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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산업 실무인재 90명 배출…현장교육·멘토링 강화

-실무마스터 2기 40명·커리업 멘토링 8기 50명 수료-기업·프로구단 탐방부터 AI 교육·모의면접까지…수료 후 취업 지원 지속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하형주)이 스포츠산업 진출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실무역량과 취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운영한 ‘현장 밀착형 스포츠산업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이번 프로그램은 ‘스포츠산업 실무마스터 2기’와 ‘스포츠 커리업 멘토링 8기’로 구성됐다. 실무마스터 40명과 커리업 멘토링 50명 등 총 90명이 과정을 수료했다.공단은 참여자의 취업 준비 단계와 수요를 고려해 스포츠산업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제 취업 과정에 필요한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스포츠산업 실무마스터 2기’에서는 직무별 실무교육을 비롯해 기업·프로구단 현장탐방, 인공지능(AI) 활용 교육, 모의면접 등을 진행했다. 산업 현장을 직접 경험하면서 직무 이해도를 높이고 채용 과정에 필요한 실무 능력을 익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스포츠 커리업 멘토링 8기’에는 중앙일보, 동아오츠카, 인천유나이티드FC 등 스포츠산업과 연계된 다양한 분야의 현직자들이 멘토로 참여했다. 멘토들은 직무별 현장 경험과 업무 특성, 취업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 등을 참가자들과 공유했다.국민체육진흥공단은 교육 수료 이후에도 취업 상담과 채용정보 제공 등을 통해 참가자들의 스포츠산업 진출을 지원할 예정이다.공단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은 스포츠산업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실무역량을 높이고 현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진로를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수료 이후에도 취업 상담과 채용정보 제공 등 지속적인 사후지원을 통해 청년들의 스포츠산업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공단은 앞으로도 스포츠산업 현장의 인재 수요와 구직자의 취업 준비 수요를 반영한 실무형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2026.09.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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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세계에서 ➃ 용서는 다정한 모습으로 (2)

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알싸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내려앉은 실내의 공기는 그리 편한 느낌을 선사하진 않았다. 침묵도 무언가를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얘기하자면, 지금 상황이 훌륭한 교보재가 되어줄 것이리라. 칩을 강제로 파손시킨 자리에는 작은 열상이 남았다. 치료에 앞서 받아먹은 진통제가 정신을 조금 몽롱하게 했다. 여로가 나가지 않았으면 좀 나았을까. 열린 문틈으로 상황을 확인한 사감 선생님은 경악을 차마 숨기지 못한 채, 여로로 하여금 나를 부축하게 해 보건실로 보냈다. 전에도 설명한 적 있는 것 같지만, 편하지 않은 상대와 단둘이 있는 건 꽤나 많은 정신력을 요한다. 어느 정도 염두에 둔 상황이었기에 나는 여전히 차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역시 편할 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그러니까, 화장실에 올려둔 비커를 잘못 건드려서 그랬다… 이거니?” 선생님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상처를 소독하며 입을 열었다. 따끔거리는 고통이 미간을 찌푸리게 하려는 것을 의식적으로 참으며, 피가 채 닦이지 못해 끈적한 손끝을 비볐다. 고통을 참는 것은 익숙하다. 적어도 이것은 내 통제 범위 안에 있는 고통이었다.“… 예. 찬장에 보관해 둔 비커를 꺼내려다가 놓쳤는데, 그게 깨지면서 잘못 맞아서 이렇게 됐습니다.” 나는 무감한 눈길로 자초지종을 꾸며내어 설명했다. 물론 보건 교사의 눈에는 택도 없는 변명일 터다. 깨지면서 한 곳에만 이리 깔끔하게 상처가 날 수 없다는 건, 보건 관련 지식이 전무한 나도 추론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구태여 거짓을 논하기를 택한 것은, 그저 한 가지가 궁금해서였다. 진실이 다 들여다보이는 뻔한 거짓말에, 선생님이 어떻게 나올지. 열이 펄펄 끓던 그 날, 선생님에게서 느낀 기시감은 정말 진실이었는지를 다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다정한 눈빛 속에 많은 것들을 안고 있는 선생님은 위선자일까, 외부의 눈을 가진 채 세계 속에서 유리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수도자일까. “어쨌든, 기록이 송신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다행이구나. 백업 신청을 해두면 포인트 지원에 문제는 없을 거야.” 툭. 가위의 날이 부닥치는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자 소름이 끼쳤다. 선생님은 애써 평이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시험도 훌륭하게 끝냈던데, 이런 일 때문에 물거품이 되면 안타깝지. 그래, 어디 지원할 건지는 정해뒀니?” 내 것이 아닌 손끝의 온기가 상처 부위에 닿는다. 단단하게 드레싱 된 상처에서는 더이상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묵직한 온기의 자락에서, 그가 대화의 주제를 돌리고 싶어 한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글쎄, 안타까운 얘기지만, 나는 딱히 그 가장된 평온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상당히 바로 선 정신으로 입을 열었다.“아뇨, 아무 데도 지원하지 않으려고요. 쌓아둔 포인트는 양도하겠습니다.” 멈칫. 테이프를 꼼꼼히 눌러 붙이던 움직임이 잠시 멎는다. 선생님의 시선이 푹 꺼지는 게 보여서,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협력 연구 포인트는 한 사람에게 양도가 가능하다고 들어서요, 한결이에게 전부 양도하고 싶어요.""하하… 머리를 다쳤다고 장난이라도 쳐보는 거니? 시도는 좋았지만 인지를 담당하는 부분은 그 안쪽에-""거기까지 안 다쳤으니까 장난이 아니겠죠." 나는 진중한 눈으로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거짓이 아님을 똑바로 주지시키려는 시도였다. 예의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라는 건 알고 있있기에 포인트와는 별개로 죄책감이 들었지만, 당당한 태도로 나가지 않으면 박혀버린 이치를 빼내는 것은 영영 불가능할 터였다. 사회적 체면을 모두 저버릴 정도의 각오가 아니라면. 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먹혀들어 간 모양인지, 선생님의 입가에서 어색하게나마 존재하던 미소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으면 좋겠네. 여기까지 잘 달려와 놓고, 대체 왜…”“왜 달려왔는지를 모르겠어서요, 선생님.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달려가는 것만큼 위험한 게 어디 있겠어요.” 상급 학교의 그 어디에도 내가 도착해야 할 곳이 없었다. 목표 하나를 정했어도 계속 공허하기만 했던 것은, 이 과정 자체가 목적 없는 주행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꼭 어디로 향해야지만 좋은 삶은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아, 여명아. 달리는 이유조차 모르고 달리는 거지. 내일이 있으니까.” 잠시 침묵하던 선생님이 입술을 꽉 내리 물더니 입을 열었다. 악에 받치려는 것을, 애써 참는 듯한 모습으로.“어차피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거, 조금 더 편하게 달리는 게 현명한 일이야. 어쨌든 살아내야 하니까. 너라고 다를 게 없어. 너라고, … 아니, 나라고 다를 것도 없었지.” 바다를 향해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 선생님은 내 눈동자에서 젊은 날의 자신을 읽었다. 슬픈 어조는 현실에 순응한 자신에 대한 애도이자 제자를 자신과 같은 길에 묶어두려는 것에서 기인한 죄책감이기도 했다. 선생님의 말은 틀린 게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았고, 나도 그렇게 살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형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속죄를 해야해서, 낙오자가 될 수 없어서. 살아내야 해서. 나를 위해서라고 표방한 외압에 의해 편한 길이라 불리는 것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나는. 편안하고 따스한 공허보다는 거칠고 괴로운 광야에서 구르는 편을 택하려 한다. 그 공허를 메꾸기 위해서도, 척박한 광야에서 보물을 찾는 이들은 꼭 필요하기 마련이었다.“그렇다고 가보지도 않는 건 바보짓이죠.” 그곳엔 길을 찾지 않아도 길이 있을 거예요. 덧붙이자 선생님의 표정이 알 수 없게 변했다. 면면에 떠오르는 저 감정들은… 그때, 선생님의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메시지를 읽는 선생님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린다. 무슨 일이지. 그리 크게 동요할 일이 있나 싶어 의문에 잠기는데, 선생님이 별안간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딘가 비장하고도… 안타까움을 담은 눈으로.“… 여명아. 놀라지 말고 들어야 한다. 네 형이… 위독하시다는구나.” 형에게 가보렴. 이건 그 후에 다시 얘기하자.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어깨를 단단히 잡은 선생님의 온기가 아니었다면,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진찰대에 박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형이… 예견하고 있던 일이었으나, 직접 마주하는 감정들은 예견 따위로 미리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옅은 감정이 아니었다. 형. 나는 오래간 입에 담지 못했던 이름을 담으며, 아무 표정도 짓지 못한 채 무너져 내렸다.- 아무런 색도 없는 냄새. 대륙을 가로지르는 자가 부양 열차가 거의 아무런 소음도 없이 플랫폼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사람의 음성이 아닌 것이 플랫폼을 울리자, 몇 개의 인기척들이 부산스레 열차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짐짓 공허한 담임 선생님이 보내온 전자 티켓의 바코드를 띄웠다. 잘 추스르고 오길 바란다. 전자 티켓과 함께 떠오른 전언은 담백했다. 아니, 잘 추스를 것도 없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나는 그저 배웅을 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 그렇게 느껴야 했다. 그러니까, 슬퍼할 필요도… 비탄에 잠겨서, 주저앉아 울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강하게 감았다 뜨며 열차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창문에 비친 눈가가 붉다. 짙은 감정들이 훑고 지나간 흔적은, 보이지 않는 가슴보다는 눈가를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곧 스러져갈 것들을 보내기 위해선, 조금 긴 여행을 떠나야 했다. 시험이 끝나지 않았다면, 작별을 위해 길을 떠나는 것조차 힘들었을지도 몰랐다. 내 고향은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다. 수도에 있는 학교에 들어오게 되면서 떠나온 그곳은, 이 학교보다 배는 척박한 곳이었다. 지구에서 버려졌는지 너른 바다도, 울창한 숲도 존재하지 않고, 현대 기술의 축복이 내려앉다가 마음을 바꿔 떠나기라도 한 듯, 파멸 전의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 형은 아직 그곳에 남아있었다. 부모를 일찍 잃은 내게 나이 터울 많은 형은 유일한 보호자이자 후견인이었다. 그리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좋은 동거인쯤은 되는. 유일한 혈육을 대하는 태도치고는 이상하게 회의적이라 생각한다면, 그게 맞다. 형은 그리 나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못했을 거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나의 모든 치부와 죄악과 비탄의 이유도 그곳에 있다. 그러니 중태라는 형에게 향하는 지금,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지. 부드러운 진동과 함께 열차가 출발한다. 나는 다시금 눈을 감고 마음을 좀먹는 죄악들을 선연히 느꼈다.“남부엔 언제쯤 도착해?”“쾌속 열차니 아마도 8시 전엔… … 어?” 거의 자동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들을 내뱉다 말고, 익숙한 목소리에 퍼뜩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얼굴이 눈앞에 있다. … 여로? 멍청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여로가 후드를 벗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왜 여기 있어? 아니, 그것보단 어떻게…”“결석계 내고 왔어. 곧 동생 기일이거든.” 여로는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디자인으로 획일화된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그는 제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 보였다. … 동생이 있었구나. 꽤 슬픈 사유에 나는 놀란 시선을 거두고 애써 여상한 태도를 지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어차피… 침잠하는 감정을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일까.“좀 괜찮아? 기숙사에 없는 사이에 그렇게 나가버려서 꽤 놀랐어.”“아, 미안… 그러고 보니까 얘기도 못 하고 나왔네.” 여로의 시선이 반투명한 재생 밴드가 붙어 있는 곳을 향하자, 나는 슬며시 그것을 가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쓰라린 상처의 아픔 따위는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떤 큰 일렁임 앞에서, 그것보다 작은 고통의 안위를 묻는 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그래. 적어도 창가에 비친 붉어진 눈가는, 아무런 동요도 겪지 않은 사람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지금 나는, 슬퍼하고 있는 걸까. 심장이 고장난 게 아니라면, 이리 낮게 뛰고 있을 리가 없었다.“형이 곧 떠날 것 같대.”“….”“작별 인사를 하고 오라고…, 잘 보내드리고 오라고 하셨어.” 고요한 목소리의 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뒤이은 토로 앞에서, 여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것은 이별에는 생각보다 많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고개가 유독 무거워 잠시 눈을 감으니, 곧 어떤 손길이 부드럽게 고개를 돌리게 한다. 오른쪽 볼에 따뜻한 것이 닿는 게 느껴졌다. 여로는 기꺼이 나에게 제 어깨를 내어 주었다. 안온하고, 단단하고, 안전한 인간만의 온기… 오랜만에 느끼는 그것이 그게 못내 달가워서, 나는 구태여 그의 손길을 외면하지 않고 힘을 뺐다. 잠시 그렇게 눈을 감는데, 별안간 커다란 천이 몸을 덮는 게 느껴진다. “남부는 춥잖아.” 가만히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자, 내 몸 위로 담요를 덮어준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소 지었다. 그래, 말마따나 남부는 추운 지역이었다. 아무리 겨울은 아니라지만, 얇은 섬유만으로는 방어하기 힘들 정도였다.“… 너, 남부 출신이야?” 남부의 날씨에 익숙한 듯한 그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꽤 충동적으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로는 언젠가 고향 사람이라는 단어로 나를 부른 적이 있었다. 세계를 빠져나온 후에는 그것이 어떤 비유적인 표현이었노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여로는 정말 나와 동향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느낌을 주었다. 조금 멍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는데, 여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로는 깔끔하게 암묵적으로 감춰두었던 사실을 인정했다. “응. 이곳저곳 전전하긴 했지만… 전학 오기 전까진 결국 남부를 벗어나지 않았어. 동생이 남부에 있기도 하고.”“… 정말 동향 사람이었구나. 언젠가 만난 적 있었을 수도 있겠네.” 나는 차창 너머로 휙휙 바뀌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조금은 씁쓸한 기분. 여로를 조금 더 이른 시점에 만났더라면, 지배당하지 않고 상급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때는… … 잘 모르겠다. 과거를 생각하면 여전히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차라리, 그것들을 똑바로 마주하면 나을까. 숨기고 억누르면 언젠가는 조금 더 악화된 방식으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차라리. 노을이 뒤덮은 세상은 붉었다. 불타는 듯한 빨간 노을은, 내게 후회를 안긴 적이 딱히 없다. 나는 포화 상태에 이른 머리로 차라리 마음을 뒤덮은 것들을 하나둘 똑바로 마주하기로 했다.“내 얘기 해도 돼?” 말간 눈으로 묻자 여로가 놀란 듯 잠시 숨을 들이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 담백하게 마주 웃어주며 낮은 한숨을 뱉었다."… 나한테 가족이라곤 형뿐이었어. 어릴 적 기억들이 드문드문 잘려 있어서… 가장 첫 기억도, 가장 마지막 기억도 형이야."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고해를 시작했다. 신부는 여전히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혹은 더 어린 시절의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기억에 남아있는 게 없었으니까.“형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형이 거의 나를 키우다시피 했어. 그래도 그때 형은 많이 어렸는데, 더 어린 내가 있었으니까… 형이 거의 인생을 포기했어야 했지.” 그래, 어쩌면 나의 원죄는 존재 그 자체였다. 성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나와 자신을 책임지기 위해 인생을 바쳐야 했던 형은, 실은 학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기초 교육만을 받고 의료원에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간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형은 어땠을지 몰라도, 형 덕분에 나는 딱히 부족하게 자라진 않았어, 다만 회의감이 있을 뿐. 형은 책임감이 강했지만 불행했고, 그 불행의 기저에 내가 있었으니까.“ 그걸 좀 일찍 깨달아 버렸거든. 눌러두었던 것을 회상하자 다시 숨이 막혀오는 기분에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상황이 그러니 형이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부양해야 할 내가 없었다면, 형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꿈을 이뤘을지도 모르니까.“근데, 불행이란 게 꼭 사람에 의해서만 찾아오진 않더라고. 열세 살 땐가, 형이 여명을 받아왔어. 여명이란 개념상으로는 조금 길었지만, 삶으로 봐서는 잔인할 만큼 짧은 거.” 하지만, 형의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불행은 아무 소리 없이 죄 없는 자에게 찾아오기 마련이었고,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형은 어느 날 생명이 몇 해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았다. 내 기억이 그친 곳은 거기까지였다. 형은 의지만 있다면 웬만한 병을 치료할 수도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명을 늘리기 위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울면서 간청해도, 돌아오는 것은 담담히 이별해 달라는 잔인한 말이었다. 그것조차 형의 증오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몸이 약해지는 날이면 고질병처럼 찾아오곤 했다.“… 그 여명이란 게,”“응. 그때부터. 지금이 오기까지였어. 그래도, 생각보다 조금은…” 조금은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자조적으로 웃던 입가에서 미소를 지웠다. 그래, 이건 말 그대로 잔인하다. 여명이 길다는 건, 성장을 준비할 수는 있지만 성장을 마친 후를 알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것은.“끝을 알아서인가, 그때부터 형은 하나둘 마쳐야 할 것들을 정리했어. 그중 하나도 나였고. 그냥 그때부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이 세계로 뛰어들 준비를 했던 것 같아.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죄지은 것을 조금이라도 사함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형의 운명을 알게 된 후부터였을까. 미력한 희망을 저버리고자 한 형 대신, 텅 비어버린 내 마음속에 기만이란 옷자락이 펄럭였다. 형은 미련을 버리려 하는데, 그의 꿈을 향한 내 비겁한 안타까움이 가슴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한 번 꿈을 향해 달려본 적 있는 형은 복지 대상자를 위한 중급 학교 편입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혹시, 라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항상 올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이 문제였다. 혹시 시간을 더 많이 쓸 수 있었다면. 혹시 공부에만 온전히 신경 쓸 수 있었다면… 아이들은 감정에 유독 기민하다. 더구나 또래보다 조금 더 일찍 커버린 마음은 그런 미숙한 증오와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의 의지가 향하는 곳을 알았다. 제 감정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게도. 그래서 나는 형이 마지막 미련으로 제 꿈을 내게 투영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바람대로 공부에 매진하고, 전국 시험을 보고, 이곳 수도로 올라왔다. 형이 어떤 강제적인 행동이나 언어 표현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순종했다. 형이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전가하길 택했다는 것에 오히려 감사하면서. 어린 심장으로도, 그것이 내가 빼앗아 버린 형의 삶에 대한 유일한 속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다른 길을 볼 새도 없었지만, 그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활로가 정해진 후에는, 더이상 고향에 대한 미련은 없어야 했으니까. 내겐 고향이란 걸 마음에 품을 자격이 없었다. 딱딱한 기계음과 함께 열차는 중간역에 멈춰 섰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열차에서 내리는 승객은 많아지고, 올라타는 승객은 한두 명 정도로 준다. 열차가 역에서 멈출 때마다, 넓은 통창은 그들의 만남과 이별 따위를 선연히 비추었다. 그들은 웃고, 울고, 마음을 표정 뒤에 숨기고는 차라리 열차에 올라타고 난 후에 눈물을 흘렸다. 오래간 볼 수 없었던 인간의 감정들은 너무나도 생경했다. 이별을 고하러 가는 길, 이별을 마주하는 이들의 슬픔은 세계 속에서 억제되어 무던해진 가슴으로도 시선을 멈추게 한다. 무감함을 표방한 가슴과 거짓말을 하지 못한 시선의 간극은 후회를 자아냈다. 나는 힘이 모두 빠져버린 듯 몸을 축 늘어트리며, 자조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차라리 거기까지였으면, 지금 조금이라도 더 의연할 수 있었을까. 모든 게 그리 깔끔하게 끝났더라면, 굳이 이름을 바꿀 필요하진 없었을 텐데.” 손끝이 저려온다. 깊은 호흡을 내쉬듯 끊김 없이 내뱉어진 말은 뒤에 가서야 조금씩 떨렸다. “… 여명이 본명이 아니야?” 그 떨림에 잠시 멈칫한 여로가 물었다. 나는 얼굴에 상투적인 미소를 띄워내며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저림은 그 작은 움직임을 뒤늦게 따라온다. “응. 입학할 때 지은 거야. 새로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게… 그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여명. 나는 삼 년을 채 쓰지 못한 이름을 낮게 읊조렸다. 가장 먼저 이름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그렇게 모든 미련들과 함께, 남부 어딘가에 유년 시절을 묻으려 했다. 여명을 따라온 것은, 낙인처럼 새겨진 죄악에서 흐르는 붉은 것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리하고자 했던 나와는 다르게, 정작 버리라고 했으면서 미련을 가진 것은 형이었던 모양이다. 형의 미련은 제 삶이 아니라 나라는 것이었다."그냥, 그렇게 조용히 숨을 죽이며 살다가… 이 학교에 합격하게 됐는데, 형이 날 어느 병실에 데려가는 거야. 살면서 본 것 중에 제일 환한 미소를 보여줘 놓고.“ 그 차가운 공기를 떠올리자 머리 한가운데에서 지끈거리는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그 환상은 시간이 꽤 오래 흐른 지금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로 나를 데려다 놓고는 했다. 형은 이 학교에 합격한 그날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고, 내 손을 잡고 의료원에 가 나를 수술대에 눕혔다. 미성년자의 기억 제거 수술은, 수용 가능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사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법적 보호자의 동의만 있어도 진행 가능하다고 했다. 형은 내 합격을 염두에 두고, 거금을 들여 기억을 없애는 수술을 맡겼다. 영문 모를 상황에 얼이 빠져 있던 것도 잠시, 수술의 정체를 알게 되고는 힘차게 저항했으나 그 저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차가운 수술대에 눕혀지면서 본 형의 표정이, 전에 없이 슬펐으니까. 마치 길가에서 볼 수 있던 붉은 토양 같았다. 졸린 호흡이 닿고, 흐린 시야가 감겼다. 수마가 그리 원망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그 무력했던 과정들을 말로 뱉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삶의 모습이 다양하다지만 이건 그다지 평범한 일이 아니었고, 한결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치부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고해하는 날이 온다면, 분명 숨이 막혀올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가슴을 누르고 있던 납덩이가, 점점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근데 웃기지도 않지. 또 내 기억이 온전히 지워진 건 아니었어. 조금이나마 받아들이고 난 후에 따로 찾아보니까, 어릴수록 뇌가 다 발달하지 못해서, 기억 제거술이 부분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내 이야기가 된 거고. 자조적인 어조로 덧붙이자, 어쩐지 공기의 흐름이 일순간 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의 긴장은 착각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금세 제 궤도를 찾았지만, 어쩐지 들이쉬는 것들에서 일종의 향수(鄕愁)가 느껴진 듯도 했다. 그래, 그 짙은 내음처럼, 운명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운명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때였다. 알싸한 소독약 향기를 맡으며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잠이 깨지 않아 흐린 시선으로 천장을 올려다본 나는 몇 년 만에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묵직한 슬픔과 차마 대상을 말할 수 없는 일말의 원망이, 심장을 죄이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기억 중 일부가 날아갔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럼에도 날 수술대에 눕힌 형을 증오할 수 없던 건 하나였다. 눈을 완전히 감기 전, 마지막으로 의사를 묻는 담당자에게 형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내뱉은 말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세상으로 나아갈 이 아이가, 민춤한 양육자로 인해 잘못된 과거를 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형은 내게 행복한 기억만을 남겨 자신을 좋은 보호자로 기억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라고, 과거에 묶인 밧줄을 끊어준 것뿐이었다. 그것은 형의 속죄이자 사랑이었다. 정작 나는, 그를 미워해 본 적이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이지 않은 힘이 형에게 잔인했던 것인지, 내게 잔인했던 것인지, 우리 형제 모두에게 잔인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무력하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미련한 손길로 서로를 사랑했을 뿐이었다. 그래, 옛말로 표현하자면, 이건 비극 그 자체였다."하필이면 수술 직전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더라. 그때 형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항상 죄를 지은 건 나라고 생각했는데, 형은 무슨 용서받지 못할 죄를 고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래서… 병실에서 눈을 뜨고도 원래의 모습으로 형을 대할 수가 없었지." 그 무표정한 모습 뒤에 숨긴 것이 내 것과 같은 축축한 죄책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무어라 표현할 수 없던 그때의 심정을, 그 축축한 것들을, 차마 형에게 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형이 나와 편지만 간간히 나누는 사이의 형제라고 자신을 설명하며 병실로 들어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는 척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을 자아내는 게 전부였다.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면, 또다시 수술대에 눕혀지는 것은, 너무나 쉬웠으므로. 그리고 형과의 기억은, 거기서 얼마 머지않은 이 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이 마지막이다. 나는 잠시 말하던 것을 멈추고 수도로 올라온 이후의 기억을 회고했다. 그 이후엔 모두가 짐작할 수 있을 법한… 그런 당연한 수순이었으니, 구태여 입으로 뱉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너와 나 사이에는 원래 거리가 있었다는 방어막을 두르고 세상을 처음 맞는 나를 맞이한 형과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로가 알지 못하는 굳어진 죄책감은 고질적으로 형제 사이의 거리를 벌려 놓기만 했다. 같이 지내는 마지막 시간 동안 거의 남과 같은 사이를 표방했으므로, 이별도 담담했다. 하지만 형이 뒤돌아서며 아프게도 울었을 것이라는 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숨죽여 한참을 울었으니까. 나는 형을 애도하며 여명이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쇠잔한 목숨. 나는 그것을 먹고 자라났다는 걸, 그의 죄책감을 양분으로 삼아 수도에 올라왔다는 것을… 사람된 일말의 도리로, 결코 잊지 않으려고. 시간은 고통 속에서도 계속해서 흘러갔다. 시험을 치고, 포인트를 쌓았다. 사고조차 지배를 받는 건, 적어도 과거의 일을 생각할 일이 없다는 것을 뜻했다. 동향 친구 한결을 이곳에서 다시 마주했을 때 잠시 동요할 뻔했으나, 한결은 나를 처음 보는 체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모르겠으나… 그것도 형의 뜻일 터다. 정제된 거짓 속, 어릴 적 한결의 눈빛과 행동 따위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숨기기는 쉽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삶의 고됨과 바쁨은 그것조차 무뎌지게 했다. 한결과 고향의 일을 이야기할 여유 따위도 없었으니까. 가끔 한결을 보면, 형을 떠올리면, 조각조각 남아있는 유년의 기억이 나를 미칠 듯이 괴롭게 했지만, 고향 사람 한결과 수도의 이야기를 하면 금방 잊을 수 있었다. 언젠가 고통에 완전히 의연해질 수 있을 때… 그때서야 고장 난 기억을 극복할지, 완전히 버릴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므로, 내가 버티기 위해 택한 건 순간의 망각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하나만은 확실했다. 내가 과거를 다시 마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은, 아직 그리 의연해지지 못한 시점이라고. 너무나 큰 낙관에 젖어 있던 걸까. 여로의 어깨에 기댄 채 가만히, 그의 호흡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의 박동은 곧았다. 정상 궤도를 벗어난 지 오래인 내 심장과는 다르게. 이 어깨가 없었다면, 남부로 향하는 이 여로는 조금 많이 외롭고… 퍽 서러웠을 것이다. 온기는 언제나 간절한 것이었으니까.“… 안녕. 넌 이름이 뭐야?”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여로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침묵하다가, 곧고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고작 몇 개월 전, 어영부영 첫인사를 했던, 그 복도에서처럼. 여전히 변함없이, 그의 눈은 파랗기만 하다. 이유 없는 서러움에 소리 없이 허우적대던 나는, 그 올곧음을 보고 그만 아주 낮게 웃어버렸다. 이름을 물어준 사람은, 적어도 기억하는 한에서는 처음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고백하듯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나는… 한이야. 이 한.” 진솔한 시선과 시선이 처음으로 맞닿는다. 내 눈은 어떤 색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 무엇도 제대로 알지는 못하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름이 꽤 괜찮은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증오와 혐오로 점철되어 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그 이름을 뱉는 입에는 아무런 껄끄러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열차 안에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것은 마술사가 제 모습을 벗어던지기에 충분한 시간과 암전이었다.“나는… 방랑하며 살았어. 집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었고, 모든 세상이 곧 집이었어.” 드문드문 인공적인 불빛이 여로의 얼굴을 비추었다가 어둠 속에 감추기를 반복했다. 나는 가만히 그 피사체를 바라보며, 여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 삶을 아무에게도 보인 적 없었듯,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은 처음이었다.“난 딱히 이름을 바꾸진 않았어. 여로도 내가 지은 이름은 맞고. 보육원에서 자라서, 제일 첫 기억에선 아예 번호 말고는 이름이 없었는데…" 조금 쌉싸름한 그의 이야기는 꽤 오래 길게 이어졌다. 나그네의 방랑기는, 결코 순탄할 수 없지만, 결국엔 아름다운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에서>는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➄ 그리고 아이는 자라난다에서 계속) 2026.09.18 18:17
생활문화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 ➅잘못된 열망

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6. 잘못된 열망 도시 중심으로 이동하니 서로 높이 싸움을 하듯 수없이 많은 고층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저 멀리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또렷이 들어오는 클록터 본사 건물이 껄끄러웠다. 도시 중심이라면 어디에서든 보일 만큼 거대해서 지도가 필요 없었다. 회장이라는 사람이 왜 찾아오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클록터를 찬양할 테니 그만큼 크게 지었겠지. 도시의 자부심이 곧 클록터니까. “이모션 사이클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학부모들을 노렸죠?” “아무래도 그렇지. 아마 기획 의도가 사춘기 청소년들의 감정을 제어해 공부 효율을 높인다, 그런 거였을 거야.” 이담이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그의 장난스러운 모습에 긴장이 조금은 잦아들었다. 인도를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다른 세기의 인류 같았다. 모두 경직된 표정에 비슷한 걸음걸이. 로봇…. 같달까. 내가 그들을 따라 몸을 굳히자, 이담이 속삭였다. “굳이 연기 안 해도 돼. 여기 사람들은 남한테 관심 없거든. 클록터 내부에서만 조심해.” “관심이 없다고요? 신고 안 해요?” 내 말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학생들의 공부 효율. 학업 능력 향상을 노리고 시작했던 사업 규모가 커져서 직장인들도 이모션 사이클을 찾았지. 일의 효율을 늘려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었고, 어느새 업계 대부분에서 일하려면 이모션 사이클 시술이 필수적이었어. 좋은 기업들은 빠릿빠릿한 일 처리를 원하는 데다 이모션 사이클이 상용화된 사회에서 일반인으로 살아가기에는 무리가 있었거든. 잡생각이나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삐끗했다가는 돈 몇백이 날아가니까. 자연스레 이모션 사이클은 여러 방면의 효율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어 나갔고, 나 살기 바빠진 사회에서 남들을 신경 쓸 여력은 없었던 거겠지. 클록터가 일부러 그런 기능을 추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들도 예방 주사처럼 시술하나요?” “그럴 거야. 많은 애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시작하지. 안 그러면 눈초리가 따가울 테니까.” 어쨌든 이 사회는 미쳤어. 그렇게 말하는 이담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해 보였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이 판을 내가 뒤집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같았다. 도망치고 싶어도 내게는 방법이 없었다. 뒤를 바라보며 후회하기는 늦었다. 배서화, 너 때문에. 네가 이상한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겁먹고 돌아갔을 거야. 하지만 네가 그런 이상, 내가 도망칠 수 없잖아. 먹먹한 마음에 한눈 팔린 사이 이담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내게 다가왔다. 꽃잎 몇 개가 더럽혀진 데이지 한 송이였다. 이담은 말없이 내 팔목을 가져가 데이지를 묶어 주었다. 왕년에 많이 묶었다, 예쁘지 않냐는 중얼거림이 하찮았다. 줄기가 물러 터져서 물관 속 수분이 손목을 타고 방울방울 떨어졌다. 어디서 따온 건지…. “이류야!” 쓸데없이 화창한 뒷마당 햇살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노곤한 기분에 잠이 쏟아지려던 찰나 휘연이 말을 걸어온다. 손에 무언가 쥐고 있다. 등을 기댄 벽돌 담장이 거칠어서 피부가 아팠다. 자세를 고쳐 앉고 손바닥으로 눈 위를 가린 후에야 두 손에 꼭 쥔 물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 “데이지꽃?” “응! 선물. 선생님한테 허락받고 꺾어왔다?” 해맑게 건네는 선물을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 손으로 데이지가 옮겨지려던 순간 꽃잎 위의 작은 개미가 보였다. 내가 기겁하면서 몸을 움츠리니 휘연이가 개미를 떼어 바닥에 내려주었다. 스스럼없이 곤충을 만지는 모습이 신기했다. 휘연이 건넨 데이지를 손에 쥔 채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꽃이 좋아?” “꽃보다는 꽃말이 좋거든. 꽃말이 뭔지 알아? 꽃말.” “꽃에 의미 붙인 거 아니야?” 휘연이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자그마한 정수리에서 얕은 온기가 느껴졌다. 더위를 타나 보다. “맞아! 되게 멋진 거 많거든. 막, 진지하고 어른 같아. 그거 꽃말이 뭐게?” 내 손에 들린 하얀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어휘가 부족한지라 잘 생각나지 않았다. “사랑이나 행복, 그런 걸까나.” 휘연이가 틀렸다며 데이지를 도로 뺏어갔다. 나름 맘에 들었던 참인데 뺏기니 심술이 났다. 맞힐 때까지 돌려주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도 대답이 없었다. 휘연이의 말을 기다리며 여러 빛깔의 구름이 뒤섞인 이상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꿍얼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휘연이가 꽃을 내 귀에 꽂으며 또박또박 외쳤다. “희망!”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축축한 감각은 달갑지 않았다. 거친 아스팔트 표면에 닿았다가 튀어 오른 빗방울은 금세 내 옷자락을 적셨다. 이담이 옆에서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뭐지, 나 지금 걸으면서 졸은 건가. “꿈이라도 꿨어? 졸려서 그래?” “아뇨. 뭐라고 하셨죠?” “집중 안 하지. 우산이나 사서 갑시다. 이따 다시 말해줄 테니까.” 비를 피해 편의점으로 급히 들어갔다. 투명 우산 하나를 집은 이담은 내게 음료 하나를 가져오라 말했다. 딱히 마시고픈 게 없지만 뭐라도 얻어먹고 싶은 마음에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이담이 눈썹을 잠시 꿈틀거리더니 계산했다. “우산 하나만 샀어요?” “크기가 큰데 뭐. 요즘 우산도 비싸.” 비 맞기 싫으면 잔말 말고 들어오라는 그의 말을 수긍했다. 이담의 왼손에는 딸기 우유가 들려있었다. 무언가 이질적인 조합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딸기 우유를 한 모금 빨아들이는 이담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뭐하냐고 물었다. “그냥 웃겨서요.” “네가 더 웃기거든. 웬 커피? 어른 놀이 하네. 카페인 안 좋거든.” “사람 머리 막 때리지 마시죠. 딸기 우유에 들어가는 설탕도 안 좋거든요.” 계속되는 말싸움에 김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바지 밑단이 축축해졌다. 공기는 그새 습해져 눅눅했다. 건물 창문 곳곳의 새하얀 불빛이 물웅덩이에 비쳤다. 아까의 알록달록하고 불량한 거리와 대비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색조차 금지되는 걸까. 무거운 신발 밑창을 질질 끌며 아스팔트를 밟았다. “그나저나 휘연이랑 아는 사이에요?” “알지. 서로 아는 건 아니고 나만. 에이스야. 일 처리 빠릿빠릿하고 똑똑해서. 소속은 모르겠지만 다른 부서에서도 유명해.” “에이스?” 기억 속 선휘연은 그저 해맑기만 한 아이였다. 상기시키고 싶지 않은 그 하루만 빼고. 그런 감성적인 아이가 이성이 제일 중요한 기업의 에이스라, 기분이 이상했다. “당신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동생. 이모션 사이클 임상 실험자로 기억해. 일이 안 좋게 흘러가다가 봉변당해서.” 이담이 묘하게 신경이 긁힌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금세 빈 딸기 우유 곽을 한 손으로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화가 난 걸까, 기억하기 싫은 장면이 떠오른 걸까. 어느 쪽이 되었든 이 일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쇠사슬에 꽉 묶여 터질 듯이 뛰는 심장과 달리 내 몸은 높디높은 클록터 본사 건물 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 높이가 너무나 아찔해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세 걸음 앞에 출입문이 있었다. 발을 내딛기 전 이담이 내게 경고했다. “첫째, 냉정하게 굴 것. 삐걱대거나 어색하게 굴면 의심받기 쉬워. 둘째, 목소리는 일정하게. 네 감정을 티 내지 마. 마지막으로 네가 한이류라는 사실을 들키지 말 것. 이는 회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필수적이야.”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십 분 후, 한 시간 후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지휘 하나하나가 갈림길을 만든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동문에 들어섰다. “인식되었습니다.” 이담이 사원증을 인식하자 복잡하게 생긴 여러 기계가 차례차례 열려 나갔다. 그들이 나를 거부할 수도 있었기에 이담의 등 뒤에 꼭 붙어야만 했다. 최첨단 로봇으로 들이차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많은 직원이 로비를 관리했다. 이모션 사이클을 받은 인간이 로봇보다 활용도가 좋기 때문이겠지. 직원들은 정말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표정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굳어진 눈빛으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계획은 이랬다. 이담이 데이터를 파괴한다. 나는 코딩에 재능이 없어서 이 부분은 전적으로 이담에게 맡기기로 했다. 다음. 내가 회장에게 가서 대화하며 시간을 끈다. 잘 마무리 짓고 중간에서 만나 건물을 빠져나온다. 이모션 사이클을 몰락시킬 방법은 이담의 거처에 가서 회의. 그 이후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절차를 정리하며 엘리베이터에 들어섰다. 이담이 속삭였다. “네 얼굴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긴장한 탓인지 몸이 경직되어서 다리가 저렸다. 어디라도 좋으니까 등을 기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건물이 어찌나 높은 건지 올라가는 내내 귀가 먹먹했다. 매끄럽게 상승하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 감은 눈 너머로 얕은 전기가 통하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흠칫하며 눈꺼풀을 열자 내 시야에 들어온 건. “한이류?” 안광도, 눈동자의 미세한 떨림도 존재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무릎까지 길게 늘어진 흰색 가운은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가면을 쓴 듯 일정한 표정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담이 내 새끼손가락을 툭 하고 건드렸다. 반응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어느 인간이,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이 상황에서 평온하게 굴 수 있어? “야.” 도서관에서 본 휘연이는 닿지 못하는 존재 같았다. 내가 이곳에 있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그런 하늘 같은 아이. 그렇지만 지금은 코앞에 그 존재가 선명했다. 가장 먼저 치밀어 오른 응어리를 뱉어냈다. “왜 그랬어?” 엘리베이터 상단의 숫자는 계속해서 치솟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뭐가.” 선휘연의 얼굴은 여전히 근육의 자그마한 미동도 없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타닥거리고 있었다. “도망쳤잖아.” “한이류 맞아? 반가워하지를 않네.” “너 같으면! 반갑겠어? 지금, 이 상황이? 일말의 양심조차 없구나.” 오른손에 이담의 차가운 손목시계가 닿았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 나와 선휘연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지, 애먼 사람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지. “시술 안 받았구나. 30층에서 받을 수 있는데. 하고 갈래?” “장난해? 왜 그러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갔다. 무작정 멱살을 잡았다. 검지 마디에 스친 선휘연의 살결이 서늘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선휘연의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흥분하지 마. 네 손해야.” “구차한 변명이라도 해! 그날, 떠날 때, 나랑 서화 생각은 안 했어?” 내 입에서 흐른 서화의 이름에 휘연이가 제법 놀란 듯했다. 잊고 살아왔던 기억일 거다. “배서화? 오랜만이네. 잘 지내나….” “너는 안부 물을 자격 없어. 적어도 말이라도 하고 갔으면 화 안 내. 너 똑똑했잖아. 그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잖아.” “아직인가. 몇 년 전인데, 그게.” 자꾸만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뭐가 아직이라는 거야. “아, 부작용.” 휘연이 작게 외치고는 작은 메모장을 펼쳐 무언가 적어 내려갔다. “에이스 납셨네. 몇 년 만에 반가운 친구 얼굴 봤는데 일할 마음이 나?” “내가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 이류야, 그런 거 유치해.” “네가 왜 토악질 나는 그 인간들 사이에 섞여 있는 거야. 그러면, 이렇게 되면.” 너도 증오해야만 하잖아….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인정해 버리기는 싫기 때문이다. 고개를 푹 숙였다. 엘리베이터가 회장실에 다다를 참이었다. 문이 열리고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휘연이 먼저 내리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게 말했다. “조금 반가운 것 같네. 서화랑 너, 센터 재학생이지? 정신 차리고 도시로 건너와. 친구로서의 조언이야.” “넌 이제 친구 아니야.” “마음대로 해. 나 바빠.” 휘연이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이담과 눈을 맞추었다.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삼 초쯤 빤히 바라보다가 알아차린 듯 말을 이었다. “당신이구나? 상부에서 관리 명령 떨어진 직원. 둘이 잘 어울려.” 휘연이 내뱉는 문장은 정교하게 구성된 회로였고 그 속 글자 하나하나는 전선 같았다. 할 말은 모조리 던지면서 감정은 시든 게 섬뜩했다. 한동안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가느다랗게 이어진 실밥을 물어뜯는 감각, 거스러미가 자꾸만 나를 찔러댔다. 휘연아, 같은 나이에 같은 처지에서 자랐지만 우리는 너무 다르네. “직진해서 오른쪽 계단. 회장실 통로니까 서두르지.” 이담이 그렇게 말하며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창밖이 어느새 어두컴컴해졌다. 아스라이 보랏빛을 띠는 하늘이 보였다. 불안을 뒤로하고 섣불리 나섰다.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진 줄글을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서화의 메시지였다. ‘반항아답게 굴어. 꼴사납게.’ 서화에게 조금 전 휘연이와의 대화를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의외로 내색하지 않고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 서화라면 앞 말고 뒤에서 앓을 거다. 이제 걔는 우리를 친구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선휘연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비난받는 쪽은 오히려 나일지도 모른다. 지금 누가 나와 같이 분리수거장에 있는지 모르겠거든. 작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복도에 비해 회장실은 사치를 부린 티가 나지 않았다. 한 면을 장식한 유리 통창만 뺀다면 말이다.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내가 저런 풍경 기억해서 뭐 하겠나 싶지만. 내가 입구에서 주춤거리는 사이 이담이 먼저 안쪽으로 들어섰다. “회장님. 한이류 학생이 방문했습니다.” 회장님, 상상만 하던 호칭이 귓가에 꽂히니 꽤 웃겼다. 뭐에 그리 열중하는지 통창을 향한 가죽 의자에서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들려왔다. 이담이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그제야 작은 대답과 함께 의자가 돌려졌다. “안녕?” 늘어진 앞머리에 반쯤 가려진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 죽어있는 눈동자가 내 속눈썹을 쏘아붙였다. 생각보다 젊은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 오히려 말끔하게 정장을 갖추어 입은 이담의 모습이 더욱 회장에 어울렸다. 느슨해진 넥타이와 조금 널널한 셔츠가 그의 풀어 헤쳐진 장발과 어우러졌다. 테 없는 네모난 안경에 나와 이담이 비쳤다. 내가 얼 탄 사이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겁을 먹었나.” 마치 사냥감을 구경하듯 흥미로워하는 목소리에 압도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순종적으로 구는 편이 나았다. 나를 가까이 끌어들이는 손짓에 침을 한 번 삼키고 태연하게 걸어갔다. 그에게서 진한 박하 향이 퍼져 내 후각을 자극했다. 별로 간직하고 싶지는 않네. 순간적으로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냄새라도 나요?” “박하 계열 향수를 쓰시나 봐요. 갑자기 향이 확 끼쳐서….” “오, 진짜네.” 그가 무심하게 감탄했다. 내가 말의 뜻을 캐묻기도 전에 이담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20층에서 부서 회의 일정이 있습니다.” “가봐도 돼. 학생 에스코트 고마워.” 생글생글 웃으며 답하는 그의 모습은 휘연이와 대비되었다. 이담이 내게 눈짓을 한 번 보내고는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회장은 이담이 계단으로 내려갈 때까지 문밖을 빤히 바라보았다. “서화한테 들었거든. 조향도 한다고 들었는데. 취미예요?” 서화한테? 왜인지 모르게 친근감 있는 호칭에 경계심이 들었다. 서화는 왜 내 조향에 대해 털어놓은 걸까. 지극히 사적인, 본인의 친구 이야기를 할 정도의 교류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계속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재밌어요? 알려줘.” “본인 의지만으로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게 감정 아닌가요…. 제 권리를 앗아가는 것 같아서 싫었어요. 감정이 통제되는 세상에서 감정을 간직할 방법은 조향밖에 없었거든요.” “당돌하시네.”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려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앉아 있을 때는 몰랐던 큰 키가 나를 한 번 겁먹게 했다. 온 신경이 침착하자는 다짐에 쏠려 있던 참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박하 향이 아닌 다른 달콤한 향이 풍겨왔다. 바닥을 내려다보자, 무슨 향이 담겨 있는지 모를 향수병이 깨져 있었다. 큰일이라는 걱정이 먼저 뇌에 가득 찼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을 맡아보니 노래방을 간 날이었다. 저번에 수영장에서 깨트려서 또다시 만든 건데 매번 깨져버리네. 쪼그려 앉아 나도 모르게 유리 조각을 주우려 하자 그가 나를 멈춰 세웠다. “이리 와요. 다친다.” 그가 방금까지 앉아 있던 의자를 가리켰다. 다리도 아팠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다. 냉큼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버렸다. 그가 흩어진 유리 조각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를 응시했다. 사과하려 입술을 떼려던 참이었다. “어, 알았다. 이거 노래방?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사거리였나.” “네?” “그렇게 만드는 거 아니에요? 재밌었던 기억 모아서. 노래방 맞잖아.” 그가 실실 웃으며 말한 문장을 몇 초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서화조차 헷갈리는 향수의 기억을 이 사람이 어떻게? “사실 이류 양을 만나자고 말한 건 호기심이었어요. 제일 규모가 큰 센터에서 반항아로 거론되는 아이가 어떨지 궁금했으니까. 그런데 별거 없네요. 그냥 남들과 같은 아이일 뿐인데.” 차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애꿎은 책상만을 바라보았다. 사무용 책상 위에 놓인 종이 묶음 사이로 보이는 건 ‘감정 순환의 원리 피실험자 명단’이라고 쓰인 서류였다. 어느 순간 그가 뭐라고 조잘대는지 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이름 사이에서 익숙한 세 글자를 발견해 버린 탓이었다. 휘연이가 피실험자 명단에 있었다. 이는 그때, 그날, 그곳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빨간 줄이 곳곳에 그어졌는데도 표시 하나 없는 네 이름이 가장 먼저 보인 건 왜일까. “대기업 문서 훔쳐보고 그러면 안 되는데.” “선휘연이 일을 그렇게 잘해요?” 내 말에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상함을 인지했다. 도시에 들어와 들은 웃음은 나와 이담의 소리뿐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클록터 안 최상층이다. 들려서는 안 될 소리를 들어버린 셈이다. “특별히 보게 해줄게요. 그 문서는 선물이라서요. 휘연 씨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 그와 내 사이에는 그리 크지 않은 책상 하나만이 놓여있었다. 그가 희고 긴 손가락으로 문제의 문서를 끄집어냈다. 그러자 보이는 빨간 줄과, 내 이름. 내 이름? “이모션 사이클이 무엇인지는 교육받았겠죠? 감정의 순환을 활용해 역으로 이를 억제한다. 감정 순환의 원리. 정식 명칭이 정해지기 전 임시로 그렇게 불렀습니다. 설명은 이쯤하고, 알아서 해석할 수 있으리라 믿어.” 머릿속이 뒤집혔다. 예상치 못한 입력값은 오류로 범벅된 결과를 도출해 낸다. 자연스레 내 눈이 따라간 곳은 페이지 왼쪽 아래 각주였다.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 이미 부정당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강제로 내 신념을 부정당했다. 그가 깨진 향수병을 보란 듯이 즈려밟고 내게 다가왔다. 오지 말라고 말을 뱉을 여유도 없었다. 그가 종이 한 장을 힘겹게 붙잡은 내 왼손에 본인의 손을 포갰다. 그러고는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임상 실험 실패. 추후 성장기 관찰이 필요함. 이때가 몇 년 전이더라. 슬슬 시작될 때거든.” 예상외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몸이 차갑게 식지도 않았다. 손이 떨린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얇은 종이 한 장만이 미친 듯이 팔랑이고 있었다. 그가 내가 앉은 의자를 안다시피 하며 방향을 돌렸다. 눈앞이 고층 건물의 불빛으로 가득 찼다. “위치추적? 계약? 내가 그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깊은 뜻은 없어요. 재밌잖아. 과거의 실험체가 어떻게 살아가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 것뿐이야. 우연히도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모습이더라고.” 호흡이 가빠졌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 내 몸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다. 시간이 반 박자 빠르게 흐르는 느낌은 정말 끔찍하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이 악물고 쫓던 앞의 꼬리가 사실 내 것이었다면. “어느 날 생각났어. 사춘기가 존재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감정만 격해지고 싸움만 늘잖아. 천재지? 사업 아이템으로 적당하고. 학부모들이 열광하더라. 나는 별로 한 것도 없어. 자기들끼리 퍼지고 퍼져서, 끝도 없이. 효율이 증진되면 모두가 좋잖아. 산업 발전에도 기여 많이 되었을걸. 그런데 말이야, 인간은 장점만 바라보고 단점을 외면해. 다들 바보 아니야?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시술 안 했어.” 눈앞이 흐려졌다. 누구를 탓해야 해? 당시의 나 자신? 없어진 선생님? 선휘연? 서화? 클록터? 당신? 선과 악의 기준을 뭉뚱그리면 어떡하라는 거야? 애초에, 뭐야, 그게. 그가 내 귀에 속삭였다. “너도 같은 처지야. 이류야.” 각기 다른 비명이 머릿속에서 요동쳤다. 악몽을 꿔도 소리만은 선명히 남지 않았는데 오늘은 왜 그러는 거야. 얕은 바람이 닿은 귀의 선명한 감각과 여전히 흐르는 부패 된 노래방의 향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서화는 수영장을 싫어한댔나. 트라우마가 많구나, 센터 재학생들은. 시술받을래? 이모션 사이클에 추가할 신기술 개발 중이야.” “당신은 돈에 눈먼 인간일 뿐이야. 천재 그딴 게 아니라. 감정을 모조리 없애고 효율만 바라보면 그게, 그게 사람 사는 거냐고. 사람이야. 자아가 있잖아. 인간 개조해서 로봇이라도 만드는 거냐고!” “진정하세요.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사회는 감성팔이 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오히려 내 자아 버리고 무슨 일이든 수행해야 박수받는 구조라고.” 그토록 증오하던 이모션 사이클, 물거품이 되었다. 내 몸에는 이미 곳곳에 속박이 걸려있었다. 위치 추적기 하나 가루로 만들었다고 통쾌해할 때가 아니었어. 양쪽에서 두피를 당기는 듯한 두통이 느껴진다. 머릿속이 다시 한번 뒤엉킨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호흡이 힘들어진다. 가시지 않는 역겨움에 입을 막았다. “공기가 안 좋나. 물이라도 줄까요?” 주변의 풍경이 번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네모난 빛이 구슬로 바뀌었다. 나, 나 모르겠어. 판단이 안 돼. 정말 이쪽이 선이었다고? 우리가 틀렸대. 부정당했어. 방법이 없어. 정답이 뭐래? 뭔데? 서화야…. <반항의 향>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➆ 창조주, ➇ 옛정, 애정, 우정에서 계속) 2026.09.18 18:16
생활문화

와이앤아처, ‘Try Everything 2026’서 체육인 창업기업 사업화·투자 연계 지원

-사단법인 튼튼·에이머즈·나인나인 스포츠랩 3개사 전시부스 운영…스포츠 분야 사업모델 소개-투자자·창업생태계 관계자와 네트워킹…IR 보완·후속 미팅 등 연계 지원 추진 와이앤아처가 운영하는 ‘2026 체육인 직업안정(창업지원) 사업’ 참여기업들이 지난 9월 10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Try Everything 2026’에 참가해 사업모델을 소개하고 투자 및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다.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관하는 체육인 직업안정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참여에는 사단법인 튼튼, 에이머즈, 나인나인 스포츠랩 등 체육인 창업기업 3개사가 전시부스를 운영했다.‘트라이 에브리싱(Try Everything)’은 국내외 스타트업과 투자자, 대기업, 창업지원기관 등이 참여하는 스타트업 행사다. 올해는 서울시와 매경미디어그룹 공동 주최로 9월 9일부터 10일까지 ‘AI Changes Everything, Now Try Everything’을 주제로 열렸으며, 국내외 스타트업 80개사와 대기업관, 글로벌관 등이 참여했다.현장에서 사단법인 튼튼은 유소년 축구 발굴·교육 및 대회 운영 서비스를 소개했다. 에이머즈는 AI 기반 양궁 특화 개인 맞춤형 피드백 플랫폼을, 나인나인 스포츠랩은 K-노르딕 스키 부츠 제작·유통 사업을 각각 선보였다.참여기업들은 투자자와 참관객을 대상으로 사업모델과 성장 전략을 설명하고 시장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투자 및 사업 협력 가능성을 살펴봤다.체육인 직업안정 사업에 참여 중인 다른 창업기업 관계자 약 14명도 행사장을 찾았다. 이들은 전시부스와 주요 프로그램을 둘러보며 스타트업 시장과 기술 동향을 확인하고 투자자 및 창업 관계자들과 교류했다.행사 당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도 체육인 창업기업 부스를 방문했다. 관계자들은 참여기업의 사업 내용과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 등을 청취했으며, 수렴된 의견은 향후 사업 운영 과정에서 검토할 예정이다.와이앤아처는 행사에서 참여기업에 관심을 보인 투자자와의 후속 접점을 연계하고, 기업별 상황에 따라 IR 자료 보완과 후속 미팅 등 사업화 과정에 필요한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와이앤아처 관계자는 “체육인 창업기업이 ‘Try Everything 2026’ 현장에서 투자자와 창업생태계 관계자들에게 직접 사업을 소개하고 향후 성장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참여기업의 투자 유치와 시장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9.17 11:39
생활문화

아이피아 ‘팝테일’, 이한성 작가 신작 ‘다시 한번 음악 천재’ 독점 공개

-LLM·이미지 생성 AI 활용한 ‘웹툰소설’ 형태로 선보여…텍스트 서사와 주요 장면 시각화-9월 18~20일 부천국제만화축제 참가…다국어 서비스·캐릭터 챗봇 등 IP 확장 추진 AI 스토리테크 기업 아이피아가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 ‘팝테일’을 통해 이한성 작가의 신작 ‘다시 한번 음악 천재’를 독점 공개한다고 밝혔다.팝테일은 멀티모달 AI 기술을 활용해 웹소설의 텍스트 서사에 이미지를 결합한 ‘웹툰소설’ 형태의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플랫폼이다.팝테일 스튜디오는 대규모언어모델(LLM)과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해 작품 속 캐릭터와 주요 장면을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생성된 이미지를 작품의 내용과 연출 의도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편집 기능도 제공한다.아이피아는 이를 통해 웹소설 작가가 기존에 창작한 서사와 캐릭터를 기반으로 별도의 이미지 제작 과정 없이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설명이다.이번에 공개되는 ‘다시 한번 음악 천재’는 ‘내 딸은 음악천재’로 카카오페이지 누적 조회수 4,000만 회를 기록한 이한성 작가의 신작이다. 작품은 글로벌 아티스트가 과거로 돌아가 두 번째 삶에서 다시 음악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팝테일은 원작의 서사를 기반으로 AI 이미지를 결합해 웹툰소설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아이피아는 오는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2026 부천국제만화축제’에도 참가한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열리는 행사에 부스를 마련해 팝테일의 AI 웹툰소설 콘텐츠를 소개하고 현장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회사는 웹소설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협업하고 독점 작품을 확보하는 한편 신인 작가 공모전 등을 통해 창작자와의 협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향후에는 영어와 일본어 등 다국어 서비스를 추진하고 해외 파트너십도 확대할 계획이다. AI 캐릭터 챗봇을 비롯해 드라마, 숏폼, 애니메이션 등으로 콘텐츠 IP 활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아이피아 관계자는 “팝테일은 작가가 창작한 이야기를 AI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 형태로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이라며 “창작자의 서사와 캐릭터를 중심으로 작품의 표현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9.15 14:26
생활문화

성인 326만명 추적 연구서 흡연 형태별 디스크 질환 위험 차이 관찰

-일반담배 지속 흡연 대비 궐련형 전자담배 전환군 전체 디스크 질환 위험 약 11% 낮아-비흡연자와 비교하면 모든 흡연군서 위험 증가…연구진 “관찰연구로 제품 안전성 의미 아냐”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신재원 교수와 강남세브란스병원 권지원 교수 연구팀이 성인 326만5,293명을 추적 분석한 결과, 흡연 형태에 따라 척추 디스크 질환 발생 위험에 차이가 관찰됐다고 밝혔다.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검진 자료를 활용해 2019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성인을 대상으로 약 3년간 추적 관찰하고, 흡연 유형 변화와 척추 디스크 질환 발생 위험 간 연관성을 분석했다.분석 결과 일반담배를 지속적으로 흡연한 집단과 비교했을 때 일반담배를 중단하고 궐련형 전자담배로 전환한 집단의 전체 디스크 질환 발생 위험은 약 11% 낮게 나타났다.부위별로는 요추 디스크 질환 발생 위험이 11.1%, 경추 디스크 질환은 7.9% 낮게 관찰됐다.연구팀은 일반담배가 담배를 연소하는 방식인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가열 방식을 사용하는 만큼,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부 유해물질 노출 수준의 차이가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번 연구만으로 구체적인 원인이나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비흡연자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결과는 달랐다. 전체 디스크 질환 발생 위험은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에서 약 13%, 일반담배 흡연자에서는 약 17%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과거 일반담배 흡연 이력이 있는 경우에는 궐련형 전자담배로 전환한 뒤에도 누적 흡연량이 많을수록 디스크 질환 위험이 높게 유지되는 경향이 확인됐다.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흡연 형태와 디스크 질환 발생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본 관찰연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정 담배 제품이 척추 질환 위험을 낮춘다고 단정하거나 궐련형 전자담배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결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연구진은 척추 건강을 포함한 전반적인 건강 관리를 위해서는 담배 제품 간 전환보다 금연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2026.09.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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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반항의 향 ➄시들었더라도

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세상을 접어서 한꺼번에 집어삼키고 싶은 날이 있다. 숨이 막혀 울렁거릴지언정 꾸역꾸역 목구멍 너머로 넘기고 싶은 기분. 어쩌면 그날의 나는 무수히 많은 세계 중 하나를 삼켰을지도 모른다. 물이 넘칠 듯이 아슬아슬하게 가득 찬 수영장과, 횡설수설 단어를 뱉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마른 입술. 수영장에 담가져야 했던 건 온몸이 뜨거웠던 나였다. 고요히 내 애정을 집어삼켰던 푸름을 본 어린 나는 블랙홀이 있다면 아마 저런 생김새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사회에 딱 맞는 물병,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인재상이었다. 어머니는 내 몸에 노력과 끈기, 약간의 광기만 부으면 우리 가족이 더욱 호화로운 미래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순적이라 생각했다. 우리 집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보육원에 틀어져 있던 영상 매체에서 나온 대저택과 견주어도 될 만큼 성공한 사람의 집이었다. 이보다 더 호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한 욕심이었다. 이제야 모순을 깨트릴 이유를 찾았다. 내 가족은 나를 이용해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다. 재산과 명예를 넘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가족관계. 그러한 이유로 입양아를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혈연이나 모성애는 변명으로 통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나를 그저 실험체와 제물 사이 어딘가의 어중간한 생물로 보았을 거다. 소름 끼치는 ‘퐁당-’ 소리는 나와 기타를 함께 잠식시켰다. 물에 흠뻑 젖은 그것들을 딱히 건져 올릴 생각은 없었다. 그냥 몇십 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나도 못 하는 짓을 네가 왜? 나도 완전히 삼킬 수 없고 견디지 못하는데 수영장이 뭐라고 내 목표를 이루어 버리는지. 분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힘들게 견뎌 보라고, 쌤통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인정이 두려워서 나타난 회피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어렸으니까. 어렸을 뿐이니까…. “배서화!” 거센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이류가 익숙한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팔짱을 낀 모습을 보아 시시한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졸은 모양이었다. 그 사이 무언가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머리 아팠으니까 잠깐 눈 붙인 건 오히려 잘 된 셈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드니 이류가 입을 우악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혼날 것 같아.’ 이류는 온몸으로 상황을 설명한 후에 문밖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벌세우려고 찾아왔나 보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한이류 이 자식 때문에 센터를 멋대로 벗어난 적이 많았다. 얘 혼자 내보내기에는 의리가 없다고 해야 할까. 결국에는 잡혀 돌아오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센터 관계자에게 들킨 날에는 복도에서 벌을 섰다. 워낙 구시대적인 사람들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이류는 감시가 사라진 틈을 놓치지 않고 자꾸 나에게 장난을 걸었다. 그런 태도 불량의 대가는 복도 청소였다. 어느새 나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에어컨 바람에 차가워진 이불을 덮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거슬려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다. 이제 머리가 아프다 못해 아찔할 정도였다. 나는 평생을 도망자 신세로 살고 싶지 않았다. 지겹게 해온 놀이는 질리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뭐가 됐든 당장 짓뭉개버리고 싶었다. 반항이라고 말해야 할까나….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질렸다’는 항복과 동의어이며 나의 반항은 이류를 떠난다는 말과 마찬가지니까. 입술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니 선홍빛 혈흔이 묻어나왔다. 내 치아가 고새 여린 살을 잘근거리고 있었다. 습관도 참, 고쳐야 하는데. 침대 옆 서랍장에 어질러져 있던 껌 하나를 집어 입에 구겨 넣었다. 날씨가 이래서인지 표면이 녹아내려 끈적했다. 허술하게 닫아놓은 커튼 틈새로 보이는 창문에 매미가 붙어 있었다. 이어폰을 빼니 혼자 열심히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처럼 우는 대신에 껌을 씹어댔다. 고무에 내 피가 배어버려서 씹으면 씹을수록 비린내가 올라왔다. 시시했다. 센터의 운영 방식이며 사회가 의의라 부르는 행동까지. 어째서? 어떻게…. 저리 멍청할 수가 있지. 이곳에서의 정의는 잘못된 열망에 불과했다. 흔들렸다. 애초에 인간이 멍청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이모션 사이클은 세상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약자들이 외치던 예전의 사회를 나는 인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적자생존이야말로 공평한 사회의 토대 아닐까.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사회를 더럽히던 소수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현대 사회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오늘은 그렇다. 익숙함의 꾀에 넘어가 진실을 놓친 거나 다름없다. 도망이라. 무엇을 위해서? 끊임없이 늘어지던 푸념을 중단시킨 매미의 울음이 유독 돋보였다. 연둣빛의 작은 지우개를 새총 삼아 그곳으로 던졌다. 매미가 화들짝 놀란 듯 힘찬 날갯짓과 함께 도망갔다. 매미에게 적중한 지우개가 내 허벅지로 떨어졌다. 올해는 유독 여름이 기네.여름? 이제 거의 다 끝났잖아. 순간 서늘한 공기가 내 무의식을 건드렸다. 숨을 몰아쉬었다. 엉성하게 쳐진 커튼 사이로 아침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눈을 찌푸렸다.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보네. 한창 여름이었을 때, 의도치 않은 충동 때문에 이모션 사이클을 무턱대고 신청했었다. 그 대가로 이류와 냉전을 벌였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그때 내가 해바라기밭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말을 섞지 않았을 거다. 오늘따라 보고 싶네. 망할 반항아가. 책장에서 낡은 악보집을 꺼냈다. 오래되어 측면의 스프링이 끊어져 있었다. 스프링 밖으로 색이 바랜 악보가 빠져나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삐뚤빼뚤한 손 글씨는 과거의 잔상을 비웃듯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독 눈에 띄는 악보의 음표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어보니 청아한 멜로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 곡이 아니었다. 이류와 휘연 두 명이 장난스레 낙서 해놓아 탄생한 곡이었다. 내가 직접 써 내려간 곡은 대부분 정신없고, 연주하기에도 까다로웠다. 그 때문에 눈물도 여러 번 짜냈다. 그럴 때면 어린 이류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지. 반면 두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 곡은 엉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맑았다. 순수하고도 깨끗했다. 마치 나른한 오후의 비눗방울처럼. 더 이상 줄을 튕길 수 없는 나는 온전히 새겨진 굳은살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굳은살은 점점 자취를 감춰 말랑해지고 있었다. 이마저 사라지면 생생한 감각을 완전히 잊게 될까 무서워서 손끝을 열심히 지분거리고는 했는데, 그 분주함이 정말 바보 같았다. 항상 작은 귀에 아프더라도 쑤셔 넣었던 빨간색의 줄 이어폰은 몇 달 전부터 노이즈가 끼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다. 흐릿해지지 않으리라 믿은 것들이 다가오는 갖가지 색에 덮였다. 정신없는 색이 이를 감싸더라도 빛을 뿜으며 뚫고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건 내 오산이었나. 이제는 제 쓸모를 잃은 종이들을 구겼다. 순간 스쳐 지나간 여린 그림자가 흑연을 번지게 했다. 시든 음표, 그딴 게 뭐가 중요해. 오선지 저편의 조각이 선잠 하나로 모조리 시들어버렸는데. 먼지 덮인 커튼으로 창을 꼼꼼히 차단한 탓에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방에 조용히 갇혀 지내다 보면 클록터 직원들이 들이닥칠까? 내 스마트폰은 아직도 추적당하는 중일까? 셋에서 둘, 곧 하나. 카운트다운 하듯 세 내려가는 숫자는 믿음의 뜻을 잊게끔 했다. 많고 많은 재학생 중 왜 하필 나와 이류인지, 비밀을 빌미로 나를 속박하려 하는지. 억울했다. 얼마 전, 메일 알림이 또다시 울렸다. 내용은 ‘감정 순환의 원리 피실험자.’ 라는 문서 한 장이었다. 감정 순환의 원리라는 거창한 말은 이모션 사이클의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클록터가 전송한 이 명단의 의미나 사용 방법을 알지 못했다. 대충 흐린 눈으로 훑어보고 넘길 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임상 실험자에 당황하던 도중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이류는 지금까지 그날이 생생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다. 무의식이 고통을 잠재시키려 끙끙댄 건지 선휘연이 실험을 받은 그날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변의 온습도, 어딘가 비릿한 약물의 냄새, 선휘연의 눈동자가 어땠는지까지도 안개 낀 듯 뿌옜다. 먹먹한 심장을 붙잡고 메일을 삭제하려던 참이었다. 수증기를 한껏 머금은 심장에서 온수가 솟구쳤다. 세 글자, 획 하나하나로 이루어진, 그것도 빨간 줄로 강조까지 된 특별한 피실험자. 한이류. 네 이름이 왜 이곳에 고스란히 존재하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생각하려 애썼다. 나를 겁주기 위해 클록터가 꾸며낸 장난일지 모르잖아. 그 인간들은 그럴만한 사고를 지녔으니까. 하지만 기억의 잔예는 거짓을 논하지 않았다. 그동안 네가 했던 말, 어딘가 묘하게 경직되어 가던 네 행동. 스마트폰 화면에 그대로 갇힌 나의 동공이 향한 곳은 자그맣게 달린 각주였다. 빨간 줄의 의미를 찾아냈다. ‘임상 실험 실패. 추후 성장기 관찰이 필요함.’ 자신도 이제 감정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던 너는 이를 장난스럽게 클록터의 세뇌로 치부했다. 아니야. 단순한 세뇌가 아니라, 직접 네 혈관 틈틈이 네가 증오하는 정의가 흐르고 있었어. 점점 그 파랑이 꽃피고 있다고. 네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보다 끔찍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 파고든 과거 속으로 잠수할 여력이 충분했다. 그니까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잘못 지어진 매듭의 시작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할 말은 준비하지 않았다. 온전치 못한 기억과 땅바닥을 밟는 감각에만 의존해서 클록터로 향했다. 그날 반듯한 건물 일부는 내 감정에서 뿜어진 열기에 녹아내렸을 거다. 그가 나를 환자로 보든 반항아로 보든 상관없었다. 내 눈동자의 형태가 일그러졌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이류의 위치추적을 부탁받았다. 정확히는 계약을 맺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계약은 밤마다 내 심장을 쿡쿡 찔러댔다. 몰래 자그마한 칩 하나 붙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았다. 발달 된 기술 덕에 네모난 화면 속에서 네 움직임을 구경하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지도를 따라 이동하는 작은 점이 안타까웠다. 해도 뜨지 않은 시각에 이를 확인할 때면 속이 뒤틀렸다. 네가 싫어하는 그들과 지금의 나는 다를 바 없었다. 이담의 연락을 받았다. 이류가 곧 클록터에 제 발로 찾아갈 거라는 소식이었다. 며칠 후에 회장과 통화했다. 이류가 오래전 클록터에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일정이 앞당겨졌다고 직접 밝혔다. 또한 의심 가는 직원이 한 명 있어 윗선에서 주시 중이라는 말, 이담의 이야기였다. 회장은 둘의 교류 관계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듯했다. 변조된 목소리를 뚫고 나오는 그의 차가움이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가 내게 둘을 감시하라며 어떤 불량한 거리로 빠지지 않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거리에 관해 묻기도 전에 일방적인 통화가 끊겼다. 아마 불량한 거리가 네가 말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곳이겠지. 기어코 그런 곳에 발을 들인 게 너다워서 좋았어, 그날 이후로도 이담과는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담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이류에게 접근한 사실이 놀라웠다. 왜인지 모르게 섬뜩한 첫인상에 나도 경계했었는데, 이류라면 얼마나 망설였을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담의 말에 따르면 이류는 아직 그의 정확한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상태였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잘만 따라다니는 게 정말 웃겼다. 믿음이 없으면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속이고 속이는 상황 속 모순처럼 모조리 들어버린 너의 클록터 방문 약속. 그거 알아? 넌 거짓말 할 때면 미세하게 귀가 움직여. 네 기숙사 방에서 갑작스럽게 화장실에 숨겨졌던 날,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입은 잘만 움직이면서 귀는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하더라. 결국 다 불어버렸다. 스마트폰에는 통화 기록이 남는다. 클록터는 내 스마트폰을 감시하니까 머지않아 들켜버릴 거다. 그래도 더는 무리였다. 죄책감과 올라오는 역겨움을 몰래 게워 낼 바에야 깔끔하게 망치고 끝내는 편이 나았다. 도시와 센터는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지 당황한 네 목소리가 뚝뚝 끊겼다. 이류야. 휘연이가 그랬어. 눈물은 마음과 마음의 접착제라고. 그래서 울음을 나눈 사이에는 더 깊은 애정이 피어오른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눈물은 더욱 소중하더라. 슬픔이란 감정에 불순물이 조금만 섞여 있어도 눈물은 쉽게 흐르지 않아. 숨겨 지녀왔던 애절한 로맨스 소설이나, 낡은 유에스비에 담긴 고전 영화를 보아도 마음이 답답할 뿐 울지 못했어.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왜 입술에 붙는지 알아? 아이스크림 표면이 체온에 녹고, 주변의 낮은 온도가 둘을 엉겨 붙게 한다네. 눈물도 같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눈물이 떨어지면 순간적으로 접착되는 거지. 안타깝게도 선휘연의 말이 맞았나 보다. 반항아? 그게 뭐야. 그냥 시시한 이름이잖아. 너는 한이류고, 나는 배서화야. 그게 진실이지. 그러니까 상관하지 말고 걸어. 둘이면 충분하잖아. 하나가 아니니까 걱정은 필요 없어. 셋에서 둘 된 게 뭐. 사람 한 명 줄었을 뿐이야…. 지금 혼자 울면 너의마음 뒤편에 네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내 마음만 엉겨 붙을까 겁나. 일방적일까 무서워. 그러니까 참아볼게.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때 쏟을게. 이제는 나도 이 응어리가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 이류야. <반항의 향>은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➅잘못된 열망에서 계속) 2026.09.11 17:06
생활문화

[제1회 하이니티 X 곽재선 문화재단 최우수 당선작] 세계에서 ➃ 용서는 다정한 모습으로 (1)

일간스포츠는 곽재선 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제1회 하이니티 작가상 최우수상 수상작인 금알음 작가의 「세계에서」와 김재인 작가의 「반항의 향」을 매주 1회씩 순차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는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독창적인 상상력과 깊이 있는 시선이 담긴 두 작품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편집자주> 4. 용서는 다정한 모습으로 딱딱한 기계음이 귓전을 울렸다. 지시대로 은색 패드에 올린 왼손에 금속 특유의 한기가 전해져 왔다. 푸른빛과 함께 떠오른 온갖 화학식들이 잠시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전자껍질을 돌고 있을 그 전자는 어느 오비탈로 가고 싶었을까. 나는 잘 훈련된 손짓으로 문제들을 풀어 나가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마땅히 느껴졌어야 할, 목을 조여오는 듯한 긴장이, 벗어나고 싶은 그 충동들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그래, 떠날 세계에 겁을 먹는 것만큼 미련한 행동은 없지 않은가. 이제는 말할 수 있었다. 속에 품고 있던 것들은, 사실 누군가의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밖으로 뛰쳐나올 만큼 포화 상태에 있었노라고. 나의 울림은, 실은 세계 속의 것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것이다. 수용과 결정의 언저리에 서서, 남은 시험 기간을 일종의 과도기에 잠긴 상태로 보내는 동안, 또 하나의 계절이 작품을 고했다. 가장 뜨거워야 했던 여름이 차갑게 식어버린 채로, 가을은 별다른 변화도 없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학교 주위에 심긴 나무들은 대부분 상록수였으므로, 가을이 찾아와도 낙엽 지는 나무들이나 열매들이 영그는 것은 볼 수 없었다. 문헌 자료들로 그런 게 있었구나, 막연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가변적이었던 자연을 통제할 수 없던 인간은, 자연에게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 변화하는 계절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버티는 법을 가르쳤다. 그 결과가 불안정한 다양성을 소거시켰고, 강한 것들은 살아남았으며 그 가르침에 적응하지 못한 약한 개체들은 도태되었다. 강한 것들이 또 다양성을 자아내, 지금의 생태계는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인간의 세계나 자연의 세계가, 적자 생존의 개념이 적용된다는 건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계절의 흐름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짐작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잔인한 풍경들 속에 있었다. 옅은 추위 속에는 짙은 불안에 허우적대는 아이들 하며, 건강은 아예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 하며, 아예 답이 보이지 않아 한결처럼 졸업 시험에 매진하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속에 있었고, 아이들을 지배한 어떤 것처럼 끌려가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더이상 세계의 것들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제는 끌려가지 않았다. 여전히 표면적인 모범생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속에는 아주 다른 것들을 품은 채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한 개체들로 굳어져 버린 숲에서는 낙엽이 지지 않으니, 차라리 내 나뭇가지에서 낙엽들을 떨어트리고자 했다. 길을 틀어버릴 때는, 아주 강렬하게. 길게 뻗지도 못한 가지에, 그 어떤 미련의 이파리도 남겨두지 않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그것이 미칠 듯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붉은 토양 같은 향내를 풍겨 마음을 끌기도 했다. 나는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내 길을 확신했지만, 그 독기들이 주춤한 것이 딱 한 순간 있었다. 나를 잠시 멈칫하게 한 건 시험을 삼 일 남겨둔 시점에 온, 고향에 있는 형의 편지였다. … 시험이 얼마 안 남았다더구나. 마지막 시험이니 더욱 열심히 준비했겠지? 여태껏 해온 것처럼 잘 하리라 믿는다. 정갈한 필기체로 메시지창에 떠오른 편지는 저번 달과 거의 같은 분량이었다. 형에게선 항상 메시지와 함께 손편지가 왔지만, 이번에는 손편지 없이 간단한 메시지만 도착해 있었다. 항상 두 곳 모두에 같은 내용을 적으면서, 왜 나눠 보내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담백한 어조로 간단히 안부를 묻고는, 시험에 대한 것을 묻는 건조한 말들. 유일한 혈육에게 오는 편지는 매달 놀라울 정도로 같은 내용이었다. 이제는 으레 떠오르는 죄책감이나 일종의 원망 외에, 형에 대한 감정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형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았을 때는 그래도 편지를 보고 더욱 이를 갈고 공부에 집중 했었는데, 이번에 받은 편지로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는 것을. 형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다른 방법으로 죄를 갚아나가기를 택했다. 나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 담백한 편지를 메시지 보관함에 숨겼다. 가고자 하는 길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끌려가지 않고 나를 고수하다 보면, 언젠가 이정표가 보일 거라고 확신했다. 여로에게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타인의 확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 길에 대한 나의 결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은, 일주일간 이어진 시험의 마지막 날인 지금이었다. 상황이 의지가 향하는 곳으로 길을 터주기라도 한 듯, 나는 가장 강렬한 충동을 벗어나지 않고 몸을 맡겼다. 삑. 삑, 삑. 얼마나 지났을까. 일정한 기계음이 세 번 십 초 간격으로 연달아 울렸다. 마지막 음이 끝남과 동시에 파란색 화면에서 글자들이 사라진다. 한 번 울렸을 때 내려놓으면 감점 없음. 두 번 울렸을 때 내려놓으면 상황을 살펴 감점, 세 번 울렸을 때 내려놓으면 실격 처리. 센서가 있기에 어떻게 속일 수도 없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문제를 보지 못했으므로, 마지막으로 자신을 평가해 보라는 의미였다. 그 간극에 오류를 알아채도 수정하지 못하니, 꽤 잔인한 방식이긴 하다. 안전하게 첫 번째 알림에 시험용 두꺼운 펜을 화면 위에 내려놓은 나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에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하며 침음성을 뱉는 주변의 반응에 비해서는 가벼운 편이다. 세 번의 알림음이 모두 울리고 나자 태블릿 창에 답안 제출 버튼이 떴다. 나는 습관화된 몸짓으로 버튼을 누르고는, 그대로 공중에서 손을 멈췄다. 의례적인 절차였다. 정말 입력한 것들이 내 지식의 집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증명해, 어떤 종류의 변명도 없애기 위한. 모든 게 끝났다. 그 생각을 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의 시험을 꽤 훌륭한 성적으로 끝마쳤다. 그것은 내 표면의 일부였고, 다른 방법을 모르는 이상 그것을 함부로 깨고 나올 수는 없었다. 이젠 이 점수로 상급 학교에 지원을 하게 될 것이고… 인생의 활로가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출 버튼을 누른 것을 후회했다. 모두 끝난 이 시험 자체를 부정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이성적인 생각. 나는 이미 그것을 몇 번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 가는 대로의 그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냥 뭐랄까. 짜증이 났다. 제출 버튼을 누르며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절망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주변의 아이들이.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과, 어쩌면 세계 자체가. 아, 지금이구나. 떠나야 할 순간은. 나는 조금은 텅 빈 표정으로, 꺼진 태블릿 화면에 비친 검은 눈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미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짐작하던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이뤄내고 난 후에, 그것을 저버리기를 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막연히 생각해 왔다. 상급 학교에 간다고 해도 더한 세계에 뛰어드는 것일 뿐, 내 심장은 여전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 나는 이미 이 세계가 온전한 나의 속죄냐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지 오래였다. 한 번 균열이 간 세계에 삶을 맡기는 건 오히려 더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속죄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 다른 길로의 속죄를 하나 찾아냈으니, 더이상 죄악감으로 망설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제출 버튼을 누른 아이들이 하나둘 시험장을 빠져나가는 게 들린다. 나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낯으로, 그저 시험을 적당히 끝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박을 온전히 벗어던진 심장이 낮은 고동으로 쿵쿵 뛴다. 그것은 차라리 환희의 감정이었다.“여로야.”세계를 빠져나오기로 한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놀랄 것도 없이 옆 시험장에서 시험을 본 여로였다. 그가 제각각의 감정에 허우적대는 애들 무리 속에서 평온한 낯으로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향했다. 내 얼굴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확실한 건… 그게 비탄이나 후회에 물든 것은 아니었을 거다.“나 상급 학교에 지원하지 않을 거야.” 날숨처럼 내뱉은 말에 여로의 시선이 뭉근히 나를 향했다. “시험은 괜찮게 봤어. 다만, 이걸로 내 삶을 결정하고 싶진 않아. 내 의지야. 후회는 없을 거고.” 이제는 여로가 무엇을 물을지 짐작이 되었다. 나는 그것을 선수를 쳐 말해주면서, 가만히 여로의 답을 기다렸다. 어떤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이제 세계에 얽매인 몸은 아니라고. “후회는, 없을 거라고? 일말의 것도?” 여로는 그저 낮게 내 말을 되물을 뿐이었다. 그는 제출하지 않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신에 찬 얼굴을 자신 있게 띄워내며. “응. 더이상 여기 있기 싫어. 길을 바꾸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필요하잖아. 그걸 보였을 뿐이야.”“… 솔직히 조금 놀랐어. 언젠가 빠져나오리란 걸 알고는 있었는데, 그게 지금일 줄이야.” 무슨 동기가 있었던 거야?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린 그의 물음에 나는 잠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언어로 뱉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미친 듯이 공부하면서 이뤄낸 것들이 기쁘지 않았어. 시험이 끝났을 때 탈력감이, 그 공허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아니까,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 나는 시험을 치는 내내 싸웠던 공허를 떠올렸다. 그것은 어쩌면 불안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를 저버리고 나니, 모든 게 괜찮아지는 것이다. 그럼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 진의를 파악하듯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본 여로는, 이따금 보여주었던 조용한 미소로 내게 응수했다. 아니, 지금 그가 보여주는 감정은… 환희에 가까운 것이었다. 익숙한 표정이었으나, 기저에 있는 낮은 감정들이 보였다. “광야에 온 걸 환영해.” 그의 손이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정제되지 않은 몸짓이, 그 질서 없는 것이 이제는, 나를 안정시킨다. 내 길을 찾아 빠져나온 초행길, 그곳에 온 걸 환영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래, 가장 먼저 어디로 가고 싶어?” 내게 곧은 시선을 맞춘 여로가 물었다. 나는 그 순간 여로와 동등하게 시선을 맞대고 있음을 깨달았다. 방랑자 하나. 내가 다른 길로 접어든 순간, 나는 여로의 뒤를 따라가는 초심자가 아니게 된 것이다.“청산해야지. 과거를.” 이제부터는, 내 길을 온전히 내가 개척해야 했다. 그 불안하면서 조금은 두려운 길이 어찌나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 왼쪽 관자놀이 부근을 툭툭 쳤다. 얇은 살 아래 느껴지는, 이질적인 딱딱한 감촉. 날 지배하고 있던 것들을 가장 먼저 벗어 던지고 싶었다. 나는 그 충동을 확인한 순간, 여로의 시선을 다시 확인하지도 않은 채, 기숙사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급히 뛰어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선과 스쳤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하나의 목표에 눈이 멀어 있을 뿐이었다. 기숙사에 들어와 가장 먼저 찾은 건 고이 보관해 둔 깨진 비커 조각이었다. 언젠가 학교 주변 정원에서 채집한 과일을 씻다가 비커를 깬 적이 있었는데, 비품 훼손으로 포인트를 잃을까 우려되어 버리는 천으로 싸서 숨겨둔 것이었다. 비커는 개인 지급품이지만, 학교에서 관리하는 품목에 해당했으므로, 실수로 망가트리기라도 하면 귀찮은 구석이 있다. 날카로운 그것을 손에 들자 뛰어오면서 잠시 고요해진 심장이 다시금 낮게 뛰기 시작했다.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 되어있는 기숙사 안에서, 나는 거친 호흡을 고르며 세면대를 짚었다. 흥분감이 진정된 자리엔 고요한 침착이 남았고, 그것은 오히려 이 길을 확신할 수 있게 해주었다. 후우.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고, 유리 속의 나를 유리하지 않은 채 똑바로 마주했다. 그래, 진짜 미친 짓을 하나 할 것이다. 그것은 침착해진 가슴으로 수행해도 후회하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간단한 손짓으로 포인트 창을 불러냈다. 상위 5% 안에 드는 포인트 척도가 마치 공치사를 내리는 듯했으나, 그것은 아주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푸른빛에 정신이 빼앗기려는 것을 애써 다잡고, 고요한 눈으로 깨진 비커 조각을 천천히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푹. 날카로운 조각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오로지 나에게만 들렸다. 칩 자체는 아주 옅게 박혀 있다. 굳이 크게 상처를 내지 않아도, 피부 안으로만 들어가면, 나를 지배하던 이것을 깨버릴 수 있다. 거울 안으로 붉은 피가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고작 한 줄기의 피인데도 흘러내리는 감촉은 선연했고, 피를 흘린다는 것을 인지하자 위기를 느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 극심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흥분감에 도취 되어있지도,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지도 않았다. 아주 맑은 정신으로도 별다른 아픔을 느끼지 못한 건, 날카로운 조각이 피부를 뚫는 고통보다는 더 공정하고 나은 삶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칩으로 인해 고통받은 시간이 더욱 길기 때문일 터였다. 시야에 보이는 포인트 창이 점차 맥을 놓고 흐려지기 시작한다. 인체에 해를 입히지 않도록 절연체를 사용해 만들었기에 망정이지, 파란 창이 마구 일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파지직 소리를 낼 것 같았다. 그리고, 흘러내린 붉은 액체들이 쇄골 부분까지 내려와 푸른 교복을 물들이기 시작할 때쯤. 그 파란 창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것 마냥, 아무런 흔적도 없이…“… 하.”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커 조각을 세면대에 던졌다. 쨍그랑, 소리가 미친 상황을 직시하게 해준다. 성공했다. 나를 얽매고 지배하고 옥죄이던 것에서… 이제는 해방될 수 있었다. 탈력감과 안도감. 이제는 쇠사슬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 어떤 감정들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비단 서늘한 감정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붉게 물든 손이 입을 틀어막자 온 얼굴이 붉은빛으로 뒤덮였다. 알싸한 고통이 뒤늦게 나를 덮쳤고, 그 고통에 겨우 정신을 차려 피가 흐르는 부위를 천으로 지혈했다. 꽤 오랜만에 들여다본 검은색 눈동자는 붉다. 붉은 것들이 오히려 눈에 담긴 공허를 가려주는 듯해서 되려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텅 빈 눈동자를 도무지 사랑할 수가 없었으니까. 천천히 그 속으로 손을 뻗은 나는, 차가운 거울의 감촉을 느끼며 눈이 있는 부분을 그저 가만히 쓸었다. 나는 검은 눈을 한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많이도 지난 했었다. 눈 속에서 빛이 사라질 때까진. 그리고, 새로운 곳에 눈을 뜨기까지는. 삐빅- 그때, 잠금을 해제하는 알림음과 함께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문이 인식되었다는 기계적인 음성이 따르는 것이, 돌아보지 않아도 인기척의 주인이 여로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여명, … … 너…” 방에 들어온 여로가 피투성이가 된 나를 발견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설마.”“있잖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푸른색보다는 붉은색이 나은 것 같아.” 놀라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부러 밝게 미소 짓는다. 평온한 얼굴과는 다르게 여전히 심장이 거세게 뛰었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후련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로가 저런 표정을 지을 것도 없었다. 내 모습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여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피를 보여서 놀란 걸까. 상처를 스스로 내서 놀란 걸까. 어느 쪽이든, 나를 걱정하는 듯 보이는 여로에게 괜찮다고 얘기해줘야 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애써 무시하고 다시 입을 열고자 하는데, 행동은 여로가 조금 더 빨랐다.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 여로가 비커를 감싸던 천을 집어 들어 지혈하는 내 손 위를 강하게 덮었다. 인지하지 못했는데, 손을 내리니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는 천이 보였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피가 많이 흐른 모양이다.“… 무슨 짓이야. 세계를 빠져나간다는 게…”“알고 있었잖아. 이건 네가 알려준 게 아니라 내 길이야. 그 길에 지배자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어.” 내 관자놀이를 강하게 누르는 여로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야가 돌아오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 피를 흘렸기 때문만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일에 몸이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스스로 저지른 일에도 스스로 놀랄 수 있었다. 그런 효과를 어느 정도 기대하고 벌인 일이기도 했다. 여로에게 말한 것처럼, 평생 나를 지배하고 있던 것을 떨쳐내기 위해선, 이 정도의 시각적 강렬함이 필요할 터였으니까. 그걸 모르지도 않을 텐데, 여로는 내 여상한 말에 곧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법한 말에도, 그는 여전히 내 눈을 피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보였다. 종종 세계를 논할 때 볼 수 있었던, 슬픈 바다의 물기. 그 축축한 내음이 눈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는 순간, 바다는 깊은 슬픔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파도도 치지 않고, 풍랑에 물결이 흔들리지도 않았지만, 아주 고요한 슬픔이기에 더욱 짙은 것. 여로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실질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감정이, 낯설어야 하는데 어딘가 익숙하다. … 아니, 이게 아닌데. 나는 여로의 눈물에 놀라 순간적으로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왜 상처를 낸 것도 나고, 벗어나기를 택한 것도 난데, 그가 눈물을 흘리는 거지?“… 넌, 그 애와 너무 닮았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어 가만히 그의 어깨만을 토닥이고 있는데, 그는 지혈하는 손의 반대쪽 손을 들어 피가 흘러가 남은 자욱이 있는 볼을 쓸었다. 차마 담담하지 못한 목소리와 함께.“… 너는 나와 닮았어. 나는 그 애를 찾아 구원하고자 했고, 내가 구원한 그 애를 닮아가고자 했어. 그 애는 옳지 못하고 판단한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처 입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거든. 지금 너처럼.” 여로는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누군가를 나에게 투영하지 않았다. 그리움이라는 것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인데, 여로의 시선은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를 누르는 여로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가 그토록 감정적인 상태라는 것이 그 압력에서부터 전해져 들어왔다. 그 애라는 자는, 여로가 그리도 애틋하게 부르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여로는 한 번도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개인사는 충분히 역린일 수 있는 부분이다. 함부로 물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여로를 닮았고, 여로는 그 애를 닮아가고자 한다면, 그 애도 나와 닮아 있었던 거냐고.“… 그 애도 갇혀 있어? 그래서 네가 구원해야 한다는 거야?”“지금은 아닐지도 몰라. 그냥, 그 애도 붉은색을 좋아했었든. 특히 붉은 토양을…” 여로가 슬픈 눈빛을 한 채 어떤 행복한 과거를 떠올리듯 웃었다. 그는 과거의 어딘가로부터 여행을 떠나온 것 같았다.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조금 슬픈 여행. 나는 그저, 그 슬픈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정 원하신다면, 저도 큰맘 먹고 여기 남아 친구가 되어드리지요.*”(파우스트, 괴테.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장면.*) 과장된 몸짓으로 유혹하듯 팔을 치켜들자 여로의 시선이 살짝 놀라움을 담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멈추지 않고 머릿속에 떠도는 다른 구절들을 내뱉었다. 눌러두었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황홀한 흐름이었다.“… 우리의 피비가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나는 빌어먹을 고함을 지를 뻔했다, 나는 그럴 만큼 젠장 행복한 기분이었다.**”(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저 슬픈 눈을 억지로 위로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내가 세계를 박차고 나온 건, 그 세계 밖에도 온갖 달콤한 것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그걸 알게 해준 것이 당신이 알게 해주었다고. 여로의 ‘그 애’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름 모를 그 애도, 너의 구원이 닿았다면, 이것들을 찬미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고, 태어나려는 자는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데미안, 헤르만 헤세***) 내 목소리 위로 여로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겹쳤다. 지혈을 위해 머리와 어깨를 어색하게 부여잡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우리는 눈을 맞댄 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괴테, 샐린저, 헤세… 고전적인 명작이지. 넘긴 흔적이 있어서 보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구절까지 외우고 있을 줄은 몰랐어.”“이 빌어먹을 학교에서 배운 게 암기하는 기술밖에 없어서.” 암기는 컴퓨터를 시키면 되는데 말야. 홀든 콜필스****의 어투를 표방해 반항적으로 말하자, 여로는 원래의 그 미소로 호탕하게 웃었다. 눈에 서린 슬픔을 사라지게 해주진 못하겠지만, 문학은 내 이야기도 아닌 것들로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 순간 나는, 문학으로 꽤 여러 가지의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여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나는 메피스토펠레스나 홀든이나 싱클레어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언어를 현실에 가져올 수는 있었으니까.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된 삶은 가혹한 현실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단단한 양장본에 얌전히 끼워져 있던 여로의 안내를 따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로는 학교 곳곳에 파멸 이전의 문학들을 숨겨두었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위치를 알고 간다면 충분히 발길이 닿을 수 있을 만한 곳에. 과학실에 있는 개인용 실험 물품 보관함에는 ‘파우스트’가, 이제는 잘 쓰이지 않는 체육 창고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여로의 침대 맡에는 ‘데미안’이 있었다. 양장본을 읽고 난 후 세계 밖으로 끌린 마음이, 그것들을 갈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궤적을 좇으면서 나는 꽤 행복해했다. 웃고, 울었고, 비탄했고, 화를 냈다. 학교에서 정제하라고 가르친 그 날것의 것들은, 문학의 세계에서는 환영받고 존중받을 수 있었다.“그럼 내 눈은 좀 별로인가? 내 눈도 푸른색인데.” 어느새 그 미소를 되찾은 여로가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확신이 깃들어 단단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네 눈은 푸르다기보다는 짙어. 그래서 마음에 들어.” 여로의 것은 떠오르면 긴장부터 되는 알림창을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처음 봤을 때부터 시선이 끌린 그 눈동자는 청명한 바다의 것이었고, 깊은 심해의 것이었고, 어떨 땐 저 먼 우주를 담고 있기도 했다. 여로의 세계는 방대하다. 온갖 다채로운 빛을 담은 그것을 고작 좁아터진 시야 속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은 분명한 죄악이었다.“다행이네. 너한테 미움받는 건 그다지…”“A-13, 잠깐… … 무슨…!” 여로가 무어라 말하던 그때, 열린 문틈으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곧 경악이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러고 보니. 가장 먼저 날 찾은 이가 먼저였기에, 잠시 간과하고 있었다. 칩이 파손되면 가장 먼저 교무실에 알림이 간다는 걸. 순간 여로와 눈이 마주쳤고, 여로와 나는 동시에 픽 웃어 보였다. 시각적 강렬함을 보일 상대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에서>는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➃ 용서는 다정한 모습으로(2)에서 계속) 2026.09.11 17:05
생활문화

‘GLP-1 애프터케어’ 글리프 출시…감량기 영양 관리 겨냥

-한아원코리아, GLP-1 계열 치료제 처방 확대에 맞춰 뉴트리션 브랜드 선봬-아미노산 혼합제제·초저분자 피쉬콜라겐 등 구성…의원·약국 채널 판매 시작 한아원코리아가 GLP-1 계열 치료제 처방 확대와 함께 늘어나는 감량기 영양 관리 수요를 겨냥해 뉴트리션 브랜드 ‘글리프(GLPH)’를 출시하고 의원·약국 채널 판매를 시작했다.글리프는 체중 감량 과정에서 지방뿐 아니라 제지방도 함께 감소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감량 과정과 이후의 영양 관리를 별도 영역으로 제시한 브랜드다.2021년 국제학술지 NEJM에 발표된 STEP 1 임상시험의 체성분 하위 분석에서는 세마글루타이드 2.4mg 투여군의 감량 체중 가운데 약 40%가 제지방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티르제파타이드를 평가한 SURMOUNT-1 임상시험에서도 체중 감소와 함께 제지방 감소가 관찰됐다.제지방은 근육을 비롯해 수분과 뼈, 결합조직 등 지방을 제외한 신체 구성 요소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체중 감량 과정에서 단백질과 아미노산 섭취, 저항성 운동 등을 활용한 체성분 관리에 관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한아원코리아는 GLP-1 계열 치료제 사용 과정에서 식사량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글리프 제품군을 구성했다.글리프는 일반식품 3종으로 구성됐다. 아미노산 혼합제제 3,530mg과 초저분자 피쉬콜라겐 2,500mg을 함께 담은 아미노산 리필 포뮬러와 비오틴·콜라겐 포뮬러 등을 선보였다. 제품 개발 과정에는 현직 의사와 약사가 배합 설계 단계부터 참여했다.이창석 한아원코리아 브랜드 총괄이사는 “감량기에는 섭취량 자체가 줄어든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며 “성분 구성뿐 아니라 제형과 섭취 단위까지 그 전제에 맞춰 설계했다”고 말했다.글리프는 지난 9월 1일부터 공식몰을 통한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한아원코리아는 의원과 약국을 비롯한 오프라인 채널과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다만 본문에 언급된 임상시험은 GLP-1 계열 치료제를 사용한 체중 감량 과정에서 나타나는 체성분 변화를 분석한 연구로, 글리프 제품의 효과를 검증한 것은 아니다. 글리프 역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약품이 아닌 일반식품이다. 2026.09.11 16:24
생활문화

한양대 연구진, 담배 유해물질 생성에 ‘가열 온도’ 영향 확인…조건별 10배 이상 차이

-일반담배·궐련형 전자담배 원료 열분해 비교…500℃ 이상 구간서 발암물질 생성량 격차 확대-연구진 “원료 차이보다 작동 온도가 주요 변수”…통제 실험 결과로 실제 건강 위험과는 구분 필요 일반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에서 생성되는 유해물질의 차이에 원료 자체보다 가열 온도가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는 국내 연구 결과가 나왔다.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권일한 교수 연구팀은 일반담배의 담배 잎과 궐련형 전자담배에 사용되는 재구성 담배 잎을 대상으로 실제 제품의 작동 온도를 반영한 열분해 실험을 진행해 생성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을 비교했다.연구팀에 따르면 일반담배 원료는 500℃ 이상 각 온도 구간에서 발암물질 생성량이 약 350℃에서 가열한 궐련형 전자담배 원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실험한 각 온도 구간의 발암물질 생성량을 합산한 값에서는 10배 이상의 차이가 나타났다.열분해 실험은 담배 원료를 실제 사용 환경과 유사한 온도로 가열한 뒤 생성되는 화학물질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재구성 담배 잎은 담배 잎과 줄기 등의 원료를 분쇄해 시트 형태로 가공한 소재로 궐련형 전자담배에 사용된다.일반담배는 연소 과정에서 약 200~800℃ 범위의 높은 온도에 노출되는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약 350℃의 일정한 온도에서 담배 소재를 가열해 에어로졸을 생성하도록 설계돼 있다.분석 결과 일반담배의 담배 잎은 온도가 높아질수록 발암물질을 비롯해 호흡기·심혈관계·신경계 관련 독성 화합물의 생성량이 함께 증가했다. 특히 400℃를 넘어선 이후 발암물질 생성량이 빠르게 늘었고, 500℃ 이상 구간에서 높은 수준을 보였다.반면 약 350℃에서 가열된 궐련형 전자담배용 재구성 담배 잎은 해당 실험에서 발암물질 생성량이 크게 증가하는 고온 구간에 진입하지 않았다. 니코틴 생성량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발암물질 생성량은 일반담배 대비 약 3.5배 낮게 측정됐으며, 500℃ 이상 각 온도 구간과 비교해서는 2배 이상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담배 원료 자체의 특성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분석했다. 두 종류의 원료를 동일한 700℃ 조건에서 비교했을 때 알코올과 카보닐 등 일부 성분은 재구성 담배 잎에서 오히려 더 많이 생성됐기 때문이다.이에 연구팀은 일반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 사이에서 관찰된 유해물질 생성량 차이에 약 350℃로 제한된 작동 온도가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했다.다만 이번 연구는 통제된 열분해 조건에서 화학물질 생성량을 비교한 실험으로, 실제 흡연자의 질병 발생 위험이나 건강 영향을 직접 비교한 연구는 아니다. 실제 유해물질 노출 수준은 제품과 흡연량, 흡입 방식, 사용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따라서 특정 실험 조건에서 일부 유해물질 생성량이 적게 나타났다는 결과를 궐련형 전자담배가 안전하거나 건강상 이점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일반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 모두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담배 제품이며, 건강 위험을 줄이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금연이다. 2026.09.10 17:48
생활문화

삼성서울병원·성균관대, 만성 B형간염 흡연자 12만7,196명 분석…금연군 간암 위험 낮게 관찰

-5년 누적 간암 발생률 지속 흡연군 4.0%·금연군 3.4%·전자담배 전환군 2.0%-보정 분석서 금연·전자담배 전환군 모두 위험 약 22% 낮아…“관찰연구로 안전성 입증 아냐”삼성서울병원·성균관대학교 공동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해 일반담배 흡연 경험이 있는 만성 B형간염 환자 12만7,196명을 추적 분석한 결과, 금연하거나 일반담배 사용을 중단하고 전자담배로 전환한 집단에서 간암 발생 위험이 지속 흡연자보다 낮게 관찰됐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예방의학 학술지 ‘Preventive Medicine’에 게재됐다.간암은 자각 증상이 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고위험군의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B형·C형 간염은 간암과 관련된 주요 위험요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만성 B형간염 환자의 경우 항바이러스 치료와 함께 흡연·음주 등 생활습관 관리도 중요하게 다뤄진다.연구팀은 일반담배 흡연 이력이 있는 국내 만성 B형간염 환자를 ‘일반담배 지속 흡연군’, ‘금연군’, ‘일반담배를 끊고 전자담배로 전환한 군’으로 나눠 간세포암(HCC) 발생 위험을 분석했다.분석 결과 5년 누적 간암 발생률은 일반담배 지속 흡연군이 4.0%로 가장 높았다. 금연군은 3.4%, 전자담배 전환군은 2.0%로 나타났다.다만 각 집단의 연령과 과거 흡연량, 건강 상태 등에 차이가 있었던 만큼 연구진은 관련 요인을 보정해 추가 분석을 진행했다. 그 결과 금연군과 전자담배 전환군 모두 일반담배 지속 흡연군보다 간암 발생 위험이 약 22% 낮게 관찰됐다.약 3년 이후에도 동일한 흡연 상태를 유지한 참가자만 별도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지속 금연군의 간암 위험이 일반담배 지속 흡연군보다 36% 낮았고, 전자담배 사용을 유지한 집단은 2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금연군의 위험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더 컸지만 두 집단 간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만성 B형간염 환자에서 금연과 간암 위험 감소 간 연관성을 다시 확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금연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전제 아래, 금연이 어려운 일부 흡연자에서는 일반담배 사용을 중단하고 전자담배로 전환하는 것이 간암 위험 감소와 연관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밝혔다.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연구인 만큼 특정 흡연 행태가 간암 위험을 직접 낮춘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특히 전자담배 전환군에서 위험이 낮게 관찰됐다는 결과를 전자담배의 안전성이나 건강상 이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연구진은 강조했다.전자담배의 장기적인 건강 영향에 대해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만성 B형간염 환자에게는 금연이 우선적으로 권고되는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2026.09.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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