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개봉한 '인터스텔라'는 단 한 차례도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놓치지 않으며 독주 중이다. 26일 동안 쌓아올린 누적 관객이 841만4162명(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900만 관객을 넘어설 게 유력하다. 이는 '해적:바다로 간 산적'(866만5493명)과 '수상한 그녀'(865만7454명)를 뛰어넘으면 올해 개봉작 중 3위에 해당하는 기록.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다소 엇갈릴 수 있지만 의미 있는 성적임은 분명하다. 크리스토퍼 놀란(44) 감독의 이름값으로만 관객을 모았다고 평가절하 하기에는 영화가 담고 있는 기술과 메시지도 묵직하다.
◇귀가 즐겁다
'인터스텔라'는 169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몰입을 점차 높여간다. 이 중심에는 음악감독 한스 짐머(57)의 존재가 있다. 2009년 그래미 어워드 영화부문 최우수사운드트랙앨범상 수상자인 한스 짐머는 앞서 놀란과 네 번의 호흡을 맞췄고, '다크 나이트'(08·연출)와 '인셉션'(10·연출), '맨 오브 스틸'(13·제작)을 비롯한 모든 작품을 흥행과 연결시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과정은 더욱 독특했다. 놀란은 영화 장르조차 가르쳐주지 않고, 상상력을 동원해 배경음악을 만들 것을 부탁했다. 이후 한스 짐머는 레코딩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하고 45개의 세션을 진행하는 등 '인셉션'의 세 배에 달하는 시간을 들여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고스란히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로켓과 우주선 굉음이 난무하는 이전 SF 영화와 달리 고요함을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청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했다. 요란하지 않아도 관객의 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 지난달 17일에는 음반형태로 영화 OST가 발매됐고, 25일엔 온라인 음원사이트에 디지털 음원 형식으로 공개돼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평론가 강익모는 "한스 짐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철학을 음악으로 가장 잘 표현해 내는 사람이다. 극적인 음악 효과는 과학 영화인 '인터스텔라' 속 인간적인 감정을 더욱 끌어올려주는 역할을 한다"며 "특히, 영화 말미 5차원 도서관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주인공 쿠퍼의 절절한 부성애를 더욱 부각시켜준다"고 말했다.
◇눈이 황홀하다
놀란은 최첨단과 아날로그를 절묘하게 결합하는 감독이다. '다크나이트'에서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이맥스 기법을 도입했지만 컴퓨터그래픽(CG)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오묘한 조합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 '조합'은 '인터스텔라'에서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인터스텔라'는 할리우드 역사상 아이맥스 전용 카메라 촬영 분량이 가장 많았던 작품. 광활한 우주와 우주에서 내려 본 지구의 모습까지 아이맥스가 빚어내는 화면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놀란은 고집스러웠다. 우주를 그려내기 위해 CG가 아닌 아이슬란드의 브루나산두르 호수까지 찾아가 촬영을 진행했다. 이 촬영을 위해 무려 4.5톤 우주선 세트를 분해해 비행기에 실었고 15km에 달하는 도로와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준비 작업을 하는 데만 2억원이 들었다. 강익모 평론가는 "아이슬란드의 환상적인 지형을 이용해 광활한 우주 장면을 아이맥스 풀 스크린에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며 "올해 최대 히트작이었던 '명량'의 백미가 61분 간의 해상 전투신이었던 것 처럼 '인터스텔라'의 백미는 9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크린에 구현되는 우주의 모습이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블랙홀 속 5차원 공간 역시 CG로 구현해낸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든 세트. 30만 평의 황폐한 옥수수밭 역시 영화를 위해 반념 넘게 직접 경작했다. 척박해 보이는 땅 위에 옥수수를 기르고 싶었던 놀란은 실제로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 캐나다 앨버타 주의 오코톡스 지역에 캐나다 농림부의 조언을 받아가며 겨우 싹을 틔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우주선이라던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 그리고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장면 등 조금 더 대중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노력이 보인다"며 "이전 SF영화의 현란함 보다는 훨씬 차분한 느낌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