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우리 태인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죠" 아들 위해 꼭두새벽 산에 오르는 아버지, "아빠, 2승하고 갈게요" [윤승재의 야:후일담]
"아빠, 우리 데이트 해요."아들의 주말 데이트 신청에 아빠는 깜짝 놀랐다. 평소 잘 웃고 감정표현도 잘하는 아들이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먼저 다가온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들 손을 잡고 나선 아빠는 아들이 맞춰 준 옷을 한 벌 입고 점심을 먹은 뒤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아빠는 너무 기뻐 울컥했다고. 그렇게 원태인(24·삼성 라이온즈)은 생애 두 번째 가을 야구를 앞두고 아빠이자 스승인 원민구(66) 원베이스볼 감독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나눴다. 원태인은 삼성뿐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로 성장했다. 올해 정규시즌에 28경기에 나와 15승 6패 평균자책점(ERA) 3.66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다승왕에 오르기도 했다. 삼성이 2021년 이후 3년 만에 포스트시즌(PS)에 진출하는 데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원태인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많은 조력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를 빼고는 어떤 성취도 설명할 순 없다. 여섯 살 '야구 신동'으로 방송을 탔을 때부터 에이스로 우뚝 선 지금까지 아버지의 남모를 노력과 애정이 있었다.
아버지 원민구 감독도 야구 선수 출신이다. 프로야구 창설 전 실업 야구 선수였던 그는 은퇴 후 대구 경복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해 20여 년 동안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키워냈다. 원태인도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삼성에서 스타가 된 구자욱과 김상수(현 KT 위즈) 등이 원 감독 지도 아래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때 원태인도 야구를 시작해 '신동'으로 주목받은 시절이었더.야구가 보고 싶다며 떼쓰고 울던 아들이 어느새 KBO리그 최고의 투수가 됐다.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할까. 원민구 감독은 "뿌듯한 정도가 아니라, 인생 최고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 같은 종목(야구)을 했던 아버지는 성공하지 못했는데 아들이 이렇게 성공해 줘서 정말 고맙다. 지켜만 봐도 기쁠 따름"이라고 기뻐했다. 원민구 감독은 "성적만 봐도 확실히 성장한 게 보이지만, 이젠 확실히 자기 공을 던질 줄 알더라. 피칭 밸런스가 안 좋은 날에도 잘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라고 전했다. 과거 원 감독은 야구 선배로서 아들에게 가끔 조언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집에서 홀로 섀도 피칭을 하면서 경기를 복기하는 모습을 보고 더는 훈수를 두지 않는다고.
대견했던 아들이 안타까웠던 순간도 있었다. 원태인이 지난 7월 1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1회 강승호에게 헤드샷을 던지고 퇴장당했을 때였다. 원민구 감독은 "태인이가 '공이 (손에서) 그렇게 빠질 줄 몰랐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라며 집에 와서 내내 자책했다. (상대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며칠 동안 잠도 못 자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학창 시절 원태인도 타석에서 투구에 맞아 위축된 경험이 있어 더 미안해했다고. 원태인은 강민호 등 주변 조력자들의 위로에 다시 일어섰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원 감독은 '아들이 성장했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원민구 감독에게 삼성은 특별한 팀이다. 아들 원태인뿐만 아니라 구자욱, 김헌곤, 좌완 이승현 등 경복중 시절 제자들이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원민구 감독은 아들과 삼성 제자들을 위해 산에 오르고 있다. 아들 등판 날 새벽마다 팔공산에 있는 팔공사를 찾아 불공을 드리는 건 아버지의 오래된 루틴이다. 원 감독은 "(올가을에도) 당연히 팔공산에 오르고 있다. 아들과 제자들의 승리를 간절히 기원한다"라고 말했다.한국시리즈(KS)를 앞둔 원민구 감독은 아들이 정규시즌 15승을 달성한 날을 기억했다. 평소 별말 없이 경기장에 출근하던 아들과 그날은 '주먹 하이 파이브'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 원태인은 다승왕에 올랐다. 원민구 감독은 "이번에도 주먹 하이 파이브를 나누겠다"라며 아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비하인드해당 인터뷰는 가을야구 시작 전에 진행됐다. 플레이오프 준비 기간 선수단 합숙이 결정되면서 부자는 잠시 떨어져 지내야 했다. 약속했던 '주먹 하이 파이브'도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의 KS행 확정 직후, 기분 좋게 길어진 합숙 기간에 아버지는 전화를 걸었다. "아들, 보고 싶다." 그러자 아들은 "조금만 기다려, 광주에서 2승 하고 돌아갈게"라며 당찬 각오를 전했다. 윤승재 기자
2024.10.21 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