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황교익의 Epi -Life] 쌀과 보리, 그리고 콩의 본성에 관하여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한 미식가가 했다는 이 말이 명언으로 떠돕니다. “무엇을 먹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는지”이라고도 합니다만, 우리는 이 말이 지닌 뜻을 진지한 토론을 벌이지 않고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직업이 맛칼럼니스트이다 보니 프랑스 미식가가 한 저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황당해 보일 수도 있겠는데, 음식의 성격에서 사람의 성격을 발라내는 작업입니다. 책으로 엮을 예정으로 10년 정도 작업을 하였으나 잘게 토막난 글들이 한 묶음으로 엮이지 않아 욕심을 버렸습니다. 다루어야 할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음식의 성격’이란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음식을 대할 때의 느낌 같은 것입니다. 한 집단이 한 종류의 음식을 오랜 시간 반복해서 먹다 보면 음식도 사람처럼 성격을 가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한국인이라 한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에서나 그 성격이 보이는 듯하여 한국인의 일상 음식만 작업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이 작업에서, 제일 먼저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한 음식은 쌀입니다. 쌀로 지은 밥입니다. 쌀밥을 주식으로 평생 먹어온 한국인은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뜬구름 잡는 일이더군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저를 ‘대표 한국인’으로 상정하고, 저의 성격을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쌀의 성격은 (쌀에 성격이 있다고 하면) 쌀이 자라는 환경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쌀이 어떻게 자라는지 새삼 논에 나가서 관찰을 합니다. 봄·여름·가을·계절에 따라 변하는 논을 유심히 봅니다. 그리고 논에 서 있는 저란 놈도 관찰을 합니다. 저 벼를 먹고 자란 너는 대체 어떤 놈이냐. 그렇게 10년 정도 하고 나니 “내가 하려던 것이 이건가” 하고 짧은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쌀은 서늘하고 무겁다. 벼가 자라며 먹은 물이 쌀에 가두어져 있는 까닭이다. 밥을 지으면 쌀에 담긴 물의 본성이 드러난다. 밥알이 매끈한 것은 물의 결이고, 밥알이 단단한 것은 물의 몸이며, 밥알의 흐린 단맛은 물의 품성이다. 평생 밥을 먹어온 내 몸에 서늘한 강줄기 하나는 들었을 것이다.” (내 몸에 흐르는 서늘한 강)쌀을 했으니 다음은 보리입니다. 보리는 어떻게 자라는지 보리밭에 가서 봅니다. 보리밭에 서 있는 나는 또 어떤 놈인지 관찰을 합니다. 내가 보리고, 보리가 나입니다. 그러다 문득 누렇게 익은 보리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음을 깨닫습니다.“보리는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한겨울의 언 땅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낸 잡초의 근성이다. 봄에는 밟히어야 외려 제 성질대로 큰다. 보리처럼 자라서인지 나는 겸손을 모른다.” (고개를 숙이지 않는 근성)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보리가 눈에 든 것은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아직 익지도 않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익은 보리에서 권위에 주눅이 들지 않고 이치를 따져 물었던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쌀과 보리 다음은 콩이어야 합니다. 콩은 한반도와 만주가 원산지입니다. 한민족은 쌀과 보리 이전부터 콩을 키워 먹었을 것입니다. 한민족은 쌀과 보리의 민족이기 이전에 콩의 민족입니다. 콩밭에서 콩과 우리 한민족을 관찰합니다.“콩은 자기 혼자 사는 법을 모른다. 질소를 뿌리혹에 받아서 먹고 자기 주변의 나무와 풀이 먹고 살게끔 남긴다. 콩을 생으로 씹으면 비리고 쓰다. 남을 살리면서 맛있기까지 하면 저 혼자만 잘난 삶인 것으로 보일 수 있으니 비리고 쓴 맛을 남겨두었다. 비리고 쓴 삶이면 잘산 것이다. 여러분의 뿌리혹박테리아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사셨다.”
2023.11.23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