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Ⅱ' 스펙터클 공성전 게임서도 실현
일간스포츠

입력 2006.01.12 01:35

첫 테스트 수천명 고수들 운집 대장관 연출

“성(城)을 사수하라!”

영화 <반지의 제왕> 을 본 사람들은 안다. 헬름 협곡과 펠렌노르의 대장관을. 성과 요새로 물밀듯 달려드는 오르크들의 끝없는 행렬과 성곽에서 일렬로 활을 쏘던 요정들의 늠름한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세계 최대의 영화사이트 ‘IMDB’(www.imdb.com) 투표에서 ‘영화 역사상 최고의 영화’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스펙터클한 ‘공성전’ 덕분이다.

영화에서 그랬듯, 공성전은 게이머의 피를 달군다. 짜릿한 공성전의 느낌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게임이 <리니지> 다. 99년 세 번째 에피소드부터 도입된 공성전 시스템은 이후 <리니지> 의 꽃 혹은 백미로 불리며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 8일과 12일 <리니지ⅱ> 는 정식 서비스 이후 처음으로 테스트서버에서 공성전을 시험했다. 수많은 눈과 귀가 쏠렸다. 시작하자마자 1000명이 넘는 고수들이 성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몇 번의 다운이 있었다. 아직 불안한 시스템에 불만을 표시하는 유저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 참전한 게이머들은 대부분 ‘만족했다’는 반응이었다.



정말 가능할 것인가? 가능했다.

판타지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반지의 제왕> 2편의 헬름협곡 전투와 3편의 펠렌노르의 전투는 지금껏 어떤 영화도 보여주지 못한 거대한 감동이었다. 사실 뉴질랜드 출신의 피터 잭슨 감독이 처음 그런 장면을 만들겠노라 했을 때 할리우드의 반응은 싸늘했다. 하지만 ‘촌놈’의 꿈은 현실이 됐다. 모두 입이 벌어졌다.

<리니지ⅱ> 의 공성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지난 해 테스트 기간에도 버벅댔다. 따라서 “수준 높은 그래픽을 유지하며 한 서버에 수 천명이 참여하는 공성전을 벌인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단정하는 게임 제작자의 예상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공성전을 통해 <리니지ⅱ> 는 이런 기우를 상당부분 걷어내는데 성공했다. 약 2000명의 유저가 한꺼번에 몰려서 전투를 벌인 8일 공성전은 큰 무리 없이 3시간 만에 무리 없이 마무리됐다. 일부 유저들은 “5번 다운됐는데 그게 어떻게 성공이냐?”고 묻지만 참전한 유저들은 “어떻게 5번밖에 다운 안 되고 이렇게 실현될 수 있느냐”며 놀라는 분위기다.

NC소프트의 김형진 팀장은 “생각보다 많은 유저가 몰렸지만 기대 수준보다 성공했다. 좀더 안정적인 공성전 시스템이 되도록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많은 유저들은 12일 등장했던 ‘공성골램’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반지의 제왕 3> 에 나왔던 코끼리를 닮은 대형동물 ‘올리파운츠’ 못지않은 엄청난 사이즈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향후 공성전에는 용(와이번)까지 등장할 예정이다. 용에겐 좀 미안한 비유지만 영화 속 나즈굴이 탄 거대한 새가 게임 속으로 등장하는 셈이다. 거의 영화 <반지의 제왕> 의 공성전이 게임 속에서 실현된다는 이야기다.



“목숨을 걸고 싸워라!”

미국의 게임 전문 잡지나 웹진이 ‘온라인게임(MMORPG)의 역사’를 논할 때면 으레 <울티마 온라인> - <리니지> - <에버퀘스트> 순을 밟는다.( <바람의 나라> 가 세계 최초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다루지 않는 태도가 괘씸하다.) 이때 <리니지> 의 요소 중 가장 큰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이 ‘공성전’이다.

기술적으로 당시에 실현해내기 힘들었다는 점도 주목하지만, 한국 온라인게임의 커뮤니티성을 대변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국내 온라인게임이 길드나 혈맹 중심의 커뮤니티로 단단히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바로 공성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리니지> 에서는 공성전을 통해 성을 차지하면 게임 상의 다양한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이 권리를 지속시키거나 빼앗기 위해서는 혈맹원이 똘똘 뭉쳐야 한다. 전략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성을 함락시키거나 방어해야 한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강한 서양에서는 좀처럼 실현시키기 어려운 퀘스트다. 반면 한국에서는 공성전이 있는 날 PC방을 통째로 빌려 혈맹원이 다 함께 전투를 수행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전우애 만큼 진한 우정이 어디 있을까. 좀 과장한다면 <반지의 제왕> 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오르크 군단에 맞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병사들의 마음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반지 원정대의 유대감처럼 함께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룬 혈맹원들의 커뮤니티는 한국적인 독특한 온라인게임 문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국내를 비롯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온라인 RPG의 컨텐츠로 자리잡았다.

현재 웬만한 국산 온라인 RPG는 공성전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한 <쉐도우베인>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 같은 유수의 해외 게임도 <리니지> 의 공성전을 차용하고 있다.

아직 <리니지ⅱ> 의 공성전은 스스로 내세웠던 ‘최고의 전략성을 끌어낼 수 있는 공성전’과 ‘최고의 드라마틱한 신을 연출할 수 있는 공성전’까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다. 지금껏 <리니지ⅱ> 만큼 웅장한 그래픽 퀄리티의 공성전을 보여준 온라인 RPG는 없었다.



[공성전의 역사] 91년 '삼국지2'부터 첫 회자

공성전’이라는 단어가 국내 게이머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91년 무렵이다. PC게임 <삼국지 2> 를 통해 성을 공격하고 수비하는 근대 이전의 전투 개념이 부활했다. 그 뒤 <삼국지> 와 더불어 <히어로즈 오브 마이티 앤 매직> 시리즈 등을 통해 턴 방식 공성전 시스템이 인기를 얻었다.

현재 PC게임에서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등을 통해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장르에서도 주요 요소로 반영되고 있고 <스트롱홀드> 처럼 아예 ‘공성전 시뮬레이션’이라는 별칭이 붙은 게임까지 나왔다.

널리 알려진 대로 온라인게임 분야에서 ‘공성전’을 실현시킨 최초의 게임은 <리니지> 다. 현재의 화려한 공성전에 비해, 공성전이 시작되게 된 과정은 퍽 단순하다. 98년 송재경, 배재현, 김형진 등 <리니지> 제작팀 5~6명이 NC소프트 본사 앞에서 담배를 피다가 “한 번 해보자” 하고 나서 현실이 됐다.

처음 공성전에 참여했던 인원은 공격과 수비가 각각 30명 수준. 2000명의 풀 3D 캐릭터가 지원되는 지금이야 우습게 들리지만 인터넷 환경이나 PC/서버 환경이 취약했던 당시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좁은 지역에서 그 정도의 인원이 쉴새 없이 칼을 내리치고 활을 쏘고 마법을 거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시도였다.

덕분에 <리니지> 는 전세계적으로 서버의 안정성에서 최고의 게임으로 인정 받았다. <리니지ⅱ> 가 그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지 기대를 모으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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