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당구여제'가 '당구여신' 이겼다, 포켓볼 아닌 스리쿠션에서
“저도 한 ‘독함’하는데, 가영 언니는 독해요, 독해. 어제 집 근처 당구장에서 연습하는데, 언니가 왔더라고요.”(차유람)“얘가 집에 안가서 새벽까지 했다니깐요. 애기 둘 키우면서도 정신력 하나는 끝내줘요.”(김가영) 포켓볼이 아닌 스리쿠션으로 맞붙은 ‘당구 여제’ 김가영(37·신한금융투자)과 ‘당구 여신’ 차유람(33·웰컴저축은행)이 서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둘은 2000년~10년대 포켓볼 월드클래스였다. 김가영은 세계선수권을 3차례, 차유람은 실내무도아시안게임을 2차례 제패했다. 지난해 프로당구 시대가 열리자 둘 다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꿨다. 전향 후 처음으로 일대일 승부를 펼쳤다. 8일 서울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PBA(프로당구)-LPBA 투어 SK렌터카 챔피언십 16강에서다. 3전2승제 세트제로, 1·2세트는 11점, 3세트는 9점을 먼저 따면 이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가영이 세트스코어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차유람이 1세트 7-4에서 연속 4득점하며 기선제압했다. 김가영이 2세트 5-9에서 연속 6득점하며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김가영은 3세트 시작과 함께 다시 6점을 몰아쳤다. 차유람이 6-7까지 따라붙었지만, 김가영이 9-6으로 힘겹게 마무리했다. 둘의 마지막 맞대결은 2014년 10월 국내 포켓볼 10볼 결승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예선 같은조(4인1조 서바이벌)였지만, 일대일 진검승부는 5년 8개월만이었다. 둘 다 “포켓볼은 하도 많이 붙어봐서 마지막이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고 했다. 둘은 회전을 거의 주지 않고 앞돌리기를 구사했고, 보조브릿지를 쓰기도 했다. 포켓볼 선수 시절의 장점도 잘살렸다. 코로나19 탓에 대회는 무관중 경기에 마스크를 쓴채 진행됐지만, 둘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경기 후 차유람이 “공을 다루는 기술은 여자선수 중 톱”이라고 하자, 김가영은 “연습 때 준비한걸 100% 발휘하는 선수”라고 화답했다. 차유람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포켓볼을 시작했을 때, 언니는 국내랭킹 1위였다”고 하자, 김가영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잖아. 난 중3 때부터 랭킹 1위였다”고 손사래쳤다. 둘은 10대와 20대 때 끊임없이 비교당했다. 여자선수로서 당구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30대에 접어들어 스리쿠션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차유람은 “자극제 그 자체, 따라잡고 싶은 존재다. 솔직이 없었다면 편했을거다. 하지만 김가영이 없었다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가영은 “독기를 품고 바짝 추격하는 추격자다. 쫓기는 사람은 불안하다. 못 생겼으면 좋겠는데 예쁘기까지하다. 외모 비교를 당하면 ‘당구로는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차유람이 있어 처음 열등감도 느껴봤고, 지지 않으려고 용을 썼던 것 같다”고 했다. 김가영은 지난해 12월 LPBA 6차대회 정상에 올랐지만, 차유람의 최고성적은 8강. 지난해 1회전에서 줄줄이 탈락했던 차유람은 실력이 급성장했다. 맞대결 평균 에버리지에서 차유람(0.839)이 김가영(0.750)을 앞섰다. 차유람은 “완전히 새로운걸 하려다보니 과부화가 걸렸었다. 15년간 쳤던 포켓 타법을 장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언니와 결승에서 만나고 싶은데, 다음 대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가영은 “차유람이 빠르게 발전했다. 빨리 높은 곳에서 볼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박린 기자 rpark72joongang.co.kr
2020.07.08 15:27