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세계 최강'의 길 걸어온 선배들의 응원…"사선에 서면, 최고라는 생각을"
“한국 선수들, 큰 대회에서 강하잖아요.”세계 최강의 길을 걸어온 대한민국 양궁 ‘레전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응원하고, 유소년 발전 기부금을 기부하는 이벤트 경기를 치르기 위해서다. 선배들은 이달 초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부진을 약으로 삼아 후배들이 아시안게임에서 선전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자신들이 큰 대회에서 강한 면모를 과시했듯, 이번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도 그 길을 따라와 줄 것이라는 바람이 담겼다.1979년 세계선수권 5관왕 김진호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서향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관왕 박성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경모는 3일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 2023’가 열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 특설 경기장을 찾았다. 한국양궁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양궁의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선수들이 한 팀이 돼 이벤트 경기를 진행했는데, 김진호와 서향순은 1980 레전드, 박성현과 박경모는 2000 레전드로 이번 이벤트 경기에 초청받은 것이다.이벤트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레전드들은 아시안게임을 앞둔 후배들에게 한 목소리로 응원의 메시지부터 전했다. 한국 양궁은 오랫동안 세계 최강의 입지를 다졌고, 역대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60개 중 무려 42개를 가져갈 만큼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왔다. 이번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이 선배들의 길을 따라 걸을 차례다.“1986년 은퇴 후 한 번도 활을 안 쏴봤다”며 웃어 보인 김진호는 “지난 세계선수권대회 땐 선수들 모두가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땐 편안하게 하고 잘했으면 좋겠다. 더 즐기면서 여유 있게 했으면 좋겠다. 우리 선수들, 잘할 겁니다”라며 응원을 보냈다. 대표팀 선수들이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혼성 단체전,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 1개씩을 수확하는데 그쳤던 부진을 딛고, 아시안게임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란 기대다.‘팀 김진호’에 맞선 ‘팀 서향순’의 수장으로 나선 서향순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의 아쉬운 성적은 결국 선수들에게 약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향순은 “큰 대회는 한국 선수들이 더 강하다. 선배들이 해온 게 있는 만큼, 우리 선수들도 그래서 더 잘해줄 것 같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 양궁이 잘할 것으로 본다”는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박경모 역시 최근 세계선수권 부진이 오히려 선수들에겐 자극제가 될 것으로 봤다. 그는 “언젠가 한 번 위기는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선수들이 워낙 잘한다. 사선에 섰을 때는 최고라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국 양궁이 세계 최고다. 후배들도 잘 따라가고 있다고 본다”고 독려했다.박성현도 “선수들이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대회에 나섰는지 이해가 된다. 그런 부담감이 결국엔 약이 될 것이다. 선수들 모두 나쁜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쫓기는 입장이었겠지만, 부담 갖지 말고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선배들의 응원에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들도 각오를 다졌다. 리커브 종목에 나서는 김제덕은 “레전드분들과 함께 하게 돼 영광이다. (이번 대회) 8강에서도 탈락해 아쉬움이 있었는데, 아쉬움을 토대로 최고의 모습을 아시안게임에서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안산 역시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경험을 하고, 선배들 조언도 잘 들어서 이번 아시안게임을 잘해보려고 한다. 한국 선수들도 도전하는 입장이다. 당연한 승리라기보다는 그만큼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컴파운드 종목의 김종호는 “길게 말하는 것보다 아시안게임에서 확실한 성과를 보여드리고 싶다. 늘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우리 경기력만 보여준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소채원은 “아시안게임이 다가오고 있는데, 해왔던 대로 대회를 잘 준비해 좋은 결과를 얻어내고 싶다. 단체전 출전과 메달이 이번 대회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
선배들의 응원과 후배들의 선전 다짐 속 레전드·국가대표·유소년대표가 이룬 이벤트 경기는 많은 관중의 응원 속 진행됐다. 모든 공식 경기가 끝난 뒤 치러진 경기였지만,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레전드와 국가대표, 그리고 유소년 양궁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김진호와 박성현, 안산, 김종호에 올해 초등학교 4학년 남자 랭킹 1위인 유소년 양궁선수 이환지 군이 ‘팀 김진호’에, 서향순과 박경모, 김제덕, 소채원,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여자 랭킹 1위 염정민 양이 ‘팀 서향순’에 속했다. 한국양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선수들이 한 팀을 이루는 방식이었다.이벤트 경기는 50m 거리에 1발씩 교대로 발사해 선수당 2발, 팀당 총 10발을 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승팀의 누적 점수에 10만원을 곱해 유소년 발전 기부금으로 대한체육회에 기부하는 이벤트였다. 이벤트 경기는 팀 서향순이 총점 86점으로 승리, 860만원을 팀 서향순 소속 선수들 이름으로 기부했다.
한편 이날 열린 한국양궁대회 결승에선 이우석(코오롱) 정다소미(현대백화점)가 리커브 남·여 챔피언에 올랐다. 이우석은 구대한(청주시청)과의 결승에서 연장 슛아웃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정다소미도 유수정을 7-3으로 제압했다. 이우석과 정다소미 각각 우승상금은 1억원이다.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컴파운드 부문에선 최용희가 김종호(이상 현대제철)를, 오유현(전북도청)이 송윤수(현대모비스)를 각각 꺾고 정상에 올랐다. 앞서 리커브 남자 부문처럼 컴파운드 남자 결승도 슛아웃까지 이어져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컴파운드 부문 우승 상금은 남·여 각각 2000만원씩이다.지난달 31일부터 나흘간 목동 종합운동장과 전쟁기념관 특설경기장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국내 양궁 선수들이 겨루는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로 평가받는다. 지난 2016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19년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로 열렸다. 이번 대회 총상금은 리커브 남·여 각각 1억원을 포함해 총 5억 2000만원에 달했다. 국내 선수들이 최대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최고 수준의 상금을 더해 동기부여와 경기력 향상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대회가 열리고 있다.
용산=김명석 기자
2023.09.04 0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