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가는 '탑독' 신유빈-전지희, '언더독' 장우진은 똑같이 말했다 "한 세트만, 한 포인트만" [항저우 2022]
"중요한 건 우리가 한 포인트, 한 포인트를 어떻게 더 잘 치느냐다. 금메달은 매 포인트 잘 치고, 잘 따면 나오는 것이다."
"스스로 외우는 주문이 '한 세트만 먼저 뽑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야 흐름이나 자신감이 생긴다. 첫 세트를 많이 공략해보겠다."
한국 탁구 대표팀에 메달이 두 개 추가됐다. 다만 아직 색깔을 모른다. 같으면서 다른 상황인데 마음가짐은 같았다.
세계 랭킹 1위 신유빈-전지희(미래에셋증권) 조는 지난달 30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의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복식 8강전에서 세계 21위 대만의 천슈유-황이화 조를 3-1(9-11, 11-6, 11-6, 11-4)로 꺾었다. 준결승 진출을 확정하면서 최소 동메달을 확보했다.
두 사람과 같은 날 4강에 오른 국가대표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신유빈의 다음 차례로 등장한 장우진은 탁구 남자 단식 8강전에 출전해 일본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4-3(8-11, 10-12, 8-11, 11-9, 19-17, 11-4, 11-8)으로 꺾었다. 3연속 세트를 내준 후 4연속 세트를 따낸 기적같은 대역전승이었다.
장우진과 신유빈-전지희에 대한 기대치가 같진 않다. 신유빈-전지희 조는 여자 복식 세계랭킹 1위를 지키는 문자 그대로 최강 듀오다. 두 사람이 아시안게임에서 강국들을 꺾고 금메달을 따올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전 국민에게 퍼져 있다.
두 사람이 이번 대회 복식조 '탑독'이라면, 장우진은 다음 상대에 밀리는 '언더독'에 가깝다. 세계랭킹 13위인 장우진의 다음 상대가 세계랭킹 1위인 판전둥이라서다. 이미 상대 전적도 6전 전패에 가깝다. 한 세트라도 따낸 것도 2경기에 불과했다. 말 그대로 '절대 열세'다.
반대로 말하면 장우진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는 상대다. 그리고 그 '절대 열세'는 하리모토 상대로도 이미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장우진보다 한참 높은 세계 4위였다. 장우진은 그에게 먼저 3세트를 내주고 이기는 대역전승을 맛본 바 있다.
30일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장우진은 "단식에선 마음을 조금 비우자 생각하고 들어갔다. 초반 승부처에서 잡지 못해서 상대에게 많이 끌려갔다"며 "감독님께서 한 세트만 따보자는 말씀을 해주셨다. 승패, 결과보다는 한 세트의 과정에 집중하다보니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장우진에게 한 세트에 집중하는 의미와 효과를 물었다. 그는 "예를 들어 (흐름이 넘어갔다고 생각하면) 현재 세트를 포기한 채 남은 경기를 하게 된다. 나답지 않은 플레이를 하고, 버리는 공도 나온다"며 "승패는 포기하지 않되 마음을 조금 비우고 했다. 그랬더니 잘 안 되던 기술도 들어갔고, 자신감도 많이 찾았다"고 설명했다.
장우진의 마음 비우기는 판전둥 상대로도 계속된다. 그는 "단식에서 판전둥에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며 "항상 중국 선수들과 경기하기 전 외우는 주문이 있다. '한 세트만 먼저 뽑아보자'는 생각을 하다 보면 나를 향한 흐름이 찾아오고, 자신감도 생긴다. 판전둥과 경기에서도 그런 목표를 잡고 첫 세트 때 많이 공략해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언더독의 마음이 그렇다면, '탑독' 신유빈과 전지희 조의 접근법은 좀 다를까. 전지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지희의 목표는 세트보다 더 자잘하다. "일단 4강까지 올라온 선수라면 누구나 금메달을 목표로 세웠을 것"이라며 "중요한 건 우리가 한 포인트, 한 포인트를 어떻게 더 잘 치느냐다. 금메달은 매 포인트 잘 치고, 잘 따면 나오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지희의 말처럼 한 포인트가 모여 한 세트가 되고, 한 세트가 모여야 비로소 경기 승리로 이어진다. 1포인트, 1세트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절대 승자가 될 수 없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미 30일 8강전에서 탑독이라고 여유로운 경기를 펼친 게 아니었다. 세계 21위인 대만의 천슈유-황이화 조를 상대로 1세트를 내줬고, 2세트도 초반 흐름은 상대에게 내주다 역전으로 기세를 잡아 승리할 수 있었다. 전지희는 "최근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만난 상대였다. 서로의 작전을 너무 잘 아는 상대라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고 했고, 신유빈도 "상대가 이전과 다르게 준비해 들어와 어렵게 경기를 풀어간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전지희는 "두 번째 세트에서 계속 2점이 뒤처져 리시브할 때 손목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긴장했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의 메달색을 결정하는 건 결국 '1구'에 달렸다. 1포인트에 대한 집중력, 1세트부터 우선 가져오겠다는 마음이 그들의 시상대 위치를 바꿀 거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