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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심재걸 엔터잡학사전] 대선과 엔터테인먼트, 또 한 번 광란의 시간을 마치며

‘대선’이라는 광란의 시간이 끝났다. 적어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선거철은 그렇게 불릴 만하다. 워낙 큰 사회적 빅이벤트라서 공들인 제작 콘텐츠가 구애 대상인 대중에게 소외되는 것은 둘째치고,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집단적으로 변화무쌍해진다. 정치 성향 반대편을 겨냥한 증오심과 결합돼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포의 시간이다.이번 대선에서는 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희생양이 됐다. 사진 한 장으로 광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빨간 점퍼와 숫자 ‘2’가 디자인된 옷을 입은 SNS 게시물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표시로 해석된 것이다. 여기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이슈까지 더해져 겹겹이 쌓인 논란의 한가운데서 2차 가해까지 견뎌내야 했다.그럼에도 사과를 하는 쪽은 카리나 본인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였다. 일상적 내용을 공유한 것이고 다른 목적이나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해명이 뒤따랐다. 그 말대로면 매우 억울한 일이지만 커지는 불길 앞에서 가만히 있기엔 어려운 일이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진화 조치였을 터다.비단 카리나와 SM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는 대부분의 엔터 기획사들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특히 컴백을 앞둔 가수들은 새 앨범 발매 전까지 매일같이 사진, 영상들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데 그야말로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행여나 1, 2, 4 등 주요 대통령 후보들의 기호나 파랑, 빨강, 주황 등 정당 대표 색깔이 들어가 있는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고 기본 색상인 만큼 자주 사용될 수밖에 없으니 적잖은 수정 작업이 동반됐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직원들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탄을 하면서도 카리나 논란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말에는 대부분 동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선거일 이후로 콘텐츠 업로드 시점을 연기하는 쪽을 택한 곳도 있다고 한다. 겉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선 기간 동안 엔터 업계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풍경이다.연예계는 한동안 이승환, 김흥국, JK김동욱, 김규리 등 정치적 커밍아웃이 자연스럽게 쌓여갔다. 금기시되던 정치 관련 발언도 자신있게 표현하며 달라지고 있는 시대 흐름이 체감됐다. 계엄, 탄핵 시위 국면에는 아이유, 뉴진스, 소녀시대 유리 등이 집회 인근 식당과 카페 등에 선결제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지드래곤, 고민시 등도 직간접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의 성장에 따라 스타들도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소신을 말하는 시대라고 통했다.그러나 이번 대선 기간 만큼은 다시 과거로 역행이었다. 카리나와 비슷하게 래퍼 빈지노 또한 사전 투표 시작일에 특정색의 옷을 입었다가 궁지에 몰렸다. 딱히 민감한 발언도 없었지만 특정 정당 지지로 오인돼 집단 린치가 자행됐다. 과도한 정치 프레임이 아티스트에게 가해진 광기였다.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카니예 웨스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특정 정치인에 대해 지지선언을 하는 게 일상적인 미국에서도 분명 리스크는 존재한다. 다만 이를 감수하고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더 성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아티스트 활동에 큰 침해는 받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는 트럼프 대통령을 ‘얼간이’로 비유한 곡을 발표했지만, 2기 취임 직후 오히려 슈퍼볼 하프타임쇼 무대는 물론 시대의 아이콘으로 진화하고 있다.연예인처럼 정치인도 팬덤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발생되는 비판과 비호감은 상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일리 있다. 모두 대중의 호감으로 좌우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경직된 시선으로 과한 폭격이 결정되는 건 아닌지 환기해 볼 시점이다.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유연한 토론이 가능한 분위기, 그때가 오기까지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선거철마다 숨죽여야 하는, 공포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심재걸 대중문화 평론가 ◇ 필자 소개 : 현재 브랜드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며 평론가로도 활동 중입니다.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연예 저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YG엔터테인먼트에서 업계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심재걸 엔터 잡학사전’에서 엔터 관련 다양한 현상들을 해설하며 세대간 소통의 장을 마련합니다. 2025.06.04 05:40
연예일반

카리나 결국 사과... 과도한 연예인 정치색 입히기 [현장에서]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연예인들이 ‘정치색 입히기’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룹 에스파 멤버 카리나는 지난 27일 일본에서 촬영한 일상 사진을 공개했다가 급하게 삭제했다. 사진 속에서 숫자 ‘2’가 적힌 ‘빨간색’이 들어간 점퍼를 입었다는 게 논란이 됐다. 해당 의상이 특정 정치 성향이나 대선 후보를 연상케 한다며 ‘신중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추측이 지나치다”, “모든 걸 정치색으로 해석하는 건 피곤한 일” 등의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백지원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대변인이 카리나를 향해 감사를 전하면서 해당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빠르게 확산됐다. 백 대변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SHOUT OUT TO’라는 글귀를 쓴 뒤 에스파의 히트곡인 ‘슈퍼노바’, ‘아마겟돈’ 뮤직비디오와 배경음악을 게재한 것. ‘SHOUT OUT TO’는 공식적으로 누군가에게 감사를 전하거나, 특별히 언급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이후 여러 정치인들과 특정 정치 성향의 사람들이 각종 SNS에 카리나가 삭제한 인스타그램 사진을 이용하면서, 카리나가 정치색을 드러낸 것인양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결국 카리나는 28일 오후 팬 소통 플랫폼 버블을 통해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갖고 주의깊게 행동하겠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소속사 SM엔터에인먼트 역시 “카리나는 일상적인 내용을 SNS에 게시한 것일 뿐 다른 목적이나 의도는 전혀 없었다”라고 입장문을 내며 진화에 나섰다. 당초 카리나 측은 이번 논란에 대해 전혀 정치적인 의도가 없었다는 사실을 발빠르게 알리려 했으나, 이날 에스파가 해외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여하느라 리허설 등을 진행하고 있어 소통하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비단 카리나뿐이 아니다. 그룹 코요태의 신지는 한 누리꾼이 자신의 SNS에 신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신지 기호 2번, 오직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대동단결. 필승. 국민 대통령 김문수 파이팅”이라고 덧붙이자 분노를 드러냈다. 사진에는 신지가 손가락으로 브이(V)자 포즈를 취하며, 한 남성과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뒤늦게 게시물을 발견한 신지는 “이게 언제적 사진인데”라면서 “정치색과 전혀 무관하다. 행사 끝나고 지나가는데 사진 찍어드린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정치색을 드러내고 말고는 자신의 선택이다. 문제는 본인이 명확한 의도를 드러낸 것도 아닌데, 남들이 특정 부분만 짚어내 과도하게 정치색을 입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연예인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특정 세력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가뜩이나 연예인을 둘러싼 무책임한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현실이기에 그런 우려는 더욱 크다. 물론 카리나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카메라 앞에서 자주 노출되는 연예인의 직업 특성상 선거철에는 이 같은 논란에 휩쓸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선, 총선 시기에는 무채색 의상을 입거나 브이나 엄지척 대신 주먹을 꽉 쥔 포즈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지도 오래다. 그럼에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힌 적이 없는 연예인을, 단지 유명하기에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의미를 부여해 구설에 오르도록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인 것 만큼은 분명하다. 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5.05.28 16:32
영화

‘미키 17’ 봉준호 “이상한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 남길” [IS인터뷰]

“에스프레소를 한 7잔 마셨어요. 박카스 10병 먹은 중학생이 된 기분이죠.(웃음)”일주일 새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을 찍고 귀국한 봉준호 감독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작 ‘미키 17’ 개봉을 앞두고 만난 봉 감독은 “카페인 때문인지 조금 흥분되기도 한다”면서 “이번에는 (관객이) 좀 쉽고 재밌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오는 28일 한국에서 최초 개봉하는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을 소재로 한다. 영화는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그동안 현실의 쓰라린 모습을 보여주고 풍자하다 보니 영화 속 캐릭터가 가혹한 상황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근데 그중에서도 미키는 가장 가혹해요. 심지어 죽는 게 직업이죠. 하지만 또 착해요. 손해 보고도 계속 웃어요. 그러다 돌아이 같은 미키 18이 나오면서 속이 시원해지죠. 가엾으면서도 웃겨요. 그 관점에서 영화를 쓰고 찍었어요.”알려졌다시피 ‘미키 17’은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봉 감독은 몇몇 설정에 크고 작은 변화를 주면서도 굵직한 사건은 그대로 차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신경을 쓴 건 미키와 나샤(나오미 애키) 간 사랑이다.“책을 보면서 미키와 나샤 챕터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났던 적이 있어요. 그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죠. 특히 나샤는 미키 만큼 중요한 캐릭터예요. 미키를 부서지지 않게 해주는 동시에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과도 싸우죠. 영국에서는 나샤가 마셜에게 융단폭격을 날릴 때 박수까지 나왔어요.”자연스럽게 이어진 마셜 이야기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앞서 영화가 공개된 후 해외 언론들은 마샬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것이란 의견이 잇따랐다. 봉 감독은 “구체적인 모델이 있었지만, 모두 현역 정치인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영화가 현재적인 느낌이라 그런 것 같다”고 짚었다.“이탈리아 한 중년 기자님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모델이냐고 했어요. 한국을 비롯해서 모두 현재 본인들이 겪고 있는 정치적 스트레스를 투사하는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전 이 시나리오를 2021년에 썼다는 거죠.” 완전히 닫힌, 해피엔딩 결말이 의심쩍다는 반응에는 “지금 보고도 못 믿은 거냐. 너무 하신다”고 장난스레 받아쳤다. 봉 감독은 “이번만큼은, 미키에게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17번 죽인 애를 또 죽이고 싶진 않았다. 대신 마지막 미키의 악몽이 잔상으로 오래 남았으면 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악몽을 극복하지 못하면 언제든 우리는 다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신작 개봉을 앞둔 지금 전작 ‘기생충’(2019)의 후광이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을지도 궁금했다. ‘기생충’은 국내에서 1031만 관객을 동원, 흥행에 성공한 것은 물론, 한국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을 받았다.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받은 트로피를 합산하면 70개가 넘는다.“영화감독은 영화를 찍어요. 육상선수처럼 기록을 경신하는 게 아니죠. 생활이나 작업 방식도 바뀐 게 없고요. 다만 캐스팅은 되게 수월해졌죠. 미국 배우들에게 저와 제 전작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거절 과정도 안 겪고요. 이제 만나면 먼저 ‘기생충’을 얘기해요. 더 많이 본 걸 강조하고 싶으면 ‘마더’나 ‘살인의 추억’, ‘괴물’을 말하기도 하고요.”차기작으로는 두 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한 편은 지난 2019년부터 기획 중인 애니메이션, 한 편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공포물이다. 봉 감독은 “제 작업은 그냥 지속적으로 쭉 이어지고 있다. ‘전작 결과가 이랬으니까 이렇게 해야 해’는 없다. 그저 하던 걸 계속할 뿐”이라고 말했다.“전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 던져져도 끊임없이 이상한 톤을 유지할 수 있는 감독이요. 계속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도 사실 없어요. 그냥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죠.(웃음) 그리고 모두가 그렇듯 제 직업을 사랑할 뿐이고요.”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5.02.24 05:50
영화

‘히트맨2’ 정준호 “예산 시장으로 정계 진출? 할 거면 대통령” [인터뷰②]

배우 정준호가 정치 진출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1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영화 ‘히트맨2’에 출연한 정준호의 인터뷰가 진행됐다.이날 정준호는 예산 시장 등 정계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에 대해 “할 거면 대통령을 했을 것”이라는 농담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다양한 사람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다. 예산에서 공천도 여러 번 받았다. 그렇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정준호는 “정치를 하려면 배우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정치인으로서 제대로 공부를 하고 그쪽으로 승부수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역의 현황을 파악하기도 해야 한다. 갑자기 배우를 하다가 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운동 선수가 갑자기 배우를 하면 1~2개 작품은 할 수 있어도 어느 순간 벽에 가로막히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한편 ‘히트맨2’는 지난 2020년 개봉해 240만 관객을 동원, 그해 흥행 톱4에 오른 ‘히트맨’의 속편. 대히트 흥행 작가에서 순식간에 ‘뇌절작가’로 전락한 준(권상우)이 야심 차게 선보인 신작 웹툰을 모방한 테러가 발생하고,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준호는 국정원 국장 천덕규 역할을 맡았다. 오는 22일 개봉.이수진 기자 sujin06@edaily.co.kr 2025.01.16 12:43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무정치의 세상에 살 수밖에 없는 그들

저는 맛칼럼니스트입니다. 음식과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직업입니다. 어쩌다가 방송사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장기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저를 연예인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연예인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냥 글쟁이입니다.) 그 덕분에 많은 연예인과 친해졌고 그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저는 SNS에서 정치적 입장을 숨긴 적이 없습니다. 제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가기 전부터 정치적이었고,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나가면서도 정치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정치적이고, 죽을 때까지 정치적일 것입니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정치를 하는 국가입니다. 여러분이 정치적 의견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을 하며 살아가듯이 저 역시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여러분과 똑같이 그러고 사는 겁니다.연예인은, 그런데,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격 살인에 직업 박탈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이 정치적 의견을 내면 정치적으로 반대편이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방송에서 하차시키기 위해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것은 기본이고 떼를 지어 여기저기에 항의 전화를 합니다. 연예인에게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데, 이미지에 심대한 손상을 입혀서 아예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마녀사냥입니다. 이런 일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언론은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 오히려 마녀사냥을 부추깁니다.그래서 연예인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숨김없이 대중 앞에서 말하는 연예인도 존재합니다. 그분들은 정말이지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겁니다.연예인은 공인이니까 정치적 견해를 밝히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공인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게 공적인 일이냐 하면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면서 하는 일’이라고 해석하면 적절할 것입니다. 연예인은 세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유명하다고 공인인 것은 아닙니다.연예인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제게 한 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우리라고 왜 정치적 입장이 없겠어요. 아시다시피,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잖아요. 우리는 말을 못 할 뿐이에요. 아니지요. 우리 사회가 말을 못 하게 해요. 한마디라도 하면 난리가 나잖아요. 난리가 나면 우리는 일을 못 해요. 우리 사회가 ‘너희는 조용히 해라’ 그러는 겁니다. 우리는 무정치의 세상에 삽니다.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 같은 것은 없어요.” 외국은 사정이 어떤지 굳이 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정만 살피면 됩니다.모든 국민에게 당연하게 주어져야 하는 표현의 자유가 일부 직업인에게는 억압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을 해야 합니다.“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 가수 임영웅의 이 말을 정치적 논리로 따지는 것 말고 또 하나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정치적 발언을 하면 밥그릇을 잃을 수도 있는 한국 연예계의 독특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윤리인 양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임영웅은 “저는 노래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의 곤란한 입장을 저는 이해합니다. 연예인은 무정치의 세상에 살아야 직업을 유지하는 데에 유리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저도 압니다. 그러나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연기를 하는 사람이 라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배달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치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민주공화국은 그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간에 모든 국민이 정치를 하는 국가입니다.무정치의 세상에 살겠다는 그들도 민주공화국에서 억압과 차별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국민이 라는 점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무정치의 세상을 유지하려면 “제가 정치인인가요?” 같은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 자체가 매우 정치적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무정치의 세상에 살겠다는 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묻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 살인과 생계 박탈의 마녀사냥을 당하기보다는 정치적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것이 더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외부 칼럼은 일간스포츠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01.02 07:00
스타

김갑수, “뭐요” 임영웅 또 지적…“언제 목소리 내겠느냐”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가수 임영웅의 DM 논란을 재차 비판했다. 김갑수는 16일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 출연해 “본격적으로 나서서 목소리 높인 건 이승환 씨 밖에 없다”며 “영화인들은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데 그 외 특히 가요계 반응을 보면 너무 슬플 정도로 미약하다”고 짚었다.그러면서 김갑수는 “일반적인 K팝 가수들에게 이런(정치적) 목소리를 내달라 기대하는 건 사실 아니다. 그러나 임영웅 사례에서도 얘기했듯 이것은 정치공방이 아니다”라며 “민주공화정의 존립에 관한 문제이고, 내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대체 언제 내가 직업인으로서 소리를 내느냐”라고 꼬집었다.특히 김갑수는 “계엄 통치가 계속되면 노래가 다 검열받는다. 영화와 소설, 언론도 모두 마찬가지다”라며 “제 이야기의 요지는 연예인들의 침묵에 대해서, 또는 그들의 소극적인 행동에 대해서 한 번은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는 얘기를 촉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라고 강조했다.앞서 임영웅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 7일, 반려견 시월이의 생일 축하글을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이를 두고 한 팬이 DM으로 “이시국에 뭐 하냐”라고 정치적 무관심을 지적하자, 임영웅으로 추정되는 계정이 “뭐요”,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고 답변을 보낸 것이 드러나 빈축을 샀다. 임영웅 소속사 물고기 뮤직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이에 김갑수는 지난 9일 ‘매불쇼’에서 “이런 태도는 시민적 기초 소양의 부족”이라며 “이런 건 드러내서 문제 삼을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자기는 빠져나가는 방관자적 태도를 취한다면 현재까지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온 한국인의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일갈했다.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4.12.17 18:18
스타

카이스트 교수 “최민식 연기 좋아해… 근거 없는 논리성 비난한 것”

영화관 티켓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한 배우 최민식을 저격한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비판을 이어갔다.이 교수는 22일 페이스북에 “내가 그의(최민식의) 발언, 많은 정치인의 발언에 늘 불편한 건, 반기업 선동. 기업의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다.그러면서 “한국 영화가 이처럼 커지고 배우들이 지금처럼 대접받는 시절이 온 것은 누가 뭐래도 대기업들이 국민의 소득 수준에 걸맞은 극장 사업을 벌여왔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 교수는 최민식의 소신 발언의 ‘자유’를 공격한 게 아닌, 영화관 티켓 가격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에 대한 비판이라고 강조했다. “난 최민식의 연기를 좋아한다. 개인을 저격한 게 아니라 그의 발언의 비논리성을 지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앞서 지난 17일 최민식은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나오면서 영화 산업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는 관객의 질문에 “지금 극장 가격도 많이 올랐잖아요. 좀 내리세요. 갑자기 확 올리면 나라도 안 간다”고 일침을 날렸다.이후 20일 이병태 교수는 해당 기사를 공유하며 “영화관 사업은 민간 기업이 하는 것으로, 권력 집단도 아닌데 ‘가격 인하하라’는 이야기가 용기가 필요한 소리인가”라며 “시장 가격을 소비자 원대로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사업은 없고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배우라는 직업도 없다”라고 비판했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4.08.22 22:46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퍼펙트한 나날들

붕어 낚시는 자리를 옮기지 않습니다. 물론 어쩌다가 자리를 옮기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한 자리에서 붕어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냅니다.붕어를 잡아서 모아놓은 낚시터가 아니면 붕어가 잘 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날이 허다합니다. 지난해에는 소양호에 4회 출조를 하여 4회 모두 꽝을 쳤습니다.붕어가 안 잡히면 지루하지 않으냐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붕어가 당장에 안 잡혀도 앞으로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이 되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붕어가 안 잡히고 앞으로도 붕어가 안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될 때에는 지루합니다.지루해도, 그러니까 붕어가 낚일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해도, 붕어 낚시꾼은 낚싯대를 쉬 접지 않습니다. 붕어가 없어도 산과 물, 구름, 비, 달, 별, 바람이 붕어 낚시꾼을 심심치 않게 해줍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순간에 새삼스레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는 것이지요.한 자리에 앉아서 아무 일 없이 한나절이 지나고 또 앞으로도 아무 일이 없을 것 같은 그 즈음에 제 머릿속에서는 노래 하나가 자동으로 재생이 됩니다.“딱 완벽한 날이야. 공원에서 샹그리아를 마시고, 그러고 나서 말야 어두워지면 집에 가는 거지. 딱 완벽한 날이야. 동물원에서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그러고 나서 또 영화를 보고 말야 집에 가는 거야.”(Lou Reed, Perfect Day 가사 중 일부)평범한 목소리가 노래 같지 않게 노래를 합니다. 특별날 것이 없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퍼펙트하냐고 저를 다독입니다. 밤새 입질 한번 없는 날에는 제 나른한 영혼이 퍼펙트한 나날로 채워질 것이라는 루 리드적 기대를 하면서 낚싯대를 접습니다.빔 밴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는 예고편만 보았습니다. 퍼펙트 데이(Perfect Day)가 배경 음악으로 흐르더군요. 공중 화장실 청소부의 특별날 것 없는 일상이 얼마나 퍼펙트하냐고 빔 밴더스가 고운 화면으로 찬찬히 보여주고 있는데, 어느 퍼펙트한 날에 빔 밴더스가 찍은 퍼펙트한 나날을 영화관에서 볼 것입니다.여느 퍼펙트한 날처럼 퍼펙트하게 꽝을 치고 집으로 가다가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렀습니다. 식당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는 속보로 미국 전직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가 총에 맞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총성과 함께 트럼프는 손으로 귀를 잡고 몸을 숙였습니다. 트럼프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 피가 보였습니다. 섬뜩했습니다. 상처가 어느 정도로 깊은지는 알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경호원이 트럼프를 감싸고 연단을 내려오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트럼프는 몸을 세우며 주먹을 쥐고 팔을 치켜들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뭐라 뭐라 구호를 외쳤습니다.“미.쳤.다.” 트럼프의 행동을 보며 제 입에서 툭 터져나온 말은 “미.쳤.다.”였습니다. 그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총알이 또 날아올 수도 있잖아. 무섭지도 않나? 우와, 미쳤다, 미쳤어.”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은 생존 본능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제일 귀하게 여깁니다. 총알이 날아와 자신의 귀에 상처를 냈으면 바짝 엎드려 있거나, 이동을 해도 고개를 들지 않는 것이 자연스런 일일 것입니다. 트럼프는 달랐습니다. 트럼프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권력! 오직 권력! 죽음의 공포까지 이겨내는 트럼프의 강력한 권력욕에 평범한 소시민인 저는 “미.쳤.다.”는 말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트럼프 피격 이후 미국 시민 사회의 정치적 갈등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걱정을 듣습니다. 정치인이야 트럼프처럼 목숨 떼어놓고 벌이는 권력 쟁투가 직업적 임무일 수도 있겠지만 시민은 정치인의 권력 쟁투에 휩쓸려서 다치거나 죽으면 참으로 억울한 일이겠지요.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아무 일 없이 사는 것이 인간에게는 얼마나 큰 복인지 알게 하기 위한 것일 수 있습니다. 공원에서 샹그리아나 마시고 동물원에 가서 동물에게 먹이나 주고 영화나 보고 낚시나 하고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총 맞아 피 흘리는 트럼프를 보며 새삼 깨닫습니다. 2024.07.18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개념부터 잡고 다시 합시다

“자자, 이러지 말고, 개념부터 다시 잡아봅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개념을 분명히 하고 토론을 하자고요.”토론을 하는데 서로 결이 맞지 않는 말이 떠돌면 토론 대상에 대한 개념이 서로 달라 그럴 수가 있다고 의심을 해야 합니다. 이때의 처방은 개념부터 확인하는 것입니다. 가령, 자유에 대한 토론이라고 한다면, 토론자들에게 “자유란 무엇이지요?” 하고 질문을 하여 각자가 신념화하고 있는 자유에 대한 개념부터 확인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자유라는 한 단어를 토론자들이 각각 다른 개념으로 쓰고 있다면 토론을 벌인다기보다는 웅변 대회를 열고 있다고 하는 게 적절할 것입니다.토론이 가장 활발한 영역이 정치판이기는 합니다만, 일상에서도 우리는 수시로 토론을 합니다. 책 읽고 토론하고, 영화 보고 토론하고, 음악 듣고 토론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을 합니다. 일상의 토론은 각자의 취향이 보태어져 있는 토론이고 또 토론의 결과 자체가, 정치 토론과는 달리, 공공의 성격을 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볍게 각자의 의견을 내고 확인하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음식 토론도 취향 토론이라서, 그러니까 각자의 입맛을 존중하는 선에서 끝을 내어야 하는 토론이라서, 상대의 의견에 정색을 하며 논박을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맛칼럼니스트입니다. 음식 전문 글쟁이입니다.음식에 대한 저의 품평은 취향 품평이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취향 품평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리 여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쇠고기 마블링 등급제’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1.5kg 육계로 튀기는 치킨’처럼 음식에 대해 정색을 하며 논쟁을 벌여야 합니다. 이건 저의 직업적 의무입니다.“요리에 대한 개념부터 잡자.” 1992년 음식 전문 글쟁이가 되겠다는 뜻을 굳히면서 제일 먼저 한 생각입니다. 요리사들을 만나면 이 질문부터 하였습니다. “요리란 무엇인가요?” 실로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가장 인상에 남은 요리 개념은 이제는 저 세상에 있는 임지호의 것입니다. “요리란 자연을 전달하는 행위이다.” 임지호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이 둘을 소통하게 하려고 노력한 요리사입니다.요리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레시피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보편적 원리를 찾아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 문장이 제 머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요리란 식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하는 행위이다.”식재료를 다듬어서 자르고 누르고 깨뜨리고, 다지고 묵히고, 삶고 데치고, 굽고 볶고 지지고 양념하는 등등 일체의 행위에서 제가 발견한 보편적 관념, 즉 요리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어디까지나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요리 개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요리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사상의 자유가 있습니다. “요리란 식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극소화하는 행위이다”는 개념을 적용하여 요리를 품평하려면 식재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식재료를 알려면 식재료 산지에 가야 합니다. 농수축산물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전국을 두루 돌면서 취재하였습니다.저에게도 취향이 있습니다. 어릴 때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강력한 취향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맛칼럼니스트로서 말을 할 때에 제 취향은 제 머리에서 의도적으로 지웁니다. 식재료의 선택과 그에 맞는 조리법을 적절하게 이용했는지만 봅니다. 제 취향에 안 맞아도 맛있다고 평가를 하고, 제 취향에 맞아도 맛없다고 평가를 합니다.선거는 정치 토론이 크게 열리는 장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 주권을 자신에게 위임해달라고 정치 토론을 벌입니다.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인 취향 토론과 다릅니다. 적어도 민주공화국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개념조차 없는 정치인은 토론을 통해 걸러져야 합니다. 동서로 확연하게 갈라진 총선 결과를 보며 아직도 정치판이 취향 토론의 장인가 싶어 입맛이 씁니다. 2024.04.25 06:59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음식을 먹는 일에 대해

원래 인간은 음식 먹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싫어합니다. 먹방이 대세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것입니다. 제 말대로 해보십시오. 밖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다가는 싸움이 날 수가 있으니까 집안에서 식구를 상대로 하시는 게 좋습니다.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식구를 빤히 쳐다보십시오. 아무 말 말고 1분만 지켜보십시오. 당장에 “왜 그래?”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 짜증을 내며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밥 먹는데 왜 빤히 쳐다보고 그래.”밥 먹는데 보는 거 아닙니다. 이건 전지구적인 식사 예절입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음식을 먹는 일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영상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말이지요.2024년 현재 우리 모두의 손에는 휴대폰이라고 불리는 고화질 동영상 촬영 겸용 카메라가 들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잘하지 않습니다. SNS에 ‘음식 영상’을 올리지 ‘음식 먹는 모습 영상’을 올리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대체로 직업적 의도에 따라 연출되는 것입니다. 맛칼럼니스트인 저 역시 음식에 대한 설명의 한 방법으로 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식 먹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 중에 가장 핫한 것이 유튜브 먹방입니다. 유튜브 먹방은 음식 먹는 사람을 카메라 바로 앞에 앉혀두고 찍습니다. 어떤 먹방은 눈 위로는 화면에 안 보입니다. 음식과 입과 손만 보입니다. 입안에서 음식물 씹히는 소리를 증폭시켜서 영상 위에 흐르게 합니다.유튜브 먹방은, 맛칼럼니스트라는 직업 때문에 보기는 하지만, 저는 아직 적응을 못 했습니다. 보고 나면 오히려 식욕이 떨어집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어내는 유튜버를 보고 있자면 온갖 상념으로 제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유튜버의 건강 걱정이 제일 큽니다.먹방 유튜버는 직업입니다. 그들은 평소에도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맛있게 많이 먹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로 먹고사는 것이지요.먹는 양이 적다뿐이지 제가 하는 일도 먹방 유튜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평소에 음식을 먹을 때에, 그러니까 카메라 없이 음식을 먹을 때에, 음식의 맛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조리를 하는 게 적절하다는 둥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저의 먹방 역시 먹고살려고 찍는 먹방입니다.음식 먹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직업인 중에 정치인도 있습니다. 이들의 먹방은 많이 먹는 먹방도 아니고,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먹방도 아닙니다. 유명인 사생활 공개 영상의 먹방도 아니고, SNS에 올려지는 과시용 먹방도 아닙니다.정치인의 먹방은 대체로 재래시장 노점에서 찍습니다. 메뉴는 떡볶이·순대·오뎅(여기서 어묵이라 하면 맛이 안 납니다. 그냥 오뎅이라 합시다) 등을 먹습니다. 가끔은 식당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국밥과 칼국수 등을 먹습니다.정치인도 사람인지라 평소에 떡볶이·순대·오뎅 등을 먹기도 하겠지만 대놓고 카메라 앞에서 먹는 음식으로 이 메뉴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여러분, 저는 서민 편입니다. 이렇게 서민적인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거 보세요.”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게라도 서민의 삶을 느껴보면 국회에 가서 서민을 눈곱만큼이라도 조금 더 생각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는 않습니다.정치인의 먹방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불편한 것이 왕조 시대의 민정 시찰 같은 분위기가 연출된다는 것입니다. ‘높은 계급의 정치인’이 ‘낮은 계급의 시민’이 어떻게 먹고사나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유력 정치인 뒤로 보좌하는 사람들이 병풍처럼 서니까 더욱 그러합니다. 민주공화국의 정치인이라면 선출직 국가공무원 후보로서 국민께 어떤 먹방을 보여야 할 것인지 고민을 좀 하고 시장에 나왔으면 합니다. 2024.03.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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