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112건
프로야구

프로 22년 차 고효준 "좌 송진우·우 김원형 목표 달성, 잘 버텼다"

SSG 랜더스 투수 고효준(40)은 프로 22년 차다. 현재 KBO리그에서 활약 중인 투수 중 가장 긴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여전히 필승조에 속해 있다. 고효준은 지난 2002년 롯데 자이언츠(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에 입단했다. 이후 SK 와이번스(현 SSG)-KIA 타이거즈-롯데-LG 트윈스를 거쳐 지난해부터 SSG에서 뛰고 있다. 나이로는 1982년 7월생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 리그 최고령 투수다. 그러나 오승환은 단국대를 졸업하고 2005년 삼성에 입단했다. 프로 경력으로는 1983년 2월생 고효준이 현역 최고다.고효준은 "솔직히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원형 감독님께서도 '좋은 구위나 결과를 보인다면 나이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씀 해주신다"고 전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목표 의식이 있었다. 선수로 길게 뛰는 거였다"고 말했다. 롤 모델은 송진우(전 한화 이글스)와 김원형(현 SSG 감독)이었다. 송진우는 고효준의 세광고 선배이자 같은 좌완 투수 출신이다. 1989년 빙그레 이글스에서 데뷔해 2009년까지 원클럽맨으로 활약하며 투수 통산 최다승(210승)을 달성했다. 그는 "송진우 선배님의 나이와 연차까지 뛰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등 운동을 꾸준하게 쉼 없이 해왔다"고 돌아봤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프로 입단한 송진우는 마흔셋, 프로 21년 차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SK로 옮긴 후에는 우완 투수 김원형이 우러러보였다. 고효준은 2002년 롯데 입단 후 곧바로 방출, 이듬해부터 SK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김원형 감독과는 SK에서 8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그는 "SK로 옮기자 '김원형 선배님처럼, 그 나이까지 뛰고 싶다'고 많이 생각했다"며 "나도 SK 시절 선발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 김원형 감독님이 커브로 삼진을 잡고 시크하게 마운드를 내려오는데 멋있더라"고 말했다.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 '어린 왕좌'로 불렸던 김원형 감독은 통산 134승을 거두고 2010년 은퇴했다. 고효준은 "언젠가 '선배(감독)님처럼 오래 뛰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너도 오래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대로 자신 있게 던져'라고 격려해 주셨다"고 회상했다. 고효준은 송진우와 김원형이 남긴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배보다 더 오래 프로에서 버티고 있다. 그의 야구 인생을 돌이켜 보면 의미가 적지 않다. 방출 3회(롯데 2회, LG 1회) 트레이드 1회(SK→KIA) 2차 드래프트 1회(KIA→롯데) 등을 경험했다. 야구 인생의 위기도 여러 차례 마주했고,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팀을 옮겨야만 했다. 고효준은 "프로 생활이 힘들기도 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야구를 그만둘까' 하는 내적 갈등도 많이 했다"면서 "돌이켜보면 '잘 버텼다' 싶다. '고효준 잘했다. 잘 이겨내고 성공했네'라고 칭찬하고 싶다"고 회상했다. 2021년 말 LG에서 방출된 고효준은 지난해 SSG로 이적했다. 사실상 마지막 팀이다. 지난해 45경기에서 1승 7홀드 평균자책점 3.45를 올린 고효준은 올 시즌에도 필승조의 한 축을 맡아 2승 1패 7홀드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하고 있다. 노경은(35경기)에 이어 팀 내 투수 중 두 번째로 많은 34경기에 출장했다. 고효준은 젊은 시절과 비교해 "(피칭이) 확실히 많이 영글었다. 과거에는 무턱대고 힘으로 상대했는데 지금은 노련미가 많이 붙었다"며 "노경은(39)이나 나처럼 경험 많은 선수들이 적재적소에 투입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올 시즌 개막 전 SSG의 최대 약점은 불펜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SSG는 1일 기준으로 구원진 평균자책점 1위(3.04)다. 고효준은 "지난해 SSG로 돌아와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라며 "올해도 목표는 우승"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형석 기자 2023.07.02 09:15
프로야구

[김성근 인터뷰] "나이 먹을수록 물음표를 달아야지..만족하면 끝이야"

“허허. 저기가 이화여고인가? 저 운동장 기억이 나네.”본지와 인터뷰를 위해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를 찾은 김성근(81) 감독은 20층 라운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본 교토 가쓰라 고교 시절 재일동포야구단 선수로 서울에 처음 왔던 그는 64년 전 교정을 떠올렸다. 1959년 당시 두 학교는 자매결연이었다고 한다.고교 시절 처음 와본 한국에서 야구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1964년 가족과 헤어지며 영구 귀국했다. 이후 실업야구 선수로 활약한 그는 스물여덟 살에 마산상고 감독을 맡았다. 고교‧실업팀, 프로야구 6개 팀 지휘봉을 잡았던 그는 팔순이 넘은 지금도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감독으로서 야구와 대화하고 있다.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졌어도 그는 54년째 리더다. 그가 감독 생활을 시작한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묻고 싶었다. 어떻게 사람을 이끄느냐고. 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느냐고.- 감독님의 지도자 경력이 일간스포츠 역사와 같다. 본지와 추억도 많을 텐데.“일간스포츠가 오래된 만큼 추억도 많지. 1971년 제9회 서울 아시아야구선수권에서는 대회 중간에 감독 대행을 맡은 고(故) 김영덕 선배(1936~2023)가 우승으로 이끈 대회였어. 내가 그때 일간스포츠 관전평을 썼거든. 전임 감독 대신 지휘봉을 잡은 김영덕 선배를 표현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 표현했는데 (독자들이 부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여서) 난리가 났지. 한국어 뉘앙스를 모르고 쓴 말이었거든. 당시 내 소속팀 기업은행의 행장실로 불려가 ‘한국어가 익숙지 않아서 그랬다’고 해명해서 안 잘렸지.”김성근 감독은 일본 지바 롯데 코치 시절인 2006년에도 일간스포츠에 칼럼을 연재했다. 당시 롯데에서 그의 역할은 이승엽(현 두산 베어스 감독)을 지도하는 것이었다. 사제지간이었던 둘은 최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동등한 입장에서 맞대결하고 있다. ‘최강야구’ 초대 감독이었던 이승엽이 지난해 말 두산 지휘봉을 잡았고, 비슷한 시기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 고문에서 물러난 김성근 감독이 2대 사령탑을 맡아 ‘제자의 후임’이 된 것이다. 두 팀의 대결은 현재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프로팀이 아닌 은퇴 선수들로 구성된 ‘최강야구’를 이끌고 있다.“방송국에서 섭외가 들어왔을 때 내가 거절했다. ‘거기(예능) 가면 뭐하겠나’라고 생각했다. 안 하겠다고 하고 TV를 봤는데, 선수들이 진지하게 전력질주를 하더라. 못할 때 아쉬움도 갖고 있고.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PD가 승률 7할이 ‘최강야구’의 목표라고 하더라. 그게 좋았다. 분명한 목표가 있으니까.”- 은퇴 선수들에게 어떤 당부를 하셨나.“‘최강야구’ 선수들이 경기에서 지면 ‘(우리가) 프로 출신인데 창피하다’라고 몇 번씩 얘기하더라. 그거다. ‘너희 지금도 돈(출연료) 받고 있지 않느냐. 그럼 프로다’라고 이야기했다. (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을 받으니) 사명감을 가지라는 거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하는 말이다. 100원을 받아도 일은 일이다.”- 또 무슨 말씀을 하셨나.“지난해 가을 내가 한국시리즈를 5년 만에 봤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움직이지 않더라. 몸이 안 움직이고, 머리도 안 움직이더라. 은퇴 선수들의 육체는 전보다 못하지만, 머리는 괜찮다. 그 머리를 왜 안 쓰냐고 했다. 머리로 야구하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야구 선수로 은퇴해서 마흔다섯 살쯤 됐으면, 사회인으로서 예순 살(정년퇴직) 정도 아니냐. 그래도 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회에도 전해주라고 당부했다.” - 은퇴 선수들이 달라졌나.“내가 놀란 건 자기 돈 내고 해외로 훈련을 간 선수들도 있다고 하더라. 새로운 의식이 생긴 것 같다. 나이 먹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 않나. (이대호 등) 프로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최강야구’로 넘어오고 있다. 그러면 다시 경쟁이다. 은퇴 선수 중에서 나이가 많으면 밀려날 수 있다는 거다. 그게 세상이다.”- 40대 감독 시절에도 20대 선수를 가르쳤고, 지금도 젊은 선수들과 소통한다. 뭐가 다른가.“내가 쌍방울 감독 시절에는 포수 박경완을 많이 혼냈다. 공 배합을 똑바로 못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면 내가 조인트(무릎)도 까고 그랬지. 그렇게 혹독하게 해서 한국 최고의 포수가 됐잖아. 그런데 지금은 선수를 불러놓고 하나하나 상세하게 이유를 말해준다. 젊은이를 대하는 방법은 달라졌지만, 근본은 똑같아. 리더는 책임을 지고, 팀원들이 사명감을 갖도록 해야 하는 거야.” -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무슨 일이든 적당히 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법이다. 선수들에게 ‘네 주관대로 다 하라. 은퇴할 때 후회 하지 말라’고 말한다. 강물의 흐름은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똑같은 흐름 속에 살고 있다. 너무 편안하다. 지금 선수들은 잘못하면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조금 잘하면 만족해 버린다. 포기도 빠르지.”- 그런 이유로 감독님이 선수를 ‘강하게 푸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람들은 내가 선수를 혹사시킨다고 비난하지만, 내게는 교육이고, 육성이다. 내가 2007년 SK 와이번스 감독을 맡아서 중견수였던 정근우(은퇴)를 2루수로 돌렸다. 정근우는 입단 당시 내야수였는데 (송구가 좋지 않아서) 외야수로 바꾼 거지. 포기하면 쉽지만, 그럼 강해질 수 없잖아. 최정(SSG 랜더스)도 땅볼을 다 놓쳤어. 혹독하게 훈련 시켰는데 다 따라오더라고. 잘 키워보고 싶었는데 곧 최고의 3루수가 됐지. 태만해선 안 돼. 내가 뒤로 물러서면 파도가 몰아쳐. 한 걸음 더 피하면 쓰나미로 이어지지.”- 20년 넘게 감독님을 봐왔지만, 그 원칙 하나는 달라지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법은 바뀌기도 해야 할 것 같은데.“맞다.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경기 중 왜 지시를 안 했지? 선수를 왜 안 바꿨지? 평생 이렇게 묻고 답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늘 반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뒤를 보면 안 된다. 시선은 앞으로, 미래로.”- 가장 오래된 스포츠 미디어인 일간스포츠에 하는 말 같기도 하다.“신문 기사에 악센트가 필요하다. 뉴스는 인터넷에 얼마든지 많다. 기사 하나를 써도 그 목적이 분명하면 좋겠다. 내가 신문은 잘 모르지만, 1면에 퀘스천 마크 하나만 붙여봐라. ‘왜? 어떻게?’라는 메시지를 주는 거다. 그리고 구성원들이 그걸 가지고 토론해봐라. 남이 갖지 않은 1%를 가지려고 다 같이 노력해봐라. 51대49면 이기는 거다.”- 여전히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친다. 얼마 전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서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기보다는,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답했다. 야구가 지금보다 재미있어지려면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러려고 평생 야구 일기를 써왔다. 나는 지금도 불안, 불만, 부족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면서 더 나아진다. 마음 같아서는 100세까지 야구를 하고 싶은데 (암 수술을 3번이나 했으니) 의사가 안 된다고 하더라. 허허. 중요한 건 만족은 사람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이다. 만족하면 (발전은) 끝난다.”- 지금 말씀이 좌우명 일구이무(一球二無, 공 하나에 두 번의 기회는 없다)를 설명하는 것 같다.“이 말의 진짜 뜻을 아는가? 처음 기회는 자신에게 왔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기회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세 번째 기회는 알고도 놓친다. 그러니까 준비, 또 준비하라는 거다.” - ‘이 나이에도 야구장으로 출근하는 길이 가장 즐겁다’고 하였다. 회사로 출근하는 길이 즐거울 수 있도록 한마디 해주신다면.“잘못한 일은 그날 반성해야 한다. 그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다음 날 출근길이 즐거울 거다. 새로운 일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다. 평원에 서 있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절벽에서 두 팔로 겨우 매달려 있다고 생각해보라. 날씨를 탓하고, 바람을 탓할까? 오직 살 생각만 하게 된다. 그렇게 생존법을 찾아보는 거지. 허허.”김식·윤승재 기자 2023.02.13 07:30
프로야구

[KBO리그 40년 The moment] '노메달' 도쿄 올림픽부터 마법사의 첫 우승까지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해 왔다. 2021년 모멘트를 다룬 이번 시리즈로 긴 여정을 마친다. ①SSG로 간판 바꾼 인천야구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SK텔레콤이 운영하던 SK를 1352억 8000만원에 인수했다. 새 구단명은 SSG 랜더스로 정했다. 인천야구의 간판은 5번이나 바뀌게 됐다. 인천 프로야구단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를 시작으로 청보, 태평양, 현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2000년 현대가 수원으로 떠났고, SK가 자금난을 겪던 쌍방울 선수단만 인수, 인천에서 신생팀을 창단했다. SK는 인천에서 네 차례 우승을 이뤘지만, SSG의 인수 제의를 수용하면서 21년 만에 프로야구를 떠났다. ②‘추추 트레인’ 한국 상륙 MLB에서 통산 16시즌 218홈런 782타점으로 활약했던 추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SK를 인수한 SSG는 2007년 해외진출 선수 특별지명에서 SK가 지명했던 추신수가 텍사스와 계약이 끝나자 연봉 27억원에 입단계약을 체결했다. 2021시즌 137경기에 출전한 그는 타율 0.265 21홈런 25도루 103볼넷으로 역대 최고령 20홈런-20도루(39세 2개월 22일)와 100볼넷 기록(39세 3개월 13일)을 새로 썼다. ③리그 흔든 방역수칙 위반 논란 7월 5일 NC 권희동·박민우·박석민·이명기 등 4인이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하고 숙소에서 외부인 2명과 술자리를 가져 논란을 빚었다. 키움 한현희·안우진과 한화 윤대경·주현상도 수칙 위반이 확인됐다.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리그가 중단됐다. 황순현 대표 등 NC 수뇌부 3명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KBO는 위반 선수 8명에게 출장정지 징계와 제재금을 부과했다. ④‘디펜딩 챔피언’ 한국, 올림픽 노메달 김경문 감독이 이끈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도쿄 올림픽에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도쿄 올림픽에서는 야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후 12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부활했다. 12년 전 우승팀 한국은 2연패를 노렸으나 3승 4패로 본선 진출국 6개국 중 4위로 마감했다.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이 불참한 데다 선발진이 평균 4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흔들렸다. 결국 한국은 미국·일본 등 강호들을 상대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메달 없이 대회를 마무리했다. ⑤오승환, 역대 최초 300세이브 삼성 오승환이 4월 25일 KIA전에서 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 역대 최초로 통산 300세이브 고지에 올랐다. 2013년까지 277세이브를 기록한 후 해외로 진출했던 오승환은 2020시즌 복귀해 18세이브를 거뒀다. 2005년 프로 데뷔 이래 16년 497경기 만에 300세이브 고지에 오른 그는 10월 13일 KIA전에서 시즌 40세이브도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령 40세이브 기록(39세 2개월 28일)도 남겼다. ⑥최정, 대기록 잔치 SSG 최정이 프로 17번째 시즌에서 대기록을 여럿 작성했다. 그는 5월 18일 KIA전에서 솔로홈런을 쳐 시즌 10호 포를 기록했다. KBO리그 최초의 16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 15시즌 연속 10홈런 이상을 기록한 장종훈과 양준혁의 기록을 넘었다. 또 최정은 8월 18일 NC전에서는 6회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개인 통산 288번째 사구로 메이저리그 휴이 제닝스가 세웠던 287개를 넘어섰다. 10월 19일 KIA전에서는 좌월 솔로 홈런으로 시즌 32호로이자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다. 이승엽(467홈런)에 이은 리그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⑦손아섭, 최소 경기·최연소 2000안타 롯데 손아섭은 8월 14일 LG전에서 리그 역대 최소 경기(1636경기) 및 최연소(33세 4개월 27일) 2000안타 기록을 세웠다. 기록이 수정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손아섭은 앞서 6월 27일 두산전에서 1안타를 쳤으나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돼 집계가 보류됐다. 해당 경기는 10월 7일 재개됐고, 정산이 6월 27일로 되면서 손아섭의 기록 달성 시점은 이후 1632경기와 33세 3개월 22일에 해당하는 7월 10일 삼성전으로 조정됐다. ⑧KT, 창단 첫 통합 우승 KT는 정규시즌 76승 9무 59패로 삼성과 동률을 기록, 타이브레이커 끝에 1위를 확정했다. KT는 한국시리즈에서 두산과 만났다. 두산은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세 시리즈에서 승리해 7년 연속 KS에 올랐다. KT는 4명의 선발 투수들이 모두 5이닝 이상 책임지며 4연속 선발승을 거뒀다. 4전 전승은 역대 9번째, 4연속 선발 스윕승은 역대 최초 기록이다. 시리즈 MVP는 박경수가 수상했다. LG와 KT에서 뛰었던 그는 데뷔 19년 만에 처음 오른 KS에서 호수비와 결정적 홈런포를 선보이며 시리즈의 주인공이 됐다. ⑨최동원 넘은 ‘225K’ 미란다는 MVP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 225탈삼진을 기록한 두산 아리엘 미란다가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2관왕을 차지했는데, 특히 고(故) 최동원 한화 2군 감독이 1984년 롯데에서 세운 단일 시즌 탈삼진 기록(223개)을 37년 만에 경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과 대만 프로야구를 경험했던 미란다는 시즌 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주 무기 포크볼을 더 공격적으로 던지면서 전혀 다른 투수로 변신했다. ⑩이의리, 36년 만에 타이거즈 신인왕 KIA 이의리가 2021년 신인왕을 차지했다. 1차 지명을 받고 KIA에 입단한 이의리는 시즌 초부터 선발 기회를 잡았다. 19경기에 나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3.61 93탈삼진을 기록했다. 도쿄 올림픽 대표팀에도 승선, 10이닝 18탈삼진을 기록했다. 2017년 키움 이정후 이후 5년 연속 고졸 순수 신인 수상자이자 1985년 해태 이순철 이후 36년 만에 타이거즈 신인왕 수상자로도 이름을 남겼다. 차승윤 기자 사진=IS 포토·SSG 랜더스·연합뉴스 2022.12.31 18:00
프로야구

[KBO리그 40년 The moment] 해태의 마지막 우승, 라이언킹의 첫 포효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김현욱, 유일무이 '구원 20승' 달성 쌍방울 사이드암스로 김현욱은 1년 전 필승조로 성장한 데 이어 97년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다. 구원으로만 20승을 올리며 다승, 평균자책점(1.88)과 승률(0.909) 등 투수 3관왕을 기록했다. 피안타율 0.204(2위), 탈삼진 135개(4위) 등의 기록도 뛰어났다. 다만 승수 몰아주기 논란이 일었다. 5회 종료 이전에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해 승리한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결국 그해 투수 골든글러브는 해태 이대진에게 넘어갔다. ②김용수, 첫 500경기 출장 LG 김용수는 1997년 9월 11일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KBO리그 역대 최초로 투수 5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중앙대 졸업 후 실업야구 한일은행을 거쳐 1985년 MBC 청룡(LG의 전신)에 입단한 그는 첫해 6경기를 시작으로 이후 13년에 걸쳐 대기록을 작성했다. 500경기에 도달할 때까지 선발 79경기·구원 421경기에 등판, 96승 70패 195세이브 평균자책점 2.73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③삼성 부정 배트 사건 삼성은 5월 4일 대구 LG전에서 불방망이를 휘두르다 논란을 빚었다. 삼성은 이날 경기에서 27-5로 대승했다. 역대 최초 연타석 만루홈런(정경배)을 앞세워 한 경기 최다득점과 역대 최다 득점차(22점) 신기록을 세웠다. 대패한 천보성 LG 감독이 다음 날 부정 배트 의혹을 제기했고, 김성근 쌍방울 감독도 가세해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조사가 시작됐다. KBO 측은 미국 조사기관에 배트의 재질과 도료 등에 대해 검사를 의뢰, 배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④해태 왕조의 마지막 우승 시즌 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해태 주전 선수들이 코치진과 갈등 끝에 훈련을 거부(하와이 항명 사건)했다. 우려 속에 시즌을 시작했지만, 단 한 차례도 3위권 밖을 벗어나지 않은 끝에 75승 1무 50패(승률 0.599)로 우승했다. 마무리 임창용, 중견수 김창희 등 세대교체에도 성공했다. 이종범이 30홈런-30도루, 이대진이 17승을 기록하는 등 기존 주축 선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해태는 LG와의 한국시리즈(KS)에서 더 강력했다. 2년 연속 KS 1차전 선발투수로 나서 승리한 이대진이 4차전에서도 7이닝 2실점 승리를 기록했다. 임창용은 3세이브를 거뒀다. 우승 1주일 후인 11월 1일, 모기업 해태그룹이 부도 처리되면서 해태 왕조는 쇠락하기 시작한다. ⑤'아기 호랑이' 김상진의 KS 완투승 김상진은 해태 우승에 화룡점정을 찍은 주인공이었다. 1996년 해태에 입단한 그는 2년 차 때 9승 10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60으로 선발진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정규시즌보다 빛났던 건 KS였다. 2차전에 이어 5차전에 선발 등판했던 김상진은 9이닝 2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기록했다. 만 스무 살에 세운 KS 최연소 완투승 기록이다. ⑥바람의 아들은 해외로 마지막 우승을 이끈 건 역시 이종범이었다. KS 1차전부터 솔로홈런을 기록한 그는 시리즈 타율 0.294 3홈런 4타점을 거두고 MVP를 수상했다. 시즌이 끝난 후 이종범은 새로운 무대를 찾아 떠난다. 이종범은 12월 3일 이적료 4억4000만엔, 입단 보너스 5000만엔, 98년 연봉 8000만엔의 조건으로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 팀 선배 선동열과 다시 만났다. ⑦'적토마' 이병규의 질주 1997년 최고의 신인은 '적토마' 이병규였다. 단국대를 졸업한 그는 1년 전 박재홍이 받았던 신인 야수 최대 계약금(4억 3000만원)을 넘은 4억 4000만원을 받고 LG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부터 중심타선에 입성한 이병규는 첫해 타율 0.305 7홈런 69타점 23도루로 활약했다. 시즌 종료 후 신인왕 투표에서는 75표 중 52표를 얻었다. ⑧'라이언킹' 이승엽, 첫 MVP 삼성 이승엽은 프로 3년 차인 1997년 만개했다. 직전 2년간 22홈런을 기록했던 그는 1997년 타율 0.329 170안타 32홈런 114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역대 최연소 홈런왕을 비롯해 안타·홈런·타점 3관왕에 올랐다. 그는 이후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왕으로 성장했다. ⑨외국인 시대 열린 KBO리그 1997시즌이 끝난 후 KBO리그는 새 시대에 접어든다. 11월 14일 사상 첫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가 실시됐다. 쌍방울을 제외한 7개 구단이 총 35명의 외국인 선수를 지명했다. 팀 별로 2명을 보유하고 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해태는 외국인 선수 계약을 포기했고, LG와 롯데는 각각 1명만 데려왔다. 차승윤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18:01
프로야구

[KBO리그 40년 The moment] 잠실 라이벌 시대 열리다...국보는 일본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잠실 라이벌의 숨 막히는 우승 다툼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 LG는 시즌 종반이던 8월 27일까지 2위 OB에 6경기 앞선 선두를 질주했다. 이때부터 OB의 기적이 일어났다. 8월 27일 더블헤더 2차전을 시작으로 9월 10일까지 12승 2패를 거둬 LG를 끌어내리고 선두를 뺏었다. 두 팀의 피 말리는 승부는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이어졌다. OB는 태평양을 3-2로 이겨 승률 0.607(74승47패5무)로 정규시즌 우승으로 확정했다. LG는 74승 48패 4무를 올렸으나 반 경기 차로 고개를 떨궜다. '미러클 두산'의 서막을 올린 시즌이다. ②13년 만에 정상 복귀한 OB 1994년 말 항명 파동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OB는 중·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이 부임해 빠르게 팀을 정비했고, 깜짝 통합 우승까지 차지했다. 정규시즌 LG의 막판 추격을 따돌린 OB는 롯데와의 한국시리즈에서 5차전까지 2승 3패로 뒤졌으나 6~7차전 진필중·김상진의 역투 속에 모두 이겨 프로 원년 이후 13년 만에 우승했다. 김상호, 김형석, 박철순 등 베테랑과 정수근, 심정수, 이도형, 진필중 등 신예의 깜짝 활약이 어우러졌다. ③해태 10년 만에 PS 진출 좌절 해태는 64승 58패 4무(승률 0.524)로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3위 팀과의 승차가 3.5경 차 이내여야 준플레이오프가 성사되는 규정이 있었다. 3위 롯데와 4위 해태는 4.5경기 차였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만 6차례 차지한 해태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10년 만에 무산됐다. 해태는 팀 평균자책점은 3.06으로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종범이 방위 복무로 원정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일부 베테랑이 노쇠화를 보여 공격력(팀 타율 7위)이 약화한 영향이 컸다. ④김상호 서울팀 최초 홈런왕 1988년 MBC 청룡(LG 전신)에 입단한 김상호는 1990시즌을 앞두고 최일언과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OB로 이적했다. 1995년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25홈런(126경기)을 기록, 서울 연고 팀 최초의 홈런왕에 올랐다. 그해 타점왕(101개)까지 거머쥔 그는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까지 휩쓸었다. 김상호 이후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토종 홈런왕이 재탄생하기까지 무려 33년이 걸렸다. 김재환(두산)이 2018년 44홈런으로 타이틀을 획득했다. ⑤이동수, 타자 최초 중고 신인왕 1995년 계약금 1억원 이상을 받은 대형 신인이 대거 입단했다. 이동수가 이승엽과 마해영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신인왕에 등극했다. 1992년 입단해 1994년 6경기 출장이 전부였던 그는 1995년 125경기에서 타율 0.288 22홈런 81타점을 기록했다. 1988년 태평양 언더핸드 투수 박정현이 최초로 중고 신인왕에 올랐지만, 타자로는 이동수가 처음이었다. ⑥최초 500만 관중 돌파 이해 총관중은 540만 6374명을 기록했다. 1982년 프로 출범 후 처음으로 시즌 5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OB와 LG가 막판까지 우승 다툼을 했고, 인기 구단 롯데와 해태도 정규시즌 3~4위에 오르며 인기몰이를 주도했다. 다시 500만 관중을 돌파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KBO리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2008년 총관중 525만6332명을 불러 모았다. ⑦한일 슈퍼게임 2승 2무 2패 1991년에 이어 두 번째로 한일 슈퍼게임이 열렸다. 일본 도쿄돔과 나고야 등에서 열린 대회에서 한국은 2승 2무 2패를 기록했다. 한 수 위로 평가받은 일본을 상대로 자신감을 갖는 계기였다. 1995년 타격왕 김광림(쌍방울)의 상승세는 한일 슈퍼게임까지 이어졌다. 2차전과 3차전 연속 결승타를 날렸다. 총 16타수 9안타(타율 0.563) 4타점을 올려 한국 MVP로 선정됐다. 기자단 투표 총 27표 중 25표를 얻을 만큼 압도적인 지지였다. ⑧선동열 일본 진출 '국보' 선동열은 평균자책점 0.49를 기록하며 2년 만에 구원왕에 올랐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한일 슈퍼게임에서도 활약한 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와 계약했다. 1995년 1억 3000만원으로 리그에서 유일한 억대 연봉자였던 그는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3억엔(당시 기준 22억 5000만원)의 조건에 사인했다. 그의 해외 진출에 반대한 해태 구단이 직접 의뢰해 여론조사까지 이뤄졌을 만큼 큰 관심을 모았는데, 여론은 선동열의 편이었다. ⑨인천 야구, 네 번째 주인은 현대 1994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태평양은 1년 만에 고꾸라졌다. 가까스로 승률 4할(0.401, 48승 73패 5무)을 넘겼다. 모그룹은 시즌 중반부터 현대와 매각 협상을 벌이는 등 야구단 운영에 미련이 없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현대그룹에 구단을 470억원에 매각했다. 1988년 청보 핀토스 인수 금액(50억원)에 비하면 매각 대금이 껑충 뛰어올랐다. 인천 야구는 삼미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에 이어 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지는 네 번째 주인을 맞았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3 09:00
프로야구

[KBO리그 40년 The moment] 종범신과 양신의 시대가 열리다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강혁 파동 강혁은 신일고 시절인 1991년 대통령배와 청룡기 타격왕, 이영민 타격상, 1992년 대붕기 타격상과 사이클링 히트, 전국대회 31경기 연속안타(고교야구 최고 기록)를 기록한 '역대급' 유망주였다. 1992년 3월 한양대가 그와 가계약했지만, OB 베어스도 6월 역대 야구 최고액인 6000만원을 약속하고 계약했다. 이는 11월 1일부터 15일 사이에 계약해야 한다는 프로-아마 협정 위반이었다. OB와 한양대는 서로 강혁을 숨겨가며 신경전을 벌였지만, 강혁이 납치됐다며 경찰까지 동원한 한양대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듬해 OB는 한양대와 함께 강혁을 선수 등록했고, 강혁은 이중등록에 대한 처분으로 1993년 4월 19일 영구 실격선수 처리된다. 그는 대학 무대를 제패하지만, 실업 현대 피닉스를 거쳐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활약한 후인 1999년에야 프로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②김원형, 최연소 노히트노런 김원형은 4월 30일 OB 베어스와 홈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이날 그는 6회 초 1사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지만, 김민호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내주며 퍼펙트게임 달성에 실패했다. 김원형의 노히트노런은 프로야구 통산 7번째 기록이자 역대 최연소(20세 9개월 25일) 달성이다. 사진은 당시 KBO 이상훈 총재로부터 노히트노런 달성 기념 글러브를 수여 받는 모습. ③마무리로 부활한 선동열 1992년 어깨 건초염으로 32이닝밖에 투구하지 못했던 그는 이듬해부터 마무리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49경기 126이닝 10승 3패 31세이브 평균자책점 0.78(규정이닝 역대 최저 기록)을 기록하며 투수 골든글러브를 되찾았다. 선동열이 부활하자 그를 탐낸 일본프로야구의 구애도 강해졌다. 1993년 주니치 드래건스는 주니치신문 편집위원 하시모토 가즈오를 광주 선동열의 자택으로 보냈다가 해태 타이거즈 측의 항의를 받고 구단주가 사과했다. 다이에 호크스는 1억 6000만엔의 현금 트레이드를 제시하기도 했다. ④사직에서 열린 올스타전...주인공은 빙그레 '첫 MVP' 이강돈 1993년 올스타전은 7월 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렸다. 시구는 88올림픽 탁구 여자복식 금메달리스트 현정화가 했고, 경기에 앞서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올스타로 서군 선동열과 동군 윤학길이 자신의 손 모양을 본 뜬 순간조형을 부상으로 받았다. 미스터 올스타는 3타수 2안타(1홈런) 2타점을 친 이강돈(빙그레 이글스)이 50표 가운데 43표를 받고 선정됐다. 빙그레 창단 이후 나온 첫 올스타전 MVP였다. ⑤가을에 열린 '지하철 시리즈' 1993년 준플레이오프의 주인공은 한 지붕 라이벌인 LG와 OB였다. '지하철 시리즈'를 보기 위해 팬들이 몰렸고, 이는 3차전까지 모든 경기 좌석이 매진되는 진기록을 만들었다. OB는 구원 공동 2위인 신인 김경원, 최다안타 1위 김형석을 앞세워 6년 만에 3위로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았다. LG는 김용수, 김태원, 정상흠에 신인 이상훈과 강봉수가 합류해 정규시즌 4위를 차지했다. LG는 김태원의 호투에 힘입어 2승 1패로 승리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⑥박충식, KS서 15이닝 완투 양준혁과 이종범에 묻혔지만, '입단 동기' 박충식의 활약도 뛰어났다. 그해 32경기에 등판한 박충식은 14승 7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54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에서 활약도 뛰어났다. 2차전까지 1승 1패로 맞선 뒤 대구에서 열린 3차전, 박충식은 15이닝 181구 완투로 해태 문희수-선동열-송유석에 홀로 맞섰다. 1대3의 투수 맞대결은 4시간 30분 동안 이어졌고, 승자 없이 2-2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⑦6년 만에 만난 라이벌, 해태가 웃었다 한국시리즈에서 웃은 건 ‘또’ 해태였다. 해태는 선동열, 이종범, 김성한 등 신구 조화를 앞세워 삼성을 1987년에 이어 6년 만에 다시 제압했다. 5차전까지 2승 1무 2패로 맞서다가 6차전 8회 해태 김성한의 결승 투런포가 터졌다. 기세를 탄 해태는 7차전을 4-1로 압도, 통산 7번째 우승을 완성했다. ⑧정규시즌 MVP 김성래 1993년 정규시즌 최고의 선수는 김성래였다. 1987년 홈런왕에 올랐던 그는 이듬해 9월 6일 해태전에서 김성한과 1루에서 충돌해 무릎을 다쳤다. 이후 후유증으로 4년여 동안 부진했다. 1993시즌을 맞이하면서 “올해도 안 되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했던 그는 정규시즌 2관왕(28홈런, 91타점)에 오르며 그해 MVP(최우수선수)에 올랐다. ⑨괴물 신인 양준혁 1993년에는 프로야구의 전설로 남은 이종범과 양준혁이 함께 데뷔했다. 이종범은 도루 2위 타격 15위를 기록하며 대형 신인의 자질을 드러냈지만, 타율 1위 출루율 1위 장타율 1위까지 3관왕을 휩쓸었던 양준혁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신인 타격왕은 1983년 장효조 이후 역대 두 번째 기록. 양준혁은 신인왕 투표에서 617점을 얻어 343포인트의 이종범을 제쳤다. ⑩바람의 시작, KS MVP 이종범 정규시즌에서는 양준혁에 밀렸지만, 정상의 무대에서는 이종범이 앞섰다. 이종범은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29타수 9안타(타율 0.310) 4타점 7도루를 기록하며 기자단 투표 48표 중 45표를 득표하며 시리즈 MVP에 올랐다. 차승윤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2 13:00
프로야구

[KBO리그 40년 The moment] 빙그레가 지배했지만, 롯데가 우승했다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월간 최다 패' 쌍방울, 최하위 추락 쌍방울은 1군 진입 첫 시즌(1991) 공동 6위(52승 3무 71패)에 오르며 선전했다. 그러나 1992년엔 초반부터 고전했다. 4월 말까지는 5할 승률을 유지했지만, 마무리 투수 조규제가 허벅지 부상으로 이탈한 뒤 급격하게 하락세를 타며 5월에만 20패를 당했다.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월간 최다패' 기록(공동 1위)이다. 결국 정규시즌 최하위(8위)로 1992시즌을 마쳤다. 간판타자였던 김기태는 31홈런을 때려내며 분전했지만, 팀의 추락은 막지 못했다. ② 김성한, 개인 첫 올스타전 MVP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만 2번(1985·88년) 차지했던 해태 김성한은 선수 생활 황혼기에 '미스터 올스타'까지 거머쥐었다. 그는 6월 2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역전 3점포를 치는 등 4타수 3안타로 활약, 서군의 10-2 승리를 이끌었다. 기자단 투표에서 총 38표 중 37표를 얻었다. 그는 1995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한국시리즈(KS) MVP만은 끝내 수상하지 못했다. ③ 신인 투수 오봉옥, 100% 승률왕 삼성 신인 투수였던 오봉옥은 38경기에 등판, 13승 무패 2세이브를 기록했다. KBO리그 출범 처음으로 100% 승률로 이 부문 타이틀을 가져간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1991년 12월, 입단 테스트를 받고 삼성 유니폼을 입은 그는 김성근 감독의 혹독한 훈련을 소화한 뒤 데뷔 시즌에 나섰다. 패전 처리로 등판한 4월 28일 쌍방울전에서 데뷔 첫 승을 거뒀고, 이후 운과 실력이 더해지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④ 빙그레, 정규시즌 최다 81승 빙그레는 정규시즌 81승(2무 43패)을 거두며 1위를 차지했다. 프로야구 출범 최초로 '단일시즌 80승' 시대를 열었다. 개막 후 20경기에서 16승(1무 3패)을 거두며 독주했고, 5월 12일 삼성전부터는 14연승(역대 4위)을 거두기도 했다. 기량이 만개한 장종훈·이정훈·이강돈·강석천이 공격을 이끌었고, 송진우·장정순·한용덕·이상군이 지키는 선발진도 탄탄했다. 신인 정민철은 팀 투수 중 최다 이닝(195와 3분의 2이닝)을 기록하며 14승을 쌓았다. 정규시즌까지 최고의 팀이었다. ⑤ 장종훈, 2년 연속 MVP 수상 1992년 프로야구 주인공은 장종훈이었다. 그는 9월 17일 해태전 4회 말 타석에서 신동수를 상대로 시즌 40번째 홈런을 때려냈다. KBO리그에 '40홈런 시대'를 여는 순간이었다. 그는 정규시즌 최종전(9월 18일) 이강철을 상대로 41호 홈런도 쳐냈다. 타율 0.299 41홈런 119타점을 남긴 장종훈은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도 차지했다. 1990년부터 3연속 홈런왕, 1991년에 이어 2연속 MVP에 올랐다. ⑥ 송진우 다승·구원 타이틀 석권 빙그레 에이스였던 송진우는 다승왕(19승)과 최고구원투수상(8구원승·17세이브)을 동시에 석권한 역대 최초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송진우는 정규시즌 종료를 2경기 남겨두고 이강철(해태)과 나란히 18승을 거두며 공동 1위를 지켰지만, 9월 17일 해태전 5회 초 선발 한희민에 이어 구원 등판, 팀 승리를 이끌며 1승을 더했다. 이강철은 이튿날(18일) 빙그레전에 등판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⑦ 400만 시대에 다가선 프로야구 야구의 인기는 매년 올라갔다. 1992년 총 관중은 1991년(382만5409명)보다 약 10만명 증가한 391만2092명이었다. 특히 부산 야구가 들끓었다. 롯데가 홈으로 쓰는 사직구장에서만 120만 9632명을 입장, 당시 최다 관객 신기록을 세웠다. 롯데는 2년(1991~1992년) 연속으로 홈 100만 관중을 돌파한 첫 구단이 됐다. ⑧ 롯데, 2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 정규시즌 71승 55패로 3위에 오른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2승 무패), 플레이오프에서 해태(3승 2패)를 연달아 격파하고 KS에 올랐다. 롯데는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선 빙그레에 4승 14패로 열세였지만, 1차전부터 에이스 송진우가 나선 빙그레를 8-6으로 이기며 반전 드라마를 썼다. 2차전은 윤형배가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는 '깜짝' 호투로 정민철이 나선 빙그레에 3-2로 승리했다. 3차전은 4-5로 졌지만, 4·5차전 연승으로 8년 만에 KS 정상에 올랐다. 정규시즌 3위로 KS 우승까지 해낸 첫 팀으로 남기도 했다. 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를 기록한 박동희는 KS MVP로 선정됐다. ⑨ 2대 '안경 에이스' 염종석 고졸 신인 염종석은 17승 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했다. 1985년 선동열 이후 7년 만에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신인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역대 신인 투수 데뷔 시즌 다승 부문에서도 1986년 김건우(당시 MBC 청룡)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최동원의 뒤를 잇는 '안경 에이스'로 주목받았다. 안희수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2 09:41
프로야구

[IS 피플] 왕자(王子)에서 왕자(王者)로…정상 오른 김원형 리더십

김원형(50) SSG 랜더스 감독은 선수 시절 '어린 왕자(王子)'로 불렸다. 곱상한 외모로 마운드를 지킨 쌍방울 레이더스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데뷔 첫해인 1991년 당대 최고의 에이스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을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고, 1993년 최연소 노히트 노런(만 20세 9개월 25일)도 기록한 에이스였다. 그래서 감독이 된 지금도 팬들은 그를 '왕동(왕자+감독의 합성어)님'이라고 부른다. 외모와 달리 커리어는 험난했다. 통산 20시즌 134승 144패를 기록했다. 통산 110승 이상을 거둔 투수 중 패전이 더 많은 이는 그뿐이다. 재정이 어려운 쌍방울과 신생팀 SK 와이번스(SSG의 전신)에서 울퉁불퉁한 커리어를 이어갔다. 커리어 후반부인 2007년에야 첫 우승을 경험했다. 마운드를 떠난 왕자는 지도자로 변신했다. 친정 팀 SK의 코치로 시작해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에서도 투수 코치와 수석 코치로 경험을 쌓았다. 2021시즌에는 감독으로 친정팀에 복귀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한국시리즈(KS) 패권을 차지했다.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최종전까지 1위를 지킨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에 이어 12년 만의 팀 통합 우승까지 이뤄냈다. 우승의 과정에서 김원형 감독의 존재감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모기업 SSG의 역대급 투자 덕분이라는 평가가 따랐고, 김원형 감독 스스로도 몸을 낮췄다. 그는 “선수 때는 마운드에 올라가면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이 강했다. 감독으로서도 선수들에게 그렇게 다가갔다. 더 성숙한 어른이 돼야 했는데, (그걸 받아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수차례 꺼냈다. KS 중에는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고 (흔들리던) 박종훈을 믿었다”, “김강민의 대타 기용을 깜빡하고 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에 팬들은 김원형 감독을 ‘운장(運將)’이라고 불렀다. 김원형 감독은 SK-SSG로 이어지는 23시즌의 역사를 통틀어 나온 첫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이다. SSG 선수단에는 십여 년 전 '왕조' 시절 김 감독의 후배로 함께했던 스타들이 많았고, 그는 그 장점을 잘 살려냈다. KS MVP(최우수선수) 김강민은 “올 시즌을 앞두고 목표가 세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감독님의 재계약이었다. 감독님과 개인적인 인연도 길었고, 베테랑과 소통을 잘해주셨던 분이다. 감독님은 '나도 감독이 처음이다 보니 생각대로 잘 안 될 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떠올렸다. 이어 "우리는 감독님과 선수단이 잘 어우러져서 최고의 성적을 내는 것이 목표였고, 그게 잘 되어서 우승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단기전에서 승부사 기질도 뛰어났다. '134승 투수'다운 과감한 투수 기용으로 기세등등했던 키움 히어로즈 타선을 잠재웠다. 커리어가 더 뛰어난 박종훈보다 현재 컨디션이 좋았던 오원석을 진작부터 선발 투수로 낙점했다. 오원석은 3차전에서 호투(5와 3분의 2이닝 1실점)했고, 박종훈도 불펜으로 3경기 무실점을 기록했다. 실패로 끝났지만 1차전부터 숀 모리만도를 불펜 기용하는 강수도 주저하지 않았다. 필승조 김택형의 구위가 불펜 투수 중 가장 좋은 걸 확인하자 6경기 중 5경기에 등판시켰다. 김택형은 위기 상황 등판과 멀티 이닝 소화에도 무실점 철벽투를 펼쳤다. 우승을 결정한 6차전에서도 초반 실점에도 폰트의 구위를 믿고 7과 3분의 2이닝 동안 투구하게 했고, 남은 이닝을 네 개를 김택형-박종훈-김광현에게 나눠 던지게 했다. 왕자(王子)는 이제 왕자(王者)에 걸맞은 사령탑이 됐다. '왕동님' 체제는 계속된다. SSG 구단은 시리즈를 마치기도 전인 지난 7일 김원형 감독과 재계약을 결정하고 발표했다. 그가 '명장'으로 향하는 길의 첫걸음을 확실하게 내디뎠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11.10 08:35
프로야구

[IS 인천]쌍방울부터 30년 인연...SSG 임광엽 파트너, 시구 위해 마운드 올랐다

프로야구 SSG 랜더스가 17일 홈 경기에서 의미 있는 시구 행사를 진행했다. SSG는 17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두산 베어스와 홈 경기를 치렀다. 이날 시구자는 연예인도, 공인도 아니었으나 구단에 뜻 깊은 이였다. 1992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사, 이후 SK 와이번스의 창단을 함께 했고 SSG 랜더스까지 30년 동안 구단에서 근무하고 정년 퇴임하는 임광엽 퓨처스팀 파트너가 이날의 시구를 맡았다. 임 파트너는 특히 지난 2001년부터 선수단 매니저 업무를 담당, 선수단 지원만 15년을 맡아온 베테랑이다. 선수들은 물론 쌍방울, SK 때부터 선수와 매니저로 인연을 이어왔던 지도자들과 임 파트너가 함께 한 시간도 상당하다. 쌍방울에서 투수로 데뷔, SK에서 선수와 코치, SSG에서 감독까지 맡았던 김원형 SSG 감독은 "쌍방울 때부터 지금까지 정말 오랫동안 한 팀에서 계시다가 정년퇴임을 맞게 되셨는데, 정말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드리고 싶다"며 "정년퇴임을 축하드리기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오랫동안 함께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선수와 직원이라는 관계 이상으로 정이 많이 들었다. 항상 선수들을 너무 편하게 대해주셨다. 인상도 좋으시고 외모가 상대를 편하게 해주시는 외모"라고 웃었다. 이어 "개인적으로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편한 형님처럼 생각했다. 선수들도 언제나 편하게 다가갔고, 늘 선수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시고 돌봐주셨다"며 "선수를 위해 애써주시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데, 그런 분이 은퇴하시게 되니 아쉽다"고 전했다. 역시 쌍방울과 SK에서 선수로 인연을 맺었고 이후 코치로도 함께 했던 조원우 수석 코치는 "야구단의 살아있는 산 증인이시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다"며 "매니저님과는 쌍방울 입단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인연인데, 너무 좋은 분이시고 인간미 넘치는 분이시다. 앞으로의 앞날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임 파트너와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SK 왕조' 멤버들도 아쉬움을 전했다. 조동화 코치는 "어릴 때부터 코치가 된 지금까지 오랜 기간 함께 현장에서 호흡했던 분인데, 항상 선수들을 살갑게 대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이라며 "뒤에서 묵묵히 선수들을 위해서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많은 좋은 직원분들이 계시지만, 정말 정이 많이 가는 분"이라고 그를 추억했다. 김강민은 "임광엽 매니저님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엄마’ 같은 분이다. 매니저 중의 최고이신 것 같다. 우리 선수들보다 선수를 더 잘 아셨던 분"이라며 "그동안 선수들을 위해서 정말 노고 많으셨고,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구를 마치고 "30년 짬밥으로 던졌다"고 웃은 임 파트너는 "야구단 들어온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이렇게 직원들과 온 선수단이 열렬히 환영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전광판에 선수들 영상 메시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울컥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아냈다"며 "야구장에 와서 시구만 하고 가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환대받고 떠날 수 있어 상당히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인천=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09.17 18:01
프로야구

[IS 인천]'최연소 2000경기' 최정 시상식, '전' 최연소도 함께했다

'야구 천재' 최정(35·SSG 랜더스)이 또 하나의 대기록에 올랐다. 최정은 지난 6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0 KBO리그 정규시즌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에서 3번 타자 3루수로 선발 출전하며 역대 16번째 2000경기 출장을 세웠다. 팀 역사상으로는 SK 와이번스 시절인 박경완(2010년·통산 2044경기) 이후 두 번째다. 그가 쌍방울 레이더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던 점을 고려하면, 원클럽맨으로서는 팀 역사상 최초다. 동시에 리그 최연소 신기록이다. 유신고를 졸업하고 2005년 1차 지명으로 SK에 입단한 최정은 데뷔 시즌 42경기를 출전했고 이후 매해 꾸준히 출장하며 2000경기의 금자탑을 쌓았다. 35세 5개월 9일로 종전 최연소 기록이었던 김민재(당시 한화 이글스) 수비코치의 35세 8개월 3일의 기록을 경신했다. 마침 김민재 코치의 현 소속팀도 SSG. 김 코치는 인연이 닿은 이날 시상식에서 최정에게 꽃을 전하며 후배의 기록 경신을 축하했다. 인천=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08.23 19:23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