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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베테랑 전성시대 "과거랑 무엇이 다른가. 올해 궁금하다" [김인식 클래식]

KBO리그 베테랑의 선수 생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올해는 40대 베테랑이 더 많아졌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선수들은 서른에서 서른두 살 정도에 대부분 은퇴했다. 프로 원년 꿈의 4할 타율(0.412)을 기록한 백인천이 특별한 경우였다. 급하게 프로팀을 만들다 보니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한 39세 백인천이 한국에서 감독 겸 선수로 뛰었다. 1990년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른다섯 살이 되면 거의 유니폼을 벗었다. 물론 원년 최우수선수(MVP) '불사조' 박철순처럼 마흔 살을 넘겨서도 공을 던진 투수가 있었지만, 박철순도 플레잉코치와 1군 투수 코치를 거쳐 다시 마운드에 오른 예외적 경우였다. 리그 최다승 투수(210승) 송진우가 세운 최고령 등판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1966년생 송진우는 2009년 9월 23일 대전 LG전에서 43세 7개월 7일 나이에 공을 던졌다.얼마 전만 해도 마흔 살에 그라운드를 누비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추신수(SSG 랜더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김강민(한화 이글스) 최형우(KIA 타이거즈) 고효준(SSG) 노경은(SSG) 등 40대 선수들이 굉장히 많다. 선수 생명이 길어진 이유는 다양하다. 첫 번째 요인은 자유계약선수(FA) 제도 덕분이다. 1999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FA 제도를 도입하자, 선수들의 책임 의식이 높아졌다. 이와 더불어 실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됐다. 이전 같았으면 은퇴 시기를 넘긴 나이라고 해도, 선수로서 가치를 보여준다면 금전적인 보상이 따라왔다. 과거에는 선수들이 음주를 즐기는 등 자기 관리에 미흡했다. 술을 마시면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술자리를 거절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FA 제도 도입 후 음주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선수들이 몸 관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초창기 KBO리그는 실업 선수들을 끌어모아 출범했다. 프로야구가 뿌리를 내리면서 실업 출신 선수들은 경쟁에서 밀려나 하나둘 은퇴했다. 이 기간 2군 규모가 커지면서 코치가 부족했다. 결국 30대 선수들이 은퇴 후 코치로 새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구단에서 베테랑 선수를 빨리 정리하려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지금은 다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출신 추신수는 여전히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며, 올 시즌 최고령 안타 및 출장 기록에 도전한다. 최근 삼성과 2년 FA 계약한 오승환은 2022년 최고령 구원왕에 올랐고, 지난해에도 30세이브를 올렸다. 김강민은 2022년 한국시리즈(KS)에서 결정적인 활약으로 KS MVP를 차지하는 등 맹활약했다. 최형우는 최다 타점 기록을 작성했다. 노경은은 지난해 최고령 30홀드를 달성했고, 고효준도 왼손 필승조로 나선다. 이들의 전성기는 지났지만, 황혼기가 화려하다.프로는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증명하는 무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40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베테랑이 계속 경기에 나선다는 건 이들을 제칠 만한 실력을 갖춘 후배들이 부족하고, KBO리그의 질적 하락을 의미하기도 한다.40대 베테랑의 활약, 그리고 이들을 이겨내려는 젊은 선수들의 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궁금하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정리=이형석 기자 2024.01.2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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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인터뷰] ‘불사조’ 칭찬받은 곽빈 “걱정 씻은 APBC,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단연코 곽빈(24·두산 베어스)이다."지난 11일 열린 2023 골든글러브 시상식. KBO(한국야구위원회)는 투수 부문 시상자로 '불사조' 박철순(67)을 초대했다. 이날 투수 부문 수상자는 에릭 페디(NC 다이노스)였다. 그런데 박철순과 함께 무대에 오른 김동수 서울고 감독이 그에게 인상 깊은 투수를 물었다. 박철순은 페디 대신 "단연코 곽빈"이라고 말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OB 베어스 에이스였던 박철순이 꺼낸 말이었다.곽빈은 올 시즌 두산을 이끌었다. 12승 7패 평균자책점 2.90으로 다승과 평균자책점 모두 개인 커리어하이였다. 곽빈은 본지와 통화에서 "박철순 선배님은 배명고 대선배님이고, 베어스의 레전드 선배님이기도 하다"며 "베어스에서 선배님의 에이스 계보를 잘 이어받고 싶지만, 아직은 내 실력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성적을 내서 계보를 잇는 후배가 되겠다. 후배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항상 선배님께 감사드린다"고 답했다.곽빈은 올해 WBC를 시작으로 시즌 중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포스트시즌, 거기에 APBC까지 열 달에 가까운 대장정을 소화했다. 다사다난했다. WBC에서는 부진했고 정규시즌 초반은 활약했으나 5월 부상으로 이탈했다. 아시안게임에선 담 증세와 고열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는 5실점으로 무너졌다. 곽빈은 APBC 호투로 아쉬움을 씻어냈다. 지난달 19일 일본과 대회 결승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6탈삼진 1실점 역투했다. 팀은 연장 승부 끝에 패했지만, 팽팽한 승부를 지켜냈다.곽빈은 "나이를 고려하면 APBC는 마지막 출전일 수 있었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항저우에서도 잘 던져서 증명받고 싶었는데, 실패했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일본에 한 번 이겨보자' 생각했고, 우리 어린 선수들도 이렇게 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차피 내 공은 일본 선수들에게 낯설테니 자신 있게 던졌다"고 떠올렸다.곽빈은 결승전 투구에 대해 "위기도 있었고, 볼넷(3개)도 나왔지만, 좋았던 투구라고 생각한다"며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올 시즌도 후반기에 자신감이 들지 않았다. 투구 밸런스가 계속 흔들렸다"고 떠올렸다. 그 불안을 APBC로 씻었다고 했다. 곽빈은 "결승전 등판에서는 나다운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내년에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경기였다. 자신감을 채울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차승윤 기자 2023.12.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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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시선] 박찬호의 멋진 결단과 골든글러브 저조한 참석률

9명. 11열 열린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참석한 선수는 채 10명이 되지 않는다. 지난 2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2023시즌 10개 구단 소속 선수는 신인과 외국인 선수 포함 총 589명.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참석률은 전체 등록 선수 대비 1.5%에 불과하다. 시즌 뒤 고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시상식에 참석하는 선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올 시즌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유독 더 썰렁했다. 투수와 1루수 부문 수상자 에릭 페디(NC 다이노스)와 오스틴 딘(LG 트윈스)이 불참, 대리 수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후보가 28명으로 가장 많았던 투수 부문은 페디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불참했다. 포수 부문 시상자로 나선 '불사조' 박철순(전 OB 베어스)이 가장 인상적인 투수로 '베어스 후배' 곽빈(두산 베어스)을 꼽으며 "곽빈 투수 (현장에) 나오셨나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선 공허한 메아리가 느껴지기도 했다.데뷔 첫 3루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노시환(한화 이글스)은 수상 소감 대부분을 최정(SSG 랜더스) 얘기로 채웠다. 최정은 3루수 골든글러브를 8회 수상한 대선배. 노시환은 "최정 선배님이 계셨기에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선배님을 넘기 위해 올 시즌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최정이 시상식에 참석했다면 노시환의 멘트와 함께 더 멋진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KBO리그에 필요한 '스토리'를 만드는 데 선수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박찬호(KIA 타이거즈)의 결단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유격수 부문 후보에 오른 박찬호는 수상이 불투명한 상태에서도 시상식 현장을 찾았다. 박찬호는 "2등의 품격을 위해서 왔다"며 "(수상이 유력한 오지환과) 끊임없이 (경쟁자로) 언급된 선수로서 자리를 빛내주면 어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20표(41.2%)를 획득한 박찬호는 154표(52.9%)를 얻은 오지환에게 밀렸다. 이날 부문별 2등 중 1위와 가장 근접한 차이였다.누구보다 속상하고 아쉬울 수 있지만 끝까지 시상식을 지키며 박수를 보냈다. 그런 박찬호를 지켜본 오지환은 "존경한다"고 화답했다. 최고 유격수 자리를 놓고 맞붙은 두 선수 사이에 '스토리'가 입혀졌다.골든글러브는 프로야구 연말 시상식의 피날레다. 선수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 중 하나다. 하지만 매년 참석률이 높지 않다. 한 구단 야구 관계자 "수상이 확실하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참석을 권유하기 어렵다. 선수들도 민망해서 가기 꺼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칫 '수상자의 잔치'로 전락하면 시상식의 의미와 권위가 떨어질 수 있다. 선수들이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올해 박찬호가 보낸 박수에 주목해야 한다.스포츠1팀 기자 2023.12.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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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도, 너구리도 넘었다…역대급 '다승 페이스' 페디

외국인 투수 에릭 페디(30·NC 다이노스)의 승리 페이스가 '역대급'이다.페디는 8일 인천 SSG 랜더스전에서 시즌 15승(3패)째를 수확했다. 11승을 기록 중인 다승 2위 그룹(웨스 벤자민·아담 플럿코)과의 격차를 4승으로 벌린 그는 2015년 에릭 해커 이후 8년 만이자 NC 구단 역사상 두 번째 다승왕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승수만큼 인상적인 건 페이스다. 시즌 19번째 등판 만에 15승을 따낸 페디는 1985년 김일융(당시 삼성 라이온즈)이 달성한 KBO리그 역대 최소 경기 15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해 김일융은 선발로 10승, 불펜으로 5승을 더해 15승 고지를 밟았다. 페디는 선발로만 15승을 채웠다는 점에서 '순도'가 더 높다.그뿐만 아니라 페디는 20경기 만에 15승을 해낸 '불사조' 박철순(1982년·당시 OB 베어스) '너구리' 장명부(1983년·당시 삼미 슈퍼스타즈) 등을 모두 뛰어넘었다. 박철순은 1982년 22연승, 장명부는 1983년 시즌 30승을 거둔 프로야구 전설. 페디의 활약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작정 승운만 따른 것도 아니다. 페디의 평균자책점은 1.97로 규정이닝을 채운 21명의 투수 중 유일하게 1점대다. 지난 2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4이닝 5실점 한 페디는 평균자책점이 1.74에서 2.10으로 껑충 뛰었다. 체력 소모가 꾸준히 누적된 만큼 페이스가 꺾이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였다.하지만 강인권 NC 감독은 SSG전에 앞서 '페디의 모습은 일시적 부진'이라는 의견을 냈다. 강 감독은 "(롯데전에서) 체인지업 그립이 조금 달라진 게 보이더라. 그 부분을 수정한 상태"라며 "손가락에 살짝 물집 증상이 생기면서 본인도 모르게 조금씩 변형이 됐는데 불펜 피칭 때 다시 수정했다"고 말했다. 페디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며 7이닝 무실점 쾌투했다. 최고 154㎞/h까지 찍힌 투심 패스트볼을 앞세워 SSG 에이스 김광현(6이닝 1실점)과의 맞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시즌 20승도 노려볼 만하다. KBO리그 시즌 20승은 2020년 라울 알칸타라(두산 베어스)가 마지막이다. 알칸타라가 역대 21번째 대기록을 수립한 뒤 명맥이 끊겼는데 페디는 더 나아가 2007년 다니엘 리오스·2016년 더스틴 니퍼트(이상 당시 두산)가 세운 외국인 투수 시즌 최다승 기록(22승) 경신까지 노려볼 만하다.페디는 "(1점대 평균자책점은) 당연히 욕심난다. 1점대를 유지하고 싶다"며 "매 순간 노력하면서 지내왔다. 사실 롯데 경기에서 봤던 것처럼 투수는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20승보다 16승을 먼저 생각하고 싶다"고 몸을 낮췄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3.08.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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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선동열·김성한 없는 해태의 V8...현대 왕조 서막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리틀 쿠바' 박재홍 등장 현대 신인 박재홍이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다. 데뷔 시즌 126경기에 출전, 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했다. 그는 9월 3일 LG전에서 김용수를 상대로 좌월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그해 홈런왕과 타점왕에 올랐다. 박재홍이 데뷔 시즌 최다 홈런과 타점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만장일치(유효 30표)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②김성근의 쌍방울, 반전 2위 쌍방울은 정규시즌 2위(70승 2무 54패)에 오르며 1군 진입 6시즌 만에 가을야구에 나섰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김성근 감독은 김현욱·조규제·오봉옥을 앞세워 중간 계투진을 강화, 1점을 짜내고 지키는 야구로 쌍방울의 상위권 도약을 이끌었다. 간판타자 김기태의 성적은 이전 시즌보다 떨어졌지만, 김광림(타율 0.303)이 분전했다. 연고지 전주엔 야구 열풍이 불었고, 쌍방울은 창단 뒤 가장 많은 홈 관중(26만 5918명)을 기록했다. ③현대, 창단 첫 시즌 'KS 진출' 현대는 창단 첫 시즌 돌풍을 일으켰다. 1995시즌 7위였던 태평양을 인수한 만큼 기대가 크지 않았으나, 정규시즌 4위에 올랐다. 포스트시즌에선 한화와 쌍방울을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KS)까지 진출했다. 정민태·정명원·위재영이 지키는 현대 마운드는 꽤 높았다. 김경기·이숭용·박재홍이 이끄는 타선의 짜임새, 신인 박진만이 지키는 내야도 탄탄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렸던 김재박 감독은 현대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④'이빨 빠진 호랑이'의 우승 개막 전 해태를 향한 전망은 밝지 않았다. 선동열이 일본 무대로 진출했고, 김성한이 은퇴했기 때문이다. 시범경기에서 해태는 1승 1무 4패에 그쳤다. 그러나 이종범과 이대진, 투·타 핵심 선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6월 이후 상승세를 탔다. 7월에는 15승(1무 5패)을 챙기며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선두를 내주지 않고 1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조계현은 시즌 최다 완투(11번)를 해냈다. 해태는 현대와 맞붙은 KS에서도 4승(2패)을 먼저 거두며 통산 8번째 KS 우승을 차지했다. KS 진출 시 우승 확률 100% 기록도 이어갔다. ⑤정명원, 최초 KS 노히트노런 현대 정명원은 10월 20일 열린 해태와의 KS 4차전에 선발 등판, 9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2볼넷 1사구 9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노히트노런을 해냈다. 앞선 15시즌(1982~1996) 동안 노히트노런 8번은 모두 정규시즌 경기에서 나왔다. 이후에도 포스트시즌에서 노히트노런을 해낸 투수는 없었다. 마무리 투수였던 정명원을 선발로 내세운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의 '변칙' 용병술도 빛났다. ⑥투수 4관왕 구대성, MVP 한화 구대성은 1996년 정규시즌에서 18승 3패 24세이브(40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지만, 5월 11일 삼성전을 기점으로 선발 투수로도 나섰다. 다승과 구원, 평균자책점과 승률(0.857) 1위에 오른 그는 신인 박재홍의 돌풍을 잠재우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⑦이강철, KS MVP 수상 해태 이강철은 데뷔 첫 시즌(1989년)부터 15승을 거뒀지만, 팀 선배 선동열과 조계현에 가려 있었다. 그는 1996년 KS에서 완봉승을 포함해 2승 1세이브 13탈삼진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하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처음으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강철은 1996년을 돌아보며 "당시 KS MVP는 정규시즌 MVP만큼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었다. 서로 등판하고 싶어서 경쟁했다. 의미가 큰 수상"이라고 돌아봤다. ⑧'불사조' 박철순 은퇴 프로야구 원년 흥행을 이끌었던 스타 박철순이 10월 4일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1982년 24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지난 시즌까지 깨지지 않은 '단일 시즌 최다 연승' 기록(22연승)도 그해 세웠다. 그는 허리, 아킬레스건 등 끊임없이 이어진 부상 속에 신음하면서도 우리 나이로 마흔한 살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통산 성적은 231경기 76승 53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2.95. 야구팬은 그에게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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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굿바이 슈퍼스타...삼성 통합 우승으로 끝난 1985년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1. 서울로 입성한 OB 1982년 대전에서 출발했던 OB는 1985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다. 리그 창립 때 약속된 일이었다. OB가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자 아마추어 야구계의 반발이 거셌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OB는 홈 55경기 중 43경기를 동대문에서, 나머지 12경기를 잠실과 대전에서 치르겠다고 발표(실제 동대문 37경기, 잠실 9경기, 대전 6경기, 마산 3경기)했다. 2. 김성근 감독의 몰수패 사건 OB는 7월 16일, 프로야구 역사상 두 번째 몰수패를 당했다. 6회 말 5-5 1사 주자 1·3루에서 MBC 1루 주자 박흥식이 2루 도루를 시도하다 런다운에 걸린 사이, 유고웅이 홈을 밟았다. 김성근 OB 감독은 박흥식이 귀루 때 3피트 라인을 벗어났다고 어필했다.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수단을 철수시켰다. 5분 뒤 김 감독에게 퇴장 지시가 내려졌고, 다시 5분 뒤 몰수 경기가 선언됐다. 3. 1062일 만에…불사조 박철순 박철순은 1982년 OB 우승을 이끄는 과정에서 허리 디스크를 앓았다. 이듬해 그라운드에 복귀했지만, MBC전에서 송영운의 타구를 맞고 디스크가 재발했다. 1985년 5월 11일 597일 만에 마운드로 돌아온 그는 8월 20일 청보와의 홈경기에서 6이닝 4피안타 8탈삼진으로 호투했다. 82년 9월 18일 롯데전 이후 1062일 만에 거둔 통산 25번째 승리였다. 4. 18연패 탈출한 삼미 삼미는 1985년 4월, 프로야구 역대 최다인 18연패를 당했다. 3월 30일 개막전에서 승리했으나 이후 한 달 동안 이기지 못했다. 3월 31일 롯데전 3-0 완봉패를 시작으로 18번의 패배가 이어졌다. 삼미는 4월 30일 에이스 최계훈이 홈에서 4-0 완봉승을 거둬 연패에서 탈출했다. 5. 굿바이 슈퍼스타즈 18연패를 끝낸 다음날, 삼미는 70억원에 구단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인수자는 청보식품이었다. 새 구단의 정식 출범은 후기리그 개막일로 미뤄졌다. 전기리그 최종일(6월 21일) 삼미는 롯데에 16-6으로 대패했지만, 3200여 명의 인천 팬들로부터 열렬한 응원을 받았다. 슈퍼스타라는 이름으로 프로야구 초대 멤버로 활약한 삼미는 3시즌 반 동안 120승 4무 211패(승률 0.364)를 남겼다. 6. 청보 핀토스 출범 6월 29일 청보 핀토스가 출범했다. 핀토스(북아메리카 얼룩말)라는 이름은 아시아승마연맹회장이었던 김정우 구단주가 정한 이름이다. 핀토스는 후기리그 개막 시리즈에서 삼성에 2연패한 후 7월 2일 잠실 경기에서 MBC를 9-1로 대파, 팀이 바뀐 뒤 첫 승리를 따냈다. 7. 김성한, 우승 멤버 제치고 MVP 1985년 최우수선수(MVP)에는 해태 김성한이 뽑혔다. 그해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끈 장효조(타율, 출루율 1위) 이만수(홈런 공동 1위, 타점 승리타점 1위) 김시진(다승 공동 1위, 승률 공동 1위, 평균자책점 3위)을 모두 제친 이변이었다. 김성한은 22홈런(공동 1위) 133안타(1위) 장타율 0.575(1위) 타율 0.333(3위) 75타점(2위)로 활약했다. 투수로서도 4승 3패 1세이브(10경기 등판)를 기록했다. 8. 삼성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 삼성이 유례없는 전·후기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 이들은 6월 12일 롯데를 15-3으로 격파하고 승률 0.741로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9월 17일 롯데전에서는 김시진을 앞세워 7-4로 승리, 후기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를 치르지 않고 챔피언에 올랐다. 9. '국보' 이긴 신인왕 이순철 1985년 신인왕은 이순철이었다. 타율 8위(0.340) 홈런(12개)과 타점(50개) 10위, 도루 3위(31개)를 기록했다. 8월 21일부터 9월 27일 동안 20경기 연속 안타를 쳐 이광은이 같은 해 세운 기록(19경기 연속)도 깼다. 이순철이 꺾은 신인 중에는 훗날 '국보 투수'가 된 선동열도 있었다. 차승윤 기자 사진=IS 포토, 한국프로야구 화보, 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09.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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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이종도 만루포로 시작해 김유동 만루포로 끝난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프로야구 창립 총회 1981년 12월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한 호텔에서 프로야구 출범을 알리는 창립총회가 열렸다. 1982년 1월 15일 대전·충청 연고로 OB 베어스가 가장 먼저 창단했고, 1월 26일 MBC 청룡이 서울 연고로 깃발을 올렸다. 1월 30일과 2월 3일에는 해태 타이거즈(광주·전라)와 삼성 라이온즈(대구·경북), 2월 5일과 12일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인천·경기·강원)와 롯데 자이언츠(부산·경남)가 차례로 창단, 6개 구단이 베일을 벗었다. ② 프로야구 전두환 전 대통령 시구 1982년 3월 27일 오후 2시 24분. 서울운동장(동대문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섰다. 시포는 MBC 포수 유승안이 맡았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시구가 끝난 뒤 유승안이 공을 전달하기 위해 마운드로 향하자 경호원들이 깜짝 놀라 유승안을 몸으로 막아섰다. ③ 이만수 역사상 첫 홈런 리그 첫 홈런의 주인공은 삼성 이만수였다. 개막전 5회 MBC 유종겸을 상대로 짜릿한 손맛을 본 이만수는 앞서 1회에는 리그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는 등 말 그대로 '개막전의 사나이'였다. 그는 "안타도 좋았지만, 홈런을 친 뒤 베이스를 돌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펄쩍펄쩍 뛰면서 지금은 돌아가신 서영무 감독님을 안고 들어왔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④ 이종도 끝내기 만루 홈런 개막전의 진짜 주인공은 4안타를 때린 정구왕(삼성)도 4타점을 올린 유승안도 아니었다. 삼성은 초반 5-0으로 크게 앞서 손쉽게 승리를 따내는 듯했다. 그러나 7-4로 앞선 7회 말 유승안에게 동점 스리런 홈런을 맞고 승부가 연장으로 흘렀다. 7-7로 팽팽하게 맞선 연장 10회 말 이선희를 상대로 끝내기 만루 홈런을 때려낸 이종도가 마지막에 웃었다. 이날 그의 기록은 5타수 3안타(1홈런) 5타점이었다. ⑤오대석 사이클링 히트 6월 12일 오대석(삼성)은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부산에서 열린 삼미전에서 1회 3루타, 3회 2루타, 5회 단타에 이어 6회 삼미 투수 한상연으로부터 투런 홈런을 기록했다. KBO리그 사상 첫 사이클링 히트(히트 포 더 사이클)였다. 역대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는 5년 뒤인 1987년 8월 이강돈(빙그레 이글스)이 해냈다. 지금까지 이 기록은 총 29번 달성됐다. ⑥ 부산 올스타전 개최 프로야구 원년 올스타전은 지역을 옮겨가며 세 차례 열렸다. 1차전이 열린 곳은 부산이었다. 구덕야구장이 조명 시설을 완비하면서 부산의 첫 야간경기로 7월 1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치러졌다. 2차전은 광주, 3차전은 서울에서 개최됐다. 초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는 김용희(롯데)였다. ⑦ 김유동의 한국시리즈 만루포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팀 OB와 후기리그 우승팀 삼성의 맞대결이었다. 길었던 시리즈에 마침표가 찍힌 건 6차전 9회 초 2사 만루였다. 4-3으로 앞서던 OB는 김유동이 짜릿한 만루 홈런으로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김유동은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⑧ '4할 타자' 백인천 프로야구 원년 최고의 타자는 MBC 백인천이었다. 71경기에 출전해 타율 0.412(250타수 103안타)를 기록했다. 1994년 이종범(당시 해태)이 104경기까지 4할 타율을 유지, 백인천의 기록에 근접했지만 타율 0.393로 시즌을 마쳤다. 이후 4할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⑨ '불사조' 박철순 원년 마운드의 주인공은 ‘불사조’ 박철순이었다. 36경기에 등판해 무려 24승을 쓸어담았다. 완투 15회, 완봉 2회, 세이브까지 7개를 올리면서 OB 마운드를 이끌었다. 이후 연이은 부상 탓에 박철순은 이후로 한 번도 시즌 10승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불사조처럼 돌아와 1996년까지 투혼을 불살랐다. ⑩ 행크 애런 내한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전설적인 홈런왕 애런은 1982년 8월에는 삼성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이어 10월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을 이끌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애런은 선수들에게 타격 기술을 지도했고, 구단 관계자에게는 리그 운영 팁을 건네기도 했다. 배중현 기자 사진=한국프로야구 20년사·30년사, IS 포토 2022.09.08 09:00
프로야구

'불사조·헐크·4할 타자·이도류'...KBO, 원년 대표 레전드 4인 발표

'불사조' 박철순이 '헐크' 이만수, '4할 타자' 백인천, '투타겸업' 김성한과 함께 1982년을 대표하는 레전드 올스타에 선정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5일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이 KBO리그 40주년 레전드 40인 중 4인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KBO는 지난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올스타전 현장에서 레전드 40인 중 최다 득표 레전드 4명(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을 먼저 발표한 바 있다. 이날 발표된 4인은 첫 4인에 뒤이은 최상위 득표자는 아니지만, KBO리그 원년인 1982년, 상징성 있는 기록과 활약으로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들이다.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 결과를 합산한 결과, 선정위원회에서 추천한 177명의 후보 가운데, 투표 결과 박철순(OB)이 11위, 이만수(삼성)가 12위, 백인천(MBC)이 24위, 김성한(해태)이 25위에 올랐다. ‘불사조’로 불리는 박철순은 KBO 리그 원년인 1982년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을 맺고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그는 승리(24승), 평균자책점(1.84), 승률(0.857) 등 3개 부문에서 1위를 휩쓸었다. 이어 최다 연승(22연승) 부문에서는 40년 동안 깨지지 않은 불멸의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비록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원년에 화려했던 명성에 비해 은퇴할 때까지 꾸준한 누적 기록을 쌓지 못했음에도 통산 평균자책점 7위, WHIP 공동 18위에 올라 있다. 전문가 투표에서 156명 중 134명(68.72점)에게 표를 받았고, 팬 투표에서는 1,092,432표 중 508,173표(9.30점)로 총 점수 78.02점을 획득, 40명의 레전드 중 11위에 올랐다. ‘헐크’ 이만수는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MBC와의 KBO 리그 개막전에서 1회에 친 2루타로 KBO 리그 첫 안타와 타점, 5회에는 담장 넘어로 타구를 보내며 KBO 리그 첫 홈런이라는 역사를 썼다. 1983년부터 3년 연속 홈런 1위를 기록했고, 1986시즌과 1991시즌에는 각각 KBO리그 최초로 100홈런과 200홈런을 달성했다. 1983시즌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고 1984시즌에는 타율, 홈런, 타점 등 3개 부문을 석권한 KBO 리그 최초 타격 3관왕이 되었다. 이만수 이후 타율, 홈런, 타점 3개 부문 3관왕을 차지한 선수는 롯데 이대호(2006시즌, 2010시즌)가 유일하다. 이만수는 전문가 투표에서 130표(66.67점), 팬 투표에서 529,649표를 받아 총 점수 76.36점으로 12위에 올랐다. 원년 타격왕인 백인천은 당시 타율 0.412를 기록했다. KBO리그 40년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4할 타자이자 유일무이한 감독 겸 선수로도 남아있다. 일본프로야구 출신이었던 그는 당시 지명타자를 맡아 타율, 안타, 득점(공동), 장타율, 출루율 부문 1위를 휩쓸었다. 전문가 투표 107표(54.87점), 팬 투표 303,752표(5.56점), 총 점수 60.43(24위)을 기록했다. 김성한은 홈런 타이틀을 3차례나 차지했을 만큼 KBO 리그 초창기를 지배했던 강타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원년에는 투타를 오가며 활약한 원조 ‘이도류’였다. 타석에서는 타율 0.305(10위)에 97개의 안타(3위), 13개의 홈런(4위)을 기록하며 69타점을 쌓아 올려 최다 타점 타이틀을 차지했다. 마운드에서는 26경기에서 10승(1 완봉승 포함) 5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79의 기록으로 승리 7위, 평균자책점 5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KBO 리그에서 한 시즌에 두 자릿수 승수와 두 자릿수 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선수는 김성한이 유일하다. 김성한은 1989시즌 KBO 리그 최초로 26홈런, 32도루를 기록하며 20-20 클럽에 가입, 리그를 대표하는 호타준족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성한이 정규시즌 MVP 2회(85,88년), 골든글러브 6회(85~89, 91년)를 차지하며 해태에서 14시즌을 활약하는 동안 해태는 7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한편, 레전드로 선정된 선수들의 시상은 레전드들의 전 소속 구단 홈 경기에서 진행된다. 김성한과 이만수의 시상은 각각 이번 주 26일 광주 NC와 KIA 경기, 30일 대구 롯데와 삼성 경기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박철순의 시상은 오는 8월 13일 잠실 SSG와 두산 경기에서, 백인천에 대한 시상은 별도로 진행될 예정이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07.25 15:27
야구

[IS화보스토리]불사조 박철순 감독, 프로야구 창단 멤버 MVP.

[IS화보스토리]불사조 박철순 감독,1956년 3월 12일 부산 출생. 초등학교 6학년 야구 시작.박철순 감독 인생속으로 들어간 JTBC3FOX 스포츠 사진에 담긴 숨은 이야기(사담기) 출연.1978년 공군 야구팀 성무 시절, 우수투수상 받으며 주목받아.1979년 한·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182cm 신장, 148km 빠른 직구 선보이며 비상 시작.1980년 한·미대학야구(1979년)에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어 대학 졸업 후 미국 마이너리그로 진출."동양인이 미국 프로야구 간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시대였다. '내가 결정하는 거지, 너희들이 왜 결정해!'하는 오기가 있었다.""박수치게 만들어 줄게.""미국 야구를 경험하면서 미국야구가 한국야구에 비해 엄청난 스케일의 차이를 느꼈다. 특히 지도 받는 방법이 달랐다. 집중력 있는 훈련을 했다."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하자 'OB 베어스' 창단 멤버로 한국에 복귀. 원년 우승과 MVP 주인공.1995년 'OB 베어스' 두 번째 우승을 이끌고 1996년 야구장을 떠난 원조 프로야구 스타.1995년 최고령 완봉승(38세 5개월)기록을 세운 불사조.2013년 서울시청에서 출범한 서울시내 4개 구의 초등학생을 위한 '서울시 어린이 야구교실' 초대감독으로 위촉, 활동 중 .때로는 선발로, 때로는 마무리로, 때로는 중간계투로 등장, 구장에서 '에이스를 위하여'가 울려 퍼져."야구 유니폼 입는게 멋있어서 야구를 하고 싶었다."1996년 4월 29일 마지막 경기 은퇴식에서 마운드에 입을 맞춘 불사조.양광삼 기자yang.gwangsam@jtbc.co.kr/2018.06.26/ 2018.06.26 08:00
야구

[사담기] 세계 최초 한 시즌 22연승, 불사조 박철순 이야기

원년 프로야구의 영웅, 불사조 박철순이 JTBC3 FOX Sports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는 의 약자. 사진관 컨셉트의 스튜디오에 스포츠 스타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인생 사진을 갖고 나와 그 사진을 보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 ‘꿈의 사진’을 찍게 된다. 만년 후보 선수였던 박철순이 선수 생활의 전환점을 맞이한 때는 언제일까. 1978년 공군 야구팀 성무 시절 '백호기 실업 야구대회' 우승 사진이 공개된다. 박철순은 공군에 입대한 국가대표 선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야구에 눈뜨게 됐다고 한다. 어떤 점에서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숨은 이야기가 공개된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야구팀에 진출했던 박철순이 1980년 미국 마이너리그 ‘밀워키 브루어스’ 입단식 모습도 공개했다. 당시 미국 진출에 대해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다. 성공할 수 없다는 비아냥이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미국에 갔지만 실제 더 힘들었다고 한다.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비시즌에는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고단했던 박철순의 미국 프로야구 경험기를 들을 수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원년에 MVP를 수상하며 세계 최초 한 시즌 22연승, 프로야구 최초 투수 3관왕, 평균자책점 1위(1.84) 승률 1위(0.857) 다승 1위(24승)를 거뒀다. 하지만 이 기록엔 선수 생활 내내 허리 부상에 시달렸던 원인이 숨어 있다. 1982년 후기리그 마지막 삼성과 경기에서 갑작스럽게 허리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에이스 박철순이 생각하는 1982년은 어떠했을까. 25일 오후 9시30분 JTBC3 FOX Sports에서 야구 박철순의 이야기가 방송된다. 이형석 기자 2018.06.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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