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보험·재테크
금리 올려, 금리 내려…'관치 금융'에 속 앓는 은행들
금융당국의 노골적인 시장 개입을 두고 '관치 금융' 논란이 뜨겁다. 윤석열 정부 취임 초 '이자 장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며 예·적금 금리를 올리라고 압박하더니, 이번에는 수신금리 인상의 자제를 주문했다. 또 기준금리가 꾸준히 올라 금융소비자의 대출금리 부담이 커지니, 타당한 근거에 기반해 대출금리를 올렸는지 들여다보겠다고 압력을 넣는다. 이어 당국은 은행의 연말 퇴직연금 금리 경쟁도 막았다. 은행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준금리 올리고 여·수신금리 내려라 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1금융은 물론이고 2금융까지 대출금리 추이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과거 기준금리 인상기에도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출금리가 올랐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또 금융당국은 대출금리를 올리기 위해서는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현재로써는 대출금리가 더 오를 요인이 없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는 이를 대출금리 인하 압박으로 보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의 입김은 '수신금리'가 시작이었다. 지난달 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주요 시중은행들은 수신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같은 날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이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 간·업권 내 과당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바로 다음 날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사의 유동성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서 수신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 및 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주문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또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금융공모전 시상식이 끝난 후 "다양한 방식으로 통계를 분석하고 있는데, 과거 금리 상승기에도 이토록 급격하게 (수신)금리를 올린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될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되자, 금융당국은 하나씩 자금 시장을 만지기 시작했다. 당국은 수신금리 인상 자제 이전에도 은행에 은행채 발행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은행 관계자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은행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막혔고, 수신금리를 올려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도 막힌 것과 다름없다"며 "은행 간 은행채 거래가 허용되기는 했지만, 아직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예금금리에 이어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 나선 것이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가계의 이자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명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가계부채는 1870조원을 기록하며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상단은 연 8% 돌파를 눈앞에 뒀으며 신용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 상단은 7%를 넘어섰다. 연이어 퇴직연금 금리도 만지기 시작했다. 연말 퇴직연금 경쟁을 염두해 자제 요청을 주문한 것이다. 한국신용평가 보고서에는 매년 연말 퇴직연금 시장에서 30%의 자금이 이동하는데, 올해는 특히 금리 인상기를 고려할 때 그 규모가 상당히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통상 금융당국은 금융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으나 지금 같은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므로 금융당국이 일부 비난을 받더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당국의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리얼리서치코리아가 지난달 29일부터 3일까지 성인남녀 3800명을 대상으로 ‘금융당국의 은행 예금금리 인상 자제 요청’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47.7%, '부정적'이 35.1%였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어떻게든 불안을 줄여보려는 입장인 금융당국의 시장개입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은행, 할 말 많아도 눈치만 금융당국의 금리 결정 개입에 '관치 금융'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더군다나 시장 자율성을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여서 금융권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은행의 '이자 장사'를 비판하며 수신금리를 올리라고 압박하던 정부가 이번에는 수신금리를 올리지 말라니, 은행들은 당국과 고객에 각각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실제로 한 은행에서는 적금 상품의 우대금리 이벤트와 관련해 홍보 계획을 했다가 접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이벤트성 우대금리를 홍보하려다가 접었다. 내부 분위기가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는 "시장이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기본적인 원리인데, 이를 거스르라는 것"이라며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적고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대출금리 오름세에 대해서도 은행은 할 말이 있다. 금융당국이 지적한 급격한 대출금리 상승세는 미국의 기준금리 급등에 레고랜드 사태 등 국내 채권 시장의 불안정성이 합쳐진 결과가 반영된 수치라고 해명한다. 고의로 대출금리를 올린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또 과거 금리 인상기 당시 대출금리 상승세와 비교하겠다는 당국의 모니터링 취지에 대해서도 불만이 나온다. 현재 시장의 자금경색 상황과 당국의 은행채 발행 자제 요청, 수신 상품으로 자금 모으게 되면서 대출금리가 상승하게 된 흐름을 과거와 단순히 비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에 취약 차주를 지원하는 방안을 더 내놓으라는 압박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대출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담당 부서에 매일 확인하고 있는데, 아무런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간 은행이 금리 인상 전 선반영해 예금 금리를 올려왔는데, 내년에 기준금리가 한 차례 더 인상되는데도 당국의 스탠스가 현재와 같을 경우 금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감이 안 잡힌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대출금리는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신한은행이 지난 1일부터 코픽스 등 준거 금리가 0.5%포인트 이상 오른 주택담보대출 차주를 대상으로 최대 2%포인트까지 이자를 유예해주는 '주택담보대출 이자 유예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대출금리 인하 효과를 제공하고 나섰다. 일부 은행은 대출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있는지 점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은행이 '수익성을 희생해 대출금리를 낮추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지금 같이 조달금리라 높아진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당연히 높아져야 하는데, 당국 눈치 보느라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요즘은 대출을 최대한 갚으려고 하고, 빌리려는 사람은 없어 대출 잔액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토로했다. 권지예 기자 kwonjiye@edaily.co.kr
2022.12.07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