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은의 은퇴, 그리고 트레이드
일간스포츠

입력 2016.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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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노경은(32)의 은퇴 후폭풍이 여전하다.

시속 150 ㎞ 강속구를 던지는 30대 초반 투수가 돌연 야구를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누구나 배경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두산은 10일 KBO에 노경은의 임의탈퇴 공시를 신청했다. KBO는 11일 오전까지 노경은의 임의탈퇴를 승인하지 못했다. KBO 운영팀 관계자는 "선수 본인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노경은과 연락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임의탈퇴는 선수가 참가활동기간 또는 보류기간 도중 소속 구단에 계약 해제를 신청하고 구단이 허가할 때 밟게 되는 절차다. 원래 뜻은 '자진 은퇴(Voluntary Retirement )'다. 공시일로부터 최소 1년간 KBO리그 구단 소속 선수로 뛸 수 없다.

이 관계자는 "보통 선수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은퇴한다. 선수가 자의로 은퇴할 때는 임의탈퇴를 신청하고, 구단이 선수를 방출할 때는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임의탈퇴는 기한이 없다. 한화 구대성, KIA 이종범 같은 레전드 선수들은 물론, 미국으로 떠난 류현진(전 한화), 박병호, 강정호(이상 전 넥센) 등도 모두 임의탈퇴 신분이다.

노경은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시즌이 한창 진행되는 시점에 주요 전력으로 분류된 선수가 임의탈퇴를 신청했다. 은퇴 결심을 굳히기 전에는 구단에 트레이드도 요청했다.

두산 고위 관계자는 "노경은이 양복을 입고 구단 사무실에 찾아와 은퇴 얘기를 꺼냈다. 구단이 설득해도 듣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트레이드를 건의했다. 노경은도 '그렇다면 내가 뛸 수 있는 다른 팀을 알아봐 달라'고 동의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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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느 팀이든 트레이드에는 신중을 기한다.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경은 같은 1군 주전급 투수를 무턱대고 헐값에 다른 팀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부메랑이 돌아올지 모른다.

이 관계자는 "시즌 도중 트레이드라는 게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지 않느냐. 일이 잘 진행되기가 어려웠다"며 "결국 트레이드가 어렵겠다는 통보를 했더니 은퇴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선수가 먼저 '트레이드를 시켜달라'고 나서는 일은 메이저리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랜디 존슨, 매니 라미레스, 마이크 영 같은 스타 선수들도 모두 공개적으로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말에는 LA 다저스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가 구단에 악동 외야수 야시엘 푸이그의 트레이드를 권유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저스 외야수 스캇 반 슬라이크의 아버지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저스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단장에게 '다저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푸이그를 (다른 팀으로) 보내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르다. 팀에 대한 '의리'와 위계 질서를 강조하는 정서가 있다. 그래서 선수가 먼저 구단에 트레이드를 제안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공론화되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대신 소문만 많이 떠돈다. 멀게는 해태 조계현부터 가깝게는 두산 홍성흔과 한화 조인성까지, 트레이드 요청설에 올라 손사래를 치느라 바빴다. 이미 은퇴한 장성호와 최희섭도 비슷한 루머에 올랐다. 최희섭의 경우 수도권 한 구단과 트레이드가 성사 직전까지 갔다 무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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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이드 요청설을 부인했던 SK 와이번스 시절 조인성 선수 ]




물론 모든 게 소문만은 아니다. 2011년 삼성에서 뛰던 한 선수는 류중일 감독 집 앞에 직접 찾아가 트레이드를 시켜달라고 졸랐다. 류 감독은 "추진은 해보겠지만, 잘 안 되면 잔말 말고 나랑 같이 야구하자"며 한밤중에 선수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2012년에도 KIA의 한 선수가 트레이드를 시켜달라고 버티면서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않았다. 아예 특정팀과 미리 교감을 나눈 후에 그 팀에 보내달라고 요청한 선수도 있었다.

골치 아픈 문제다. 트레이드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99% 무산된다. 먼저 트레이드를 요청한 팀은 '을'이 된다. 구단 입장에서 선수의 트레이드 요청을 들어줬을 때 다른 선수들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 한 구단의 운영팀장은 "만약 한 명의 트레이드 요청을 들어주면 다른 선수들도 삽시간에 동요한다. 팀에서 최선을 다해 내 자리를 지키겠다는 생각보다 '나도 진작 트레이드를 요청할 걸'이라는 미련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선수의 처지와 구단의 입장은 이렇게 늘 평행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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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은은 야구에 지쳐 있었다.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다. 그러나 두산은 그 부탁을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투수 한 명은 결국 '은퇴'라는 무거운 결론을 내렸다. 노경은이 1년 후 마음을 바꿔 다시 마운드로 돌아올 여지는 있을까. 두산 관계자는 "그때 가 봐야 알 일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르지 않느냐"고 했다. 
 

배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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