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클럽형 야구 육성협 출범, "프로 못가도 야구인 인정받길"
매년 열리는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는 고교 3학년 야구선수가 프로로 향하는 첫 계단이다. 10개 구단 선택을 받은 예비 프로 선수는 가족과 함께 기쁨을 만끽한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은 법.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의 환희만큼, 지명받지 못한 선수의 실망과 좌절도 크다. 인생의 목표를 잃은 아들의 눈물을 보며 부모는 억장이 무너진다. 김장헌(58) 한국 전문야구인 육성협동조합 이사장이 바로 그런 부모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유명 강사였다. 장남이 야구를 좋아해 선수로 키웠다. 그러나 아들은 고교 3학년 때 프로팀 지명을 받지 못했다. 학창시절 야구만 한 터라, 미래를 잃은 듯 상실감에 빠졌다. 김 이사장은 "아들은 정말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운동했다. 그런데도 프로에 못 가면서 '실패자'로 낙인 찍히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털어놓았다. 김 이사장은 현실을 바꿔보고 싶어 야구계에 뛰어들었다. 2014년 경기 고양시에 에이스 볼파크를 지었다. 경희대 공공대학원에 다니며 독립야구단 창단을 결심했다. 고양 위너스를 만들어 지난 3년간 운영했다. 아들 등 가족 모두 "큰 희망이 없다. 야구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돈만 축낼 거다"라며 말렸다. 그래도 강행했다. "내 아들 같은 아픔이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책임감에서다. 한계가 분명했다. 독립야구단은 늘 '실패한 선수'가 모이는 팀으로 인식됐다. 이미 성장이 끝난 성인들이 찾아오니, 장기적인 육성 체계를 만들기도 어려웠다. 그 아쉬움이 올해 '클럽형' 야구인 협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하나의 '야구학교'로 연결되는 개념이다. 야구 특기자가 운동에 최대한 시간을 쏟으면서도, 학업을 효율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독립야구 출신도 대학 야구 선수들처럼 KBO 드래프트에 정식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 조합을 거친 선수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주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출발이 나쁘지 않다. 기존 독립야구단 고양 위너스 외에 경기 북부 지역 학교인 광탄중과 송암고(2년제 특성화고)가 각각 중·고교 과정에 합세했다. 유소년 과정도 개설했다.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야구 지도자 과정까지 밟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다. 김 이사장의 아들도 이제는 아버지의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 재활 치료 분야로 진로를 정해 대학원 진학을 앞뒀다. 천군만마도 얻었다. 양승호(60)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협동조합 총괄 단장을 맡았다. 독립야구단 파주 챌린저스를 궤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양 단장은 코치 8명과 선수 80여명을 이끌기 위해 매일 그라운드에서 추위와 싸운다. 그는 "초·중·고 클럽 야구라는 시도 자체가 국내 처음이다. 책임감이 크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선수를 많이 발굴하고 육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2020.12.21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