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어느새 훌쩍 큰 유망주들, 톱10 넘어 포디움까지 올라선 한국 피겨
더이상 '유망주', '기대주'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현재이자 미래로 훌쩍 큰 선수들이 포디움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시상대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포디움은 1위부터 3위까지 설 수 있는 높이가 다른 단상을 뜻한다. 즉, 포디움에 든다는 것은 3위 안에 입상해 메달을 목에 건다는 뜻이 된다. 지금까지 한국에선 피겨스케이팅의 새 역사를 쓴 김연아(30·은퇴)의 성적을 얘기할 때 주로 쓰였다. 어떻게 보면 '올 포디움(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오른 것)'을 달성할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던 '피겨여왕' 덕분에 더 친숙해진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김연아 이후로 한동안 포디움에선 태극기를 두른 한국 선수를 보기 어려웠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였던 한국의 저변을 생각하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결과였다. 그러나 포디움에 선 김연아를 동경해 스케이트를 신은 선수들이 쑥쑥 성장해 국제대회에 나서면서, 멀어졌던 포디움도 조금씩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유영(16·과천고)이 김연아 이후 11년 만에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사대륙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것처럼 말이다. 유영은 8일 서울 양천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끝난 대회 여자 싱글에서 자신의 ISU 공인 최고점인 223.23점을 기록하며 은메달을 차지했다. 2009년 김연아가 우승한 이후, 한국 선수가 이 대회 포디움에 선 건 이번이 두 번째. 비장의 무기로 갈고 닦아온 트리플 악셀이 그를 포디움으로 이끌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선 착지 불안으로 수행 점수(GOE)가 깎였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선 첫 점프 과제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해 완벽하게 성공하며 고득점의 기반을 마련했다. 상대적으로 불안했던 스텝 시퀀스에선 레벨2를 받았지만 이후 점프 과제도 트리플 플립에서 나온 회전수 부족 판정 하나를 제외하곤 큰 실수 없이 잘 마무리해 포디움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자신이 동경한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그것도 국내에서 열린 대회에서 포디움에 섰다는 건 유영 본인에게도 의미 깊은 일이었다. 시상자로 나선 김연아에게 축하를 받은 유영은 "(김)연아 언니는 한국을 빛낸 선수다. 연아 언니를 보고 피겨를 시작했는데, 앞으로 한국 피겨를 이끌고 빛내고 싶다"며 "연아 언니의 뒤를 이어 좋은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포디움에 오른 만큼 자신감도 붙은 유영은 트리플 악셀의 완성도를 높이고, 고난이도 점프를 장착해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목표다. 더 반가운 소식은 포디움을 노리는 선수가 유영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유영과 함께 출전한 김예림(17·수리고)도 이날 자신의 개인 최고점인 202.76점을 기록하며 6위에 올랐고, 임은수(17·신현고)도 200.59점으로 8위를 기록했다. 이들 모두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지 1~2년 차인 선수들이라 앞으로 성장세가 더 기대되는 상황. 유영과 함께 차세대 피겨를 이끌어 갈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들은 국제대회 경험을 쌓아가며 차근히 포디움 진입을 노리고 있다. 물론 체형 변화와 이에 따른 부상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는 아직 남아있다. 9일 열린 남자 싱글에서도 차준환(19·고려대 입학 예정)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차준환은 이날 끝난 프리스케이팅에서 175.06점을 받아 쇼트프로그램 점수 90.37점을 더해 총점 265.43점의 기록으로 5위에 올랐다. 포디움 진입은 실패했지만 기대감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성적이다. 올 시즌 구성 난도를 끌어올리다가 슬럼프로 고생했던 차준환은 이번 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 시즌 최고점, 프리스케이팅과 총점에선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며 자신감을 쌓았다. 한편 이번 사대륙선수권 여자 싱글과 남자 싱글은 모두 일본 선수들이 포디움 정상에 섰다. 여자 싱글에선 키히라 리카(18·일본)가 지난해에 이어 대회 2연패에 성공했고 남자 싱글에선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 하뉴 유즈루(26·일본)가 대회 첫 우승을 달성, 김연아 이후 첫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4대륙선수권대회,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달성자가 됐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2.10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