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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카타르 월드컵

2022 월드컵이 지난 21일(한국시간) 1시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경기를 시작으로 개막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지구촌의 최대 축구 축제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와 FIFA(국제축구연맹)를 향한 불편한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FIFA는 2010년 12월 2018년과 2022년 대회 개최지를 동시에 결정했다. 2018 대회가 유럽(러시아)에 배정된 관계로 2022 대회를 신청한 국가는 비유럽 국가들이었다. 한국, 미국, 일본, 호주, 카타르가 후보였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2002 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에, 20년 만에 다시 월드컵을 유치할 명분이 약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 시장인 미국과 월드컵을 개최한 적이 없는 호주가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4차 투표에서 카타르가 미국을 14-8로 이기고 개최국으로 선정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6월 평균 낮 기온이 40℃(밤은 32℃)인 카타르 도하에서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겁했다. 카타르는 대안으로 경기장에 에어컨을 설치한다고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설득력이 없는 얘기였다. 축구장에 에어컨만 달랑 설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타르 이전에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 중 가장 작은 나라는 1954 대회를 유치한 스위스였다. 하지만 그런 스위스마저도카타르보다 면적이 3배 이상 크다. 또한 당시만 하더라도 월드컵 참가국은 16개국에 불과했다. 월드컵을 개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숙박시설도 문제였다. 카타르는 세계 으뜸의 부자나라 중 하나지만 이들이 가진 조건은 월드컵 개최국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월드컵 유치 관련 뇌물 스캔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개최국 변경 얘기까지 솔솔 흘러나왔다. 하지만 FIFA가 개최지를 변경하기에는 카타르와 아랍권의 반발이 부담스러웠다. 또한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었다. 과거 미국도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뇌물을 IOC 위원들에게 제공했는데도, 개최권을 박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 때문에 결국 카타르 월드컵은 여름에서 겨울로 개최 시기가 변경됐다. 개최지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결정이었는지는 몰라도, 덕분에 세계 축구계의 많은 스케줄이 다 꼬여 버렸다. 유럽은 축구 리그를 중단해야 했고, 빡빡한 일정에 피로가 누적된 선수들은 부상 위험도가 증가했다. 통상 1~2월에 열리던 AFC 아시안 컵은 2023년 여름으로 개최 시기가 변경됐다. 하지만 최근 카타르가 아시안 컵마저 유치함에 따라 다시 한번 개최 시기가 변경될 예정이다. 경기도보다 약간 큰 면적을 가진 카타르의 인구는 280만 명이다. 이 중 카타르 국적을 가진 이는 30만 명밖에 안된다고 한다. 따라서 월드컵 개최를 위한 대규모 인프라 건설 현장에 투입된 외국인 노동자는 무려 250여만 명에 달했다. 이들의 출신은 주로 인도,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였다. 문제는 이들이 직면한 열악한 근무환경이었다. 불볕더위 속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한 이들에게 주어진 휴식과 주거 환경은 너무 조악했다. 임금이 몇 달씩 밀려도, 노동자들은 일을 관둘 수도 없었다. 고용주가 이들의 여권까지 압류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론지 가디언에 의하면 2010년 이후 10년 동안 위에 언급한 5개 나라 출신의 사망 노동자만 무려 67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필리핀 등 다른 나라 노동자까지 합하면 실제 사망자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너무나 많은 사망자가 나오자 카타르 정부와 FIFA에 비난이 쇄도했다. 일부 스폰서 기업은 월드컵 관련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럽의 여러 국가가 카타르의 노동 착취에 항의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어필한 나라는 덴마크였다. 덴마크는 항의의 표시로 카타르 현지에서의 활동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타르의 어떠한 수익 창출이나 홍보에 기여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한 덴마크 대표팀의 스폰서인 험멜은 홈 셔츠의 붉은색에 축구협회와 자사의 로고를 눈에 잘 안 띄게 모노톤 처리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회에서 눈에 띄기 싫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들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검은색 서드 셔츠까지 만들었다. 덴마크는 예전에도 티베트 축구대표팀을 코펜하겐으로 초대해 자국 영토인 그린란드와의 국제 경기를 주선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경기를 취소하지 않으면 덴마크와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바이킹의 후예들은 이런 위협에 굴하지 않았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사회에서 덴마크의 강단 있는 모습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한편 카타르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항의로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 웨일스, 잉글랜드, 덴마크 대표팀의 주장은 무지개 로고가 들어간 완장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선다고 한다. 물론 이를 허용하지 않은 FIFA는 이들에게 징계를 내릴 예정이다. 개막을 불과 이틀 앞두고 경기장 일원에서 맥주 판매를 금지한다는 조치로 카타르와 FIFA는 다시 한번 구설에 올랐다. 이에 잔니 인판티노(스위스) FIFA 회장은 “3시간 동안 맥주를 안 마셔도 인간은 생존한다”는 황당한 변명으로 빈축을 샀다. 경기장에서 맥주를 마시고 혹은 못 마시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신뢰의 문제다. 세계에 한 약속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갑자기 바꾼 이들이 다른 약속인들 지킬지 의문이다. 월드컵 개막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인판티노는 카타르의 인권침해 논란에 황당한 물타기를 시도했다. 아울러 “유럽이 전 세계에서 3000년 동안 해온 일에 대해 앞으로 3000년은 사과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실소를 자아냈다. 3000년 전은 유럽이라는 개념도 없던 청동기 시대였다. 인판티노의 축구에 집중하자는 희망과는 달리,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역사상 가장 정치화된 월드컵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2.11.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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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보이지 않는 국가들의 월드컵②

어느 국가이든 세계 축구무대에 얼굴을 내밀려면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해야 한다. 간혹 FIFA에 관심이 없는 국가도 있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자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 시티는 “축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사랑의 메시지는 아마추어 신분일 때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FIFA 축구는 비즈니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바티칸은 FIFA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 가입에 필요한 기준을 충족한 지중해 연안 국가이자, 세계적인 부국인 모나코도 FIFA가입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FIFA에 소속되지 않은 나라는 가입 의사가 있어도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 가입을 신청한 국가의 축구 인프라 지원 비용에 부담을 느낀 FIFA는 의도적으로 가입 프로세스를 지연시킬 때도 있다. 신청국이 지친 나머지 가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가입하지 못하는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지아에 위치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다. 사실상의 독립국이지만, 이들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해 극소수다. 북키프러스도 마찬가지다. 터키계가 다수인 북키프러스는 1983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를 승인한 국가는 터키가 유일하다. 국제사회는 그리스계로 이루어진 남부의 키프러스 공화국만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FIFA에 가입하지 못한 국가나 민족을 위한 단체가 코니파(CONIFA·독립축구협회연맹)다. 코니파의 모토는 ‘모두를 위한 축구(football for all)’다. 자원봉사자가 이끄는 비영리 단체 코니파는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코니파는 어떤 정치적인 견해나 행동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정치를 뒤로 하고(leave all politics behind)’ 싶다는 코니파의 목표는 이상주의자의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코니파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미승인국이나 국가 없는 민족 등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위한 축구 대회를 연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이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라 없는 민족들은 코니파 월드컵을 통해 국가 건설 같은 정치적 의제를 표출할 때도 있다. 이런 이유로 3회 코니파 월드컵이 2018년 런던에서 개최될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팀이 티베트(Tibet)였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티베트는 불교의 영향으로 17세기부터 달라이 라마(현재의 달라이 라마 14세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결과로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를 정치·종교상의 군주로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1950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를 침공해 중국에 합병시켰다. 이후 협상을 통해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임을 인정하지만,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양측이 타협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반종교 정책의 일환으로 티베트 승려들을 탄압하고 처형했다. 아울러 토지개혁 같은 공산당 정책이 시행되자 티베트인들의 반중 감정은 폭발했고, 1959년 독립을 위한 봉기가 일어났다. 중국군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명의 티베트인이 목숨을 잃었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망명한 티베트인들은 2001년 자신들을 대표하는 축구협회(TNFA)를 설립했다. TNFA는 대표팀을 조직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한 달 동안 준비한 끝에 그린란드를 상대로 첫 번째 국제경기를 갖게 된다. 개최 장소는 덴마크의 수도 코페하겐이었다. 하지만 망명한 티베트인들로 구성된 선수 중의 상당수는 해외여행에 필요한 여권 등이 없어 덴마크로 갈 수 없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대표팀이 못마땅했다. 이에 경기를 취소하지 않으면 중국은 덴마크와 그린란드와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겠고 압박했다. 위협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와 그린란드도 물러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경기에서 티베트는 그린란드에 1-4로 패배했다. 하지만 티베트는 자신들의 깃발 아래서 처음으로 국제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승리자였다. 그 후 티베트 대표팀은 가끔 국제 경기를 소화했으나, 프랑스령 프로방스 대표팀에 0-22로 대패하는 등 10년 넘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마침내 2013년 티베트는 분쟁지역인 서사하라 대표팀을 12-2로 물리치고 첫 승리를 기록했다. 티베트는 코니파 랭킹은 최하위권이지만, 2018년 월드컵에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참가할 행운을 얻었다. 달라이 라마는 대표팀을 축복하며 “티베트인들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건넸다. 전 세계의 티베트인들은 대표팀의 경비에 보태쓰라며 성금도 보냈다. 해외 곳곳에서 선수들이 오는 관계로 대표팀은 런던에 도착해서야 한 팀이 될 수 있었다. 티베트가 월드컵에 참가하자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스폰서로 참여하려던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정부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후원 의사를 줄줄이 철회한 것이다. 티베트를 대회에서 아예 쫓아내라고 하는 기업까지 있었다. 이에 도박업체 패디 파워가 단독 스폰서로 참여했다. 어차피 도박은 중국에서 불법인 관계로 패디 파워는 중국 시장에 진출할 의사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진운이 따라주지 않아 티베트는 강호 카르파탈랴, 북키프러스와 디펜딩 챔피언 압하지야와 한 조로 묶였다. 결국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한 티베트는 순위 결정전에서 선전해 16개 참가국 중 12위라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사실 티베트에게 경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경기에 앞서 그들의 국가를 불렀던 티베트인들은 티베트 국기를 단 대표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티베트인들은 런던 대회 동안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세상에 보여줬다는 사실에도 감격했다. 비록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2018년 6월 티베트는 런던에서 독립국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누린 것이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3.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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