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IS 피플]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다"...아버지 넘고 싶었던 이정후, 진짜 도전 시작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아들. 그래서 프로 데뷔 전부터 얻은 '바람의 손자'라는 별명.
이정후(25)는 야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국 야구 대표 레전드 선수인 이종범(전 LG 트윈스 코치)의 아들로 주목받았다. 쏟아지는 관심과 비례해 부담도 컸다. 누군가는 비아냥 섞인 말도 건넸다. 또래 선수들은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이종범의 아들이기 때문에 잘 해도 인정받기 어려웠고, 못하면 '이종범 아들인데 저것밖에 못해'라는 말을 들었다. 이는 KBO리그 대표 선수로 올라선 이정후가 유명 토크쇼(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해 직접 전한 말이다. 이 방송에선 아버지 후광 효과를 비꼬고 조롱한 익명의 또래 야구 선수의 글에 이정후가 '야구 못하면 최소 부모님이 욕은 안 먹잖아. 나는 아빠까지 2배로 먹는다'라고 남긴 댓글을 소개했다. 실제로 그게 이정후의 일상이었다. 이정후는 2017년 KBO리그에 데뷔한 뒤 역대 신인 선수 최다 안타와 득점 기록을 갈아 치우고 신인왕에 올랐다. 꾸준히 성장하며 이승엽(현 두산 베어스 감독) 은퇴 뒤 스타 부재에 시달리던 한국 야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022시즌에는 타격 5관왕을 차지하며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까지 올라섰다. 1994년 MVP를 받은 아버지와 세계 최초로 부자(父子) MVP가 됐다.
이정후는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KBO 시상식에서 메이저리그(MLB) 도전 의지를 내비쳤다. 수상 인터뷰를 통해 "항상 아버지 아들로 살아왔는데, (MVP를 받은) 오늘을 계기로 내 야구 인생은 내 이름으로 잘 살아가고 싶다"라고 했다. 이건 공식 수상 소감. 이후 취재진과 따로 가진 인터뷰에서는 "꼭 아버지를 뛰어넘으려고 야구를 한 건 아니지만, 빨리 그 이름을 지우고 싶긴 했다. MVP를 수상하거나 해외 진출을 하면 아버지 이름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했다.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했다. 아버지 이종범이 일본 리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었던 만큼 자신은 미국 무대, MLB에 진출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1년이 지났다. 13일(한국시간) 이정후는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으로 MLB에 진출한 한국인, 그리고 아시아 리그 출신 야수 중 가장 높은 금액인 1억 1300만 달러(1483억원)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미·일 스포츠 매체들이 들끓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몸값이 나왔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정확히는 이정후를 향한 MLB 구단들의 평가가 예상보다 훨씬 좋았던 것. 이정후는 진작 이종범의 수식어를 '이정후의 아버지'로 바꿨다. 2022시즌 MVP를 수상하기 전부터 그랬다. 하지만 이정후는 당시 기준으로 아직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본 것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MLB에 진출해서 경쟁력을 보여줘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화려하게 조명 받으며 MLB 무대에 입성한다. 이제 남은 건 적응과 도약. 아버지를 뛰어넘는 건 그 이후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은 이정후, 그가 목표를 위해 진짜 출발선에 섰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3.12.14 1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