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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이긴 유일한 인간 이세돌 "신의 한수 78수? 꼼수였죠"

프로기사직을 내려놓은 이세돌(36) 9단은 "홀가분하다"고 했다. 1995년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 9단은 최근 한국기원에 사직서를 내고 24년 4개월간의 현역 기사 생활을 마감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둑 영웅이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직서를 내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복잡미묘한 심경이 읽혔다. 은퇴 소감을 듣기 위해 25일 서울 충정로 한 음식점에서 이 9단을 만났다. 이 9단은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오는 길에 걸그룹 '오마이걸'의 노래 '불꽃놀이(Remember Me)'를 들으며 왔다고 했다. 그는 노래를 들려주며 "10년이 지나도 기억해달라는 내용인데 요즘 심정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요즘 나의 최애곡"이라고 설명했다. 노래에는 '잊지 말아줘 아주 오래 지나도 가끔 날 그려줘'라는 가사가 나온다. ━ 스스로 느낀 한계에 은퇴 결정 은퇴 시기에 대해 이 9단은 "원래는 2018년에 은퇴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마지막이 되니 은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미련이 생기고 아쉬웠다"며 "그래도 정리를 깔끔하게 하고 끝내자는 생각이 들어서 커제에게 박살이 나고 (은퇴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그는 중국 커제 9단과 겨룬 '3ㆍ1운동 100주년 기념 대국'에서 패한 뒤 올해 안에 은퇴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느낀 한계 때문이다. 이 9단은 "2016년은 ('알파고'와의 대결로) 정신이 없었고, 2017년을 지나며 은퇴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며 "점점 예전보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바둑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인공지능(AI)까지 나오니 미친 듯이 공부를 해서 다시 일인자가 돼도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는데,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한국기원과의 불화도 은퇴에 한몫했다. 이 9단은 2016년 5월 프로기사회가 권한을 남용하고 적립금을 부당하게 뗀다는 이유로 기사회 탈퇴를 단행했다. 현재 한국기원과 이세돌 9단 측의 적립금을 둘러싼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적립금은 이 9단이 기사회를 탈퇴한 뒤 한국기원이 기사회의 요청에 따라 그에게 지급하지 않고 보관해온 상금 공제액을 뜻한다. 약 3200만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 9단과 한국기원과의 불화는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2009년 이 9단이 한국리그에 불참하고 중국리그에 출전하겠다고 하자 한국기원이 징계 결의를 내렸고, 이에 맞서 이 9단이 6개월간 프로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 9단은 "당시 매우 화난 상태라 일본 기원에 들어가는 것까지 고민한 적 있다"며 "하지만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도 있고 일본이 호감이 가는 나라가 아니라 그만두었다. 어느 곳에서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알파고'와 대결 전에 패배 직감 24년 4개월의 프로 생활 중에 가장 기억나는 바둑은 역시 구글 딥마인드 AI '알파고'와의 대결이다. 이 9단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결 전야제 때 이미 내가 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글 팀이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원래 인터넷 댓글을 잘 보지 않는데, 유일하게 알파고에 3연패하고 나서 얼마나 욕을 먹고 있나 궁금해서 찾아본 적 있다"며 "생각보다 사람들이 욕을 많이 안 하더라"고 말했다. 이 9단은 '알파고'에 3패 한 뒤 기적 같은 승리를 거뒀다. 이때 거둔 1승은 지금까지도 인간이 AI를 상대로 거둔 마지막 승리로 남아 있다. 승리는 '신의 한 수'로 불리는 78수 덕분이었다. 이 9단은 78수에 대해 "사실 78수는 꼼수였다. 정확히 받으면 먹히지 않는 수였다"며 "지금도 중국 AI '절예'에 버그가 생기듯 일종의 버그였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 9단은 '알파고'와 대결 당시 딸과 함께 대국장에 등장했는데, 딸을 끔찍이 아끼는 모습 때문에 '딸바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9단은 "딸이 내년에 15살이 된다"며 "이제는 게임을 한다고 밥을 먹을 때도 밖에 나오지 않고 자기 방에서 먹으려고 한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그는 다음 달 18~21일 국내 AI '한돌'과 은퇴 대국을 벌인다. 치수 고치기 대결인데, 첫판은 두 점을 깔고 덤 7집 반을 주고 시작된다. 이 9단은 "두 점을 깔고 두는 첫판은 아마도 내가 질 것 같다"며 "요즘 바둑 공부는커녕 바둑 뉴스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 은퇴까지 했는데 편하게 두고 싶다"고 했다. 사람과 AI의 실력 차이에 대해선 "최강 그룹이라면 두 점에도 해볼 만하겠지만, 호선에는 절대 사람이 못 이긴다. 3점은 아닐 것 같고 2점 정도가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 "나는 한 수 앞을 보지 못한다" 한때 세계 무대를 평정했던 그에게 라이벌은 누구였을까. 잠시 고민하던 이 9단은 "라이벌은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이 9단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그나마 이 9단의 라이벌로 불렸던 인물로는 중국의 구리 9단이 있다. 둘은 동갑내기로 여러 면에서 비교되곤 했다. 2014년에는 두 선수의 10번기가 성사됐는데, 이 9단이 6승 2패로 승리했다. 이세돌 9단은 "10번기는 내가 자신 있어서 한 것인데, 중국에서 경기가 열려서 오히려 구리에게 불리한 면이 많았다. 중국은 주변에서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이어 "구리가 나에게 라이벌이란 개념은 없었다. 구리는 좋은 프로기사고 좋은 친구"라며 "그래서인지 10번기가 끝나고 그와 관계가 잠깐 애매해지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10번기가 끝나고 내가 구리에게 많이 졌던 거 같다"고 회고했다.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섰던 그지만, 아직도 바둑은 '알 수 없는 존재'다. 이 9단은 "아마추어들이 나에게 물어보는 질문 중 가장 답하기 어려운 것이 '왜 이 자리에 뒀냐'는 것이다. 오랫동안 바둑을 둬왔으니 대충 감각으로 두는 것인데 이유를 물으니 난감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또한 "바둑은 양자택일을 넘어서 삼자 택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감으로 둘뿐이다. 쉬운 모양이 아니라면 실은 한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은퇴 이후 행마를 묻자 "일단은 쉬고 싶다"고 했다. 일각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정치에 뜻이 있느냐고 묻자 "나는 그런 자리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좀 더 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2019.11.2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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