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산업이 생성형 AI와 엔터테크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제작 효율성의 극대화와 창작의 본질이라는 대전환점을 맞이했다. 음원 프로듀싱부터 버추얼 아이돌,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에 이르기까지 기술 도입은 제작비를 크게 낮추고 자본 장벽을 허물며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생존 무기와 IP 확장성을 제공하고 있다. 본 기획 시리즈 [K팝과 AI 혁명]은 K팝 프로덕션의 세 가지 핵심 축인 작곡가 작업실, 버추얼 아이돌·팬덤, 뮤직비디오 제작 현장을 들여다보고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술이 허무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여전히 빛나는 인간 창작자의 가치와 K팝의 미래를 짚어본다.
어센트 ‘이프 아이 다이 투모로우’ 뮤직비디오 캡처.
K팝을 비롯한 K콘텐츠 산업이 치솟는 제작비로 인해 사상 최대의 수익성 위기에 직면했다. 한 편당 수억 원을 호가하는 뮤직비디오 제작비와 실물 세트 설치비, 후반 VFX(시각효과) 비용이 폭등하면서 중소 기획사는 물론 대형 엔터사마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이러한 제작비 절벽 끝에서 엔터 업계가 찾은 새로운 해법은 바로 ‘생성형 AI를 통한 단가 다이어트’다. 고도화된 AI 영상 생성 도구가 도입되면서 콘셉트 아트 제작부터 세트 배경 가이드, 나아가 실물 촬영을 대체하는 영상 연출까지 K팝 프로덕션의 공정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세트·조명·세션 인건비 ‘0원’…제작비 최대 10분의 1 삭감 효과
기존 K팝 뮤직비디오는 수억 원대의 거대 예산이 들어가는 대표적인 ‘자본 집약적 구조’였다. 야외 대형 세트장 대여료, 조명 및 고급 카메라 장비 렌털, 현장 스태프 수십 명의 인건비, 미술 및 CG 후반 작업 비용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성형 AI 기반 영상 프로덕션을 도입할 경우 이러한 물리적 고정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실물 세트 대신 프롬프트 입력으로 수백 개의 우주, 판타지, 아포칼립스 배경을 순식간에 생성해 내고 고난도 CG 작업을 단기간에 구현해 내면서, 제작비와 제작 기간이 대폭 절감되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관계자는 “K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상상력을 구현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언제나 예산의 벽이었다”며 “과거라면 수억 원의 컴퓨터 그래픽이나 해외 로케이션을 거쳐야 했던 장면을 이제는 연출자의 섬세한 프롬프팅과 세밀한 AI 파이프라인 조율을 통해 십분의 일 수준의 단가로 구현할 수 있게 돼, 기획사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연출적 스케일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생존의 무기가 된 셈”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AI 기술과 볼륨메트릭(3D 입체 스캔) 기술을 접목해 그룹 어센트의 ‘이프 아이 다이 투모로우’ 뮤직비디오를 선보인 박광원 뉴웨이즈컴퍼니 대표는 “대형 기획사나 S급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는 4억~15억 원까지 들어가는데, 1억 원 미만 예산으로는 고가의 카메라나 스태프를 쓸 수 없어 퀄리티를 포기해야 했다”며 “AI와 3D 기술을 접목하니 기존 VFX 대비 단가가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센트의 뮤직비디오처럼 아티스트의 모션을 AI에 직접 학습시키는 기술이 더해지면서, 과거 1억 원 이하 예산으로는 어설프고 이질감이 들 수밖에 없었던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고퀄리티로 구현할 수 있었다”며 “AI는 대형 기획사의 전유물이었던 화려한 연출을 중소 기획사도 시도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덧붙였다.
송가인 ‘꽃이 아니면 어떤가’ 뮤직비디오 캡처. ◆‘디테일과 완성도’ 잡은 AI 기술…연출의 지평을 넓히다
연출 현장에서도 AI 기술은 한계를 깨는 차세대 디렉팅 도구로 고평가받는다. 최근 가수 송가인의 ‘꽃이 아니면 어떤가’와 오유진의 ‘여우야 하니’ 뮤직비디오를 AI 기법으로 선보인 제작사 와이키의 임윤기 대표 겸 감독은 현장에서 체감한 획기적인 제작 효율성을 강조했다.
임윤기 감독은 “과거 CG 작업은 애프터 이팩트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하나하나 설정을 돌려야 했지만, AI 기술을 활용하면 CG 및 그래픽 분야에서 비용과 인건비가 함께 절감되며 기존 대비 예산과 작업 시간이 70% 이상 줄어든다”며 “3~4명의 인력으로 한 달 이내에 고퀄리티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어 임 감독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연출적 표현의 자유도가 극대화되었다고 설명했다. “과거엔 기술적, 재정적 제약이 컸다면 이제는 연출자가 프롬프트에 기본적인 카메라 기법이나 앵글을 디테일하게 입력하면 숙련자의 의도대로 구현된다”며 “표현하고자 하는 비주얼의 제약이 거의 사라졌을 정도로 연출의 자유도가 확보됐다”고 덧붙였다.
◆거대 자본 장벽 깨졌다…K팝 생태계 외연 확장
기획사와 연출자들이 AI 영상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기술과 아티스트의 세계관이 만나 이전에 없던 화려하고 독창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거대 자본이 부족했던 중소 기획사와 창작자들에게 고품질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든든한 날개가 되어주고 있다.
AI 기술이 향후 K팝 영상 산업의 표준이 될 것인가에 대해 임윤기 감독은 기존 아날로그 시장을 완전 대체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영역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임 감독은 “AI가 기존의 아날로그 실사 시장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없애지는 않을 것”이라며 “실제 배우나 아티스트가 주는 실사의 생동감은 유지되되, AI 기술과의 접목을 통해 기존 시장과 AI 시장이 50대 50으로 양분화되며 전혀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박광원 대표 역시 AI 기술이 가져올 K팝 생태계의 긍정적 변화에 기대를 표했다. 박 대표는 “과거에는 거대 자본을 지닌 대형 기획사만 가능했던 높은 수준의 비주얼 연출을 이제는 확실한 기획력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중소 기획사도 AI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며 “결국 AI 기술의 도입은 제작비의 장벽을 낮춰 중소 기획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K팝 시장 전체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강력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조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