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3월 22일 오후 2시, '슈퍼매치' 사라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20년 3월 22일 오후 2시 서울월드컵경기장. 이날은 K리그 최대 축제날. 이곳은 K리그의 성지가 됐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난 1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020시즌 K리그1(1부리그) 일정을 확정 발표했다. 많은 일정 중 K리그 팬들의 가장 뜨거운 시선을 받은, K리그 최대 '빅매치'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슈퍼매치'는 3월 22일 일요일 오후 2시로 확정됐다. 올 시즌 K리그1 첫 번째 슈퍼매치다. 세계가 인정한 더비, K리그가 자랑하는 라이벌전이다. K리그 역대 최다 관중 10위 안에 슈퍼매치는 무려 5경기나 포함돼 있다. 2007년 4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슈퍼매치를 관전하기 위해 5만5397명이 몰렸다. 2011년 11월에도 5만1606명이 입장하는 등 5만명을 두 번이나 돌파한 슈퍼매치다. 5번 모두 주말에 펼쳐졌고, 장소는 전부 서울월드컵경기장이었다. 그만큼 주말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슈퍼매치의 파급력은 컸다. 최근 슈퍼매치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해도 기본 수만명이 몰리며 K리그 최대 흥행 매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2월 29일 개막한 뒤 슈퍼매치는 4라운드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K리그는 개막 조차 하지 못했고, 슈퍼매치도 열리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K리그 구성원, 팬들 그리고 경기장 주변 상권까지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간스포츠는 슈퍼매치가 사라진 2020년 3월 22일 오후 2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봄은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찾아왔다. 경기장에도 봄이 왔다. 16도의 온도에 미세먼지까지 깨끗했다. 외투를 입으면 더울 정도. 여기저기 진달래꽃이 축구의 계절을 반겼다. 1년 중 축구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날씨다. 그러나 축구 팬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추운 날이나 다름 없었다. 축구가 없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쓰라린 모습, K리그 팬들 자취가 사라진 황량한 경기장을 봤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처절하고 절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경기장 주변에는 좋은 날씨에 나들이를 나온 이들이 곳곳에 있었을 뿐이다. 슈퍼매치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과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팬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존재를 감췄다.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굳게 닫힌 문과 코로나19 예방법이 적힌 포스터 정도다. FC 서울 직원들에게는 1년 중 가장 바쁜 날 중 하루다. 수만명이 몰리는 홈 경기를 운영하고 관리해야 한다. 당연히 FC 서울 직원들도 없다. 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 사무실에 나올 이유는 없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위치한 한국 최초의 축구 테마파크 풋볼팬타지움도 문을 닫았다. 코로나19로 인해 4월 5일까지 휴관한다는 메시지만 볼 수 있다. 경기장을 관리하는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안전관리직원은 "경기장 방문객이 현격히 줄었다. 차량 관리도 우리가 하는데 당연히 줄었다. 외국인들도 많이 왔는데 지금은 발길이 끊겼다. 꽉 찼던 풋살장도 폐쇄했다. 일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일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경기장 가는 길, 매장 가는 길 등등을 물어보시는데 지금은 알려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빨리 사태가 안정돼 축구 경기가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환경미화직원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는 "일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다. 하던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끝나야 한다. 빨리 축구 경기가 다시 열렸으면 한다. 경기가 열린다고 일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요즘에는 시민의식이 높아져 경기가 열리는 날이라 해도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기장 주변 상가로 발길을 옮기자 절박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K리그와 축구를 잠시 보지 못하는 허전함의 수준이 아니다. 생계가 걸린 일이다. 이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대로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전쟁에서 승리할 지 자신이 없다. 한 커피전문점 점장은 "수익이 많이 줄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매장이 같은 상황일 것이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 매출이 60~70% 줄었다. 주말에 손님이 더 줄었다. 오더라도 대부분 테이크아웃이다. 빨리 코로나19 사태가 끝났으면 좋겠다. 원래대로 돌아오면 좋겠다. 다들 건강하게 이겨냈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이날 슈퍼매치가 열릴 예정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K리그 스케줄은 언제나 파악하고 있다. FC 서울 홈 경기는 당연하다. 오늘이 슈퍼매치가 열리는 날인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같으면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매장에 사람이 다 찼다고 보면된다. 팬들이 정말 계속, 계속 온다. 슈퍼매치는 다른 경기보다 매출이 1.5배 정도 많다"고 슈퍼매치를 떠올렸다. 음식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평소 맛집으로 유명한,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다는 음식점. 그런데도 이날 매장은 텅 비었다. 이 음식점 사장은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손님들이 많이 오신다. 지금은 보시는 것처럼 한가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힘든 상황이다. 매출의 3/4이 빠졌다. 원래 근무자가 1명 더 있는데 돌아가면서 1명씩 빠지고 있다. 절약하자고 건의를 했는데 직원들이 동참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K리그 스케줄은 체크해놓고 있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작년 기준으로 30~40% 매출이 더 나온다. 슈퍼매치는 더 많이 나온다. 미리 재료도 많이 준비해야 한다. A매치가 열리는 날이면 더 많다. FC서울 경기뿐 아니라 A매치도 열리지 않는 상황이라 더 어렵다. 경기가 열리는 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북적북적해야 일할 맛도 난다. 손님이 많아 힘든 것 보다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가장 힘든 부분을 물었다. 그러자 침울한 표정을 지은 그는 "2, 3월은 버틸 수 있을만큼 버텼다. 앞으로가 문제다. 내가 어떻게 버틸 지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일 하시는 분들이 걱정이다. 모두다 한 가족을 부양하는 분들이다. 안타깝다. 이런 부분들이 가장 힘들다. 죄송스럽다"고 고백했다. 상암=최용재 기자 choi.yonjae@joins.com
2020.03.23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