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소리 “‘엄마’ 애순, 저도 녹아있죠…전 인류 공감할 ‘폭싹’” [IS인터뷰]
“보통은 인물의 한때를 연기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파노라마처럼 일생이 떠오르니, 정말 끝이구나. 마치 임종을 앞둔 것 같아요. (웃음).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애순으로 살아본 소감’을 첫 질문으로 받은 문소리는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쉬이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작품이 그린 애순의 70년 인생 중에서도 가을과 겨울에 해당하는 중년을 연기한 그는 ‘수만 날이 봄이었다’는 대사처럼 깊이 곱씹듯 이 같은 소회를 밝혔다.‘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에서 태어난 애순과 관식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낸 작품이다. 극중 문소리는 중년 애순 역으로 청년기를 연기한 아이유와 2인 1역을 소화했다. 문소리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촬영 기간도 꽤 길었고 그렇게 노역까지 해본 것도 처음이었다”며 “대본을 처음 받자마자 너무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제가 연기한 30대 이후 애순은 자식을 위해서 늘 최선을 다하고, 살림에 좌판도 하고, 자식 때문에 동동거리는 평범한 엄마예요. 평소 대본을 볼 땐 캐릭터가 어떤 인물이지를 중점으로 보는 편인데 이 작품은 읽고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어요. 임상춘 작가님과 김원석 감독님에 대한 믿음도 컸고요.” 문소리는 지난해 넷플릭스 ‘지옥’ 시즌2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마음 속에 문학소녀를 간직한 애순을 사랑스럽게 그렸다. 이는 ‘정년이’에서 보여준 심지 굳은 모성과도 다른 결이었다. 문소리는 “어떤 분은 제 강한 캐릭터를 봐서 이번엔 딸한테 쩔쩔매는 모습이 낯설다고 하시는가 하면, 저를 가까이서 본 친구들은 평소 제 모습이 많이 담겼다고 했다”고 떠올렸다.최근 배우로 인생 2막을 연 이향란의 딸이면서 그 자신도 열네 살 딸을 둔 엄마인 문소리다. “우리 엄마는 어땠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딸 쫓아다니면서 먹이고 잔소리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것 같아요. 물론 애순이가 ‘엄마’ 캐릭터인 건 중요하지 않았죠. 캐릭터가 전문직인 것보다 좋은 작품이 주는 충만감과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거든요.”실제로 딸이 2인 1역을 연기한 아이유의 팬이라고 밝힌 문소리는 그를 ‘존경할 만한 아티스트’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는 “누가 했더라도 자신의 뒤에 이어 하는 사람이 부담스럽겠지만 나이도, 경험도 많은 내가 더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다”면서 “아이유 팬들이 실망할까 걱정도 있었지만 캐스팅 기사가 나자마자 팬들이 좋아했다고 아이유가 전해주기도 했다. 특수 효과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건 이야기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명장면이 셀 수 없이 많다고 애정을 표한 문소리는 남편 관식(박해준)이 함께 등을 두드려주며 이야기를 나누던 신과 대선배 나문희와의 장면을 떠올렸다. 특히 호흡을 맞춘 나문희가 ‘왜 사람들이 문소리 문소리 하는지 알겠네’라는 칭찬을 건넸을 땐 “정말 금메달 딴 것 같은, 서울대 합격한 거 같은 기분”이라며 꿈을 이룬 애순처럼 웃었다.“저보다도 남편이 자꾸 해외 반응이 신기하다며 찾아서 보여줘요. 남미에서 유명한 가수가 노래도 하고 상영회도 했고, 북미에서도 반응이 온다네요. 장르물 아닌 ‘메이드 인 코리아’의 휴먼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전례가 없어서 특이하대요.”남편 장준환 감독의 반응대로 ‘폭싹 속았수다’는 공개 3주 차엔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소리는 “어찌 보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두 인물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이야기’라고 밖에 설명이 안되는데 그래서 지역과 시대 상관없이 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최근 수년 새 넷플릭스 작품으로 글로벌 시청자를 만나 ‘넷플릭스의 장녀’라는 수식어도 단 문소리다. 그는 “맏딸이 되고 싶다”며 “영화 제작 편수가 많이 줄어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생계가 걱정됐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매체 환경의 변화 측면에선 낙관했다.“저는 영화를 필름으로 찍고 멀티플렉스 없던 시절에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의 변화에 발맞춰 따라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요. 참 다행이죠. 앞으로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5.04.09 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