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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본 그 꽃 [김식의 엔드게임]

지난달 28일 광주-기아챔피언스 필드. 2024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KIA 타이거즈 선수단이 그라운드에서 뒤엉켜 서로를 축하했다. 이범호(43) KIA 감독도 선수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맨 마지막에 투수 양현종이 있었다.둘은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범호 감독은 다른 선수들보다 양현종을 더 세게, 오래 안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포옹의 의미를 현장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이 장면은 7월 1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보여준 둘의 '백허그'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이범호 감독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선발 양현종을 교체했다. 등판 때마다 온갖 기록을 만들어내는 베테랑을 승리 투수 요건까지 아웃카운트 1개만 남겨둔 상황에서 바꾸는 건 초보 감독으로선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양현종은 마운드에서, 또 벤치에서 서운함을 표현했다.이범호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양현종에게 다가가 백허그를 했다. 조직의 책임자로서 냉정하게 내린 결정을 이해해 달라는 인간적인 제스처였다. 양현종은 경기 뒤 사령탑의 결정을 흔쾌히 따르지 못한 것에 대해 이 감독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다음 등판(7월 23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완투승을 거뒀다. 이범호 감독은 10개 구단 사령탑 중 가장 젊다. 양현종과 일곱 살 차이, 최형우와 두 살 차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뛴 선후배다. 게다가 선수들이 이 감독을 워낙 잘 따르기에 '가벼운 항명'의 위험도 있었다.이범호 감독은 권위로 선수들을 누르지 않았다. 개인보다 팀이 먼저여야 한다는 원칙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벤치에선 백허그를 하는 사이라도 마운드에선 냉정하게 교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KIA 선수들도 '이범호 선배'가 아닌 '이범호 감독'을 이해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단지 양현종뿐 아니었다. 이범호 감독이 우승의 일등 공신으로 꼽은 김도영이 홈런을 친 다음 타석에서 교체된 적(7월 2일 삼성전)도 있다. 주장 나성범의 본헤드플레이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범호 감독의 선수 은퇴식 때 자신의 등번호를 물려받은 후배 박찬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KIA 관계자는 "이범호 감독은 선수가 실책했다고 나무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거나 팀플레이에 소홀하면 단호한 시그널을 보낸다"라고 전했다.이범호 감독은 젊은 나이, 짧은 경력이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하게 KIA를 드라이브했다. 그 리더십의 한 축은 '브레이크'였다. 야구 잘하는 선수일수록, 친한 관계일수록 엄격했다. 풀 시즌을 처음 뛴 김도영이 2024년을 성공적으로 완주한 건 상승기에 과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앞서나갈 것 같은 선수에게 팀과 함께하도록 한 덕분이었다.KIA는 6월 이후 정규시즌 선두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평탄한 길만 달린 게 아니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1선발로 기대한 윌 크로우, 이의리에 이어 8월에는 제임스 네일까지 부상으로 이탈했다. 선발진이 붕괴된 상태에서 KIA는 대체 외국인 투수와 황동하·김도현을 투입했다. 스물네 살 김도현이 잘 던지다가 부담을 느끼며 흔들리자 이범호 감독은 "몇 경기만 보고 널 판단하지 않겠다. 기회는 또 줄 것"이라고 응원했다.이범호 감독은 1루수 수비가 안정적인 변우혁에게 "타석에서도 욕심을 내봐라. 네가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라고 독려했다. 자신의 재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이 감독은 '액셀러레이터'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혼자 처질 것 같은 선수에게 동료와 함께 가도록 길을 안내했다.대구 출신인 이범호 감독은 2000년 대전(한화 이글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거쳐 2011년 KIA로 이적했다. 9년 동안 선수로 뛰며 광주에 뿌리를 단단하게 내렸다. KIA 구단은 그를 차기 지도자감으로 점찍어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연수를 보내주기도 했다.올해 초 KIA 단장과 감독이 비리 사건에 휘말려 경질됐다. 구단은 사상 최악의 위기에서 이범호를 새 감독 단일 후보로 올렸다.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지휘봉을 맡길 인물로 판단했던 거다. 그는 3월 취임식에서 "웃음꽃 피우는 야구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꽃)을 유머러스하게 언급한 것이다. 팀이 오름세에 있을 때 이범호 감독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밟았다. 팀이 내리막길에 있을 때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반등에 성공했다. 그라운드 안과 밖,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했다. 무엇보다 공동의 목표를 우선시한 이범호 감독의 원칙이 KIA의 핵심 동력이었다.실망과 좌절 속에서 2024시즌을 시작한 KIA는 8개월 만에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험로에서 시작한 그들의 여정을 돌아보면, 화사한 꽃길 같다. 올가을, '꽃감독'은 KIA 팬들에게 고은 시인의 작품 한 편을 선물한 것 같다.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스포츠1팀장 2024.11.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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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홈런-30도루-30실책? 2024 김도영과 1997 이종범 [김식의 엔드게임]

"이종범 때문에 이기기도 많이 이겼지만, 지기도 많이 졌어. 정말 또라이야. 또라이."2002년 어느 날, 대구 시민야구장 감독실에서 들었던 말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KIA 타이거즈 이종범에 대한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평가는 역시 투박했다. 1993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종범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90년대 삼성 양준혁과 최고 타자를 놓고 다퉜고, 일본에 진출했다가 2001년 후반기 KIA로 돌아와서도 존재감이 어마어마했다. 이종범이 KBO리그에 복귀하자 취재진과 팬들은 그와 이승엽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스피드'로 당대 최고의 '파워'와 겨룬 선수는 이종범이 유일했다.김응용 감독은 해태 사령탑 시절 이종범의 최전성기를 곁에서 지켜봤다. 삼성에 와선 이승엽이 아시아의 홈런왕에 등극하는 걸 목격했다. '이종범 vs 이승엽' 구도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었지만, 김 감독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기자의 질문공세를 노련하게 피해가다가 나온 대답이 '또라이'였다.나쁜 뜻은 아니었다. 김응용 감독은 미디어를 이용해 선수와 '밀당'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소속 팀 선수에게 냉혹한 메시지를 전달하긴 했어도, 다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를 험담하거나 과찬하진 않았다. 그의 발언은 이종범의 영향력(야구팬 용어로는 지배력)에 대한 추억이었다고 기자는 이해했다.그 시절 이종범은 바람처럼 리그를 휘저었다. 폭발적인 스윙 스피드는 홈런왕 못지 않았다. 단타를 쳐도 베이스를 쉽게 훔치니까 장타와 별 차이가 없었다. 유격수로서 묘기 같은 포구와 투구처럼 빠른 송구는 진기명기에 가까웠다.그러나 거친 질주는 자주 오버런으로 이어졌다. 이종범이 무리하게 뛰다 주루사하거나, 어려운 타구를 잡아낸 뒤 급한 마음에 악송구하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자신감과 책임감이 과도해서였다. 감독이 보기에 가슴이 철렁한 모습이 꽤 있었다.2002년 삼성은 정규시즌 1위를 달리며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고 있었다.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던 김응용 감독은 자기 플레이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또라이(93년과 97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는 이종범이었다)'가 그리웠던 것 같다. 2002년 삼성에 그런 선수는 없었다. 대신 한국시리즈 6차전 이승엽의 극적인 동점 3점포가 터져 삼성이 우승했다.이종범 이후 수많은 '제2의 이종범'이 나왔다. 이중 이종범과 비슷한 스타일과 스탯을 가진 선수는 떠올리기 어렵다. 심지어 '아버지를 뛰어넘었다'는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플레이도 아버지와 차이가 있다. 이정후는 안정적이며 빈틈이 없다. 이종범에 비견할 만한 선수, 김도영(21·KIA)이 2024년 등장했다. 슬림한 체격에서 뿜어내는 엄청난 스피드, 그로 인해 생성되는 강한 파워가 닮았다. 우타자이자 내야수로서 탄력 넘치는 움직임도 비슷하다. 15일 기준으로 23홈런(2위)-27도루(6위)를 기록한 김도영은 시즌 30홈런-30도루 돌파가 유력하다. 타율은 0.343(7위)에 이른다.올해 김도영의 페이스는 1997년 이종범(30홈런-64도루-타율 0.324)과 비교된다. 그리고 또 하나, 실책도 비슷하다. 해태 시절 유격수로 뛴 이종범은 93년 25실책, 94년 27실책을 기록했다. 30-30을 달성한 97년에도 27실책을 저질렀다. 영향력이 큰 시즌일 수록 실책도 많았다.지난 11일 서울 잠실구장. KIA가 4-0으로 앞선 9회 말 2사 3루에서 LG 트윈스 오스틴 딘이 내야 땅볼을 굴렸다. 스핀이 크게 먹힌 이 타구를 KIA 3루수 김도영이 잡으려다 놓쳤다. 그사이 LG가 첫 득점에 성공했다. 결국 KIA가 4-2로 승리했지만, 김도영의 실책(20번째)이 나왔을 땐 흐름이 바뀔 뻔 했다.김도영은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많은 실책을 저지르고 있다. 이러다가 30홈런-30도루-30실책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책 수만으로 그의 수비를 판단할 건 아니다. 기술 부족보다는 의욕 과잉으로 인한 실책이 꽤 많기 때문이다. 오스틴의 타구도 0.1초 빨리 송구하려다 생긴 결과였다. 3루수 출신 이범호 KIA 감독도 김도영의 수비 안정성을 개선하기 위해 상당히 신경 쓰는 거 같다. "아직 어리니 괜찮다"라고 다독이기도 하고, 때로는 문책성 교체 지시도 내린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선수에게 달려있다.슈퍼스타는 자신감보다 크지만, 자만심보다 작은 멘탈을 가지고 있다. 김도영은 위축되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오스틴을 아웃시키려던 동작이 그랬고, 10일 LG전 9회 초 최형우의 단타 때 2루, 3루를 거쳐 홈까지 파고든 질주가 그랬다. 14일 SSG 랜더스전 8회 말 좌익수 플라이 때 2루에서 3루로 내달린 태그업도 그랬다. 22여 년 전, 김응용 감독 말을 듣은 기자는 '해태는 이종범 때문에 얼마나 이기고, 얼마나 졌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세이버메트릭스 시대에는 검색하면 금세 정답에 가까운 값이 나온다.2024년 7월 15일 스포츠 투아이 기준으로 김도영의 RC/27(한 타자가 아웃 카운트 27개를 모두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발생하는 추정 득점)은 단연 1위(10.84)다. OPS(출루율+장타율)도 1위(1.025). 종합지표인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는 4.28로 리그 KT 위즈 멜 로하스 주니어(WAR 4.30)와 1·2위를 다투고 있다. 게다가 김도영은 이제 스물한 살이다.스포츠1팀장 2024.07.1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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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우산 천사’가 야구에 던진 희망

"힘내세요. 파이팅!" 지난 10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 경기 시구자로 나선 광주 효동초등학교 5학년 전하준 군이 크게 외쳤다. 긴장하는 낯빛이었는데도, 소년은 용감했다. 그라운드로 걸어가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KIA 선수와 팬들은 힘찬 박수를 보냈다.하준 군의 시구를 기획한 김지연 KIA 마케팅팀 프로는 "장내 인터뷰 때 하준 군이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커서 '남들을 돕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하준 군은 '우산 천사'로 유명해졌다. 하준 군은 지난달 29일 비가 내리는 광주 시내를 걷다가 케이크 매장 앞에 주차한 차량 옆을 지났다. 한 어른이 우산 없이 박스를 옮기느라 비를 맞는 모습을 본 하준 군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어른 뒤를 따라가 까치발을 들어 우산을 씌워주었다.짐을 나르던 어른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둘은 잠시 눈을 맞춘 뒤 서로의 길을 걸었다. 불과 5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당시 짐을 옮기던 자영업자는 "우산을 씌워준 줄 몰랐다. (영상을 보고) 나중에 다시 만나 감사를 전했다"고 했다. 하준 군은 "비를 맞고 계셔서 우산을 씌워준 것이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잠시 스친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SNS에는 하준 군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고, "덕분에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알았다"는 감상도 올라왔다.폐쇄회로(CC) TV에 찍힌 짧은 영상이 화제가 된 이유가 있다. 우리의 관념과 다른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고와 범죄를 보여주는 경로에서 예상과 달리 인간의 온기를 목격했다. 어른이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도 어려운데, 아이가 까치발을 들어 어른의 키를 맞춘 것이다. 이 영상을 보고 감동한 김지연 프로는 SNS를 통해 '우산 천사'를 찾았다. 그리고 타이거즈 팬이며 야구장을 자주 찾는다는 그의 가족을 초청했다. 하준 군은 "소크라테스 선수를 가장 좋아한다. 내가 볼 때마다 안타를 때리기 때문"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하준 군이 던진 공은 강속구 투수의 패스트볼보다 강렬했다. 연예인 시구보다 인상적이었다. 심재학 KIA 단장은 "지난해에는 물놀이 중 급류에 휩쓸린 초등학생 형제를 구한 김어진·이세준 군을 시구·시타자로 초청했다. 선한 영향력을 보여준 분들을 마케팅팀이 적극적으로 섭외하고 있다. 프로야구단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KIA 유니폼을 입고 시구하는 건 열한 살 소년에겐 꿈같은 일일 것이다. 하준 군은 그걸 선행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는 대신 "서로 돕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프로야구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1982년 출범했다. 이후 42년 동안 선수들을 비롯한 KBO리그 구성원들은 이 취지에 얼마나 부합했는지 의문이다. 도리어 열한 살 어린이 팬이 꿈과 희망을 프로야구에 선물했다.하준 군이 온 힘을 다해 던진 공은 우리 가슴으로, 그렇게 날아들었다. 덕분에 어른들이 힘을 냈다. 스포츠1팀장 2024.04.1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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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아버지 어깨 위에서, 아버지보다 큰 꿈을 이룬 이정후

아들은 아버지보다 고집이 셌다.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를 좀처럼 꺾지 않았다.아들이 편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아버지는 그래도 반대했다. 야구가 아니라 골프 선수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졌다. 2007년 광주 서석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이버지는 딱 한 마디만 했다."왼손으로 쳐라." 이종범(53·전 LG 트윈스 코치)은 왼손잡이다. 밥 먹을 때도 사인을 할 때도 왼손을 쓴다. 단 하나, 야구만 오른손으로 했다. 유격수를 하려면 오른손을 써야 했다.그가 1993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KBO리그를 뒤흔들자 “이종범이 왼손으로 쳤다면 한국 야구가 달라졌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타격만 보면 좌타자가 유리하기 때문이다.이종범이 4할 타율에 도전했던 1994년 스즈키 이치로(50·오릭스 블루웨이브)도 일본에서 신기의 타격을 보여줬다. 배트 스피드와 콘택트가 초(超)아시아급이었던 이종범과 이치로는 자주 비교됐다. 그러나 당시 한일 야구 격차가 상당히 컸기에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이치로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이종범과 반대로 이치로는 선천적인 오른손잡이다. 공도 오른손으로 던지지만, 타격만 왼손으로 한다. 우투수의 투구를 보기 유리하고, 타석에서 1루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좌타자의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이치로는 2001년 MLB에 진출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미·일 통산 4367안타를 때려낸 뒤 2019년 은퇴했다. 이종범은 1998년 한국인 야수 최초로 일본(주니치 드래건스)에 진출했으나 치명적인 오른 팔꿈치 부상을 입었다. 그때 태어난 아들이 이정후다. 이종범은 일본에서 3년을 뛰고 2001년 KBO리그로 돌아왔다. 빅리그의 꿈은 허공에 흩어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야구 선수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재능이 있더라도 프로에서 성공하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서다.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훈장보단 꼬리표가 될 거라 걱정도 했다. 그래도 '꼬마 이정후'의 눈이 너무나 반짝반짝 빛났다. 결국 아버지가 졌다. 대신 아들의 왼손에 방망이를 쥐여줬다.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가란 뜻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지나칠 만큼 잘 따랐다. 어려서부터 "내 롤모델은 이치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이치로처럼 왼손으로 치고 오른손으로 던졌다. 이치로의 등 번호 51번도 달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재능을 물려줬지만, 코치가 되지는 않았다. 스스로 깨닫고 이겨내기를 기다리고 응원했다. 아버지보다 큰 선수가 되고, 큰 꿈을 꾸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이정후는 이치로의 기능을 치밀하고 영리하게 받아들였다. 2017년 프로에 데뷔해 그가 보여준 강력한 허리 회전과 넓은 콘택트 존은 이치로와 비슷했다. KBO리그 7시즌 동안 타율이 0.340(통산 3000타석 이상 기록한 타자 중 역대 1위)에 이른다.2019년 이종범은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들에게 이치로 책을 3권 사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안타를 친 타자도 4타수 무안타에 그친 날 집에 와서 4~5시간을 더 훈련한다고 하더라. 아빠는 선수 시절에 술도 먹고 했잖냐. 아빠 말고 이치로를 닮아라."이건 방송용 코멘트다. 이정후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키가 한 뼘 더 커버린 이정후는 이미 '이종범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종범이 '이정후의 아버지'였다. 대학을 졸업한 이종범과 달리 이정후는 서울 휘문고 졸업 후 프로에 직행했다. 방위로 복무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병역 특례를 받았다. 1994년 정규시즌 MVP였던 아버지처럼 아들은 2022년 MVP에 올랐다. 아버지가, 아버지 세대가 이룬 반석 위에서 한국 최고의 타자로 성장했다. 그의 나이 불과 25세다.이정후는 13일(한국시간)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1483억원)에 계약했다. 한국 선수 최초로 1억 달러 이상의 빅딜을 끌어냈다. 일본에서 멈춰 선 아버지와 달리 곧바로 태평양을 건넜다.이정후가 2017년 데뷔하자마자 1군 선수로 활약하자 이종범은 “정후는 잡초처럼 자란 게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곱게 컸다. 힘든 프로 생활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내 아들이라는 게 부담이 될까 봐 정후가 어릴 때 야구하는 걸 반대했다”고 떠올렸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은 아버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생각보다 아들은 더 강했다. 아들의 꿈이 더 컸다. 고집 센 아들은 아버지의 어깨에 올랐다가 세계 최고의 무대로 도약했다.스포츠1팀장 2023.12.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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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이대호와 이대은, 그리고 김성근의 '최강야구'

“응. 지금 훈련 끝났어요.”“어때? 그 선수 좋아졌지?”“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최강 몬스터즈를 이끄는 김성근 감독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낯설면서도 낯익다. 예능 출연자의 코멘트로는 별스럽지만, 그가 수십 년 반복한 것이기에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저런 말은 김성근 감독이 LG 트윈스(2001~2002) SK 와이번스(2007~2011) 한화 이글스(2015~2017) 지휘봉을 잡았을 때 자주 들었다. 일본 롯데 마린스 코치일 때,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사령탑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취재한 시절은 아니지만 1980~90년대에도 그랬다고 한다. 고교팀과 실업팀 시절까지 올라가면 김성근 감독은 반세기 동안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최강야구’에서도 여전하다. 은퇴 선수들로 팀을 구성한 예능인데도 다큐처럼, 전쟁처럼 하고 있다. ‘최강야구’가 실전성을 강조한 프로라고 해도 그는 진짜 프로팀을 이끄는 것처럼 승부에 몰두한다. 훈련 프로그램을 짜고, 성과를 체크한다. 최적의 전략과 조합을 찾는다. 어떤 선수가 자발적으로 훈련했다는 말에 흐뭇하게 웃는다.이 과정에서 예상 밖의 일도 일어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은 훈련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대호(전 롯데 자이언츠)를 첫 경기(KT 위즈 2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지난해 KBO리그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과감하게 빼면서까지 리더의 지향점을 구성원들에게 똑똑히 전했다. 이대호는 “대타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겠다”고 하더니 지난 8일 방송된 경기(휘문고)에서 4번 타자로 나섰다.김성근 감독은 지독하게 이기고 싶어 한다. 그것도 자신의 방식을 고집한다. 예능이 재미있으면 됐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목표 승률 이하로 떨어지면 프로그램이 폐지된다는 장치가 있긴 하지만, 그는 연출 의도보다 더 절박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있다. “돈 받으면 (은퇴 선수라도) 프로다”, “팀 구성원과 그들의 가족까지 수백 명의 생계가 달린 일”이라며 미간에 힘을 준다.‘최강야구’가 화제를 모으는 건 은퇴 선수들이 보여주는 열정 덕분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띠며 승부의 이면을 잘 묘사한다. 여기에 독한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이 더해지면서 극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모든 시선이 부드러운 건 아니다. 은퇴했다고 해도 최고 레벨에 있던 선수들이 프로 2군이나 고교팀을 상대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로 보는 사람도 있다. 프로에서 더 많은 돈을 받고도 슬렁슬렁 뛰었던 선수들이 예능에서 이를 앙다물고 뛴다며 탐탁지 않게 보는 이도 있다.논란이 있어도 많은 이들은 ‘최강야구’를 본다. 그 이유는 진짜 야구 중계가 담지 못하는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중계에서 볼 수 없는 연출적인 요소가 이 프로그램에 있다. 게다가 김성근 감독이 증폭하는 승리를 향한 간절함이 잘 묘사돼 있다.지난 3월 한국 야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단순히 일격을 당한 게 아니었다. 2013, 2017년 WBC와 2020 도쿄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참패의 연장이었다. 한국 야구가 경쟁력을 잃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일부 선수의 몸값은 치솟지만,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팀플레이는 퇴보했다. 이를 바꿀 리더십은 등장하지 않았다. 여러 감독의 색깔과 구단의 운영 방식은 대동소이했다.최근 KBO리그에는 보신주의와 몰개성이 만연해 있다. 야구가 큰 인기를 누리는 건 변함없지만, 팬들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었다. 그러다 김성근 감독에게 다시 눈길이 가는 것이다.6년 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 그의 지도자 인생은 끝난 줄 알았다. 승리지상주의와 권위적 모습, 혹사 논란으로 상징되는 그의 리더십이 한계에 부딪힌 거로 보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그를 코치로 영입했다. 팔순 나이에는 ‘최강야구’를 이끌고 있다.지난 8일 방송에서 이대은(전 KT)은 변화구 3개로 삼진을 잡는 모습을 보여줬다. 시속 145㎞의 패스트볼을 예리하게 꽂기도 했다. “이대은은 155㎞를 던질 수 있다”는 김성근 감독의 허풍 같았던 말이 절반쯤은 실현됐다.김성근 감독은 개인의 단련과 조직의 단결을 프로야구가 아닌 새 플랫폼에서 웅변하고 있다. 새로운 발명이 아니다. 낡은 것으로 여겨졌던 가치의 발견이다. 남들이 유행을 좇을 때 그는 50년째 자신의 자리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돌고 도는 세상은 김성근을 또 찾는다. 2023년에도 그의 야구를 기대하는 이들이 또 생겼다. 고집스런 리더가 가진 특권이다.스포츠1팀장 2023.05.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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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야구로 미국 이기겠다" 일본의 90년 꿈 이루나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사주였던 쇼리키 마쓰다로(正力松太郎, 1885~1969)가 생전에 남긴 3훈(訓) 중 하나가 ‘미국을 따라잡고 추월하라’였다.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의 기치는 ‘서양 따라잡기’였다.일본 야구 발전을 위해 마쓰다로는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의 방일을 추진했다. 1931년 첫 대회가 열렸고, 1934년 2차 방일에는 베이브 루스도 참가했다. 첫 대회에서 0승 17패, 2회 대회 때 1승 17패를 당한 일본은 더 간절하게 미국을 이기고 싶어 했다. MLB 올스타와 대결했던 대일본야구구락부(클럽)는 2년 뒤 도쿄 교진군(현 요미우리 자이언츠)이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프로야구(NPB)가 태동했다.일본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고 패망한 뒤 크게 침체했다. 원폭 공격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시민을 위해 1945년 시민구단 히로시마도요 카프가 창단했다.이후 일본은 조금씩, 조용히 사회‧경제적 힘을 키웠다. 1960년대 ‘아시아의 홈런왕’ 오 사다하루와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가 이끄는 ‘ON 타선’은 요미우리, 아니 일본의 자부심이었다.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라는 야구가 일본의 국기(國技)가 된 배경이다.일본은 특유의 장인정신을 야구에 녹였다. 집요할 만큼의 정확하고, 세밀했다.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약점을 파고드는 일본 야구는 한국보다 늘 앞섰다. 1990년대 후반 노모 히데오, 2000년 초반 스즈키 이치로가 MLB에 진출하면서 일본은 더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일본 톱클래스 선수들은 미국에서도 통한다는 신뢰가 생겼다. 급기야 2006년 초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09년 WBC에서 일본이 우승하자 그들은 세계 제일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일본 내에서 퍼진 메아리였다. 2013년과 2017년 WBC에서 일본은 4강까지만 갔다.제5회 WBC에서 일본은 당시와 또 다르다. 이치로와 마쓰자케 다이스케 등 기교파 선수들이 주축이었던 과거와 달리 2023년 ‘사무라이 재팬’은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 2006년, 2009년과 달리 한국과 접전을 벌이지도 않았고 4전 전승으로 8강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오타니 쇼헤이, 사사키 로키 등의 파워는 경이적이었다. 이미 MLB에서 100년 묵은 루스의 투‧타 여러 기록을 깨버린 오타니는 2021년 투수로서 9승, 타자로서 46홈런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MVP)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홈런이 34개로 줄었지만, 투수로서 15승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했다. MLB에서도 최고 스타가 된 오타니도 최고의 컨디션으로 WBC에 참가하고 있다.22세 사사키 로키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른 패스트볼(시속 164㎞)을 던지는 투수로 성장했다. 지난 11일 체코전 피칭을 보면 당장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어 보였다.힘센 거인만 있는 게 아니다.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일본 특유의 정확하고 현란한 피칭을 뽐냈다. 일본 최고의 외야수 요시다 마사타카는 작은 체격(1m73㎝)인데도 지난겨울 보스턴 레드삭스와 5년 9000만 달러(1200억원)에 계약했다. 정교함을 바탕으로 한 파워의 향상이 2023년 일본 대표팀을 진짜 ‘세계 제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마쓰다로의 유훈을 품은 요미우리의 홈구장 도쿄돔은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 불린다. 거기서 치른 WBC 1라운드 4경기에서 일본 대표팀은 강력한 파워를 보여줬다. 지난 10일 일본에 4-13으로 대패한 한국에는 치욕의 무대이기도 하다.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 스타이자 MLB에서도 활약한 후쿠도메 고스케(TBS 해설위원)는 12일 기자를 만나 “최근 일본 선수들의 힘과 체격이 향상됐다. 탄탄한 기본기 위에서 웨이트트레이닝과 식단 관리를 통해 파워를 만들었다. 이제 일본은 미국의 경쟁 상대가 된 것 같다. (일본) 후배들이 정말 잘하는 것 같다”고 자랑스러워했다.일본 고시엔 대회에 참가하는 고교 야구팀만 해도 3600여 개에 이른다. 한 세기 전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마쓰다로의 꿈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일본 선수들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일본 야구가 미국에서도 통한다”는 평가에 만족하지 않고 ‘힘으로 미국과 맞서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뛰어난 타격을 보여준 이정후도 “(일본전에서)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공을 쳤다. 확실히 KBO리그에서는 보지 못했던 공이었다”고 토로했다. 일본 야구가 미국 야구를 추격하는 사이 한국 야구는 그만큼 뒤처졌다. 아니, 한참 뒷걸음질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스포츠1팀장 2023.03.1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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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미국 따라가다 태평양에서 길 잃은 한국 야구

지난 10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한일전을 중계한 사사키 가즈히로 일본 TBS 해설위원은 “한국 대표팀이 예전과 달라졌다. 과거 한국 타선은 상당한 압박감을 줬다”고 말했다. 일본야구에서 ‘대마신(大魔神)’으로 불리며 선동열과 구원왕 경쟁을 펼쳤던 그는 2000년 메이저리그(MLB)로 가서 4년간 129세이브를 따낸 전설적인 투수였다.사사키에게 2008년 베이징 올림픽(금메달), 2009년 WBC(준우승)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이종욱‧이용규‧정근우 등 끈질기고 투혼 넘치는 테이블세터와 이승엽‧이대호‧김태균 등 파워와 테크닉을 겸비한 중심타선이 조화를 이뤘다. 하위타선에는 수비와 주루가 뛰어난 선수들이 배치됐다.사사키가 본 2023년 한국 라인업은 과거와 달랐다. 토니 에드먼, 김하성 등 MLB 선수들이 1, 2번을 맡았다. 박병호‧김현수 등 과거 빅리그에서 뛴 이들이 중심타선을 구성했다. 타선의 무게감은 과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그러나 한국 타선은 중심타자가 9명인 것 같았다. 어려울 때 활로를 뚫고, 까다로운 상대에게 일격을 가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모두가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크게 스윙했다. 그들의 힘과 기술은 일본 투수들을 당해내지 못했다.마운드에서 느껴진 차이도 비슷했다. 일본전 구원 투수로 나선 곽빈‧정철원‧김원중‧이의리‧정우영 등은 시속 150㎞ 안팎의 빠른 공을 던졌다. 그러나 제구가 엉망이었다.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나는 볼을 던지다가, 억지로 밀어 넣은 공은 난타당했다. 한국은 10여 년 전부터 MLB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했다. 세이버매트릭스(야구를 통계‧수학적 방법으로 분석)를 야구의 절대 진리로 받아들였다. 빅리그의 파워와 스피드를 동경하면서 근육을 키우기에 열중했다. 라이벌 일본은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과거 KBO리그 각 팀에 몇 명씩 있었던 일본인 코치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그렇게 한국 야구는 태평양을 가로질렀다.그 사이 경고음이 여러 번 울렸다. KBO리그의 질적 저하, 특히 기술적 퇴보가 지적됐다. 국제경쟁력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었으나, ‘야구 월드컵’이라는 WBC는 2017년 4회 대회 이후 5년 동안 열리지 않았다.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4위)에서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확인했다.다시 만난 ‘사무라이 재팬’은 거인이 되어 있었다. 오타니 쇼헤이(1m93㎝)와 다르빗슈 유(196㎝) 등 빅리거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리그의 젊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고 시속 164㎞를 던지는 사사키 로키(1m90㎝)와 지난해 56홈런을 폭발한 무라카미 무네타카(1m88㎝) 등을 보면 힘의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다. 2009년 WBC에서 일본은 봉중근‧이대호‧김태균의 덩치를 보고 경외감을 느꼈다.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이 주축이었던 일본과 한국은 결이 다른 팀이었다. 당시 일본은 한국과 3승 2패로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우승했다.현재 일본 야구도 그때와 달라졌다. 일본 관계자는 “2000년 전후로 일본의 각 팀 에이스는 신기에 가까운 제구를 자랑했다. 시속 145㎞ 안팎의 공으로 보더라인을 농락했다”며 “이후 일본도 MLB 훈련‧육성법을 도입하면서 힘이 붙었다. 공 한두 개(7~15㎝) 정도 존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파워로 타자를 이겨내고 있다. 탄탄한 기본기 위에 파워를 키웠으니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한‧일 야구의 격차는 바로 여기서 더 벌어졌다. 투수의 컨트롤, 타자의 콘택트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KBO리그 내에서 파워 경쟁만 한 결과다. 류현진이 MLB에서 톱클래스가 된 건 정교한 제구 덕분이었다. 우리는 그걸 간과했다. 힘만 키우려 했다. KBO리그는 MLB와 비슷한 기술과 특성을 가진 ‘하위 버전’이 된 것이다. “한국 야구가 달라졌다”는 사사키의 말은 이런 뜻으로 이해된다.한국 타자들 중 가장 좋은 타구를 날린 이정후도 “야구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분한 것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보는 공들을 쳐서 좋았다. 확실히 일본 투수들의 공이 좋았다. 리그에서는 보지 못하던 공”이라고 말했다.한국은 일본전에 투수 10명을 쏟아붓고도 4-13으로 완패했다.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라이벌전의 결과는 외신 기자들에게도 놀라웠던 모양이다. MLB닷컴 기자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이강철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젊은 불펜 투수들에게 일본전 이후 전달한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 감독은 “이 선수들이 성장해서 앞으로 한국 야구를 이끌어가야 한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그릴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한국 야구는 안일했다. 베이징과 WBC 특수에 취해, 도전하고 연구하는 걸 소홀히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10개 구단도 MLB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겨울에는 수십억 원의 대형 계약이 심심치 않게 터졌다. 그러는 동안 하체(기본기)가 부실한데 상체(근육)만 커진, 언밸런스한 야구가 KBO리그에 자리 잡았다.한국 야구의 ‘참사’는 도쿄에서 처음 일어난 게 아니다.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프로 정예팀은 완패했다. 그때마다 위기를 기회 삼아 다시 일어났다. 한국 야구는 예전처럼 빠르게 반등할 수 있을까. 그건 자신할 수 없다. 그때보다 기본기가 더 부실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해볼만 하다며 자만한 채 미국으로 향했던 한국 야구가 갈 길은 어디일까. 리그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태평양에서 길을 잃으면 정박할 곳도 없다.도쿄(일본)=스포츠1팀장 2023.03.1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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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이강철은 왜 카이사르를 소환했나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이 5일 일본 오사카에 있는 마이시마 버팔로스 스타디움에서 가볍게 훈련했다. 일본에의 첫 공식 일정이었다. 대표팀은 여기서 두 차례 평가전을 벌인 뒤 도쿄로 이동,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를 치른다. 오는 9일 호주전이 첫 경기다.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진행된 대표팀 캠프 분위기는 밝고 부드러웠다. 이강철 감독은 소속팀 KT 위즈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수들과 친근하게 소통했다. 그러나 결전지에 도착한 뒤로는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어느새 전쟁을 앞둔 장수 같아졌다.이강철 감독의 의지는 한국야구위원회(KBO) 보도자료에 담긴 출사표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라운드의 전사가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감독은 고대 로마 시대의 대정치가이자 장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44)의 명연설을 인용했다.카이사르의 저서인 『갈리아 전기』에 따르면, 그는 거대하고 야만적인 게르만족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이렇게 역설했다. “게르만은 우리 선조가 쳐부순 바로 그 민족이다. 우리에게는 게르만족을 전멸시킬 수 있는 뛰어난 전략이 있다.”맞서 본 적 없는 거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자는 독려였다. 우리는 이미 그들을 이긴 적이 있다는 역설이었다.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을 이뤄낸 선배들처럼 2023년 대표팀도 국민에게 명승부를 선물할 수 있다고 응원한 거다. 이강철 감독은 “우리 유니폼에는 ‘승리의 경험’이 새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표팀에는 김광현‧양현종‧김현수 등을 제외하면 한국 야구의 황금기를 경험한 선수가 거의 없다. 처음 대표팀에 뽑힌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팀은 오는 10일 메이저리그(MLB) 스타들이 즐비한 일본을 상대한다. 젊은 한국 선수들에게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같은 투수는 게르만족 같은 공포일 것이다. 2라운드에 진출한다면 만날 것으로 보이는 쿠바‧네덜란드의 전력도 한국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이강철 감독이 출국에 앞서 출사표를 낸 이유는, 갈리아 전쟁을 앞둔 카이사르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대를 만나기 전에 공포에 먼저 지는 걸 막고 싶은 것이다. 2013년과 2017년 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 통과에도 실패했다. 이 감독은 가까운 패배의 기록을 묻어버리고, 찬란한 승리의 기억을 소환했다.큰 대회를 앞두고, 특히 전력상 언더독일 경우에는 리더의 한마디가 흐름을 바꿔놓는 경우가 많다. 2006년과 2009년 WBC를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이 짧은 말로 긴 여운을 만들 줄 알았다.김인식 감독은 2009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나라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고 일갈했다. 당시 대표팀 코치진과 선수 구성이 어려웠던 상황을 통타한 거다. 당시 프로팀 감독들은 대표팀 코치로 오길 꺼렸고,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불참했다. 흩어진 이기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 김인식 감독의 말처럼 강렬한 수사법은 없었다.2009년 WBC 대표팀은 예상을 깨고 또다시 3라운드(4강)에 진출했다. 이때 김인식 감독이 “위대한 도전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결승 진출 또는 우승을 목표로 내건 것보다 더 커 보였다. 대표팀은 결승전 연장 승부 끝에 일본에 패했으나, 그 여정은 충분히 위대했다.2009년 이후 대표팀은 수성에 실패했다. 가장 최근에는 도쿄 올림픽 노메달(4위)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이제 지켜낼 성이 없다. 다시 도전하는 입장이다.이강철 감독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야구가 자꾸 위기라고 하는데, 난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잘할 겁니다.”지난 10여 년 동안 프로팀 감독은 대표팀을 맡기 꺼렸다. 전력은 예전만큼 좋지 않은데 책임과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이강철 감독은 손익 계산하지 않고 “정말 영광”이라며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선수들과 자기 자신을 다잡기 위해 격문에 가까운 출사표를 냈다. 이강철 감독의 기대대로 2023년 WBC는 한국 야구의 새 기회일 수 있다. 잘못하면 더 큰 위기일 수도 있다. 이제 카이사르의 또 다른 명언처럼 “주사위는 던져졌다”.오사카=김식 기자 2023.03.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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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엔드게임] 용진이형은 왜 고객과 싸우는가

한국인 중 이마트와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은 몇 명일까. 범위를 넓혀 신세계백화점과 SSG닷컴을 이용하는 고객은 얼마나 될까. 국내 경제활동인구 2900만 명 중 대부분이 신세계그룹 고객일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SSG 랜더스 구단주가 된 건 유통‧소비재 기업 오너로서 합당한 경영 선택이었다. 한국시리즈(KS) 우승을 네 차례(2007, 2008, 2010, 2018년)나 해낸 SK 와이번스를 인수한 SSG 야구단은 2년 만인 올해 정규시즌과 KS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2022년 선수 총연봉(상위 40위 기준, 외국인‧신인 제외)으로 248억원을 쓴 ‘값진 우승’이었다. 11월 8일 SSG의 우승이 확정되자 정용진 구단주는 마이크를 잡고 관중석을 향해 “여러분 덕분에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2022년 홈(인천) 관중 1위다. 모든 영광을 팬들께 돌리겠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신세계그룹 19개 계열사는 역대급 할인 행사(쓱세일)를 진행하며 야구단 우승을 자축했다.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도 SSG는 주인공이었다. 우승 여운이 가시지 않은 지난 15~17일 SSG 일부 팬들은 구단 운영에 반대하는 트럭시위를 벌였다. 우승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다른 팀보다 2~4배 연봉을 지급하는 구단을 비난하는 건 전례가 없다. 시위에 나선 팬들은 ‘베테랑 단장(류선규) 내쫓고 비선실세 바지단장 앉히는 정용진 구단주’를 비판하고 있다. SSG가 지난 14일 김성용 퓨처스(2군) R&D 센터장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한 게 도화선이었다. 24년 동안 고교야구 감독을 하다가 구단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단장으로 승격된 걸 팬들은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의혹의 핵심은 정용진 구단주와 친분이 있는 중소기업 대표 A가 영향력을 행사해 김성용 단장을 임명했다는 것이다. 공식 직책이 없는 A가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AD카드를 받고 야구장을 곳곳을 다니며 선수들과 친분을 쌓은 건 사실이다. 이에 올여름부터 ‘김성용 단장설’이 돌았는데 그게 현실화하자 A가 ‘비선실세’라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민경삼 SSG 랜더스 대표는 14일 입장문을 냈다. 민 대표는 입장문에서 “류선규 단장은 팀 재건의 목표를 이뤄 소임을 다했다는 완강한 뜻(사의)을 밝혔다”면서 “구단은 짧은 시간에 인수 및 창단을 했다. 이에 야구계 많은 분들에게 자문을 받고 운영에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류선규 전 단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사퇴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SSG 운영진에는 와이번스의 네 차례 우승에 공헌한 직원들이 대부분 남아있다. 시스템을 충분히 갖춘 팀이 내놓은 해명으로는 군색하다. 여기까지는 프로구단이 겪을 수 있는 진통이다. 정용진 구단주가 이 논란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커졌다. 그는 15일 자신의 SNS에 “여기는 개인적인 공간임. 소통이라고 착각하지 말기를 바람.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포스팅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길 바람. 영원히 안 보이게 해드리겠음”이라고 썼다. 팬들이 SNS에 비선실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자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팬들의 불만이 더 커지자 정용진 구단주는 SNS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소통이 아님.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는 비선실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 실체를 증명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야구단은 사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진이 인사권을 행사한다. 임원의 교체는 2년 전 SSG가 구단을 인수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쓰는 비선실세라는 용어를 SSG 사태에 갖다 붙이는 건 부적절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경영 투명성에 관한 문제라면 얘기가 다르다. A씨는 한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대부분 인정(인사개입은 인정하지 않았다)했다. 게다가 A는 SSG 공식 행사의 내빈으로 여러 번 등장했다. 전혀 비밀스럽지 않았다. 정 구단주 말대로라면 “A는 비선실세가 아니다”라는 '증명의 책임'이 SSG에도 있다. 논란의 본질은 정용진 구단주가 고객과 대립한다는 점이다. SNS를 통해 팬들과 스스럼없이 교감해온 그가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불가능한 걸 요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편을 갈랐다. 정용진 구단주는 1년 전 SNS에 멸공(공산주의를 멸함)이라는 화두를 여러 차례 던졌다. 이 논란은 대선을 앞둔 정치권으로 확대됐다. 그의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 진영에서는 신세계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번에는 비선실세 사태에 편을 가르고 싸운다. SNS에서 어떤 말을 하든 그건 표현의 자유다. 정용진 구단주의 경우는 그 무게가 다르다. 자기자신을 통한 ‘스타마케팅’으로 신세계그룹의 이미지를 만드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 사태의 파장은 작지 않다. 기업인이 정치적 발언을 삼가고, 대외 메시지를 치밀하게 관리하는 이유는 더 많은 고객을 끌어안기 위해서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뿐 아니라 중도층과 반대진영의 지갑을 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 이익의 극대화에는 좌우가 없다. 지난주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하면서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인수에 따른 리스크를 거론했다. 골드만삭스는 테슬라 브랜드가 더욱 양극화(more polarizing)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싼 전기차 생산업체인 테슬라에도 당파적 이미지는 악영향을 끼친다. 하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필수소비재를 파는 신세계그룹으로서는 고객과 갈등하는 모습이 더 치명적이다. 머스크 리스크를 보며 재계에서 ‘용진이형 리스크’를 걱정하는 이유다. 야구단 우승과 정용진 구단주 행보에 열광했던 팬들(고객)이 한파를 뚫고 거리로 나왔다. ‘용진이형’이라 불렀던 구단주가 “소통이라 착각하지 말라”고 했을 때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SSG 사태를 보면 구단주가 자신들과 소통한다고 믿은 게 정말 착각이었던 것 같다. 스포츠1팀장 2022.12.19 07:40
야구

[김식의 엔드게임] 밀실이 만든 리더는 밀실에 갇힌다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수장 정지택(71) 총재가 갑작스럽게 사임했다. KBO 관계자는 "정 총재가 지난해 말부터 스스로 물러날 뜻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8일 전했다. 정지택 총재는 KBO 사무국을 통해 발표한 퇴임사에서 "지난해 KBO리그는 코로나19로 관중 입장이 제한을 받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일부 선수의 일탈과 도쿄 올림픽에서의 저조한 실적으로 많은 야구팬의 실망과 공분을 초래했다"며 "이런 문제들은 표면에 나타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야구팬이 '프로야구가 되살아나고 국민에게서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철저한 반성과 이에 걸맞은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정지택 총재는 "프로야구 개혁을 주도할 총재도 새로운 인물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총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KBO 규약 11조에 따르면 총재의 임기는 3년이다. 지난해 1월 5일 취임한 정지택 총재는 13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KBO 규약 14조는 총재가 사임, 해임 등의 사유로 궐위되거나 질병, 사고 등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1개월 이내에 보궐선거를 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신임 총재를 선출하는 절차와 같다. KBO 총재 선출은 10개 구단 대표이사로 구성된 이사회가 재적이사 4분의 3이상의 동의를 받아 추천, 총회가 선출하게 돼 있다. 총회는 각 팀의 구단주(또는 구단주대행) 모임이다. 여기서 4분의 3 이상 동의를 얻으면 총재로 선출된다. 전임 총재들처럼 정지택 총재도 이런 절차를 거쳐 선임됐다. 정지택 총재가 1년 만에 물러난 것에서 볼 수 있듯, KBO 총재의 리더십은 그리 강력하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이유가 총재의 태생 자체가 '밀실 행정'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지난 2020년 10월 13일 이사회에서 임기 만료를 앞둔 정운찬 KBO 총재가 연임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이 자리에서 정지택 총재를 추대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구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KBO리그를 이끄는 총재를 회원사가 선출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각 구단은 리그의 이익을 추구하고, 구단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리더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다만 정지택 총재 사임을 계기로 총재 선출 시스템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프로야구는 한국 스포츠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종목이다. 회원사는 10개이지만 다른 비즈니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객과 동업자(아마추어 야구, 광고주, 중계사, 미디어 등)가 있다. 그러나 KBO 총재는 사실상 '밀실'에서 만들어진다. 10개 구단, 그중에서도 일부 구단이 추천한 총재는 강한 리더십을 갖기 어렵다. 회원사 외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검증을 받거나 지지를 받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정지택 총재의 리더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지난해 여름 '코로나19 술판 논란'이었다. 당시 리그 일정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정지택 총재가 특정 구단을 편드는 거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진의와 상관없이 그는 "공정하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정지택 총재는 두산 베어스 구단주 대행 출신이다. 또 일부 구단의 지지로 총재에 올랐다. 그러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구단의 공격을 받았다. 태생적으로 총재는 자신을 만든 이사회라는 '밀실'에 갇히기 마련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낙하산으로 내려온 총재가 과연 얼마나 힘을 가질 수 있겠느냐. 이런 제도에서는 누가 총재가 되어도 리그를 이끌기 어려울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KBO리그가 팬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만큼, KBO 총재 리더십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밀실에서 정해지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리더가 아니라, 팬들도 납득할 만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KBO 총재는 시대정신에 따라 정치인이 맡을 수도, CEO형 경영인이 적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능력뿐 아니라 절차적인 정당성 확보다. 그래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KBO 이사회로부터 독립된 위원회가 실무를 주도할 수도 있겠고, 공모를 통하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밀실에서 나와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KBO리그 규약 14조에는 '보궐선거'라는 표현이 있다. 관행적으로 짬짜미하듯 총재를 뽑아 왔지만, 규약에는 분명히 선거라는 개념이 있다. 이에 따라 총재를 선출할 권리를 더 많은 구성원에게 줄 필요가 있다. 대한체육회 산하 각 경기 단체들도 선거를 통해 단체장을 뽑는다. 물론 사단법인의 특수성을 체육회와 똑같이 비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모가 몇 배나 큰 KBO의 리더는 더 엄정한 과정을 거쳐 세워지는 게 맞다. 밀실에 갇힌 리더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를 야구팬들은 충분히 봐왔다. 스포츠콘텐트 팀장 2022.02.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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