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무의 파이트 클럽] 종합격투기는 왜 링 대신 철창에서 싸울까
종합격투기 UFC가 1993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첫 대회를 열었을 때 경기장을 찾은 7800명여 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경기가 열리는 무대가 기존에 익숙했던 링이 아니라 철제 구조물로 된 철창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고대 검투사나 지하세계 격투기에서 죽음의 싸움을 벌이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동물도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저런 데서 싸울 수 있느냐는 반감도 만만치 않았다.   UFC 이전 격투기는 복싱 경기에서 사용되는 사각의 링에서 주로 열렸다. 대표적인 대회가 일본 종합격투기인 K-1과 프라이드FC였다. 링은 수백 년 동안 격투 스포츠에서 사용된 전통적인 경기 장소였다.   ‘링’(ring)은 원형을 뜻한다. 오늘날 링은 사각 형태지만 계속 그 이름으로 불린다. 링이라는 이름은 판크라치온이라 불렀던 고대 그리스 레슬링에서 유래됐다. 고대 레슬링은 특별한 경기장이 없었다. 그냥 맨땅에서 알몸으로 부딪혔다.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막 싸운 건 아니다. 심판은 막대기로 땅에 대충 둥그렇게 원을 그렸다. 선수들은 그 안에서 대결했다. 이후 격투스포츠가 열리는 경기장은 형태와 상관없이 ‘링’이라는 용어가 붙게 됐다.   오늘날 사용되는 정사각형의 링은 1838년 영국을 기반으로 한 복싱 단체에서 처음 만들었다. 당시 이 단체는 정사각형 네 군데 꼭짓점에 기둥을 세우고 줄 2개를 연결해 최초의 링을 만들었다. 당시 좌우 폭은 7.3m였다.   링은 이후 복싱은 물론 종합격투기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프라이드FC를 통해 ‘종합격투기=링’ 이미지가 굳어졌다.   하지만 UFC는 다른 것을 원했다. 그들은 ‘무규칙 싸움’을 표방했다. 더 자극적이고 거친 분위기를 원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철창’이었다. 초창기에는 철창의 크기나 높이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표준 규격이 정해졌다. 현재 UFC에서 사용되는 철창 높이는 1.8m, 경기장 지름은 9.1m다.   사실 철창은 링에 비해여러가지로 불리한 점이 있다. 일단 관중들이 보기에 불편하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철망에 가려 잘 안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에 비해 사방이 확 트여있는 링은 관중들이 보기에 훨씬 편안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UFC는 철창을 고수했다. 철창은 종합격투기 경기장의 표준이 됐다. UFC가 철창을 경기장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히 자극적인 볼거리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위험해 보이지만, 오히려 선수들이 안전하기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이 개방된 링은 복싱이나 무에타이 등 입식타격기 경기를 치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누워서 싸우는 경우가 많은 종합격투기는 달랐다. 선수가 링 밖으로 떨어져 다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공정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공격당하는 선수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링 밖으로 몸을 내밀기도 했다. 공격하는 선수 입장에선 손해가 컸다. 게다가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경기 흐름도 계속 끊겼다. 대회사 입장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물론 철창의 차갑고 거친 이미지는 긴장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필자가 직접 관전했던 미국 UFC 대회 당시 주최 측은 철창 가까이 마이크를 설치한다. 철창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관중들에게 전달한다. 관중들은 철창문이 철커덩하고 닫히는 소리, 찰칵하면서 문고리를 잠그는 소리, 선수들이 철창에 부딪히는 우당탕 소리까지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철창에서 싸우는 격투기는 UFC가 최초는 아니다. 그 아이디어는 프로레슬링에서 오래전에 시작됐다. 1936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치킨 와이어 펜스 매치’라는 프로레슬링 경기가 처음 열렸다. ‘닭장’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철창은 작고 엉성했다. 이후 프로레슬링에서 종종 ‘스틸 케이지 매치’라는 이름으로 경기가 열렸고, 그 아이디어가 종합격투기까지 넘어왔다.   UFC에서 활용되는 철창은 8각형이다. 그래서 ‘옥타곤’이라고 부른다. UFC가 왜 철창을 8각형으로 디자인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철창을 직접 설치하고 대회를 운영하는 국내 격투기 MAX FC 이용복 대표는 “8각형 형태가 철창을 운반하고 분해·조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수월하기는 하다”고 말했다.   참고로 UFC의 라이벌 단체인 벨라토르는 UFC를 의식해서인지 8각형이 아닌 6각형 철창인 ‘헥사곤’을 사용한다. 국내에서 열리는 브레이브CF 대회는 마치 새장 같은 원형 철창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이석무의 파이트 클럽 종합격투 철창 종합격투기 경기장 종합격투기 ufc 측은 철창
2022-09-23 07:00
무하마드 알리는 맥그리거와 달랐다
"알리도 그랬다."    미국 종합격투기 UFC의 회장 데이나 화이트는 지난달 29일 ESP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맥그리거(30·아일랜드)와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0·러시아)의 재대결이 추진된다면 트래시 토크(Trash talk·경기 상대와의 거친 말싸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만들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10월 7일 UFC229에서 하빕 누르마메도프에게 패한 뒤 허망하게 앉아 있는 코너 맥그리거. [연합뉴스]  그러면서 화이트 회장은 "예전에 무하마드 알리(1942~2016)와 조 프레이저(1944~2011)의 복싱도 그랬다. 알리가 프레이저를 '엉클 톰', '고릴라'라고 불렀다. 엉클 톰은 당시 남자에게 쓰는 표현 중 최악이었다. 그래서 프레이저는 알리를 평생 미워했다"고 말했다. 엉클 톰은 백인 말을 잘 듣는 흑인이라는, 비하적 의미를 갖고 있다. 화이트 회장은 트래시 토크는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도구이며, 맥그리거의 막말을 제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UFC 최고 스타인 맥그리거는 화끈한 경기력과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인 파이터다. 격투기에서 쇼비즈니스적인 요소를 잘 파악해 스스로를 상품화했다. 메이웨더는 말도 안 될 것 같았던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복싱 대결을 성사시켰다. 두 선수의 말싸움(각종 인터뷰와 SNS)이 만들어낸 이벤트 매치였다. 메이웨더에게 10라운드 TKO로 졌지만 맥그리거는 1억 달러(약 1100억원)를 벌었다.     맥그리거는 지난해 8월 27일 플로이드 메이웨더(오른쪽)과 복싱 대결을 벌여 1억 달러를 벌었다. [연합뉴스]  맥그리거의 입담은 '떠버리' 알리와 비교할 만 하다. 맥그리거가 2015년 페더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조제 알도를 꺾고 "정확도가 파워를 제압하고, 타이밍이 스피드를 이긴다(Precision beats power and timing beats speed)"고 한 말은, 알리가 1964년 복싱 헤비급 챔피언 소니 리스턴과의 대결을 앞두고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Float like a butterfly, and sting like a bee)"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이때의 맥그리거는 종합격투기의 알리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맥그리거는 지난해 메이웨더와의 복싱에서 큰 돈을 번 뒤 UFC를 떠나 있었다. 그가 없는 사이 레슬링이 뛰어난 누르마고메도프가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랐다. 둘은 지난 10월 7일 UFC 229 대회에서 만났다.    경기에 앞서 맥그리거의 언행이 금도를 넘었다. 맥그리거는 지난 4월 동료들과 함께 누르마고메도프가 타고 있던 버스를 습격했다. 의자로 유리창을 깨 다른 선수들에게 부상을 입혀 경찰에 연행됐다. 뿐만 아니라 누르마고메도프와의 대결을 앞두고는 그의 부친을 아동학대자로 몰아세웠다. 맥그리거는 "우리(아일랜드)는 영국과 끝까지 싸우기라도 했지만 너희(다케스탄)는 (러시아에) 그냥 항복했다"고 떠들었다. 뿐만 아니라 누르마고메도프의 종교(이슬람)를 공격 소재로 삼았다.   맥그리거는 말싸움에서 이겼지만 진짜 싸움에선 완패했다. 누르마고메도프의 레슬링 압박을 견디지 못해 3라운드 서브미션(항복)패를 당했다. 누르마고메도프는 이기고도 기뻐하기는커녕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철장을 넘어 관중석의 누군가와 싸웠다. 경기를 하는 동안 누르마고메도프를 향해 무슬림 비하 발언을 했던 맥그리거의 동료였다. 파이터가 관중석으로 뛰어들었으니 경기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맥그리거도, 누르마고메도프도, UFC도 엉망이 됐다.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KO 승을 거둔 뒤에도 떠벌리고 있는 무하마드 알리. [중앙포토]  알리는 돈을 위해 떠들지 않았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두려움을 잠시 잊기 위해,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 떠들었다. 알리는 흑인이지만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탁월한 복싱 재능까지 갖고 있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알리는 '복싱의 왕'처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쉬운 길을 단호히 거부했다.   침례회 신자였던 알리는 22세 때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원래 이름을 버렸다. 또 베트남전 징병을 거부해 선수 자격 박탈을 당했다. 이로 인해 최전성기인 25세부터 4년 동안 링에 서지 못했지만 알리는 "베트콩은 우리를 검둥이라고 욕하지 않는다. 베트콩과 싸우느니 흑인을 억압하는 세상과 싸우겠다"며 저항했다.   알리는 말로 상대를 공격했으나 상대의 가족, 국가, 종교를 모욕하지 않았다. 알리는 돈과 명예를 얻고도 약자의 편에 섰다. 위대한 복서에 만족하지 않았고, 거대한 기득권과 싸운 시민운동가로 살았다. 알리와 맥그리거의 트래시 토크는 같지 않다. 알리와 맥그리거의 품격도 같을 수 없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무하마드 알리의 명언들   "캐시어스 클레이는 백인들이 내 노예주에게 준 이름이다. 난 노예가 아니기에 그 이름을 반납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칸의 이름을 선택한다."   "강, 연못, 호수, 개울. 이름은 다 다르지만 모두 물을 담고 있다. 종교도 똑같다. 모든 종교는 진실을 담고 있다."   "복싱은 두 흑인이 서로 때리는 걸 많은 백인들이 지켜보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지 못할 정도로 용감하지 않은 사람은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정말 빠르다. 어젯밤 호텔에서 전등 스위치를 끄고 불이 꺼지기 전에 침대로 돌아왔다."    "불가능은 사실이 아니다. 불가능은 그저 의견일 뿐이다."    "만약 당신의 꿈이 당신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충분히 크지 않은 것이다."   "내가 떠드는 이유는 두려워서다."       
2018-12-01 09:57
MUST CLICK!
I Hot
인기 VOD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