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걸까. 후배 선수들이 까마득한 선배에게 물세례를 쏟아부으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동생들의 화끈한 축하에 KT 위즈의 베테랑 김현수(38) 역시 파안대소했다. 그는 "최다 안타도 아니고, 큰 기록도 아닌데 물을 뿌리더라. 복수심 때문인지 동생들이 (건수를) 하나 잡은 것 같다"라며 미소 지었다.
김현수는 지난 9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뱅크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4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의 만점 활약을 펼치며 팀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이날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낸 김현수는 개인 통산 2600번째 안타를 달성했다. KBO리그 역대 세 번째 대기록이다. 앞서 손아섭(두산 베어스)과 최형우(삼성) 단 두 명만이 도달했던 고지에 김현수도 이름을 올렸다.
경기 후 방송 인터뷰를 마친 김현수는 마이크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후배들의 격한 축하를 받았다. 신인 이재원(19)은 물론, 두산 베어스 시절부터 그를 따랐던 허경민(36)조차 모처럼 신난 얼굴로 수건에 샴푸를 적셔 투척할 정도였다. 시원하게 물을 뿌린 동생들은 더그아웃으로 퇴장하며 "속 시원하다!"를 외쳤다.
김현수는 전 소속팀 LG 트윈스에 이어 KT에서도 라커룸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솔선수범하며 후배들을 이끄는 동시에 팀 분위기를 다잡는 구심점이다. 엄격한 선배에게 후배들이 대놓고 장난을 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대기록 달성과 함께 찾아오자, 때마침 동생들은 베테랑 선배에게 다가가 신명 나게 물을 뿌려댔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을 연신 닦아내던 김현수는 "(후배들이) 할 수 있을 때 하면 좋다.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며 "속 시원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다행이고, 그런 장난조차 못 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며 너그러운 반응을 보였다.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인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현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니다. 후배들은 내가 미울 것"이라면서 "끝까지 미운 선배로 남겠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더그아웃 리더로서의 무게감과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
KT 김현수. KT 제공
이내 그는 후배들을 향한 애정 어린 쓴소리도 남겼다.
그는 "최다 안타 행진을 이어가는 (최)형우 형이나 (손)아섭이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최)정이 형(SSG 랜더스)도 홈런 기록을 계속 세우고 있다. 동기 이지영(SSG)과 류현진(한화 이글스), 동생인 장성우(KT) 등 베테랑 선수들이 여전히 치열하게 뛰고 있다"면서 "내가 어렸을 땐 후배들이 선배를 이기려고 덤벼드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세대교체를 억지로 '만들어 줘야' 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씁쓸함을 내비쳤다.
김현수는 "후배들이 '기회를 안 줘서 못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며 "우리는 끝까지 치열하게 준비하고 야구할 거다. 우리가 기회를 당연하게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배들도 선배를 이기기 위해 끝까지 치열하게 준비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