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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FIFA, 심판 배정 그렇게밖에 못합니까?
2022 카타르 월드컵은 경기당 몇 명의 심판이 필요할까? 10명이다. 경기장에서 선수들과 같이 뛰는 주심(referee)과 2명의 부심(assistant referee)외에도 대기 심판(fourth official)과 예비 부심(reserve assistant referee)이 있다.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에도 5명의 심판이 참여한다. 2022 대회는 조별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총 64경기를 소화한다. 따라서 꽤 많은 심판이 이번 월드컵에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5월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 월드컵에 참가하는 심판 129명(주심 36, 부심 69, 비디오 판독심판 24)을 발표했다. 이들은 6개 대륙 축구연맹에서 선발됐다.
표에서 보이듯이 세계축구계를 양분하는 유럽과 남미지역 출신이 전체 심판의 54%를 차지했다. VAR로 한정하면 이들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67%까지 올라간다. 참고로 카타르 월드컵 심판을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7명씩)이다.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이 각각 6명으로 뒤를 잇고 있다. 월드컵 대회의 주심과 부심으로 선출돼도 실제 경기를 맡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AFC의 중국 심판조와, 일본 여성 주심은 어떠한 경기도 배정받지 못했다. CAF의 세네갈 심판조와 르완다 출신의 여성 주심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외에도 CONCACAF의 온두라스+도미니카심판조, CONMEBOL의 페루 심판조, UEFA의 루마니아 심판조에게도 맡겨진 경기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경기 배정을 못 받은 심판들의 조국은 축구 강국이 아니다. 우연의 일치일까? 축구 변방에 속하는 대륙 심판조에게는 조별 예선 경기만 배정됐다. AFC의 이란, 아랍에미리트 심판조는 각각 예선 2경기를 맡았고, 카타르와 호주조는 각각 1경기에만 나설 수 있었다.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듯 CAF 심판조도 AFC 심판조와 똑 같은 방식으로 경기를 배정받았다. AFC, CAF와 OFC 출신 심판들이 주관한 조별 예선 경기 중 전통적 축구 강국들이 격돌한 경기는 단 1경기에 불과했다. 이란 심판조가 휘슬을 분 포르투갈-우루과이전이 바로 그것이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루어지는 16강 전에는 CONCACAF의 미국, 멕시코 심판 등이 3경기를 주관했다. 미국과 멕시코는 4년 후인 2026 월드컵의 공동 개최국이다. 16강전의 나머지 5경기는 남미(3명)와 유럽(2명)이 나눠 가졌다. 8강전의 4경기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스페인, 잉글랜드 심판조가 각각 맡았다. 이렇듯 월드컵 축구도 유럽과 남미 심판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두 지역에서도 특히 축구 강국 출신 심판들이 월드컵의 중요 경기는 거의 다 주관한 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유럽과 남미의 축구 실력이 다른 대륙에 비해 출중하기에, 심판 또한 수준이 높다고 말하며 이를 옹호하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22 월드컵의 대표적인 논란 장면은 주로 이 두 지역의 주심이 주관한 경기에서 나왔다.
8강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 경기를 맡은 스페인 주심은 18개의 엘로 카드를 남발해, 양 팀으로부터 최악의 심판이라는 평을 들었다. 포르투갈과 모로코의 8강전 아르헨티나 주심도 포르투갈 선수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다. “아직도 대회에 남아있는 국가의 심판이 주심을 맡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였다. 이외에 한국과 브라질 경기에서 경기 시작 12분 만에 승부의 향방을 사실상 결정짓는 논란의 페널티 킥을 선사한 프랑스 주심. 자국 리그에서도 원성이 자자한 안소니 테일러 잉글랜드 주심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필자가 칼럼을 작성하고 있는 12일 새벽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준결승전 심판진이 발표됐다. 주부심과 VAR주심이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한다. 쓴웃음이 났다. 아르헨티나는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뜻밖의 패배를 당해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이들의 두 번째 상대는 멕시코였다. 비록 상대전적에서 많이 앞서지만, 아르헨티나는 무조건 이겨야 하는 부담을 갖고 경기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의 주심이 이탈리아의 다니엘 오르사토 심판조였다. 이들은 멕시코에 엘로 카드를 4개 선사했고,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2-0 완승이었다. 그 후 경기가 없었던 이탈리아 심판조는 준결승전에서 다시 한번 아르헨티나 경기를 맡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전통적인 우방 관계다. 리오넬 메시도 이탈리아 혈통이다. 필자는 개막전부터 한국 축구의 오랜 친구인 아르헨티나의 2022 월드컵 우승을 기원했다. 하지만 FIFA가 이렇게 대놓고 특정 국가를 밀어주는 것 같아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결승전 상대로 프랑스를 밀고 있을 FIFA가 또 다른 준결승전에는 어떤 심판을 내세울지 벌써 궁금해진다. 축구 황제 펠레가 말했듯이 분명 “축구는 뷰티풀 게임이다”. 하지만 지구촌의 모든 이들을 사로잡은 이 ‘아름다운 게임’이 ‘공정한 게임’이 되기까지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12.14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