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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남한산성 밴댕이젓과 왕놀이

“전하, 빙고를 정리하다가 밴댕이젓 한 독을 찾아냈사온데, 씨알이 굵고 삼삼하게 삭아 있사옵니다. 마리 수가 넉넉하지 못하오니 어명으로 분부하여주소서.”(김훈 ‘남한산성’)명의 시대가 저물고 청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었습니다. 청은 명을 쳐야 하는데 조선이 명을 돕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고, 마침내 청은 조선을 침략합니다. 이를 병자호란이라 합니다.조선의 왕 인조는 애초에 강화도로 피신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강화도에서는 오랫동안 버틸 수가 있고, 그러면 원정을 온 청은 보급품 조달에 곤란이 닥쳐 물러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청은 인조가 강화도로 숨을 것임을 알아차리고 길목을 막아버립니다.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숨어듭니다. 먹을거리가 충분치 못한 남한산성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노고가 김훈의 ‘남한산성’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굶주림에 신하들이 산성을 뒤졌을 것이고, 밴댕이젓 한 독을 발견합니다. 그걸 그냥 나누면 될 것인데 신하들은 굳이 왕에게 가서 묻습니다. 소설이니까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설정이지 않을까 싶겠지만, 아닙니다. 역사적 사실입니다. 승정원일기에 소설의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인조 15년(1637년) 1월 21일의 기록입니다.이경증이 아뢰기를, “밴댕이가 남아 있는 것이 있는데, 그 수효가 많지 않아서 한 마리씩밖에는 나누어줄 수 없습니다. 우선 나누어주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선 보류하였다가 요미를 줄여야 할 때에 주도록 하라. 온빈 및 왕자와 왕손이 모두 반찬이 없다고 괴로워하니, 또한 나누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이경증이 아뢰기를, “그렇다면 선왕의 후궁과 여러 왕자들에게도 나누어 보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에게도 나누어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이경증이 아뢰기를, “그 수효가 많지 않으니, 그 나머지를 가지고 나누어 보냅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대로 하라” 하였다. 물러 나갔다. (한국고전번역원, 이봉순 역, 2006)젓독은 장독보다 한참 작습니다. 장은 집에서 담그니까, 장독을 이동할 일이 없고, 그래서 장독은 큼직합니다. 젓갈은 밴댕이, 새우, 황석어 같은 해산물이 잡히는 생산지에서 담급니다. 젓갈은 독에 담긴 채 운송을 해야 하니까 젓독은 작습니다.남한산성의 밴댕이젓독도 작았을 것입니다. 신하 이경증은 “그 수효가 많지 않아서 한 마리씩밖에 나누어줄 수 없습니다”고 했는데, 한 마리씩 받을 수 있는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선왕의 후궁과 여러 왕자들에게도 나누어 보냅니까?” 하고 이경증이 인조에게 되물은 것은 밴댕이젓을 거기까지 보낼 수 있는 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조는 대신에게도 보내라고 합니다.곤란해진 이경증이 다시 확인을 합니다만 인조는 이경증에게 “그대로 하라”고 명령합니다. 인조는 밴댕이젓이 모자라는 것은 그대들 사정이고 자신은 밴댕이를 고루 나누어주라고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짐작을 합니다.왕국이라고 하여 왕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왕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절대 권력으로 헛된 명령이나 하며 권위를 세우는 것을 두고 왕놀이라고 합니다. 왕정시대가 아님에도 우리는 왕놀이를 봅니다. 과학계 연구개발(R&D) 예산을 14.7% 삭감하고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5대 강국이 될 것이라고 강변하는 왕놀이도 보고,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에 격노를 하는 왕놀이도 봅니다.인조가 왕놀이나 하는 왕이 아니었으면 밴댕이젓 한 독을 어떻게 처리했을지 곰곰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세종대왕 정도의 왕이었으면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밴댕이젓독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하라. 양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보자.”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는 척을 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적어도 왕놀이 한다는 말은 듣지 않을 것입니다. 2024.05.30 06:59
연예

시나리오 작가들 군침 꿀꺽…조선 300년간 범죄 심문 기록이 드디어 번역됐다

조선 후기 300년 동안 변란과 역모 등의 중죄인들을 체포하고 심문한 기록이 90권의 방대한 책으로 출판됐다. 전주대학교 한국고전연구소(소장 변주승)는 26일 대학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을 완역한 ‘국역 추안급국안’ 90권을 공개했다고 뉴스1이 보도했다.국역 추안급국안은 한국고전연구소가 2004년 한국연구재단(옛 한국학술진흥재단)이 공모한 ‘기초학문육성 인문사회분야’ 지원 과제로 선정된 번역사업이다.그해 8월부터 2007년 7월까지 3년 동안 1차 번역작업이 완료됐고, 이후 교열 등 후속 작업을 거쳐 이날 90권의 책으로 성과물이 공개됐다.추안급국안은 선조 34년(1601)부터 고종 29년(1892)까지 약 300년 동안 변란과 역모, 왕릉 방화 등 중대 범죄에 대한 체포 및 심문 기록이다.이 책에 등장해 진술을 한 사람만 관료와 상인, 농민, 궁녀 등 1만2000명에 달한다.변주승 소장은 “지금으로 치면 대검찰청과 대법원의 기록을 합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면서 “주요 사건에 대한 심문 및 고문 과정, 진술 과정, 최종 판결 등이 담겨졌다”고 말했다.추안급국안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다른 역사서에서 요약된 사건이나 내용들이 가감 없이 자세히 수록돼 있어 이 책을 바탕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면 조선 후기 역사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소 측은 강조했다.특히 역모 사건의 진실 규명과 사건 가담자들의 내면, 권력을 둘러싼 다양한 갈등 구조들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국역 추안급국안은 200자 원고지 15만 매 규모로, 고전번역 단일사업으로는 최고의 결과물이라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연구소는 90권의 이 책자를 500부 제작해 보급하는 한편, 국역본 확대를 위해 원문과 함께 국역본 웹서비스를 추진할 계획이다.변 소장은 “추안급국안은 주막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등 조선시대 생활사가 방대하게 들어 있어 사극 시나리오 등에 활용될 수 있으며, 실제로 방송사의 제안도 있었다”면서 “문화사업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것인지 등은 서두르지 않고 조율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온라인 일간스포츠 2014.09.2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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