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마친 뒤 주먹을 꼭 쥐며 '해냈다'는 표정을 지었다. 긴장이 풀린 듯 숨을 몰아쉰 최다빈(18·수리고)은 갑자기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금세라도 흘러내릴 듯한 눈물을 꾹 참는 모습이었다. 지켜보던 곽민정(24) KBS 해설위원이 "최다빈 선수는 우는 것도 참아요. 뭘 그렇게 참는지…"라며 본인이 더 안타깝게 울먹였다.
최다빈은 21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37.54점, 구성점수(PCS) 30.23점을 더해 총점 67.77점을 기록했다. 전체 30명 출전자 중 8위의 성적. 앞서 열린 팀 이벤트(단체전) 쇼트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개인 최고점(65.73점)을 경신했던 최다빈은 불과 며칠 만에 개인 최고점을 또 새로 썼다. 김연아(2010 밴쿠버 대회 78.50점·2014 소치 대회 74.92점)를 제외한 한국 선수 중 올림픽 쇼트프로그램 최고 점수다. 프리스케이팅에서도 클린 연기를 선보인다면 톱10 진입을 노려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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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그룹 6번째로 연기에 나선 최다빈은 자신의 쇼트프로그램 곡 '파파 캔 유 히어 미(Papa Can You Hear Me)'에 맞춰 우아하게 연기를 펼쳤다. 첫 번째 점프 과제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깔끔하게 성공한 최다빈은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과 플라잉 카멜 스핀으로 이어지는 스핀 과제도 물 흐르듯 소화해 냈다. 이어진 트리플 플립, 더블 악셀 단독 점프도 깨끗하게 뛰어 실수 없는 클린 연기를 펼쳤다.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우아한 레이백 스핀으로 연기를 마친 최다빈은 환하게 웃다가 순간 울컥하는 기색을 보였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엄마를 생각하며 연기했다"는 말처럼, 그의 쇼트프로그램 곡 '파파 캔 유 히어 미'에는 어머니 고 김정숙씨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늘 자신을 물심양면 뒷바라지해 주시던 어머니가 지난해 암 투병 중에 세상을 떠난 뒤, 최다빈은 생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늘 곁에 있어 주던 어머니가 없는 세상은 너무나 낯설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상에 부츠 문제까지 겹쳐 올림픽 선발전 출전을 포기할까 하고 고민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역경을 딛고 일어난 최다빈은 자신의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연달아 개인 최고점을 쓰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최다빈은 "올림픽 무대에서 쇼트프로그램을 완벽하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돼서 무척 감격스러웠다"면서 "등수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 드려서 만족스럽다"며 수줍게 웃었다. "단체전은 축제 같아서 즐기면서 했는데 개인전은 긴장도 많이 하고 부담도 됐다. 그래서 쇼트프로그램은 긴장을 많이 했다"고 얘기한 최다빈은 "프리스케이팅에선 떨지 않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다시 한 번 클린 연기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최다빈과 함께 출전한 대표팀 '막내' 김하늘(16·수리고 입학 예정)은 54.33점으로 21위를 기록했다. 자신의 개인 최고점(61.15점)에는 미치지 못한 점수지만, 생애 첫 올림픽에서 프리스케이팅 진출권을 따내 기대감을 높였다. 1위는 세계기록을 깬 러시아에서 온 선수(OAR) 알리나 자기토바(16·82.92점)가 차지했다. 최다빈과 김하늘이 출전하는 프리스케이팅 경기는 23일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