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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죽을힘을 다한 후의 희열...몰두의 맛

몰두는 ‘어떤 일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열중함’이란 뜻의 단어입니다. 오래전에 성석제가 몰두에 대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개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가 있다. 진드기는 머리를 개의 연한 살에 박고 피를 빨아먹고 산다. 핀셋으로 살살 집어내지 않으면 몸이 끊어져버린다. 한번 박은 진드기의 머리는 돌아 나올 줄 모른다. 죽어도 안으로 파고들어 가 죽는다. 나는 그 광경을 ‘몰두’라고 부르려 한다.”'沒頭'. 빠질 몰, 머리 두.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만큼 집중하는 것이 아니면 감히 “몰두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개의 연한 살에 박힌 진드기처럼 그때에 제 머리에 박혔습니다. 더 오래전에 읽은 글입니다. 책 제목도, 저자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작가끼리 노닥거리고 있었습니다. 한 작가가 마감할 원고가 있으니 잠시 일을 하겠다고 다른 자리로 갔습니다. 두어 시간 만에 10여 장의 원고지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 같은 게 없었습니다. 육필 원고입니다. 원고지에는 수정을 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손볼 것이 없는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작가가 일을 한 자리에는 파지가 한 장도 없었습니다. 원고지 10여 장의 글을 단숨에 내달린 것이지요.이 일화를 책에서 읽으며 제가 도달할 직업 글쟁이로서의 한 경지를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초집중의 자세로 내달리는 것입니다. 그 마음가짐으로 오랫동안 참 많은 글을 썼습니다. 제가 책에서 본 그분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대부분의 원고는 단숨에 끝냅니다. 물론 글쓰기 전까지 자료를 찾고 구성을 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글의 처음과 끝이 분명해지면 자리에 앉아서 내달립니다. 한 호흡으로 내달립니다. 몰두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그러니까 몰두하여 글을 쓰고 나면, 희열이 따릅니다. 저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개의 몸에 머리를 박은 진드기가 몸을 당겨도 악착같이 버티는 이유는, 머리를 박아서 얻어내는 생명 유지의 희열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진드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몰두의 희열을 압니다. 죽을힘을 다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은 인류 보편의 경험칙입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쓰는 사람으로는 운동 선수가 대표적입니다. 운동이 선수에게 고통만 준다면 그 운동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연아의 부어오른 발, 박지성의 멍든 발, 강수진의 비틀린 발은 고통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희열의 흔적이기도 합니다.인간 뇌는 고통의 시간을 겪고 나면 반드시 보상의 도파민을 터뜨립니다. 인간이 모험적인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쉬운 일만 하면 보상은 없거나 적습니다. 희열을 맛보려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일에 자신을 밀어넣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실패하면 희열도 없을 것이라는 걱정은 괜한 것입니다. 도전 그 자체만으로 희열은 큽니다.저는 몸이 작고 체력이 약했습니다. 중학교 체력장 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오래달리기는 운동장을 다섯 바퀴 돌아야 합니다. 대여섯 명을 한 팀으로 해서 뛰는데, 키 순서대로 팀을 짭니다. 그날 저는 제일 앞줄에 섰습니다. 선생님이 웃으며 봐주었습니다. 저와 같이 뛰는 친구들은 키가 머리 하나는 더 있었습니다.출발 신호와 함께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습니다. 100m 달리기 하듯 뛰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키 큰 친구들을 앞섰습니다. “우와~” 하는 함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체력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도 못 돌고 뒤로 밀렸습니다. 세 바퀴가 넘어가자 저는 꼴찌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가슴은 터질 것 같았고 목구멍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골인을 하고 저는 쓰러졌다. 한참 후에 몸을 세워서 수돗가로 갔습니다. 몸을 숙여 머리에 물을 적시면서 토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희열이 몸을 때렸습니다.세상 같은 것은 져도 됩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2023.12.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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