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FC의 새 외국인 수비수 발렌티노스 시엘리스(27·키프로스)를 처음 만난 이들은 모두 그의 빠른 한국 생활 적응 속도에 놀란다. 기자의 명함을 받은 발렌티노스는 한참 동안 뚫어지게 보는 척을 하더니 테이블 왼쪽 구석에 가지런히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 악수를 건네는 오른손까지 왼손으로 공손하게 받친다. 강원에 입단한 지 겨우 한 달 남짓 됐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다.
한국인보다 더 구수한 발렌티노스를 지난 15일 부산 기장의 동부산호텔에서 만났다. AEL 리마솔(키프로스) 유니폼에서 강원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그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한국 땅을 밟았다. 바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다.
발렌티노스는 "유럽과 아시아 여러 팀에서 러브 콜을 받았지만 강원만큼 목표가 뚜렷한 팀은 없었다"면서 "아시아 축구 최고의 무대인 AFC 챔피언스리그에 도전하는 강원의 열정은 나와 닮았다"고 했다.
11세 때 잉글랜드 명문 아스널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발렌티노스는 K리그 소속 외국인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를 모두 경험했다.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경기에 각각 네 번씩 출전한 기록이 있다. 발렌티노스는 2014년 경험한 제니트(러시아)와의 2014~201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경기를 잊지 못한다.
발렌티노스는 "당시 제니트의 공격수였던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헐크(현 상하이 상강)를 1차전 홈경기에서 완벽하게 막아 냈다. 덕분에 우리가 1-0으로 이겼다"면서도 "첫 경기에서 한 수 위의 제니트를 상대로 힘을 다 쏟았는지 원정 2차전에서는 0-3으로 힘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무너졌다. 나도 당시 헐크에게 많은 돌파를 허용해 아쉬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강원에서 헐크와 재대결 펼치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발렌티노스는 "올 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하면 내년에 헐크와 다시 맞붙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나는 '복수'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받은 건 대갚음해 줘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발렌티노스는 인터뷰 말미에 화끈한 공약도 내걸었다. 턱 밑이 처음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한 청소년 시절부터 늘 수염을 길렀다는 그는 멋지게 늘어뜨린 턱수염이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평생 길러 온 내 분신과 같은 턱수염이지만 꿈의 무대를 밟을 수만 있다면 깨끗이 밀어 버리겠다. AFC 챔피언스리그가 확정되는 그 순간 그라운드에서 팬들이 직접 수염을 밀어 주셔도 좋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