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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어디] 당진·태안, 푸르름 속에서 즐기는 여유
신록으로 가득한 6월이다. 녹색빛이 눈을 개운하게 하며, 나무 향이 온몸을 휘감는다. 서울 도심에서 한시간 반을 달리니, 하늘과 논밭이 반반인 풍경이 펼쳐진다. 코끝을 자극하는 비료 냄새는 덤이었다. 미세먼지 짙고 비 예보가 들어맞아 곧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따뜻한 기운에 긴장이 풀렸다. 시쳇말로 ‘멍 때리기’ 좋은 날이었고, 좋은 경치였다. 지난 6일 조용하고 잔잔한 충청남도 당진과 태안에 다녀왔다. 잔디의 여백이 만들어 낸 그림, 당진 ‘신리성지’ '신리성지'는 ‘천주교의 성지’면서, 성당과 앞의 잔디가 한 폭의 그림 같아 일명 ‘인생 사진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방문객들 발길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종교적 장소이나 전혀 관계없는 이들도 굳이 이곳을 찾아오는 데는 여타 다른 종교적 장소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답고 조화로운 공간 때문인 듯했다. 푸른 잔디가 여백을 만들고, 작은 언덕 위 순교미술관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자연스럽게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단, 종교적 성스러움이 가득한 공간이니 조심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다.신리성지의 한 수녀는 “미사드리러 오셔서 이렇게 떠들면 어떻게 하는가. 이곳은 유원지가 아니다”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또 잔디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순교미술관으로 오르는 언덕은 진입이 불가능했다. 미사드리는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니 고성방가는 삼가해야 했으며, 애완동물과 음식물 반입은 금지였다.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둘로 나뉘는 듯했다. 하나는 사진을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당연히 종교적 이유다.사진을 위해 방문한 이들은 너도나도 ‘삼각대’를 세워 놓고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자신의 모습을 담기에 바빴다. 홀로 방문한 이도 성지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미사드리기 위해 신리성지를 찾은 단체 방문객들도 있었다. 인천 부평에서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순교한 다블뤼 주교·오메트르 신부·위앵 신부·손자선 토마스·황석두 루카를 기억하는 다섯 개의 야외 경당을 돌며 미사드렸다.또 이곳은 ‘버그내 순례길’의 코스 중 하나기도 했다. 버그내 순례길은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합덕방죽·원시장과 원시보 형제의 탄생지에 있는 옛 우물 그리고 무명 순교자 묘역을 거쳐 신리 교우촌에 이르는 천주교 순례길이다. 길이는 총 13.3km.본래 ‘버그내’는 합덕의 구전 지명 가운데 하나로, 조선 시대에는 큰 장이 형성되기도 했고, 장터를 오가며 삶의 애환을 나누던 이 지역 문화의 거점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특히 이 지역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장소로, 버그내 장터와 합덕방죽을 걸어가는 순교 여정과 순교자들의 자취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신리성지는 비옥한 곡창 지대와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으로, 400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이어 나갔던 조선 시대 최대의 교우촌이었다고 한다.다블뤼 주교는 이곳에서 프랑스 신부 4명과 전교 활동을 펼쳤는데, 다음 해 ‘병인박해’로 이곳에서 40여 명이 순교했다. 이어 1970년에 인근의 줄 무덤에서 십자가 고상과 목 없는 시체들이 발견됐다고 한다.그래서 이곳에는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유적지도 남아 있다. 제5대 조선 교구장 다블뤼 주교는 21년 동안 조선에서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고 한글로 번역하며 천주교회가 정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름다운 낙조와 함께 즐기는 태안 ‘천리포수목원’ 태안반도 끝자락인 소원면에 위치한 '천리포수목원'은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불렸던 고 민병갈(미국명 '칼 페리스 밀러') 설립자가 40여 년 동안 정성을 쏟아 일궈 낸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이다.그동안 수목원 관련 전문가나 후원 회원 등에게만 제한적으로 입장이 허용됐다가 2009년부터 일부 지역이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설립자 이름을 딴 ‘밀러가든’은 천리포수목원 내 총 7개의 관리 지역 중 첫 번째 정원으로 관광객들 발길이 이어진다.밀러가든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 사계절 푸른빛을 머금은 곰솔 사이로 탁 트인 서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방문객들을 사로잡는다. 특히 솔바람길을 걷다 보면 청량한 파도와 고운 모래펄을 자랑하는 ‘천리포해수욕장’이 한눈에 담겨 탄성을 자아낸다.태안·당진의 맛 ‘게국지’ 충청남도 향토의 맛 ‘게국지’는 태안·당진으로 떠난 여행객들의 필수 음식으로 꼽힌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게장과 함께 게국지를 내놓고 있었다. 가정에서 게국지를 먹을 때는 간장게장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남은 게장 국물에 묵은 김장김치나 푸성귀를 넣고 팔팔 끓여 먹는, 고급 요리가 아니라 어느 집에서나 먹는 보통 음식이었다. 화려한 손맛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게를 손질해 겉절이김치와 함께 끓여 내는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 젓갈 대신 들어가는 게국 간장은 능쟁이(참게)를 넣어 삭힌 간장이고, 게국지 김치는 얼갈이배추 대신 무청을 넣어 담가도 맛이 좋고, 작은 꽃게를 넣어 만들어도 좋다. 우리가 아는 김칫국 맛에 게 육수의 깊은 맛이 스멀스멀 올라온다.권지예 기자 kwon.jiye@jtbc.co.kr
2019.06.12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