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와 두산의 시범경기가 열린 20일 잠실구장. LG 더그아웃 한 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장 이병규(38·등번호 9번)였다.
훈련 후 먼저 점심식사를 마친 이병규는 조카뻘 되는 후배 오지환(22)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지환만이 아니었다. 이병규는 이진영(32) 이대형(29)은 물론 불펜포수에게까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이병규에게 "같은 인사를 반복하니 힘들겠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이게 내 역할이다. 애들 밥 먹었는지 챙기고, 어디 아프지 않은지 묻고. 이거 아니면 주장이 뭘 해야 하겠는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올 시즌을 맞는 LG 분위기는 무겁다. 조인성(SK)·이택근(넥센)·송신영(한화) 등 베테랑들이 타 팀으로 이적했고, 에이스 박현준은 승부조작에 연루돼 팀을 떠났다. 선수단 전원이 투표를 해서 뽑은 최초의 '민선주장'인 이병규의 머릿속은 더 복잡하고, 어깨는 더 무거워졌다.
이병규는 "이것저것 고민이 많다. 당장 '우리 팀은 이번 시즌을 어떻게 치러야 하나. 나이 어린 후배들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는 등의 생각을 주로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더 이상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말자'고 당부했다. 또다시 팬을 실망시키는 일이 벌어질 경우 주장인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명문구단 아닌가. 선수들이 자부심을 갖고 자기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병규는 시범경기에서 주로 벤치를 지키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베이스러닝을 하다가 허벅지를 다쳤기 때문이다. 그는 "벤치에 앉아 후배들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핀다. 야구를 알고 뛰는 선수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 선수가 큰 경기에 나서면 자신도 모르게 들뜬다. 미팅을 통해서, 또는 경기 전·후 틈틈이 후배들과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팀 리더 이병규는 씩씩하게 웃었다. 그는 "LG의 상처는 다 아물었다. 연고를 잘 발랐다"면서 "우리는 약체가 아니다. (주축 선수들의 공백으로)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졌다. '누구든 열심히 하면 찬스가 있다'는 기대감이 번졌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이병규는 "내가 먼저 밥부터 챙기겠다. 어린 후배들이 하루라도 빨리 노하우를 쌓을 수 있도록 돕겠다. LG 선수단 전체를 믿는다. 지금 우리 팀에 믿음마저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