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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만 탐구생활] 겉은 '핵인싸' 속은 '승부의 화신'

최지만(29·탬파베이)은 2020년 가을, 가장 사랑받은 메이저리거다. 키워드는 반전 매력. 자신보다 연봉이 42배 많은 투수를 두들겼고, 185㎝·118㎏의 거구가 체조 선수처럼 말랑한 몸놀림을 보였다. 메이저리그(MLB) 포스트시즌 사상 '최고 중량' 1번 타자라는 기록도 남겼다. 퍼포먼스도 신선하고, 거침없다. 그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뒤 휴지통을 밟는 장면을 SNS에 공개했다. 2017~18년, 전자 장비로 사인을 훔쳐낸 뒤 더그아웃 쓰레기통을 두들겨 타자에게 알렸던 휴스턴의 부정행위를 조롱한 것이다. 휴스턴은 챔피언십시리즈 상대였다. 5차전에서 동점 홈런을 친 뒤에는 화려한 배트플립을 선보였다. 아시아 선수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던 쇼맨십이었다. 그리고 쿨하다. 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도 그랬다. 7회 초 1사 2·3루에서 대타로 나섰지만, 상대 벤치가 우투수 딜란 플로로를 좌투수 빅터 곤잘레스로 바꾼 탓에 타석에도 서지 못하고 교체됐다. 그래도 최지만은 엷은 미소를 띠었다. 야구를 달관한 표정 같았다. 일간스포츠는 '인간 최지만' 탐구에 나섰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은사, 고교 동창, 마이너리거 시절 동료의 얘기를 두루 들었다. '선천적인 긍정왕' 최지만 최지만은 10월 16일(한국시간)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 2-3이던 8회 초 선두타자로 나서 동점 홈런을 쳤다. 극적인 홈런을 치고도 무심한 표정으로 배트를 던져버린 퍼포먼스가 주목받았다. 요란하다가 무심하니 또 화제였다. 화끈한 세리머니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최지만은 팀 리더 윌리 아다메스와 함께 더그아웃 분위기를 달구는 주역이다. 그와 고교(동산고) 시절 한솥밥을 먹은 KT 내야수 김병희는 "예전부터 파이팅이 넘쳤다. 밖에서보다 그라운드에서 더 밝은 기운을 발산하더라. 귀국할 때마다 만나는데, 변함없이 기운이 넘치는 친구"라고 전했다. 마이너리그 시절 서로 의지하며 친분을 쌓은 나경민 롯데 2군 코치도 "솔직히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면 낯간지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게 최지만다운 모습이다. 실제 성격도 그대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최지만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맡은 오정택 GMS(에이전시) 실장은 "항상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모든 사람을 친근하게 대한다"고 했다. 이찬선 전 동산중 감독은 "최지만은 유년기부터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넘쳤던 아이였다"고 했다. 이찬선 전 감독은 최지만의 부친인 고(故) 최성수 전 동산고 코치와 막역한 사이였다. '소년' 최지만을 지켜봤고, 그가 중학교(동산중)에 진학한 뒤에는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이어왔다. 수많은 야구 꿈나무를 지도한 이찬선 감독에게도 최지만은 기억에 남는 제자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도 건강한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찬선 감독은 "지만이가 (최)성수 형님을 정말 존경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늘로 떠나셨을 때 걱정했는데, 구김 없이 크더라"고 돌아봤다. 고교(동산고) 시절 최지만을 지도한 김재문 전 동산고 감독도 "최지만은 성격이 좋다. 밝고, 활기찬 선수였다. 같이 야구를 하는 이들과 융화하는 모습은 단연 돋보였다"고 말했다. 김재문 감독은 최지만이 수차례 부상을 극복하고 빅리그에 안착한 원동력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꼽았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팔꿈치 수술을 받고, 1년 내내 재활훈련을 했다. 상심이 컸을 텐데 잘 버티더라. 어린 나이에 불안감을 다스리는 게 쉽겠나. 타고난 성향도 지만이가 야구 선수로 성장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핵인싸' 이방인 2020 월드시리즈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27일, 테드 헤이드 시애틀 스카우트는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최지만의 마이너리그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헤이드는 "최지만이 마이너리그 첫해(2010년) 여름까지 좋은 성적을 낸 뒤 진지한 표정과 서툰 언어로 '내게 돈을 더 줘야 한다'고 하더라. 신인 선수에게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언어 습득 능력도 좋다. 중남미 선수들과 한국 식당을 찾기도 했다. 그처럼 캐릭터가 특별한 선수는 보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비슷한 목격담이 많다. 나경민 코치는 "타지 생활에서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많다. 지만이의 적응력은 뛰어나다. 내가 샌디에이고 소속일 때 시애틀과 같은 캠프 훈련장(피닉스 피오리아 스포츠 컴플렉스)을 썼다. 멀리서 지만이를 보면 외국 선수들과 엄청 친해 보였다"고 전했다. 손차훈 SK 단장도 "스카우트를 맡은 첫해(2009년) 동산고에서 최지만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유쾌한 선수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후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최지만을 다시 봤다. 외국 선수들에게 거리낌 없이 먼저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도 고교 시절 본 모습 그대로다"라고 돌아봤다. 최지만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팀을 이끄는 리더였다. '은사' 김재문 감독은 "지만이가 고등학교 때 투수가 되길 바랐다. 그런데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고 던져도 컷패스트볼처럼 휘어져 들어갔다. 구속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지만이에게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에 포수를 권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시애틀 스카우트도 벤치에서 팀 동료들을 이끄는 모습을 주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병희도 "주장은 내가 맡았지만, 실제로는 지만이가 후배들을 이끌었다"고 돌아봤다. MLB에서 아시아 선수는 여전히 많지 않다. 마이너리그에는 더 그렇다. 최지만이 긴 세월을 참고 이겨낸 원동력은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 덕분이었다. 네트워크가 하나도 없는 미국 땅에서 '핵인싸(무리 속에서 아주 잘 지내는 사람)'가 된 것이다. 이찬선 감독은 "눈물 젖은 햄버거를 먹으며 10년 넘게 버텨낸 원동력은 밝은 기운이 아닐까?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눈빛과 표정 덕분에 진심이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퍼포먼스가 아니라 승부욕이다 최지만이 올가을 주목받은 건 뉴욕 양키스 게릿 콜에게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2020시즌 정규시즌에서 7타수 5안타(2홈런)를 기록했다. 연봉 85만 달러(9억7000만원)를 받는 최지만이 3600만 달러(410억원)를 받는 콜을 압도한 것이다. 콜은 탬파베이와의 디비전시리즈를 앞두고 "최지만이 내 실투를 잘 쳤다"고 했다. 최지만은 10월 6일 디비전시리즈 1차전 탬파베이가 1-2로 뒤진 4회 말 무사 1루에서 콜로부터 역전 투런 홈런을 쳤다. 실투를 때린 게 아니라 실력으로 이긴다는 걸 보여줬다. 화제성이 큰 선수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월드시리즈 4번 타자로 나설 수 있었을까. 최지만의 은사와 친구들은 미소 뒤에 감춰진 그의 뜨거운 승부욕을 잘 알고 있었다. 이찬선 감독은 최지만 부친을 떠올렸다. 그는 "최성수 선배는 고교 시절 정말 야구를 잘했다. 주로 1번 타자로 나섰다. 절대로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을 가졌다. 뭐든 대충 하는 일이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형수님(최지만 모친)도 구기 종목 선수 출신이다. 지만이도 그런 기질을 이어받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김병희도 "고교 시절 한 연습경기에서 지만이가 더그아웃에 들어와서 분을 감추지 못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정말 이기고 싶은 투수가 있었고, 홈런을 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안타도 치지 못해서 그랬다. 같이 야구를 하는 내내 '지만이는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나경민 코치는 최지만의 여유 있는 표정과 제스처도 승부욕의 표현이라고 본다. 그는 "승부욕 없는 야구 선수는 없다. 그러나 최지만은 좀 유별나다"며 "야구를 하면서 힘든 일이 왜 없겠는가. 자존심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찬선 감독은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화제가 된 '다리 찢기'도 승부욕의 산물로 봤다. 그는 "그런 포구 동작을 보고 많이 놀랐다. 탬파베이에서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다쳤나. 그 과정에서 유연한 몸이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한 게 아닐까. 다치지 않고 야구를 잘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김병희는 고교 시절에도 최지만의 다리 찢기 포구를 봤다. 그는 "임시 1루수로 나선 경기에서 두 다리를 크게 벌려 포구하더라. 공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과감했다. 원래 유연성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필라테스를 하면서 그런 플레이가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지만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마이너리그에서 부상을 많이 당했다. 건강하게 뛰기 위해 필라테스를 시작했다"고 했다. 마음은 오래전부터 빅리거 최지만은 2016년 4월, LA 에인절스 소속으로 MLB에 데뷔했다. 마이너리그 생활만 6년이다. 빅리그 데뷔 뒤에도 세 번이나 유니폼을 바꿔입었다. 이 기간 자신을 다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하루에 일기를 세 번 썼다고 한다. 포지션(포수), 타격, 그리고 미국 생활에 대해서였다. 또래 젊은이들처럼 보이지 않는 미래, 그리고 치열한 경쟁이 주는 고민을 담았다. 그는 시애틀 마이너리그팀 소속이었던 2015년 7월 서울디지털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학업을 마치기 전 MLB에 진출했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의 학위 수여식에 직접 제작한 영상을 축전으로 보낼 만큼 학업에 애착이 있었다. 학교 관계자도 5학기 동안 온라인·모바일 수업을 꾸준히 수강한 최지만의 학구열에 놀랐다. 그는 아직 큰돈을 벌지 못했다. 그러나 최지만은 아버지의 현역 시절 등 번호(51번)를 딴 장학 재단 'CHOI 51'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아마추어 선수의 용품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에인절스 시절에는 충주 성심학교 소속이던 청각 장애인 야구선수 서길원을 후원한 소식도 알려졌다. 나경민 코치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군가를 도와준다. 용품이나 재능 기부 활동이 정말 많다. 자신이 마이너리그에서 힘들게 야구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시절을 잊지 않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이찬선 감독은 "학생(선수)들이 좋은 선수가 되기 전에 좋은 인간이 되길 바랐다. 지만이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메이저리거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심으로 남을 돕고 있다"고 칭찬했다. 최지만은 이찬선, 김재문 감독과도 꾸준히 연락하며 끈끈한 사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김병희 등 고교 동창생들을 만나면 마이너리그 시절처럼 소박한 자리에서 야구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한다. 야구장밖의 최지만은 우리가 아는 것과 꽤 달랐다. 그러나 그의 지인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최지만은 그럴 줄 알았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0.1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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