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의 이창근(20·부산), 송주훈(19·건국대), 류승우(20·중앙대), 이광훈(20·포항)을 9일 만났다. 이들은 이날 오후 터키에서 귀국했다. 한국 U-20 대표팀은 8일(한국시간) 터키 카이세리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전에서 이라크에 승부차기 끝에 석패했다.
이들의 도전은 8강에서 멈춰섰지만, 한국은 조별리그부터 8강전까지 매 경기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줬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근성은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주장이자 골키퍼인 이창근이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은 축구팬 사이에서 '어록'으로 남았다.
인터뷰에서 만난 이들은 어린 선수들 답게 터키에서 인천까지 장거리 비행을 하고도 생기가 넘쳤다. 형제처럼 끈끈한 정을 나눈 친구들인 만큼 장난스럽게 하는 말에도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창근(이하 창근)="분명 8강 이상 갈거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대회 우승 멤버인 만큼 스스로는 최약체란 생각을 한 번도 안했다. 골키퍼라 경기를 맨 뒤에서 봤는데 다들 정말 미친듯이 뛰더라. 아 이게 팀이구나 싶었다."
이광훈(이하 광훈)="최약체란 혹평에 모두가 오기가 생겼다."
광훈="4강 이상까지도 갈 수 있었는데 내가 8강전 승부차기 못넣었다. 동료들이 내가 실축한 걸 두고 '여자친구 보러간다 슛'이라고 놀렸다. 정말 미안해 마음이 찢어졌다."
-172㎝ 단신 이광훈이 이라크전 헤딩 동점골을 넣었다.
창근="광훈이가 헤딩력이 좋다. 프로 데뷔전에서도 헤딩골을 넣었다."
광훈="헤딩은 키로 하는게 아니라 위치선정으로 하는 거다. 후후."
창근="사실 헤딩 하면 주훈이다. 키도 큰데 머리도 크거든.(웃음) 이라크전 정현철의 버저비터골은 '국민들 TV 끄지마세요 슛'이었다. 뒤에서 본 팀원들 전부 안 들어갔다는 생각에 장탄식을 내뱉었는데, 상대 머리 맞고 골망을 가른 순간 모두 기뻐 쓰러졌다."
-에이스 류승우는 3차전에 발목 부상을 당했다.
창근="승우는 박수칠 때 떠났다(웃음). 현지에서 왕이었다. 누워만 있고, 밥도 빨래도 우리가 다해줬다(웃음)."
류승우(이하 승우)="짐만 되는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애들이 내색 안하고 정말 잘해줬다. 벤치에서 보는 내내 같이 뛰고 싶어 죽는줄 알았다."
-새벽까지 잠 안자고 응원한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 알고 있었나.
창근="이게 스포츠구나 생각했다. 너무 감사했지만, 사실 섭섭한 부분도 있었다. 조별리그 1·2차전에서 못할 때 악플이 많이 달리더라. 댓글은 재미로 봐야되겠다는 생가이 들었다."
송주훈(이하 주훈)="내가 콜롬비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걸 두고 '나호로 발사슛'이라고 한 댓글도 있었다. 그래도 모든게 감사했다."
-선수들의 '모범 SNS'가 화제다.
창근="남자들끼리 서로 얼굴보고 이야기하기 쑥스럽지 않나. 그래서 SNS에서 주훈이가 내 자책을 격려해주고, 내가 주훈이 실수에 힘을 실어준 거다. 참, 콜롬비아전 후 내가 SNS에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글을 남기고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큰 사태가 있었더라. 절대로 누구를 겨냥해서 남긴 글 아니다. 지우면 더 이상할까봐 놔뒀다.
(같은날 A대표팀 기성용이 최강희 전 대표팀 감독을 겨냥한 비밀 SNS가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이창근이 기성용을 겨냥해서 올린 글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A대표팀의 최근 파문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들은 'A대표팀 선수들과 우리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대상'이라며 말을 아꼈다)
-킥오프 전 둥글게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승우="다들 긴장 풀려고 서로 말 많이 하겠다며 조잘조잘거린다. 창근이가 '아무말도 하지마. 내가 할거야'라고 정리한 뒤 '마지막이다. 후회없이 하자'고 말한다."
창근="김현이 김글거림(김현+오글거림)이다. 작년 아시아 대회 때 드라마 대사를 패러디해서 '우승해서 월드컵 갈래, 아니면 올림픽까지 4년 기다릴래'라고 말해 다들 오글거려 죽는줄 알았다. 그래도 현이는 멋진 친구다(웃음)."
-이광종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창훈="웬만한 선수들이 감독님 특유의 말투를 따라할 수 있다. 차마 흉내는 못내겠다. 혼날까봐 ㅜㅜ."
창근="한 번은 팀 분위기가 안 좋아졌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커피 마실 사람~'이라고 말해서 다들 빵터졌다. 감독님은 '밀당(밀고 당기기)'의 고수다. 우리를 들었다 놨다 장난 아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