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번 당했으니 오늘은 칠 거야.”
양승호 롯데 감독은 6일 사직 삼성전에 앞서 "오늘 상대 선발이 정인욱입니다"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정인욱은 롯데 킬러다. 올 시즌 롯데전에 4차례 나와 3승 평균자책점 2.33으로 활약했다. 정인욱의 올 시즌 승수가 4승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롯데전 강세는 더욱 도드라진다.
양승호 감독은 이에 "우리 팀에 3~4번 당한 삼성 차우찬도 어제 잘 던졌잖아. 정인욱이라고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표정엔 여유가 넘쳤다.
양 감독 말대로 영원한 천적은 없었다. 초반부터 정인욱을 두들긴 롯데는 선발 타자 전원이 안타를 치며 11-4로 크게 이겼다. 손아섭(23)이 정인욱 공략에 앞장섰다. 손아섭은 1회초 무사 1·2루에서 정인욱의 초구를 잡아당겨 우익수 앞으로 보냈다. 1루를 밟은 뒤엔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밍이 맞는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1-0으로 앞선 2회 2사 만루에선 2루수 땅볼로 아웃됐다. 기회를 놓친 게 아쉬웠는지 우익수 옆 파울 라인을 따라 한참을 달려갔다.
진한 아쉬움은 3-1로 앞선 4회, 쐐기포로 이어졌다. 손아섭은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타석에 들어섰다. 볼 카운트 1-3로 유리한 위치에 섰으나 높은 직구에 욕심을 내다 방망이를 내밀다 2-3이 됐다. 정인욱에겐 자신감을 주는 스윙이었다. 정인욱은 다시 같은 코스로 던졌다.
손아섭은 바깥쪽 높은 공을 번개같이 밀어쳤다. 타구는 쭉쭉 날아가 사직구장 왼쪽 담장 너머에 떨어졌다. 4-1로 달아나는 솔로포였다. 흔들린 정인욱은 이대호에게 볼넷, 홍성흔에게 우중간 2루타를 맞고 2사 2·3루에 몰렸다. 강민호는 이 기회에서 주자 2명을 모두 불러들이는 좌중간 적시타로 6-1을 만들며 사실상 승패를 갈랐다. 6실점 한 정인욱은 결국 5회 교체됐다. 2사 뒤 터진 손아섭의 한방이 정인욱 강판의 시발점이었다.
손아섭은 이날 1홈런 포함해 2안타를 때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10개)과 세자릿수 안타(101개)를 기록했다. 시즌 타율은 3할3푼으로 조금 올랐다. 타격 부문 3위 LG 이병규(0.338)와 격차는 1푼 이내로 줄어들었다.
손아섭은 "올핸 골든글러브를 타보고 싶다. 지금 내 성적이 외야수 중 4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삼성 최형우 선배와 KIA 이용규 선배는 어느 정도 자리를 굳혔다고 본다. 타율에서 이병규 선배를 따라잡아 반드시 목표를 이루도록 하겠다. 내가 잘 해 우리 팀을 4강에 올려놓으면 수상 가능성은 더 올라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롯데는 이날 한화에 진 5위 LG와 승차를 다시 1.5경기로 벌리며 4위를 유지했다. 롯데와 손아섭의 꿈이 한걸음 더 전진했다.
부산=김우철 기자 [beneat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