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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29건
스포츠일반

[부고] 김우중(일간스포츠 기자)씨 조부상

▲ 김진수씨 별세, 김우중(일간스포츠 스포츠2팀 기자)씨 조부상 = 29일, 신촌세브란스병원장례식장 3호실, 발인 10월 1일 오전 7시, 서울추모공원 풍산공원묘원. ☎ 02-2227-7500 2024.09.29 10:56
축구일반

[부고] 전한진(대한축구협회 경영본부장)씨 부친상

▲ 전수남씨 별세, 전한진(대한축구협회 경영본부장)씨 부친상 = 6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 발인 없음(시신 기증), 8일 오후 10시까지 조문 가능. ☎ 02-2227-7500 2024.07.06 17:53
산업

‘섬유 선구자’ 효성 조석래 명예회장 영면…“대의 앞장선 재계 지도자” 조문 행렬

‘섬유산업의 선구자’로 불렸던 재계의 큰 별이 졌다.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은 ‘기술 경영 ’을 중심으로 국내 섬유·화학 산업의 초석을 닦았고, 재계 지도자로서 글로벌 진출에 앞장서며 후배 경영인들을 이끌기도 했다. 이런 조 명예회장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한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간인 최초 기술연구소 설립, ‘기술 경영’ 선구자 조 명예회장은 지난달 29일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지난 2017년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 1935년생인 그는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일본 와세다대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학구파’로 알려졌다. 대학교수를 꿈꿨지만 부친의 부름으로 1966년 효성물산에 입사한 뒤 반세기 동안 효성그룹을 이끌었다. 학구파답게 ‘기술 경영’의 토대로 효성의 품질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 명예회장의 ‘경제 발전과 기업의 미래는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 개발력에 있다’라는 철학은 여전히 효성그룹의 중심이 되고 있다. 기술과 품질을 중시해 1971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기술 경영’에 심혈을 기울였다. 더군다나 신혼여행지로 섬유업계 기술자들이 주로 교육 연수를 받았던 이탈리아 포를리를 택한 일화는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화학섬유 사업의 기반을 다졌고,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하며 보폭을 넓혔다. 조홍제 창업주는 장남에게 효성을 물러줬고, 차남 조양래 한국타이어 명예회장과 조욱래 DSDL 회장에게는 각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을 맡겼다. 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직을 물려받은 그는 경영 혁신과 세계화를 통해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시켰다. 조 명예회장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격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효성은 ‘섬유의 반도체’라 불리는 스판덱스가 탄생했다. 1990년대 초 스판덱스를 독자 개발에 성공했고, 결국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는 미국 듀폰의 ‘라이크라’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여기에 효성은 2011년 ‘꿈의 신소재’ 로 불리는 고성능 탄소섬유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적용한 타이어코드도 세계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토대로 효성은 해외 시장을 적극 개척했고, 전 세계 50여개 제조·판매 법인과 30여개 무역법인·사무소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섬유산업의 세계화에 앞장선 업적으로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그 훈장은 고인의 영정 사진 앞에 함께 놓여있다. ‘재계 지도자’ 역할, 정·재계 인사 추모의 발길 조 명예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대 그룹 총수 중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지난달 30일 오후 1시부터 조문이 시작됐는데 1시간 뒤 이재용 회장은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함께 나타났다. 1968년생인 이 회장이 상주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동갑내기로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일본 게이오대 유학 시절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이날 부인 정지선 씨와 함께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그는 “좋은 분이셨다. 유족에게 좋은 곳으로 잘 가시길 바란다고 했다”고 전했다. 31일에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부자가 고인의 넋을 기리고 유족을 위로했다. 정몽준 이사장은 “모임에서 가끔 뵈었고, 항상 긍정적이고 좋으신 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조현상 효성 부회장의 대학 후배인 정기선 부회장은 “전부터 재계에서 다들 굉장히 존경했던 분”이라고 전했다. 이날 김진표 국회의장도 빈소를 방문해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낼 당시 조 명예회장이 한미재계회의 의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고인과 '사돈 관계'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빈소를 찾았다. 전날에도 한덕수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빈소를 방문하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재계의 지도자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조 명예회장은 2007~201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2000년부터 10년간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미 무역협정(FTA)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공식 제기하기도 했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대의를 위해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할 말은 하는 것이 조 명예회장을 당당한 재계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장례는 5일간 효성그룹장으로 치러지고, 영결식은 2일 오전 8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 2024.04.01 07:00
산업

'글로벌 효성' 이끈 조석래 명예회장 별세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재계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은 이날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지난 2017년 건강상의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이다.193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조 명예회장은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1966년 박사 과정을 준비하던 중 부친의 연락을 받고 귀국해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기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동양나일론 울산공장 건설을 이끌었는데, 이는 효성그룹 성장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1973년 동양폴리에스터를 설립하면서 화섬 사업 기반을 다졌고, 1975년 한영공업(현 효성중공업)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뛰어들었다.1982년 효성중공업 회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후 조 명예회장은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며 효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기술력을 중요하게 여긴 조 명예회장은 1971년 국내 민간 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2006년에는 이를 효성기술원으로 개편했다.효성은 1997년 자력으로 스판덱스 상업화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고성능 탄소 섬유를 세계 3번째,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1998년에는 계열사들이 연쇄 부도 위기에 몰리자 효성물산,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T&C를 ㈜효성으로 통합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조 명예회장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회장 등이다.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 2024.03.29 20:09
연예일반

‘연극계의 거목’ 故 오현경, 오늘(5일) 발인.. 추모 속 영결식

연극계의 원로 배우 故 오현경이 영면에 든다. 5일 오전 8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에서 오현경의 발인이 거행된다. 발인이 끝난 뒤 오전 9시에는 마로니에공원 야외극장에서 고인을 기리는 영결식 및 노제가 진행된다.지난 1일 한국영화배우협회에 따르면 오현경은 이날 오전 9시 11분께 김포의 한 요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8세. 지난해 8월 뇌출혈로 한 차례 쓰러졌던 오현경은 약 7개월가량 투병 생활을 해왔다. 오현경은 1955년 연극 ‘사육신’에 출연한 뒤 60여 년 넘게 무대를 지켜온 연극계 거목이다. 대중에겐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방송한 KBS드라마 ‘TV 손자방법’의 만년 과장 이장수 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20년에는 연극 ‘레미제라블’에 보청기를 끼고 무대에 오르는 연기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됐으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4.03.05 07:29
연예일반

‘TV 손자병법’ 원로배우 오현경 별세…향년 88세

원래배우 오현경이 별세했다. 향년 88세. 1일 유족 등에 따르면 오현경은 이날 오전 김포의 한 요양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고인은 지난해 8월 뇌출혈로 쓰러진 후, 6개월 여간 요양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고인은 60년 넘게 연기 인생을 걸어왔다. 1954년 서울고 재학시절 교내 연극부를 만들었고 이듬해 연극 ‘사육신’을 통해 ‘전국 고교생 연극경연대회’ 연기상을 수상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후 학업을 하면서도 연세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연기에 끈을 놓지 않았다. 고인은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1960년대 TV 드라마 시대를 열었다. 드라마 ‘TV 손자병법’의 이장수 역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고, ‘한국문화대상’ 연극 부문 대상을 포함해 ‘KBS 연기대상’ 대상과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2013년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고인은 식도암, 위암 등으로 인해 잠시 연기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으나 2008년 연극 무대로 돌아와 전성기를 또 한번 누렸다. 최근까지 ‘레미제라블’(2020), ‘3월의 눈’ (2018) 등에 참여했는데, 지난해 5월 연세극예술연구회가 졸업생·재학생들이 함께 올린 합동 공연 ‘한 여름밤의 꿈’에 잠깐 출연했고 이 작품이 유작이 됐다. 유족으로 배우인 딸 오지혜, 아들 오세호 씨가 있다. 고인의 부인은 지난 2017년 세상을 떠난 배우 고(故) 윤소정이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2호실이다. 발인은 오는 5일이며,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유지희 기자 yjhh@edaily.co.kr 2024.03.01 18:02
산업

[부고] 오세진 SK이노베이션 팀장 부인상

▲손소현씨 별세, 오세진(SK이노베이션 밸류크리에이션센터 팀장)씨 부인상=25일 오후 6시 25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 28일 오전 8시 20분, 장지 서울 장지 동작구 달마사. 02-2227-7500, 010-4876-6732 2023.10.26 14:39
연예

후크 권진영 대표, 새해 첫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후크엔터테인먼트 권진영 대표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새해 첫 회원이 됐다. 권진영 대표는 서울 사랑의열매에 1억원을 기부하며 2022년 1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평소에도 꾸준하고 조용하게 나눔을 실천해 온 권 대표는 서울 사랑의열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배우 이서진의 추천으로 기부의 뜻을 함께 하며 우리 사회 소외된 계층을 향한 나눔에 함께 했다. 이어 더해 KBS '동행'과 신촌세브란스병원에도 각각 1억원을 기부, 따뜻한 나눔을 실천했다. 권진영 대표는 "오늘이 있기까지 소속 연예인들을 사랑해준 대중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미약하나마 사회에 보답하는 길은 나부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 진실한 나눔은 한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비롯한 소속 연예인들 모두 선한 영향력을 위해 나눔문화를 확산하는데 함께 할 것이다"고 전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지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함으로써 한국의 나눔 문화를 선도하고 진정한 나눔의 가치를 창조해 나아가고자 하는 뜻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설립한 개인 고액기부자클럽이다. 2022년 1월 현재 전국적으로는 2800여명이, 서울에는 이날 2022년 새해 신규 가입자를 포함해 총 350명의 회원이 있다. 이승기·이서진·윤여정·이선희 등이 소속된 후크엔터테인먼트는지난해 12월 콘텐츠 제작사 초록뱀미디어와 인수합병 소식을 발표했다. 권진영 대표는 인수합병 될 시기에 본인 지분 38%에 해당하는 167억원 상당 주식을 소속 연예인과 임직원 전원에게 무상 증여했다. 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2022.01.01 10:50
생활/문화

KT망 40분 먹통에 온 나라가 대혼란

25일 KT 유·무선 서비스가 40분가량 마비되면서 전국이 혼란에 빠졌다. 휴대전화 이용자는 물론 소상공인까지 큰 피해를 봤는데, 3년 전 화재로 대규모 통신 장애를 유발한 '아현사태'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오전 11시 20분께 KT 유·무선 서비스가 동시다발적으로 멈췄다가 11시 57분쯤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으로 점차 정상화됐다. 네트워크 오류가 점심시간과 겹쳐 사람이 몰리는 식당과 카페 등에 곧바로 영향을 줬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은 모바일 앱으로 QR 체크인을 받는 대신 수기명부 작성을 안내했다. 식당은 예약 손님으로 가득 찬 상황이었는데,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냐고 묻자 "아직 알 수 없다"며 발만 동동 굴렀다. 전국 학교는 원격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교육부는 KT 통신망 장애로 서울과 경기 일부·인천·부산 등 전국 12개 교육청 7742개 학교·유치원과 기관이 불편을 겪었다고 전했다. 공공학습 관리시스템 'e학습터'와 'EBS 온라인클래스' 접속도 차단됐다. 세계기전인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전은 26일로 연기됐다. 온라인 대국이 네트워크 오류로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시께 시작됐지만, 회선 불안으로 40분 만에 중단됐다. 서울대병원 등 서울 주요 상급병원은 수납은 문제가 없었지만, 일부 환자들이 병원을 출입하거나 증명서를 발급할 때 어려움이 있었다. 본인인증용 QR 코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이 사고는 주식시장에도 타격을 줬다. 일부 투자자들이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 접속하지 못해 적시에 거래하지 못했다. 서비스 오류를 인지한 KB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등은 "전국적인 KT 통신망 장애로 관련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다"고 공지했다. KT는 장애 원인에 대해 "초기에는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해 디도스로 추정했으나 면밀히 확인한 결과 라우팅(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를 원인으로 파악했다"며 "정부와 함께 더욱 구체적인 사안을 조사하겠다"고 했다. 디도스는 서버가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선 데이터를 한꺼번에 보내 짧은 시간 안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공격이다. 회사의 해명을 보면 이번 사고는 단순 인재일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네트워크 작업은 업무·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야간에 진행하는데, 주간에 설정이 바뀐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KT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T가 통신 서비스 장애로 뭇매를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수일간 서울 4분의 1 지역의 유·무선 네트워크가 단절됐다. 인근 영업장에서 카드 결제가 힘들었던 것은 물론, 신촌세브란스병원 내·외부 전화와 순천향대서울병원 전산시스템이 막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업계와 통신·전력망 이원화 및 점검 주기 단축 등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또다시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발생해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단 KT는 최고 경영진으로 구성한 위기관리위원회를 가동해 관계부처와 협업, 이른 시일 안에 명확한 사고 원인과 피해 보상안을 공유할 방침이다. 아현 화재 당시 KT는 중소벤처기업부·통계청 등 자료를 기반으로 영업장 일 소득과 현금 계산 비중 등을 서비스 장애 복구 기간과 연계해 1~2일은 40만원, 3~4일은 80만원, 5~6일은 100만원, 7일 이상은 120만원의 지원금 지급을 합의한 바 있다. 정길준 기자 jeong.kiljhun@joongang.co.kr 2021.10.26 07:00
연예

'여고시절' 부른 가수 이수미, 2일 폐암 투병 중 별세

'여고시절' 등의 히트곡을 부른 1970년대 인기 가수 이수미가 폐암 투병 중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인은 지난해 12월께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2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B1) 3호실. 발인은 5일 오전 11시. 장지는 양평 선영이다.한편 故 이수미는 1952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나 1969년 본명인 이화자로 '당신은 갔어도'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예명인 이수미로 1970년 '때늦은 후회지만'을 발매한 뒤 '밤에 우는 새'(1971), '두고 온 고향'(1972) 등을 선보였다.특히 1972년 발표한 '여고시절'이 당대의 히트곡이 되면서 국민 가수로 올라섰다. 이 밖에도 '내 곁에 있어 주', '방울새', '사랑의 의지', '오로지' 등 많은 히트곡을 낳았다.사진=이수미 측,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2021.09.0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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