시를 겪었고 이에 의사는 책을 읽는 것보다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색 코트를 보는 것이 낫다고 권유했다. 의사의 권유를 받아들인 정현은 난시 치료를 위해 열심히 테니스 라켓을 휘둘렀다. 정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고글도 이 때문에 쓰는 것이다. 난시 극복을 위해 정현의 옆에서 삼일공고 테니스부 감독을 지낸 아버지 정석진씨와 실업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형 정홍이 도움을 줬다. 테니스 집안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자연스럽게 실력이 쑥쑥 올랐고 마침내 조코비치까지 넘어서는 감동적인 날이 찾아왔다. "오늘은 나에게 많은 꿈 중 하나가 이뤄진 날이다."조코비치를 꺾은 날 정현이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은 자신의 꿈 하나를 이룬 것과 동시에 또 다른 꿈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정현의 더 큰 꿈은 호주 오픈에서 가능성이 열려 있다.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다. 연합뉴스페더러는 역대 그랜드슬램 최다 타이틀을 품은 전설이다. 호주 오픈 5회·프랑스 오픈 1회·윔블던 8회·US 오픈 5회 등 총 19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37주 연속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장 연속 랭킹 1위 기록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호주 오픈 우승자다. 정현이 4강에 올라선다면 대진상 페더러와 만날 가능성이 크다. 정현에게 또 하나의 꿈이 펼쳐지는 것이다. 정현이 8강에서 만날 샌드그렌/연합뉴스꿈은 현실이 된다 물로 그 전에 8강부터 넘어서야 한다. 정현은 랭킹 97위 테니스 샌드그렌(27·미국)과 8강서 일전을 치른다. 경기는 24일 오전 11시로 예정돼 있으며 JTBC와 JTBC3 FOX Sports 채널에서 동시에 생중계된다.정현은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자신보다 낮은 랭커를 상대한다. 지금까지 격돌했던 선수들보다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정현은 ATP투어에서 샌드그렌을 만나 2-1로 승리한 경험도 있다. 정현이 유리해 보이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샌드그렌 역시 1라운드부터 파란을 일으키며 최고의 상승세를 이어 오고 있다. 이번 대회 '최대 복병'으로 평가받는다. 샌드그렌의 돌풍에 호주 오픈이 들썩일 만큼 그는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 정현은 자신보다 낮은 랭커라는 생각을 버리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경기에 임해 복병의 돌풍을 잠재워야 한다. 정현은 "랭킹은 중요하지 않다. 샌드그렌은 상위 랭커들을 연달아 꺾었다. 상대의 랭킹보다 경기에 집중하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외국의 주요 베팅 업체들은 정현의 승리를 예상하는 분위기다. 정현이 샌드그렌을 꺾고 4강에서 페더러를 만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영국의 '윌리엄 힐'은 페더러의 우승 배당률을 6/5로 책정해 우승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전망했다. 페더러에 이어 나달이 2/1로 평가됐고, 랭킹 3위 그리고르 디미트로프(27·불가리아)가 13/2를 기록했다. 랭킹 1·2·3위 선수 뒤에 정현이 이름을 올렸다. 정현의 우승 배당률은 12/1로 4위를 차지했다. 최용재 기자 2018.01.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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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테니스 역사' 새로 쓴 정현의 이모저모 4가지

한국인 최초로 테니스 메이저대회 8강에 진출한 정현(22·한국체대)이 주목받고 있다. 정현(세계 58위)은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를 3-0(7-6(7-4) 7-5 7-6(7-3))으로 꺾었다. 이로써 정현은 1981년 US오픈 여자단식 이덕희, 2000년과 2007년 역시 US오픈 남자단식 이형택이 기록한 한국 선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 16강을 뛰어넘었다. 이제 정현은 24일 텐니스 샌드그렌(96위·미국)과 4강 티켓을 놓고 다툰다. 앞으로 이번 대회 정현의 승리는 그대로 한국 테니스의 새 역사가 된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 가는 그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 난시 치료 위해 라켓 잡은 정현 정현은 아버지 정석진씨가 그의 모교인 삼일공고 테니스부 감독을 지냈고 형 정홍(25)도 실업 선수로 활약하는 '테니스 집안'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가 테니스를 시작한 결정적 이유는 집안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난시 치료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정현은 어릴 때부터 고도 근시와 난시를 겪었다. 이에 의사는 책을 읽는 것보다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색 코트를 바라보는 것이 낫다고 권유했다고 한다. 아버지도 이 의견에 힘을 보탰다. 정현은 난시 치료를 위해 라켓을 손에 쥐었다. ━ '두꺼운 안경' 포기하지 않는 까닭 그는 테니스를 할 때마다 고글을 써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외국 언론으로부터 '교수님'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요즘도 고도 근시와 난시로 교정시력은 0.6 미만이라고 한다. 두꺼운 안경을 써야만 한다. 테니스 선수 중 고글을 착용하는 선수는 드물다. 고글을 쓴다고 해도 눈 부심을 막기 위한 용도다. 정현은 경기 중 땀을 닦기 위해 고글을 수백번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불편을 감내하며 경기를 해왔다. 고글을 벗고 땀을 훔치는 모습은 어느덧 그의 상징이 됐다. 정현은 처음 테니스를 시작할 때부터 안경을 착용해 이제 와 벗는다면 허전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시력교정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 경기 직후 '큰절'한 이유는 정현은 조코비치를 물리친 직후 플레이어 박스를 향해 큰절해 눈길을 끌었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큰절 세리머니'에 관해 묻자 정현은 "저를 도와주시는 스폰서·매니저·팀이 있었다. 또 우리 가족이 다 모여 있었다"며 "우리 집 막내인데도 외국에 나가 있고, 막내처럼 행동하지 못한다. 평소 잘 표현하지 못하는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큰절"이라고 설명했다. 정현은 또 "오늘 승리로 인해 한국에서 테니스 붐이 더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은 나에게 있어 많은 꿈 중 하나가 이뤄진 날"이라고 말했다. ━ 정현의 주요 경력 및 수상 정현은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복식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았다. 2015년에는 남자프로테니스(ATP) 서배너 챌린저 단식 결승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남자 선수로는 이형택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랭킹 100위 안에 들었다. 2017년에는 기량이 한껏 더 성장해 독일 BMW오픈 4강,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오픈 32강에 이어 차세대 선수들이 겨루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ATP 투어 데뷔 첫 우승을 경험했다. 한국 선수가 ATP 투어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3년 1월 시드니 인터내셔널에서 이형택의 우승 이후 14년만의 일이었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8.01.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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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 준우승’ 정현 “테니스는 내 운명”

안경을 써도 눈이 침침했던 아이가 한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자라났다.남자 테니스 주니어 세계랭킹 41위인 정현(17·삼일공고)은 7일(한국시간) 영국 윔블던에서 열린 대회 주니어 남자 단식 결승에서 주니어 7위 잔루이지 퀸치(17·이탈리아)를 0-2(5-7, 6-7)에게 아쉽게 져 준우승했다. 하지만 정현은 윔블던에서 1994년 전미라(35)가 주니어 여자 단식 준우승 이후 19년 만에 남자 단식에서도 준우승을 일궈내며 세계에 한국 테니스의 저력을 알렸다. 2009년 이형택(37) 은퇴 후 침체기였던 한국 테니스의 미래도 밝아졌다.정현은 이번 대회 파란의 주인공이었다. 주니어 랭킹 1위 닉 키르기오스(18·호주), 6위 보르나 코리치(17·크로아티아), 30위 막시밀리안 마르테레르(18·독일) 등을 제압했다. 그러나 퀸치는 넘지못했다. 퀸치는 12세·14세·16세 국제대회에서 1위를 했던 선수로 경험이 풍부하다. 정현은 결승에서 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정현은 2세트에 메디컬 체크를 갖고 발바닥 물집을 치료 후 붕대를 감고 나섰지만 아쉽게 졌다.정현은 테니스 가족 틈에서 자랐다. 아버지 정석진(47)씨는 실업 테니스 선수로 뛰었고, 현재 삼일공고에서 테니스를 가르치고 있다. 형 정홍(20)은 건국대 테니스 선수다. 정현은 일곱 살 때까지 테니스를 직접 쳐본 적은 없다. 어머니 김영미(44)씨는 "현이는 공부를 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계속 눈을 찡그려서 안과에 가보니 심각한 약시라고 했다. 안경을 써도 교정시력이 썩 좋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의사는 잔 글씨를 오래 보면 눈이 더 나빠진다고 했다. 책 대신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색을 많이 봐야 한다는 말에 김씨는 바로 테니스를 떠올렸다. 그는 "테니스 공도 코트도 녹색이지 않나. 현이에게는 테니스가 운명이다"며 웃었다.정현은 열 두 살 때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 주니어대회인 오렌지볼과 에디 허 인터내셔널에서 우승, 12세 이하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2011년 오렌지볼 16세 부도 제패했다. 삼성증권 후원을 받아 올해 성인 투어를 뛰기 시작한 정현은 6월 김천국제퓨처스 대회에서 한국 선수 중 역대 최연소(17세1개월) 퓨처스 단식 우승 기록을 세웠다. 현재 세계랭킹은 514위다.정현의 장점은 노련한 위기관리능력이다. 유진선 SBS ESPN 해설위원은 "정현은 두뇌회전이 빠르다. 아버지를 따라 고교대회를 다니면서 수 백 경기를 보고, 자기만의 경기 운영 시뮬레이션이 구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서브 완성도가 떨어진다. 이형택은 "서브 넣을 때 어깨, 허리 등을 다 이용해 몸을 회전시켜 공을 쳐야 한다. 서브를 보완하면 나를 넘어 세계랭킹 10위 안에 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자 단식은 남자프로테니스(ATP) 세계 랭킹 2위 앤디 머레이(26·영국)가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했다. 머레이는 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 끝난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26·세르비아)를 3-0(6-4, 7-5, 6-4)로 완파하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머레이는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77년 만에 영국 선수로 윔블던 정상을 밟았다. 여자 단식은 마리옹 바르톨리(29·프랑스·15위)가 자비네 리지키(24·독일·24위)를 2-0으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했다.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사진= 국제테니스연맹 페이스북 2013.07.08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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