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지난달 18일 수원 KT 위즈전을 마친 뒤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수원=정시종 기자 어니 뱅크스는 시카고 컵스 팬들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1953년 미국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한 그는 19년 동안 컵스 유니폼만 입고 은퇴한 원클럽맨이다. 1876년 창단한 구단 역사상 첫 흑인 선수로 1977년 83.8%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되기도 했다. 선수 시절 모든 걸 이룬 뱅크스지만 유독 포스트시즌(PS)과 인연이 없었다.
뱅크스의 성적과 컵스의 성적이 항상 반비례했기 때문이다. 뱅크스가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힌 1958년과 1959년 컵스의 승률은 5할 미만이었다. 4년 연속 40홈런을 달성한 1960년에는 팀 승률이 0.390까지 떨어졌다. 컵스는 1946년부터 1983년까지 PS 진출에 실패하며 긴 암흑기를 보냈다. 컵스 팬들은 WS는커녕 PS 무대도 밟아보지 못하고 은퇴한 뱅크스를 '미스터 컵스'라고 불렀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무관의 제왕' 이대호가 선수 생활을 끝낸다. 8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전이 그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다. 이대호는 2021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FA(자유계약선수) 2년 계약하며 "2022시즌이 끝나면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다. 롯데는 지난해 8위에 그쳤다. 관심이 쏠린 올해에도 지난 3일 두산 베어스전을 패해 PS 진출에 실패했다.
이대호가 한국 야구 역사에 남긴 족적은 크다. 2010년 9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며 그해 전인미답의 타격 7관왕에 올랐다. 2013년 12월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했고, 2015년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한국인 사상 첫 일본시리즈 MVP에도 뽑혔다. 2016년 한 시즌 MLB를 경험한 뒤 '친정팀' 롯데로 복귀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비롯해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존재감도 대단했다. 2015년 WBSC 프리미어12에선 후배들을 이끌고 우승을 이뤄냈다. 많은 이들은 그를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부른다.
2015년 1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미스터 컵스' 어니 뱅크스. 게티이미지 이대호가 이루지 못한 목표는 딱 하나다. 1992년 이후 멈춘 롯데의 한국시리즈(KS) 우승 시계를 다시 돌리는 거다. 하지만 뱅크스 못지않게 이대호의 개인 성적과 팀 성적도 엇박자가 심했다. 이대호가 가을야구에서 가장 높은 곳을 경험한 건 2011년 플레이오프(PO)다. 2017년 준플레이오프(준PO)를 끝으로 가을야구 문턱도 넘지 못했다. 간절하게 바란 개인 첫 KS 우승 목표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대호는 지난달 은퇴 투어를 마친 뒤 "은퇴 후에는 쉬면서 못 만난 사람을 만나고, 주위를 좀 둘러보겠다. 아빠, 남편 노릇을 좀 하고 싶다"며 웃었다.
뱅크스는 2015년 1월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톰 리케츠 컵스 구단주는 "뱅크스와 컵스를 구분할 수 없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미스터 롯데'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이대호가 느끼는 감정을 공유할 수 없지만, 내가 이대호라면 아쉬울 거 같다. 이대호는 KBO리그와 롯데 그리고 많은 부산팬에게 큰 영향을 크게 끼친 선수"라고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