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다시 태어나면, 양궁 절대 안 합니다" 모든 걸 쏟아부은 기보배, 27년 선수 생활 '마침표'
“활시위는 제가 당겼지만, 과녁의 명중은 모든 분들의 덕분이었습니다.”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 김보배(36)가 27년간 들었던 활을 내려놓는다. 기보배는 국민들과 스승, 선·후배,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한편 양궁의 생활체육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시 태어나도 양궁을 하겠냐는 질문엔 “절대 안 한다”며 웃어 보였다.기보배는 1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997년 처음 활을 잡고 27년 동안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기자회견문을 읽는 도중 눈물을 쏟기도 했다. 특히 가족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애쓰는 모습이었다.기보배는 “지금까지 이뤄낸 모든 성과들은 국민 여러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승님과 선·후배, 동료들과 대한양궁협회, 무엇보다 늘 헌신과 봉사로 힘을 줬던 가족들에게도 큰 감사를 전한다. 과녁의 명중은 모든 분들의 덕분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했다.그는 “지난해 힘들게 태극마크를 달았고 파리 올림픽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과연 리우나 런던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후배들이 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이 잘 해낼 거라고 믿고 물러 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을 돌아본 기보배는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으로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인전 결승을 꼽았다. 그는 “런던 개인전 결승, 마지막 슛오프 한 발을 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힘든 과정이고 힘든 순간이었지만 금메달로 성과가 잘 이어졌다”며 “제 양궁 인생의 큰 반환점이 된 화살이었다”고 했다.반대로 기보배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순간이 있다면 장혜진과의 2016년 리우 올림픽 4강이었다. 아무래도 2연패를 기대하는 분들도 많았고, 저도 2연패에 대한 꿈이 컸다. 그 문턱에서 제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고 웃어 보였다.선수 시절 그는 올림픽 금메달 2개 등 국내·외 대회에서 따낸 금메달만 94개, 여기에 은메달 50개와 동메달 43개. 그야말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기보배는 “다시 태어나면 양궁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기량이 좋은 선수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건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긴장감 속에 살아가야 되는 게 너무 힘들었고, 항상 무한경쟁 속에서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도 싫었다. 대신 양궁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했다.기자회견 내내 기보배의 ‘눈물 포인트’는 가족들이었다. 그는 남편 성민수 씨와 딸 제인양 등 가족들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기보배는 “지난 2018년 임신 2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비를 맞으며 활시위를 당기던 때가 생각난다. 종별선수권대회였는데 1등을 했다. 출산 이후에 출전했던 2021년 올림픽제패기념 회장기대회에서도 1등을 했다. 그때 받은 국내대회 메달이 올림픽만큼이나 값진 메달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이어 “하지만 양궁선수를 엄마로 둔 딸은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에 엄마의 곁을 떠나서 지내야만 했다. 주말에만 만나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펑펑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눈물을 훔쳤다. 기보배는 “고사리 같은 어린 딸의 손을 뿌리치고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의 먹먹한 기억은 지금도 제 가슴을 때린다. 남편은 제 훈련을 위해 육아휴직을 ㅁ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족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저는 지난해 국가대표에도 선발되는 등 은퇴하는 순간까지 최고의 기량을 지켜온 것 같다. 이제는 아이의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도 잊지 않겠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내도록 하겠다”고 했다.
선수 은퇴 후 여정도 밑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아직 계획이 구체화되진 않았으나, 양궁 종목이 더 널리 알려져 국민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지도자의 길 등 엘리트 체육보다는 생활 체육에 대한 목표를 안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는 2년 전 체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미래를 위한 준비도 병행해 왔다.기보배는 “그간 받은 넘치는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을 이제 여러분께 돌려드리고 싶다. 그게 제가 남은 여생을 살아가는 길이고, 저를 응원해 준 모든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한민국 양궁의 생활체육화에 앞장서고 싶다. 생활체육 발전에 도움이 되고, 양궁의 우수함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어떠한 일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우리 양궁이 항상 올림픽 시즌에만 반짝 관심을 받는 게 아쉬움이 남았다. 기회가 닿는다면 누구나 양궁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양궁이 올림픽에서만 사랑받는 운동이 아닌 일상에서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할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양궁의 저변 확대가 많이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양궁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차근차근 하나씩, 많은 조언을 얻어가면서 준비해 보도록 하겠다”고 했다.자신처럼 ‘엄마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 이 길을 계획 중인 선수들에게도 응원의 말을 더했다. 그는 “시대가 많이 바뀐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언니들을 보면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를 했다”며 “국내 대회에 나가면 나이가 가장 많았는데, 선수들이 저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한 경기 한 경기마다 허투루 뛰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엄마로서 운동하는 게 팀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후배들한테 귀감이 될 수도 있고, 발전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기보배는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인전·단체전 2관왕, 2016년 리우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혼성단체전 2관왕 등도 달성했다. 이날 기보배는 선수 생활 27년을 기념해 순금 27돈으로 제작한 금메달을 가족들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고, 대한양궁협회가 준비한 꽃다발 등도 받았다.다음은 기보배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 은퇴한 선수들은 아쉬운 점들을 가지고 있더라. 선수 생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돌아보자면.“항상 매 순간 모든 경기에 임했을 때 마음가짐은 '내 안에 모든 걸 쏟아내라. 후회하지 않는 땀'이었다. 많은 대회에 참가했지만 큰 아쉬움은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장혜진과 격돌했던 지난 리우 올림픽 4강이었다. 아무래도 2연패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었고, 저도 꿈이 컸기 때문에 그 문턱에서 제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반대로 가장 영광스러운 한 장면을 꼽는다면.“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런던 올림픽 마지막 슛오프 한 발을 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제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걸렸던 한 발이었기 때문이다. 힘든 과정이고 힘든 순간이었지만, 금메달로 성과가 잘 이어졌다. 제 양궁 인생에 있어서 큰 반환점이 된 화살이다. 그때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도 통과해서 이번 파리 올림픽도 도전할 줄 알았다. 최고의 순간에 물러나겠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어떻게 은퇴를 결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지난 2012년과 2016년, 두 번의 올림픽을 나갔다. 양궁에서 올림픽을 나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고충과 힘듦이 동반된다. 물론 지난해 힘들게 태극마크를 달았고, 사실 올림픽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제가 과연 리우 때나 런던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제 모교 후배이기도 한 안산 선수가 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제 뒤를 이어 줄 후배들을 생각하면서 잘 해낼 거라고 믿고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파리 올림픽까지도 생각을 해봤지만, 사실 대한민국 양궁 대표로 선발되는 것조차도 어려운 문턱이다. 여기에 만족하고 활을 내려놔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기자회견문을 통해 양궁의 생활체육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말을 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게 있나.“대학교 강의를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양궁을 알리고 있다. 유소년이나 꿈나무들이 기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일반인과 꿈나무 학생들이 양궁을 즐겁게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어보고 싶은 계획이 있다.”- 2세 선수들의 활약이 많다. 딸이 양궁이나 다른 운동을 한다고 하면 시킬 생각이 있나.“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동안 양궁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종목은 절대 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전국체전을 마치고 지난해 10월부터 다섯 달 가까이 지내봤다. 딸이 나 못지않게 승부욕이 많은 것 같다(웃음). 뭘 해도 잘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하고 싶어 한다면, 양궁이든 다른 종목이든 시켜보고 싶은 의향이 있다.”- 곧 파리 올림픽이 다가온다. 올림픽에서 활약하게 될 후배들에게 조언을 남긴다면.“파리올림픽에서 단체전 10연패 도전을 앞두고 있다. 제가 7연패, 8연패를 각각 달성했다. 중압감과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8연패를 달성하고 나서 9연패에 도전하는 우리 후배들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나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했던 후배들을 모습을 보면서 이번 올림픽 준비만 잘한다면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뒤에서 후배들 묵묵하게 응원하고 있겠다. 올림픽에서 해설위원으로도 생생하게 소식을 전해드리겠다.”- 요즘 엄마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보배 선수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육아도, 공부도 했다. 엄마 선수로서 살아간 게 어떤 의미인가. 그런 후배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시대가 많이 바뀐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언니들을 보면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들을 했다. 아마 소속팀에서도 경기를 뛰면서 육아와 공부를 하는 선수를 좋아하진 않을 거다. 힘든 만큼 보람도 있는 것 같다. 제가 국내 대회에 나가면 나이가 가장 많았는데, 선수들이 저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한 경기 한 경기마다 허투루 뛰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저를 비롯해 다른 종목에서도 엄마로서 운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팀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후배들한테 귀감이 될 수 있는 선수,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 선수들 입장에선 경쟁자의 은퇴다. 은퇴를 알렸을 때 기뻐했던 후배가 있나.“광주시청 선수들은 많은 아쉬움을 전했다. 모교에서 선수하고 있는 후배들, 최미선 선수 등도 그랬다. 제가 졸업했다고 해서 학교에 발길을 끊은 게 아니었다. 학교를 친정처럼 찾아갔다. 띠동갑 넘게 차이나는 후배들에게도 정감 있게 대했던 게 후배들이 친근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기뻐한 후배들보다 축하한다, 고생했다는 말들을 많이 해줬다.”- 다시 태어나도 양궁을 할 생각인가.“다시 태어나면, 양궁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기량이 좋은 선수들이 너무 많다. 그 안에서 살아남는 거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긴장감 속에 살아가야 되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항상 무한경쟁 속에서 내 목표를 꼭 이뤄야 한다는 부담감도 싫었다. 모든 것이 대한민국 양궁 선수로 살아가는 건 힘든 것 같다. 대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양궁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대로일 거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에 대한 꿈은 없나.“엘리트 체육보다 생활 체육에 더 관심이 많다. 우선은 우리 양궁이 항상 올림픽 시즌에만 반짝 관심을 받는 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생활 체육에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실천하고 싶다.”- 생활 체육에 대한 꿈을 구체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은. ‘기보배 양궁클럽’ 같은 것인지.“기보배 양궁클럽, 기보배 아카데미 이런 것도 생각했었다. 그런 것들을 해보려고 생각을 해보니 아직까지 양궁의 저변 확대가 많이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양궁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차근차근 하나씩, 많은 조언을 얻어가면서 준비해 보도록 하겠다.”프레스센터=김명석 기자
2024.02.14 1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