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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인터뷰] 희망 확인한 롯데 노망주...윤성빈 "팔이 부러지도록 던져 볼 것"

롯데 자이언츠의 우완 투수 윤성빈(25)은 롯데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24 울산-KBO Fall League(교육리그)'에서 눈에 띄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윤성빈은 16일 고양 히어로즈, 26일 중국 장쑤와의 경기에서 각각 1이닝과 2이닝을 소화하며 무실점을 기록했다. 볼넷 허용은 1개뿐이었다. 전력이 약한 팀을 상대했고 투구 이닝도 많지 않았지만, 포심 패스트볼(직구) 구위와 코너워크 모두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고 시절 150㎞/h 대 강속구를 뿌리며 메이저리그(MLB)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던 윤성빈은 2017 1차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큰 기대를 받고 프로 무대에 입성했지만,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시즌까지 1군 등판은 20경기에 불과했다. 부상 재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윤성빈은 올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한층 나아진 투구를 보여주며 '재기 신호탄'을 쐈다. 7월 30일 SSG 랜더스전에선 대체 선발로 발탁돼 1951일 만에 1군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2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지만, 직구-포크볼 조합은 위력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육리그를 돌아본 윤성빈은 "올 시즌 막판 투구 밸런스를 잡은 느낌을 받았다. 교육리그에서 많은 공을 던지지 못해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라며 "(30일부터 시작된) 마무리 캠프에서 현재 좋은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형 롯데 감독은 7월 30일 SSG전 윤성빈 투구에 대해 "구위는 좋지만, 경기 운영은 아쉬웠다"라고 평가했다. 윤성빈도 "어렵게 얻은 기회를 살리지 못해 아쉬웠다. 너무 오랜만에 1군에 등판해 긴장했고, 그저 공을 던지는 데 급급했다"라고 돌아봤다. 복귀전 실패는 윤성빈에게 자양분이 됐다. 자신의 이름이 코칭스태프 그리고 롯데팬에 다시 언급된 점도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 윤성빈은 커뮤니티를 통해 퍼진 은퇴설로 지인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다. 이름이 같은 전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과 착각한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성빈은 "팬들에게 '힘이 닿는 데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야구를 할 것'이라고 전해주고 싶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어깨가 빠져서 은퇴하나, 기량이 부족해서 은퇴하나 다를 게 없다. 팔이 부러지도록 던져보겠다"라고 했다. 매년 "달라질 것"이라는 각오를 전하는 것도 민망했던 그는 "이제는 조용히 성적과 행동으로 말하고 싶다"라며 재기 의지를 불태웠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4.10.31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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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일 만에 복귀→1이닝 5실점' 윤성빈, 포심-포크볼 조합은 강렬했다 [IS 피플]

1이닝 4피안타 5실점. 무려 3년 만에 1군 무대 마운드에 선 윤성빈(25·롯데 자이언츠)이 복귀전에서 남긴 성적이다. 그에게 두 번째 등판이 있을지 주목된다. 윤성빈은 지난 30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KBO리그 SSG 랜더스와의 원정 경기에 롯데 선발 투수도 등판했지만 2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윤성빈은 2-0으로 앞선 1회 말 상대 1번 타자 최지훈과 후속 정준재를 연속 뜬공 처리하며 힘차게 시작했지만, 3번 타자 최정과 4번 기예르모 에레디아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1점을 내줬고, 박성한에게도 우전 적시타를 내주며 2-2 동점을 허용했다. 타선이 2점을 지원하며 다시 리드를 안고 나섰지만 선두 타자 한유섬에게 볼넷을 내준 뒤 이지영에게 좌월 투런홈런을 맞고 흔들렸다. 이어진 오태곤과의 승부에서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뒤 결국 마운드를 최이준에게 넘겼다. 윤성빈은 2017 1차 지명으로 롯데 선택을 받은 특급 유망주였다. 1m97㎝ 큰 키에서 내리 꽂는 150㎞/h대 강속구로 주목받았다. 고교(부산고) 3학년 시절 메이저리그(MLB)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았고, 실제 입단도 추진했지만, 결국 자신이 꿈꾸던 사직구장 마운드를 선택했다. 하지만 윤성빈은 이후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졌다. 입단 첫 해부터 어깨 부상을 당해 재활 치료에 매진했고, 이듬해(2018년) 18경기에 나섰지만 6점대 평균자책점에 그쳤다. 이후 2019시즌 한 번, 2021시즌 한 번 등판한 게 1군 무대 기록 전부였다. '게으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생겼고, 그렇게 잊혀졌다. 6월 이후 4·5선발 공백에 시달린 롯데는 꾸준히 새 얼굴들을 1군에 올려 기회를 줬다. 윤성빈도 150㎞/h대 빠른 공을 던지며 구위를 증명,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무려 1951일 만에 1군 선발 등판 경기였던 30일 SSG전. 비록 5실점에 조기강판 당했지만, 최고 152㎞/h까지 찍은 구위는 인상적이었고, 제구가 잘 된 포크볼도 위력이 있었다. 1회 말 추가 실점 위기에서 추신수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헛스윙을 끌어낸 5구째 공이 그랬다. 1회 포심 패스트볼(직구)-포크볼 조합 일변도였지만, 2호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도 보여주며 더 다양한 래퍼토리를 예고했다. 윤성빈에게 다음 등판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강점은 분명히 보여줬다. 잊혀졌던 노망주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관심이 모인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4.07.3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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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피플] 꽃길만 걷던 '포스트 오승환'의 첫 위기

올해 벌써 두 번째 부상. '꽃길'만 걷던 고우석(25·LG 트윈스)이 야구 인생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고우석은 지난 1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지난달 30일 KIA 타이거즈와 홈 경기 등판한 그는 3분의 1이닝 3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했다. 투구 내용보다 우려된 건 부상이었다. 마운드를 내려가면서 포수 김기연을 향해 "아파"라고 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허리 근육통 문제로 주사 치료를 받았다. 민감한 어깨나 팔꿈치 통증은 아니지만 휴식이 불가피하다. 구단 관계자는 "통증 회복까지 일주일 이상이 필요해 엔트리에서 말소했다"고 말했다.고우석은 지난달 18일 1군에 '지각 등록'됐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비 연습경기에서 어깨 통증(극상근 염증)을 느낀 탓이었다. 이로 인해 대회 출전이 좌절됐고 소속팀 복귀 후엔 개막전 엔트리 등록마저 불발됐다. 재활 치료 끝에 복귀전을 치른 그였지만 등판 6경기 만에 탈이 났다. 이미 비상등이 켜진 상태였다.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고우석의 직구 평균 구속은 150.7㎞/h로 전년 대비 1.8㎞/h가 하락했다. 여전히 수준급 구속이지만 흐름이 좋지 않았다. 30일 KIA전에선 144㎞/h 직구가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스리런 홈런으로 연결됐다. 투구 수가 늘어나면 구속이 급격하게 떨어졌는데, 이는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충암고를 졸업한 고우석은 2017년 1차 지명으로 트윈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해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선수 중 윤성빈(롯데 자이언츠·4억5000만원) 다음으로 많은 계약금(3억원)을 받았다. 150㎞/h의 돌직구를 던지는 특급 유망주로 데뷔 첫 시즌부터 1군 25경기, 26이닝을 소화했다. 어느 순간 그의 이름 앞에는 '포스트 오승환'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2021년 4월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은 리그 300세이브 달성 관련 인터뷰에서 '자신과 오버랩되는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먼저 떠오르는 건 고우석이다. 그만큼 경쟁력 있고 어리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9년 마무리 투수를 꿰찬 고우석은 승승장구했다. 지난해에는 61경기에 등판, 4승 2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1.48을 기록했다. KBO리그 최연소 40세이브(24세 1개월 21일)를 달성하며 개인 첫 구원왕에 올랐다. LG 선수로는 1991년 김용수와 2015년 봉중근에 이어 역대 세 번째 개인 통산 100세이브를 돌파하기도 했다.하늘 높은 줄 모르던 고우석의 발목을 잡은 건 부상이다. 어깨 염증에 이어 허리 근육통까지 악재가 겹쳤다. 고우석은 지난달 1군에 복귀한 뒤 "1군이 양지고 2군이 음지라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 자리를 위해 (2군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걸 보고 마음을 다잡는 시기가 된 거 같다"고 되돌아봤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다시 '음지'로 향하게 됐다. 정확한 복귀 시점은 물음표. 염경엽 LG 감독은 "통증이) 올라왔으면 경험상 최소 3주 아닌가. 경과를 봐야 하는데 최소 3주는 걸릴 거 같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LG는 정우영과 이정용을 비롯한 필승조가 불안한 상황이다. 고우석의 이탈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창원=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3.05.0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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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풀리네, 또 멈춘 윤성빈

롯데 자이언츠의 '만년 유망주' 윤성빈(24)이 부상 앞에 또 멈췄다. 윤성빈은 지난 2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평가전에 등판한 뒤 왼쪽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에 통증을 호소했다. 곧바로 귀국해 정밀 검진을 실시한 결과 햄스트링 대퇴이두근 2도 파열 진단을 받았다. 윤성빈은 이날 회복 주사 치료를 받았고, 오는 10일 2차 치료에 들어갈 예정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하나 회복 및 재활 기간을 고려하면 시즌 초반 등판은 어려워 보인다. 향후 2주간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회복 추이를 살펴본 뒤 치료 및 재활 일정을 짤 계획이다. 윤성빈은 롯데의 아픈 손가락이다. 키 1m97㎝의 뛰어난 체격 조건과 시속 150㎞대 빠른 공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구단의 관심을 받았던 윤성빈은 미국 도전 대신 롯데행을 선택했다. 2017년 롯데의 1차 지명을 받은 그는 계약금 4억 5000만원에 입단했다. 6년 동안 윤성빈의 1군 무대 통산 성적은 총 20경기에서 2승 6패 평균자책점 6.75에 그친다. 부상과 제구력 난조에 발목이 잡혀서다. 롯데 선발진의 미래로 평가받던 윤성빈은 입단 첫해부터 어깨 부상으로 1·2군 모두 개점 휴업했다. 이듬해 1군 데뷔해 선발 투수로 나섰지만, 시즌 막판에는 불펜 투수로 전환했다. 윤성빈은 이후 허리와 팔꿈치 통증으로 호소해 전력에서 이탈했다.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2021 시즌 종료 후 현역으로 입대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훈련소에서 퇴소했다. 롯데는 윤성빈에게 거는 기대감이 크다. 워낙 뛰어난 체격 조건에 구위가 뛰어나다. 강속구와 함께 날카로운 슬라이더까지 지녔다. 롯데는 시즌 도중 이례적으로 선수(윤성빈)를 해외 구단(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 연수를 보냈다. 또 2020년에는 윤성빈은 첨단 시스템 시설을 갖춘 미국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에 보내기도 했다. 윤성빈은 '미완의 대기'다. 1군에서 총 52이닝을 던지는 동안 탈삼진을 65개나 기록했으나 4사구도 43개(볼넷 40개)로 많다. 제구력에 발목이 잡혀 위기를 자초한 뒤 무너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우완 투수 출신으로 개인 통산 138승을 거둔 배영수 투수 코치가 롯데에 합류하면서 윤성빈을 향한 기대감이 커졌다. 배 코치는 누구보다 윤성빈에게 많은 당근과 채찍을 제공하며 반전을 도모했다. 투구 밸런스를 잡도록 맞춤 지도에 나섰다. 윤성빈도 배 코치를 따라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하며 구슬땀을 쏟았다. 체중도 많이 감소했다. 부상으로 쓰러진 지난 2일 한화와 평가전에서도 최고 시속 148㎞를 기록했다. 윤성빈은 3년 만에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돼 1~2차 '컷 오프' 때 1군에 생존했다. 괌 1차 스프링캠프를 시작으로 2차 이시가키, 3차 오키나와까지 동행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상 앞에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데 실패했다. 윤성빈에게 '봄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형석 기자 2023.03.0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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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퇴소, 롯데 대형 유망주의 계획 차질

롯데 자이언츠 윤성빈(23)의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 윤성빈은 지난해 11월 말 현역으로 입대했다. 하지만 12월 초 건강 문제로 훈련소에서 퇴소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현재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 건강상의 큰 문제는 아닌 것으로 전해지나 제때 안정을 찾지 못하면 추후에 문제가 반복될 수도 있다. 구단 관계자는 "현재로선 8월 재검을 통해 다시 군 복무 절차를 밟을 계획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구단은 윤성빈의 거취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현재 윤성빈은 군 보류선수로 분류돼 2022시즌 등록 선수에서 빠져 있다. 군 입대 전까지 리그에서 뛰려면 신분 전환이 필요하다. 롯데는 윤성빈의 스프링캠프 합류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애초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예정대로 병역을 이행했더라면 2024년 개막에는 정상적인 합류가 가능했다. 하지만 8월 재검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고, 입대 시기도 장담할 수 없다. 현재로선 군 전역 후 합류 시기도 불투명하고, 자칫 의미 없이 시간만 흘려보낼 수도 있다. 프로 입단 후 "롯데를 대표하는 투수가 되겠다"는 계획과도 현재까지 많이 어긋났다. 윤성빈은 입단 당시 큰 주목을 받은 대형 유망주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과의 계약 가능성도 흘러나올 정도였다. 부산고 출신의 윤성빈은 197㎝ 큰 키에 150㎞의 빠른 공을 던져 기대를 모았다. 입단 계약금은 4억 5000만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둔 성적은 프로 통산 20경기에서 2승 6패 평균자책점 6.75로 부진하다. 입단 첫해부터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또 고질적인 제구 난조로 고전하고 있다. 총 52이닝을 던지는 동안 허용한 4사구만 43개다. 지난해 5월 21일 두산 베어스전에 시즌 첫 등판 후 1군에서 자취를 감췄다. 2군에서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퓨처스리그 9와 3분의 1이닝 동안 볼넷 19개를 기록했다. 롯데는 이례적으로 시즌 중에 윤성빈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 단기 연수를 보냈다. 또 미국 드라이브라인 트레이닝센터에도 보낼 만큼 공을 들였다. 그런데도 발목을 잡던 제구력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크고 작은 부상까지 겹쳤다. 2019년과 2021년 단 1경기씩 출장에 그쳤고, 2020년에는 1군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윤성빈은 하루빨리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생각으로 입대를 자원했다. 일찌감치 군 문제를 해결하고 전역 후 반등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떨궜다. 훈련소 퇴소가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안타까운 시간이 흐를 뿐이다. 이형석 기자 2022.01.12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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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투수·야수진 계획대로 훈련…MVP는 정태승"

롯데가 48일 간의 호주 전지훈련을 마치고 17일 귀국했다. 이번 캠프에서 선발 투수진과 새 얼굴 등 플러스 요소를 확인했다. 롯데는 스프링캠프에서 호주 애들레이드 자이언츠와 5차례(2승1무2패) 맞붙었고, 또 7차례의 자체 청백전도 소화했다. 애들레이드와 평가전을 통해 선발진의 윤곽이 드러났다. 호주리그 질롱코리아에서 실전을 소화하느라 뒤늦게 합류한 노경은을 제외하고 댄 스트레일리(두 차례), 아드리안 샘슨, 박세웅, 서준원이 선발 등판했다. 스트레일리가 2경기 7이닝 5피안타 2실점, 샘슨이 4⅓이닝 5피안타 2실점 했다. 박세웅과 서준원은 3이닝 비자책을 기록했다. 지난해 미계약으로 1년을 쉰 노경은은 15일 청백전에서 4이닝 3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총 60개의 공을 던졌고 최고 구속은 140km였다. 직구와 슬라이더, 커브, 투심, 체인지업, 너클볼을 두루 던졌다. 노경은은 "다양한 구종을 테스트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특히 서클 체인지업이 기대보다 좋은 결과를 내 만족스럽다"고 했다. 2017년 12승6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한 뒤 지난 2년 간 부상과 재활로 고전한 박세웅은 명예회복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실전 등판을 여러 차례 소화했고, 최고구속 150km를 찍었다. 박세웅은 "개선된 직구 제구를 통해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잡아갈 수 있었고, 감독님께서 강조하신 ‘빠른 승부’가 가능해졌다"고 반겼다. 프로 2년 차로 지난해 선발투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서준원, 지난해 전천후로 활약한 김건국 등도 멀티 이닝을 소화하며 선발투수로서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또한 2017년 1차 지명투수로 지난 2년간 팀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던 윤성빈은 15일 청백전을 통해 첫 실전 경기에 투입되며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최하위의 롯데는 선발진 평균자책점 역시 유일하게 5점대(5.03)대를 기록해 꼴찌였다. 이번 캠프 실전이 청백전과 평가전 위주였으나, 선발투수 후보군이 좋은 모습을 보여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허문회 롯데 감독은 국내 선발진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결정하진 않았다. 리그 개막 연기로 귀국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는 만큼 연습경기를 하면서 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좌완 계투로 손꼽히는 육성 선수 출신 정태승과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유영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허 감독은 스프링캠프 투수 MVP로 선정한 정태승에 대해 "매우 성실한 모습을 보여줬고, 연습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김원중은 마무리로 전환해 뒷문을 지켰다. 야수진에선 안치홍과 지성준이 합류해 부상 없이 캠프를 마쳤다. 지난 겨울 롯데와 2+2년 최대 56억 원에 FA(프리에이전트) 계약을 한 안치홍과 트레이드를 통해 옮겨온 포수 지성준은 각각 팀의 약점이던 2루와 안방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허문회 감독은 "기존 선수들과 융화돼 시너지 효과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력 상승이 예상되니 감독으로서 흐뭇하다"고 전했다. 롯데는 17일 귀국 후 오는 20일까지 휴식을 취한 뒤, 21일부터 사직구장에서 훈련을 재개한다. 허문회 감독은 "투수, 야수진 모두 계획대로 훈련이 이뤄진 것 같아 뿌듯하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형석 기자 2020.03.18 06:00
스포츠일반

[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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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볼] 롯데 '5선발 4명' 파격 시도 결과는

양상문 신임 감독 체제로 2019시즌을 맞이할 롯데 자이언츠'반갑다, 프로야구!'마침내 야구의 계절이 왔다. 2019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가 오는 23일 전국 5개 구장에서 성대하게 막을 올린다. 잠실 두산-한화전·부산 롯데-키움전·광주 KIA-LG전·인천 SK-kt전·창원 NC-삼성전이 올 시즌 개막을 알리는 첫 경기다. 개막 2연전을 신호탄으로 각 구단은 팀당 144경기의 대장정을 시작한다.지난 시즌 최종 승자는 SK였다. 정규 시즌을 2위로 끝낸 SK가 극적인 역전 우승을 해냈다. 두산이 정규 시즌 역대 최다인 93승을 올리면서 압도적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지만, SK는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을 꺾은 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마저 넘고 8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두 팀은 올해도 유력한 우승 후보로 분류된다.물론 야구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나긴 한 시즌을 치르는 동안 각 팀에 수많은 변수가 등장하고, 순위 표 맨 윗자리의 얼굴은 수시로 바뀐다. '왕조'를 구축할 것 같았던 팀이 손쉽게 자리를 내주기도 하고, 지난 시즌 한화처럼 만년 하위권 후보로 분류됐던 팀이 11년 만에 가을잔치를 치르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우승팀은 하늘이 점지한다고들 한다. 우승 과정에는 분명히 객관적 전력이나 성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행운이 따라야 한다. 하지만 리그 최정상 팀이 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올해는 과연 어떤 팀이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버틸 수 있는 무기를 갖췄을까. 또 어느 팀이 가장 든든한 살림 밑천을 마련한 채 시즌을 시작할까. 2019시즌 개막을 기다리는 10개 구단의 올 시즌 전력과 전망을 3일에 걸쳐 팀별로 짚어 본다.롯데 타선의 화력은 경쟁력을 갖췄다. 지난 시즌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대호가 건재하다. 외야수 전준우는 전성기를 열었다. 리그 최고 교타자 손아섭과 홈런 생산 능력이 좋아진 민병헌도 있다. 내야수 신본기도 타격에 눈을 떴다. 변수는 마운드다. 매 시즌 그랬다. 예년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3선발 박세웅이 오른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로 이탈했다. FA(프리에이전트) 노경은은 잔류하지 못했다. 선발진만 두 자리를 채워야 하는 상황이다. 새 외인 제이크 톰슨의 투구는 압도적이지 않았다. 손승락이 건재하고 오현택·구승민이 각성한 필승조는 그나마 우려가 덜하다. 양상문 신임 감독의 팀 운영도 시즌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요인이다. 전임 감독이 부진한 성적 탓에 물러났다. 육성에만 치중할 순 없다. 승리가 필요하다. 오프시즌 동안 외부 수혈은 없었다. 기존 자원으로 최상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 '투 트랙 1+1 선발' 시도 양 감독은 이미 파격적 시도를 예고했다. 외인 투수 2명과 김원중 그리고 장시환까지 선발투수로 확정했다. 남은 5선발 자리에 투수 4명을 투입한다. 양상문 감독은 송승준(사진)·윤성빈·박시영·김건국을 5선발 자리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롯데 제공일반적인 오프너 개념이 아니다. 두 투수가 한 조를 이룬 뒤 차례로 3~4이닝씩 소화한다. 그리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다. 다음 로테이션이 돌아오면 다른 조가 나선다. 양 감독은 "1명만 낙점하면 능력 있는 다른 3명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아깝다. 팀 상황에 가장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송승준·윤성빈·박시영·김건국이 그 임무를 맡는다. 두 자리가 빈 엔트리는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을 콜업 한다. 선수 활용 폭을 넓힐 수 있다. 계획대로 두 투수가 7~8이닝을 소화해 준다면 불펜 소모도 줄일 수 있다. 투수 4명에게 두루 1군 선발 경험을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전 감각 유지가 어렵다. 2군에서 경기를 소화해도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에 효율이 떨어진다. 1·2군 이동으로 생기는 피로도 있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17시즌을 제외하면 매년 5선발 공백을 메우지 못한 팀이다. 감독과 코치진은 심사숙고한 끝에 사례를 찾기 어려운 시도를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양 감독은 "짧아도 두 달 동안 이런 운영이 이어진다"고 했다. 시즌 초반에 팀 성적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젊은 선수 성장에 달려 있는 시즌 성패 강민호가 이적한 안방은 여전히 취약한 포지션이다. 안중열·김준태·나종덕이 주전 자리를 두고 시즌 내내 경쟁할 전망이다. 다른 팀과 비교하면 무게감이 떨어진다. 그나마 강민호의 성장을 이끈 최기문 배터리코치의 합류가 위안거리다. 팀내 포수 중 수비력이 앞서는 안중열. 롯데 제공수비력은 안중열이 다소 앞서고, 공격력은 김준태가 낫다. 1군 경기 경험은 비슷하다. 나종덕은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타격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수는 매 순간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지도자는 강점을 면밀히 파악하고 상황과 상대에 맞는 기용으로 객관적 전력을 보완해야 한다. 내야수 한동희도 잠재력을 드러내야 한다.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해는 공수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새 사령탑 체제에서도 자질을 인정받았고 주전 3루수로 낙점됐다. 타격과 수비에서 모두 잘해야 하는 자리다. 다른 구단을 봐도 쟁쟁한 선수가 많다.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일단 사령탑은 "실력과 심리 모두 지난해보다 나아졌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증명해야 한다. 불펜도 마찬가지다. 셋업맨으로 거듭난 구승민이 최소한 지난해 때 보여 준 기량을 유지해야 한다. 좌완 불펜 투수 차재용도 '유망주' 딱지를 떼야 한다. 이명우가 팀을 떠나며 기회가 왔다. 각 팀의 주축 타자 가운데에는 좌타자가 많다. 투수 운영에 다양성을 두기 위해서도 1군에서 뛸 수 있는 좌투수가 나와 줘야 한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tbc.co.kr 2019.03.21 06:00
야구

전지훈련 끝난 롯데 양상문 "선수들 컨디션 만족"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전지훈련을 마쳤다. 양상문 롯데 감독은 "선수들 컨디션에 만족한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야구를 하지 못한 롯데는 양상문 신임감독을 영입했다. 양상문호로 첫 시즌을 맞이한 롯데는 대만 가오슝과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8일 예정된 SK와 마지막 연습경기는 비로 취소했다. 자체 훈련으로 마무리한 롯데는 9일 귀국한다. 대만과 한국 팀을 상대로 치른 열 차례 연습경기 성적은 4승2무4패. 양상문 감독은 "처음에 프런트와 코칭스태프에서 계획했던 일정대로 점차적으로 선수단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스케줄을 소화했다. 큰 문제 없이 무사히 잘 마친 캠프였다"고 평했다. 특히 야수진은 부상 없이 훈련을 진행했다. 양 감독도 "부상 없이 마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다행히 특별한 부상자 없이 캠프를 잘 마쳤다"며 만족했다. 이어 "수비 파트에서는 지난해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투수 전문가'인 양 감독의 가장 큰 과제는 역시 마운드 재건이다. 롯데는 FA 노경은과 계약하지 않았고, 박세웅도 2군 캠프에서 시작했다. 빈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가운데 김원중, 장시환, 윤성빈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양상문 감독은 "마무리 캠프부터 정성을 들인 투수들의 기량이 눈에 띄게 오른 부분이 만족스럽다. 전체적으로도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롯데는 12일 개막하는 시범경기를 통해 마지막 담금질에 나선다. 양상문 감독은 "귀국하면 시범경기에 들어간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실전을 준비하는 마지막 과정이기 때문에 정규시즌과 똑같은 운영을 통해 최종 엔트리를 고민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9.03.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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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의 클래식] 류현진·오승환 이을 야구 대표팀 새 투수가 필요하다

한국 야구대표팀을 이끌 새로운 재목이 필요하다.아시아권 대회를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프로 선수 위주의 대표팀을 구성하기 시작한 것은 2000 시드니올림픽부터다. 이후 대표팀이 호성적을 거둔 대회에서 10년 넘게 선발투수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는 손에 꼽힐 정도다. 류현진(LA 다저스)과 김광현(SK), 마무리 투수는 오승환(콜로라도)이 있다.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좌완 투수 구대성이 동메달을 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마추어 선수로 선발된 정대현도 장래성을 보여 주는 인상적 호투를 펼쳤고, 이후 대표팀에 선발될 때마다 좋은 모습을 남겼다.2006년에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박찬호와 김병헌·서재응·봉중근·김선우 등 빅리그 출신들이 마운드의 주축이었다. 오승환은 마무리 투수로 돌직구의 진수를 보여 줬다. 당시 미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벅 마르티네즈 감독은 "오승환은 곧바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통하겠다"며 굉장히 호평했다.전승 우승을 차지한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김광현이 일본 킬러, 결승전에서는 류현진이 쿠바 격파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또 교체 선수로 뽑힌 윤석민이 중간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2009 WBC에서는 일본전을 비롯한 대회 내내 봉중근과 정현욱의 눈부신 투구가 대표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시나 윤석민도 좋았다.초대 챔피언에 오른 2015 프리미어 12에선 뚜렷한 투수가 없었으나 물량 공세 작전으로 나섰고, 결정적일 때 김광현과 장원준·차우찬이 해 줬다. 10년여 동안 대표팀 마운드는 몇몇 선수들에게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대표팀 마운드를 보면, 가장 염려되는 부분은 이렇다 할 새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는 11월 올림픽 예선을 겸한 프리미어 12가 개최되고, 내년에 도쿄올림픽이 열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대표팀에서 장래성을 입증할 수 있는 투수를 눈여겨봐야 한다. 롯데 윤성빈(왼쪽)과 키움 안우진. 롯데자이언츠·IS포토 현재 KBO 리그에서는 좋은 자질을 갖춘 우투수가 있다. 올해 프로 3년 차를 맞는 롯데 윤성빈은 지난해 2승5패 평균자책점 6.39로 큰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지만 197cm ·90㎏의 체격 조건에 좋은 공을 갖고 있다. 키움 안우진은 프로 데뷔 전 논란을 떠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윤성빈과 안우진 모두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공을 던질 줄 아는 데다 공에 무게감도 있다. 스플리터의 위력도 좋다. 두 선수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우타자의 몸 쪽으로 향하는 투심패스트볼의 제구력이 뒷받침된다면 훨씬 더 좋은 기량을 선보이지 않을까 싶다. 또 두산 곽빈은 슬라이더와 커브가 뛰어나고, kt 김민 역시 신예로 가능성이 엿보인다. 올해 신인 가운데 기대를 모으는 선수도 여럿 있는 만큼 뚜껑을 열었을 때 좋은 자원이 나왔으면 한다. 태극마크를 달고 류현진·김광현·오승환처럼 오랜 기간 한국 야구를 이끌려면 몸 쪽 제구가 필요하고, 자신의 공을 자신 있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마이너리그 유턴파 출신인 1988년생 정영일은 나이가 좀 있지만 지난해 포스트시즌(8⅔이닝 4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 때 기량만큼 보여 준다면 앞으로 국제 대회에서 충분히 상대에게 위협을 줄 만한 투수로 여겨진다.그동안 대표팀의 성적을 책임진 마운드는 대부분 좌투수 위주였는데, 특이한 점은 최근 KBO 리그에서 싹수를 보이는 신예들은 대부분 우투수다.새롭게 선임된 김경문 대표팀 감독과 코칭스태프·기술위원회가 대형 투수로 성장 가능성과 재목을 잘 체크해야 한다. 또 소속팀에서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이들의 성장세가 달려 있다고 본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 2019.0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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