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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695. 서울의 미래
서울은 성곽도시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개국하고 한양 둘레에 약 18Km에 달하는 성곽을 쌓았다. 세종은 이후 흙으로 된 구간을 모두 돌로 바꿨다.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의 능선을 잇는 성곽은 일제강점기에 많이 파괴됐지만 지금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크고 작은 전쟁과 난이 잦았던 조선은 수도를 철저히 방어해야 했다. 한양은 거대한 궁궐이었기 때문이다. 한양은 철저하게 왕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한양의 핵심, 사대문 안에는 왕과 왕족·사대부·궁인·상인·의원·군인 등이 살고 있었다.
한양 곳곳에는 왕과 왕족들을 위한 건축물들이 있었다. 왕은 덕수궁·창경궁·창덕궁 등 조선의 궁궐들을 오가며 거주했다. 왕과 왕족이 이궁으로 이동할 때마다 한양에 사는 백성들은 구경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한양 전체가 왕의 집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한성판윤은 불미스러운 일을 막고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한성판윤은 왕의 눈에 띌 수 있는 요직이었다. 고작 쌀 두 섬, 콩 한 섬 다섯 말 정도로, 지금으로 치면 쌀이 네 가마에 콩이 세 가마인 박봉을 받는 자리였다. 업무가 많아 가끔 판공비를 주기도 했다. 특히 고되기로 유명한 한성부 호적 정리 일을 하면 쓸모없는 종이가 남는데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일한 관리들에게 수고비 조로 지급하면 꽤 많은 돈이 남았다고 한다.
한성판윤은 월급에 비해 업무가 많았다. 관내 분쟁을 해결하고 죄인의 죄를 묻는 등 도성 내 안녕과 치안을 담당했다. 왕이 행차할 때는 경호 담당·환경 미화· 무허가 노점상 단속·화재 예방 및 진화, 여기에 불씨 항아리의 불씨를 나눠 주는 일까지 한성부에서 담당했다.
조선시대 한성판윤이 지금은 서울 시장으로 불린다. 서울 시장의 업무는 한성판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쟁쟁한 후보자들이 서울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오랫동안 서울 시장직을 역임한 현 시장과 이 자리에 도전하는 새로운 서울 시장 후보들의 패기 넘치는 공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서울은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옛날의 모습이 많이 사라져 아쉬웠다. 가을이면 아름답게 물들던 광화문의 은행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종대왕 동상과 광화문광장에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촛불집회를 탄생 시켰던 광화문광장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서울은 600여 년 역사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한 도시 안에 과거와 현재가 다채롭게 발견되는 도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역대 서울 시장들은 과연 서울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현재 서울 시장직에 도전장을 내민 후보들이 생각하는 서울은 어떤 모습인지도 알고 싶다.
서울은 대한민국 역사·경제·문화·정치의 핵심이다. 그래서 서울 시장은 대권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민들이 서울 시장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할 수 있다. 이제 서울은 조선시대 한양이 아니다. 서울은 동북아시아 거점 도시며, 향후 통일 한국의 핵심 도시기도 하다. 그렇다고 너무 변해서는 안 된다. 역사와 전통, 문화가 숨 쉬며 무엇보다 내실을 다질 수 있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 서울 시민들은 진짜 서울을 서울답게 만들 수 있는 서울 시장, 서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서울 시장을 원하고 있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