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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그곳에도 눈이 팔팔 날리겠지요

2017년 1월 KBS가 9시뉴스에서 저의 방송 출연 문제와 관련하여 가짜뉴스를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언론단체 등의 항의를 받고 KBS의 관련자들이 저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사과는 됐고, 공식적인 사과를 KBS에 요구했습니다.몇 달이 지나고 KBS에서 저에게 출연 제의를 했습니다. 고향 은사를 찾아가는 내용으로 방송을 찍자고 했습니다. 저는 피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KBS가 가짜뉴스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KBS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KBS와 몇 차례 미팅을 하였는데, 그들은 공식적인 사과를 할 의향이 없어 보였고, 그때 이후로 KBS와 저는 서로 모르는 척하고 지냅니다. KBS 피디는 제가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바탕으로 방송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제 중학교 때의 교감 선생님 이야기입니다. 줄여서 쓰겠습니다.저는 마산동중학교를 다녔습니다. 2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너무 무서워서 피해 다녔는데, 교감 선생님은 우리와 친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어쩌다 제 옆자리에 앉으셨고, 기차 여행이라서 그런지, 고향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선생님의 고향은 북녘 어느 산골이었습니다."너네들 말야, 냉면을 여름에 먹지? 원래 냉면은 겨울 음식이야. 생각을 해봐. 예전에 냉장고가 있었겠어? 우리 고향에 주막이 하나 있었는데 냉면 맛이 기가 막혔지.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에 말야, 허리까지 오는 눈을 헤치고 주막까지 걸어가는 거야. 온몸이 꽁꽁 얼어 달달 떨면서 냉면을 먹으러 가는 거지. 주막 안방에 들어가 군불 지핀 아랫목에서 이불 덮고 몸을 녹이고, 주모는 부엌에서 냉면 반죽을 하지. 무쇠솥 위에다 커다란 국수틀을 올리고 눌러야 하는데, 장정 서넛은 붙어야 해. 주모가 반죽을 끝내면 다들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면을 내려. 얼음이 서걱서걱 언 동치미 국물을 붓고 그 위에다 김치 총총 썰어 올리고 돼지고기도 한 점 올려서 안방에 들고 들어오면, 엉덩이는 펄펄 끓는 아랫목 때문에 들썩들썩하고 입은 얼음 둥둥 뜬 냉면으로 달달달. 냉면을 먹고 차가워진 뱃속을 녹인답시고 아랫목에 배를 깔고 가만히 누우면 속이 짜아해지는데, 이게 바로 냉면 맛이지. 냉면은 여름에 먹으면 맛이 안 나.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야."중학교 2학년 때에 들었던 교감 선생님의 냉면 이야기는 오랫동안 기억의 저편에 묻혀 있었습니다. 서른 무렵에 향토 음식을 취재한답시고 전국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강원 춘천 상걸리에 마을 공용 국수틀이 있다고 하여 취재를 갔습니다. 마을회관 마당에 국수틀이 있었습니다. 한겨울이었습니다. 눈밭에서 김을 모락모락 올리며 면을 내리는 풍경이 평화로워 보인다고 느낄 즈음에 제 머릿속 어디엔가 숨어 있던 교감 선생님의 말이 자동으로 흘러나왔습니다.교감 선생님의 말을 제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용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때에 마을회관 마당에서 교감 선생님의 말을 받아쓰기하듯이 취재 수첩에 적었습니다.그로부터 다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노트의 잉크처럼 흐릿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명하였던 교감 선생님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차에서 내 앞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키신저’라는 별명을 가졌던… 자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기억해낸 때의 교감 선생님은 연세가 칠순 가량 되었을까 싶습니다. KBS 피디가 방송으로 찍자고 할 때의 교감 선생님 연세가 아흔은 되었을 것이고요. 세월은 그렇게 휙휙 지나갑니다.남북 관계가 좋을 때에는 저 혼자 별별 상상을 다해봅니다. 남한에서 전국을 떠돌며 먹을거리를 취재하여 글과 사진으로 남겼듯이 북한에 가서 한 10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할 꿈을 꿉니다. 유튜브 시대이니 방송 같은 것은 기대도 말고 혼자 촬영하고 편집하는 상상도 해봅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백두산 아래 어느 산골에서 눈이 펑펑 날리는 날 허리까지 오는 눈을 헤치고 냉면옥에 가서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가슴 쩌릿한 동치미 국물에 만 냉면 한 그릇을 들이키고 싶습니다. 그때에 제가 제 카메라에다 대고 이렇게 말하겠지요. "제가 마산동중학교 다녔습니다. 그때에 북녘 출신 교감 선생님이 계셨는데요…." 2023.12.28 07:00
야구

신명철 "평범한 선수였던 내게 은퇴식, 뜻깊다"

kt '초대 주장' 신명철(38)이 은퇴식을 가졌다.kt는 24일 삼성과의 홈 경기에 앞서 신명철 잔류군(빅또리팀) 코치의 은퇴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kt는 신명철 코치가 삼성에서 7시즌을 뛴 적 있어 이날 삼성전에 은퇴식을 진행했다.이날 행사에는 은퇴 기념 영상과 함께 1루 관중석에서 신 코치의 대형 유니폼을 흔드는 퍼포먼스와 기념 인터뷰가 진행됐다. 또 은퇴 기념품과 액자를 전달하고, 그라운드를 돌면서 양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특별 시구까지 했다.신명철 코치는 프로 통산 14시즌동안 1212경기 출전해 타율 0.241(3198타수 771안타), 334타점, 54홈런, 130도루를 기록했다. 삼성 소속이던 2009년에는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클럽을 달성하기도 했다. 신명철 코치는 kt가 2014년 2군에 진입하면서 초대 주장에 선임되어 1군에 진입한 2015 시즌까지 활약했다. 현재는 은퇴와 함께 잔류군(빅또리팀) 야수코치로 활약 중이다.신명철 코치는 "평범한 선수였던 나에게 주장의 자리와 은퇴식의 기회까지 제공한 구단의 특별 대우에 매우 감사하다. 특히 선수 생활에서 즐거웠던 기억이 많은 삼성전에서 은퇴식을 갖게 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수원=이형석 기자 ◇신명철 코치 약력마산동중학교마산고등학교연세대학교 (‘98 방콕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금메달 획득)2001년 ~ 2006년 롯데 자이언츠2007년 ~ 2013년 삼성 라이온즈-2008년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2차전 MVP-2009년 올스타전 우수타자상2014년 ~ 2015년 kt wiz2016년 ~ 현재 kt wiz 빅또리팀 야수 코치 2016.07.24 18:33
야구

김경문 감독이 만든 미래와의 '연결 고리'

"얘야, 너 포수구나? 이리 와 봐."넥센전을 앞둔 7일 마산구장. 김경문(58) NC 감독이 갑자기 누군가를 향해 인자하게 손짓했다. 김 감독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NC의 훈련을 돕는 마산동중학교 야구부 1학년 선수들이 서 있었다. 그 가운데 포수 미트를 끼고 있던 학생 한 명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체격은 크지 않지만 눈빛이 야무졌다. 프로 감독 바로 옆에 서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김 감독은 중학생 선수가 끼고 있던 미트를 받아 들었다.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이 미트는 얼마 짜리냐"고 물었다. "60만원"이라는 대답을 듣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진지하게 미트 여기저기를 보여주며 조언을 시작했다. "여기 이 부분은 이렇게 길들이면 안 돼. 감독님은 예전에 어떻게 했냐면, ……." 김 감독은 OB(두산의 전신)의 프로야구 원년 우승을 함께 한 명포수 출신이다. 지금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감독 중에 한 명으로 꼽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팀 전승 우승을 이끌었고, 신생팀이던 NC를 리그 정상급 전력으로 끌어 올렸다. 그런 김 감독에게 직접 조언을 들을 기회를 잡았다. 포수의 꿈을 키우는 10대 선수에게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날이다. 학생 선수는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김 감독의 얘기를 경청했다. "포수 어때? 하기 힘들지?" "할 때는 힘들지만 열심히 하면 나중에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 김 감독의 격려가 이어질 때마다 얼굴에는 배시시 미소가 떠올랐다.주변의 다른 친구들도 부러웠던 모양이다. 하나둘 씩 곁으로 모여들더니 더그아웃 벤치에 옹기종기 앉았다.김 감독은 그들에게도 고개를 돌렸다. "넌 몇 살인데 그렇게 체격이 크냐?" "몇 살 때 야구를 시작했니?" 세심한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표현했다. 유독 체격이 작은 한 내야수 선수를 향해서는 "감독님도 어릴 때 딱 너만했다. 키가 안 커서 걱정했는데 어느 순간 쑥 컸다. 밥 많이 챙겨 먹으면 된다"고 따뜻한 말 한 마디도 건넸다.김 감독 역시 모처럼 어린 선수들과 나눈 대화가 흐뭇했다. 마산동중 선수들이 사라진 후에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그때는 저 학생들처럼 좋은 장비를 쓸 생각도 못했다"며 잠시 옛 추억에 젖기도 했다.프로야구 감독과 중학생 야구선수의 짧은 만남. 시간은 5분 안팎에 불과했다. 그러나 적어도 김 감독과 만난 10대 선수들에게는 먼 훗날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자 기쁨이다.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인연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김 감독은 "예전에 베어스기 전국 어린이 야구대회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낯익은 얼굴들도 눈에 띈다. 나중에 야구장에서 반갑게 만난 선수들도 있다"면서 "나 역시 어릴 때 유명한 선수들을 만나고 좋아했던 게 아직도 기억 난다. 나중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면 정말 기쁜 일일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이어 "어린이들을 야구장으로 이끄는 일은 1순위로 중요한 일 같다"며 "학생 선수들이 힘들어도 밝은 표정으로 야구하면서 잘 컸으면 좋겠다. 표정 좋은 선수가 야구도 잘 한다"고 귀띔했다.창원=배영은 기자 2016.06.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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