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꾸 일본인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니면 재일동포이냐고 한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뛰다 지난해 10월 LG에 입단한 황목치승(29·내야수)은 평소에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탓에 한국 말이 살짝 어눌하다. 일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조부가 일본인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성인 황목(荒木·일본명 아라키)을 그대로 쓰고 있다. 조부는 제주에서 한국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황목치승은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다. 현재 그의 가족은 제주에 있지만, 다른 친척들은 모두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황목치승은 제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고교, 대학과 사회인 야구팀을 거쳤다. 그는 "당시 제주에는 고교 야구팀이 없었다. 야구를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이 타지로 나가야 했다.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일본행을 결심했다"며 “일본어를 하나도 할 줄 몰라 처음에 적응하는 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두 번의 큰 부상
황목치승은 중학교 시절부터 청소년대표에 선발되며 두각을 나타냈다. 나지완(28·KIA)과 최진행(29), 송창식(29·이상 한화) 등과 함께 국제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교토국제고 재학 시절에도 팀을 지역대회 8강까지 올려놓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명문 아세아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입학도 하기 전에 전지훈련 멤버에 포함됐다가 왼쪽 무릎 십자인대와 후방인대가 동시에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2년이 넘는 재활을 거쳤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싶었지만, 부상 후유증은 오래 갔다.
결국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인 세가사미에 들어갔다. 세가사미에서 그는 2년 동안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3년차 때 또 부상을 당했다. 외야 펑고를 받다 슬라이딩을 하는 과정에서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다행히 부상은 6개월 만에 회복됐지만, 그의 앞에는 군 복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인" 귀화는 NO
황목치승은 “군 입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팀에서는 일본인으로 귀화를 권유하더라. 고민이 많았다”며 “부모님께서는 내 뜻을 존중하겠다고 하셨다. 사실 할아버지가 일본 분이셨고, 귀화를 한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다”고 했다. 고민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때마침 1년 전 부상을 당했던 발목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황목치승은 “그래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국이었다. 군대를 가기로 결심했다”며 “계속된 부상에 지쳤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2011년 말 한국에 돌아왔다. 야구를 포기할 생각으로 귀국했고, 입대를 할 요량으로 재검사를 받았다. 무릎 부상으로 인한 면제였다. 그는 반 년 정도를 쉬면서 발목 치료에 전념했다. 아버지 가게 일을 도왔고, 사회인 야구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부상 부위가 많이 좋아졌다. 2013년 고양 원더스의 트라이아웃에 응시했다. 그는 "야구가 다시 하고 싶었다"고 했다.
◇원더스를 넘어 LG로
황목치승은 김성근 고양 감독의 혹독한 훈련을 이겨냈다. 2013년 원더스의 1번타자 겸 유격수로 활약하며 퓨처스(2군)리그 교류경기에서 타율 0.259, 16도루 30사사구를 기록했다. 우투우타로 빠른 발과 선구안, 특히 수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러 팀이 그를 주목했고, LG의 부름을 받았다. 황목치승은 “LG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던 팀이다"며 "야구를 한 번 포기했었고, 힘든 일이 많았다. LG 유니폼을 입고 연습경기에 나서는데 말로 표현 못할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고 했다. 현재 그는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돼 구리 2군구장에서 훈련 중이다. 김성근 감독도, 김기태 LG 감독도 하나 같이 황목치승에게 살 좀 찌라고 했단다. 그는 야구 선수로는 왜소한 체격(173cm·66kg)이다. 황목치승은 “수비는 자신 있지만, 팀 배팅과 주루 플레이가 많이 부족하다"며 "시즌 개막 전까지 확실히 보완해 2014년 1군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