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천적'과 '라이벌'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라이벌은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사이다. 라이벌이 있다면? 행복한 골퍼이다. 천적은? '이상하게 그 인간하고만 골프를 치면 기분이 나쁜 사이'다. 천적과 라운드를 하면 어김 없다. 공이 잘 안 맞는다. 라운드가 끝나고 나서도 제법 오랫동안 불쾌하다.
골프는 무엇일까? 공식 정의는 분명하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골프 규칙 맨 첫 장에 골프를 정의해 놓았다. 골프 규칙 1.1(1조 1항)은 '골프란 골프 클럽으로 공을 쳐서 18홀을 라운드 하는 게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코스는 있는 그대로, 공은 놓인 그대로 플레이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골프 규칙 1.2에도 이어진다. 요약하면 '골프 정신에 맞게 플레이 해야 한다'이다. '골프 규칙을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며' '골프 코스를 보호하는' 것이다.
골프 정의를 기준으로 보자. 골프 클럽이 아닌 것으로 공을 움직이면? 골프가 아니다. 손이나 발로 공을 슬쩍 움직이는 행동을 한다면? 골프를 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스윙에 걸린다고 나뭇가지를 꺾는다면? 규칙에 어긋나는데도 공을 이른바 '좋은 데'로 옮겨놓고 친다면? 역시 골프가 아니다. 골퍼란 골프를 치는 사람이다. '골프가 아닌 어떤 것'을 친다면? 당연히 골퍼가 아니다. 이런 사람을 당분간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계속해서 짚어 보자. 골프 규칙을 지키면서 플레이를 하면 골프를 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골퍼이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은 '골프가 아닌 어떤 것'을 치는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이고. 타인을 배려하는지 여부도 마찬가지이다. 안전도 고려하고 다른 플레이어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한다면? 골프를 치는 골퍼이다. 앞에 누가 있든지 말든지 함부로 샷을 날린다면? 다른 플레이어가 샷을 할 때 소란스럽게 군다면? 골프가 아닌 어떤 것을 치는 것이다. 디봇(Divot)을 내버려두고 가는 사람은? 벙커샷을 하고도 발자국을 그대로 두는 사람이라면?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이다.
문제는 '골프를 치는 골퍼'와 '골프가 아닌 어떤 것을 치는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이 함께 라운드를 할 때 발생한다. 골퍼끼리 라운드를 할 때는 마찰이 드물다.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끼리 라운드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골퍼끼리 겨룬 승부에서 혹시 졌다면? 분하기는 해도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할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끼리도 기분 좋게 라운드를 하기 마련이다. 평소에 하던 대로 서로 관대하게 규칙을 적용할 테니 마음 상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골퍼'와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이 만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골퍼 눈에는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은 골프가 아니다. 눈살을 저절로 찌푸릴 수 밖에. 마음이 상하는데도 '싫은 소리'를 차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골퍼의 골프가 말리기 딱 좋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 눈에는 어떨까? 골퍼가 치는 것이 오히려 골프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치는 것이야말로 골프라고 확신한다. 물론 자신도 골퍼이고.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골퍼가 아닌 어떤 사람 눈에는 규칙을 꼼꼼히 따지는 골퍼가 '꽉 막힌 사람'으로 보인다. 에티켓을 지적하면 '남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예의 없는 사람'쯤으로 비친다.
이렇게 서로 자신이 진짜 골퍼이며 자신이 플레이 하는 것이 진짜 골프라고 확신하는 사이에 '천적 관계'가 만들어진다. 천적끼리는 함께 라운드를 하기로 약속한 그날부터 신경을 쓴다. 뒤가 좋지 않을 것을 예견하는 것이다. 그 예견은 어김 없이 들어 맞고. 피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서로 안 만나고 살 수 있다면 천적이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내가 저 인간과 다시 공을 치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다짐을 해 보아도 재회하기 마련이다.
뱁새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라면 해법을 독촉할 터이다. 천적끼리 라운드를 하면서도 다툼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회에 이야기 하겠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