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멋스토리] 16년간 26건…진화하는 'M&A 귀재' 차석용 LG생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26번째 기업 인수 합병(M&A) 소식을 전했다. 차 부회장은 2005년 LG생활건강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뒤 매년 크고 작은 M&A를 성사시키며 '만년 2위'였던 회사를 업계 1위로 끌어올렸다. 1953년생인 차 부회장은 그룹은 물론 10대 기업 계열사를 통틀어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그러나 될성부른 기업을 보는 안목과 탁월한 성과는 업계 내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는 평가다.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이에도 생소한 '힙한' 브랜드를 손에 넣으며 여느 젊은 CEO 못지않은 감각까지 발휘 중이다. 16년 재임 중 M&A만 26차례 LG생건은 지난달 31일 미국의 하이엔드 패션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폭스'를 보유한 보인카의 지분 56.04%를 1억 달러(약 1170억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IB업계는 보인카의 2020년 매출을 425억원, 당기순이익 117억원, 순이익률 27.5%로 추정한다. LG생건이 '작지만 알찬 북미권 헤어케어 브랜드'를 손에 넣었다고만 생각하면 아쉽다. 이번 보인카 인수는 과거 LG생건이 해왔던 M&A와 사뭇 결이 다르다. 알티폭스는 2014년 미국에서 출시된 비건 브랜드다. 주력 상품은 헤어 염모 제품이다. 반영구 염색 제품이 특히 잘 팔린다는 후문이다. 알틱폭스는 최근 MZ세대가 추구하는 모든 걸 담은 브랜드다. 유해 화학 성분을 최소화하고, 동물실험도 지양한다. 반면 마이너리티를 향한 관심은 차고 넘친다. 알틱폭스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대중이 선호하는 컬러는 오히려 밀려난 모양새다. 홈페이지에서는 선명한 핑크, 블루, 퍼플 컬러로 염색한 남성 모델이 '북극 여우'의 털처럼 찰랑이는 머릿결을 흔드는 화보를 쉽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알틱폭스의 모델 중 상당수가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흑인 여성이나, 고정된 성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다. LG생건 같은 대기업이 품기에는 다소 자유분방한 것이 사실이다. 보인카는 디지털 소통과 마케팅 역량도 뛰어나다. 알틱폭스는 인스타그램·틱톡·페이스북 등 각종 SNS에서 200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북미권 MZ세대 사이에 가장 반짝이는 가치와 콘셉트로 무장한 힙한 헤어케어 브랜드가 알틱폭스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판매량이 부진한 것도 아니다. LG생건 측은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에서 지난달 23일 기준 헤어 컬러 제품군 중 1위 올랐다. 이날 하루뿐만 아니라 줄곧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다른 주요 뷰티 판매 채널에서도 성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차 부회장은 LG생건이 가져야 할 단단한 기술력이나 확실한 시장을 가진 기업을 주로 사들여왔다. 2020년 '피지오겔', 2019년 뉴에이본, 2014년 'CNP코스메틱'이 대표적이다. 더마코스메틱 카테고리나 북·남미권 사업 강화, 코스메슈티컬 시장 확보 차원에서 단행된 M&A였다. 그러나 이번 보인카 인수는 기술력 그 자체보다는 북미권에서 새로운 문화와 스타일을 선도한다는 부분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평가된다. 누가 봐도 특이한 브랜드를 차 부회장이 먼저 나서 택한 것이다. 젊은 층이 주 고객이지만 순익률이 30%에 육박하고, 연평균 성장률이 80%에 달한다는 점도 차 부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LG생건은 알틱폭스와 함께 비교적 약한 상품군도 채워 넣었다. LG생건은 샴푸 등 헤어케어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염모제 부분은 취약하다. 지난해 전 세계 헤어케어 시장 규모가 90조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프리미엄 비중은 약 20%로 추정될 정도로 성장 중인 점을 고려하면 포트폴리오 확충이 필요하다. 한유정 대신증권 연구원은 "LG생활건강은 이번 인수로 기존 '리엔', '엘라스틴' 브랜드로 일부 염모제 제품만 판매해왔었던 제품 포트폴리오 취약점 보완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IB업계는 이번 M&A를 통해 LG생건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분위기다. 안지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2월 인수한 피지오겔은 M&A를 통한 기업 가치 상승의 대표적 사례였다"며 "보인카 M&A로 선진 시장, 프리미엄 헤어 카테고리의 제품 및 브랜드 포트폴리오와 고객 기반 확대가 기대된다"고 했다. '리스크 최소화' 포트폴리오 구축 차 부회장의 이름 뒤에는 다소 낯간지러운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M&A의 귀재', '차석용 매직' 등이다. 성공적인 인수합병 결과와 탁월한 성과를 일컫는 별칭들이다. 차 부회장이 부임했던 2005년 당시 LG생건은 생활용품과 화장품 부문만 갖고 있었다. 화장품 부분은 대부분 1위 아모레퍼시픽과 비교해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점잖은 아모레'와 '추월 의지가 특별히 없는 LG생건'이 K뷰티 업계가 양사를 보는 시선이었다. 차 부회장은 부임 후 적극적인 M&A와 럭셔리 화장품 론칭으로 회사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 먼저 2007년 코카콜라음료, 2010년 해태음료 등을 인수하며 사업구조 폭을 넓혔다. 지난 16년 세월 동안 알려진 M&A만 26차례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일일이 공개하지 않은 작은 M&A까지 더하면 26건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차 부회장이 가치 있는 기업을 찾고, 적극적으로 인수·합병해 이익을 내는 부분에서는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K뷰티 업계는 2016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발 후폭풍에 이어 코로나19라는 시련을 연달아 만났다. 아모레를 비롯해 대부분의 뷰티 기업이 고전할 때 LG생건은 나 홀로 최대 실적을 작성해댔다. 화장품이 덜 팔릴 때는 생활용품으로 공백을 채우고, 음료 군이 뒤를 받친 덕이었다. LG생건은 올 상반기 매출 4조581억원, 영업이익 7063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상반기 실적을 경신했다. 이는 작년 동기 대비 각각 10.3%, 10.9% 증가한 수치다. 화장품 사업부문 실적만 보면 상반기 매출은 1년 전보다 14.3% 늘어난 2조2744억원을, 영업이익은 4733억원으로 18.4% 올랐다. 차 부회장은 LG그룹은 물론 10대 그룹 내에서도 최장수 CEO다. 지난 2005년 LG생건 경영을 맡은 뒤 16년간 매 분기 최대 실적을 이끌고 있다. 차 부회장은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던 2018년에도 연말 인사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다. 차 부회장의 임기만료 예정일은 2022년 3월로 알려진다. 뷰티 업계 안팎에서는 차 부회장의 연임을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구광모 회장 시대가 열리면서 LG그룹 전반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지만, 차 부회장은 자리를 지켰다"며 "LG생건이 매년 최대 실적을 작성하고 있고 퍼포먼스도 준수하다. LG그룹이 차 부회장이 '최장수 CEO'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교체하기에는 실적이 상당히 뛰어나다. 현재로써는 딱히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2021.09.06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