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넣는 골이란 상대가 아무리 약해도 짜릿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골보다 더 짜릿한 건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마음껏 과시하는 순간일 것이다. 김보경(전북 현대)에게 캐나다전 90분은 그런 의미였다.
김보경은 11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캐나다의 친선경기서 전반 9분 만에 선제골을 신고했다. 2013년 10월 15일 열린 말리와 친선경기 이후 1124일 만에 기록한 A매치 득점이다.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이 떨궈준 공을 남태희(레퀴야)가 밀어주고 그걸 김보경이 받아 골대 안으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상대 골키퍼의 손에 한 번 맞아 굴절됐지만 골포스트에 맞고 골라인 안으로 굴러 들어가 이날의 첫 골이자 결승골이 됐다.
김보경에게는 물론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골이다. 한 때 '박지성 후계자'로 불리며 무거운 기대를 한몸에 짊어졌던 그는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가 '실패'라고 불러도 좋을 과정들을 겪고 K리그에 안착했다. 리그 최강팀인 전북 현대에 입단해 부상과 주전 경쟁 속에서 부침을 겪었지만 어느새 팀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해 33경기 연속 무패와 리그 준우승, 그리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리그에서 부활한 김보경은 지난달, 실로 오랜만에 대표팀 명단에 다시 이름이 불리는 기쁨을 안았다. 그가 태극마크를 다시 단 건 2015년 3월 이후 1년 7개월 만이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아쉬움이 큰 경기들이었다. 3차전 카타르전에서는 후반 종료 직전 교체돼 단 1분 밖에 뛰지 못했고 4차전 이란 원정에서는 77분을 뛰면서도 이렇다 할 활약 없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오랜만에 다시 돌아간 대표팀인 만큼 김보경의 열의는 누구보다 대단했을 터였다. 실망과 아쉬움을 가장 크게 느낀 것도 본인이다. 캐나다전에서 절치부심, 킥오프 휘슬이 울리는 순간부터 많이, 넓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뛴 이유다.
비록 상대가 압박도 전진수비도 없는 약체 그 자체였다고는 해도 김보경의 활약이 폄하될 수는 없다. 날카롭게 침투해 공격 기회를 만들고 중원부터 골대 앞까지 스며들듯 침투해 곳곳에서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준 그 존재감은 인상적이었다.
캐나다가 약체라는 건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경기를 우즈베키스탄전 대비를 위한 실험으로 삼았다. 상대가 너무 약해서 제대로 된 실험이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수들이 적극성을 되찾고 자신감을 끌어올리기를 바란다"던 슈틸리케 감독이라면 김보경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1124일 만의 골'도 훌륭했지만 그가 보여준 존재감은 그 이상 훌륭했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불안한 점이라면 슈틸리케 감독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즈베키스탄전에 낼 선수는 90분 모두 뛰게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김보경은 90분 풀타임을 뛰고 그라운드를 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즈베키스탄전에서 김보경의 모습은 후반 교체로밖에 보기 힘들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