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인터뷰] 나이 때문에 평창 못 갔던 '피겨 소녀' 유영, "베이징에선 꿈 이룰래요"
"제2의 김연아도 좋고 제1의 유영도 좋다. 어떻게 불리우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힘을 내고 피겨스케이팅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면."불과 2년 전, 나이 때문에 안방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눈 앞에서 놓쳤던 소녀는 2년 사이에 더 단단해져서 나타났다. 평창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2년 뒤 열릴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꿈을 꾸고 있는 소녀, 유영(16·수리고)을 13일 태릉에서 만났다. 유영은 자신의 시니어 데뷔 시즌인 이번 2019~2020시즌,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한국 선수 중 최연소 나이인 만 15세 5개월로 시니어 그랑프리에 데뷔한 유영은 자신의 데뷔전이었던 2019~2020 ISU 그랑프리 2차 대회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3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챌린저 시리즈와 그랑프리 시리즈, 회장배 랭킹대회와 종합선수권대회를 거쳐 차근히 시즌을 치르던 유영은 지난 9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끝난 2020 ISU 사대륙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자신의 ISU 공인 개인 최고점인 223.23점을 얻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가 이 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것은 역대 두 번째, 2009년 김연아(30·은퇴)가 우승을 차지한 뒤 처음이다. "실감은 나면서도 아직까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문을 연 유영의 표정은 조금 편안해 보였다. "유튜브에 올라온 제 연기 영상을 보며 뭐가 부족했는지 계속 돌려봤다"고 말을 이은 유영은 "점수 나오고 키스 앤 크라이 존에서 너무 좋아하더라. 조금 오글거려서 민망하기도 하고, 그래도 좋았다"고 미소지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던 트리플 악셀을 프리스케이팅에서 완벽히 소화하면서, 연기가 끝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라 물으니 쑥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점수는 생각하지 않았고 수행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다보니 좋아하는 모습이 나온 것 같다"고 얘기한 유영은 "스핀과 스텝에서 레벨을 챙기지 못해 아쉽다. 그랬으면 조금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약간의 아쉬움도 드러냈다. 유영을 시상대로 이끈 건 역시 트리플 악셀이다. 고난도 점프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들여 트리플 악셀을 완성시켜온 유영은 이번 대회에서 노력의 결실을 얻었다. 처음 트리플 악셀을 뛰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성공률은 처참했다. 유영은 "첫 1년 동안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성공을 해도 하루에 한 번 정도인 수준이었다"고 돌이키며 "연습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굉장히 많았다. 이걸 꼭 해야하나, 그런 생각도 했다"고 당시 느꼈던 속상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이 악물고 연습을 계속하자 1년 뒤부터 '감'이 왔다. 조금씩 점프가 몸에 익어가면서 연습 때마다 성공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1년여 전부터 본격적으로 트리플 악셀을 프로그램에 넣고 뛰어 여기까지 온 셈이다. 유영은 "그 때 트리플 악셀을 포기했다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도전은 결코 쉽지 않지만 트리플 악셀의 경험에서 자신감을 얻고 쿼드러플(4회전) 점프도 연습하겠다"고 의욕을 다졌다. 국제대회에서 시상대에 서기 위해선 고난도 점프가 필수고, 그 중에서도 쿼드러플 점프는 시상대로 가는 직행 티켓으로 불린다. '점프 머신'으로 불리는 러시아 선수들이 이 경쟁에서 가장 앞서있다. 하지만 걸려있는 점수가 높은 만큼 부담도 그만큼 크다. "남자 선수들에게도 어려운 점프이기도 하고 부상에 대한 걱정은 항상 있다"고 말한 유영은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점프지만 지금은 여자도 뛸 수 있어야 하는 시대"라고 말한 유영은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안나 셰르바코바(이상 러시아) 영상을 챙겨보고 남자 선수들의 연습 영상도 많이 본다"고 다부지게 각오를 다잡았다. 이어 유영은 "쿼드러플 살코와 럿츠를 연습하고 있다. 얼마 전 공개된 연습 영상에서 쿼드러플 럿츠를 성공한 장면이 찍혀서 많이들 기대하고 계시는데, 현재 성공률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비시즌 기간 동안 연습해서 성공률을 높이고, 내후년 실전에 도입해 2020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무기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종목을 막론하고, 모든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각별하기 마련이다. 특히 유영은 2년 전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에서 우승하고도 당시 출전 나이가 되지 않아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겨울올림픽에 나서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꿋꿋이 제 길을 걸어온 그에게 2년 뒤 열릴 베이징은 각별한 무대가 될 예정이다. "내 꿈은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라고 못박은 유영은 "꿈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고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물론, 꼭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유영은 "올림픽이라는 대회에 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유영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전하며 "제2의 김연아든 제1의 유영이든 뭐라 불러줘도 그저 너무 좋다. 나를 보며 힘을 냈으면 좋겠고, 나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의 매력에 빠져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제2의 김연아'. 늘 유영의 이름 앞을 수식했던 표현이다. 그동안 유영은 줄곧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며 피겨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다. 어린 나이에 김연아의 연기를 보고 빙상장으로 달려가 피겨를 시작했던 꼬마는 동경하던 '언니'의 기록을 하나씩 뛰어넘으며 어릴 때부터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관심과 기대를 마냥 즐겁게 받아들이기엔 성적에 대한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쉴 때는 집에 틀어박혀서 좋아하는 BJ의 유튜브를 보는 것이 낙이라는 '집순이' 유영은 불안과 긴장에 쫓겼다. "언론에 얘기가 나오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대회날만 되면 예민해지고, 루틴에 신경쓰게 됐다"는 것. 대회 때는 이런 양말을 신어야 잘 풀리고, 그 때마다 쓰는 머리끈이 있어야 연기가 잘 되고. 선수들마다 흔히 있는 루틴이지만 심리적 불안감이 더해지면 징크스로 이어질 수 있는 습관이다. 그래서 유영은 고집하던 루틴을 버리고 징크스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때 기억 때문이다. 유영은 "똑같이 (루틴대로)했는데 쇼트 프로그램도 그렇고, 썩 잘하지 못했다. 반드시 그런 게 필요한 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지금은 편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징크스에 대한 불안도 내려놓고, 숨가쁘게 달려온 시니어 첫 시즌의 일정도 이제 어느덧 막바지. 물론 여전히 훈련은 계속되고, 눈앞으로 다가온 전국체전과 3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도 남아있다. 유영은 "이번 시즌을 힘들게 보낸 만큼 잘 끝내고 싶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점수보다 클린 연기를 통해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태릉=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2.17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